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1 여름.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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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폭력 운동의 딜레마를 넘어 대안을 모색하자

사회진보연대는 왜 반성폭력 규약을 폐기했나

김유미 | 사회진보연대 페미니즘팀장

1. 들어가며

 
지난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는 ‘피해자중심주의’, ‘2차 가해’ 등의 개념이 널리 사용되었다. 수많은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언론 보도를 비롯하여 한국 사회 곳곳에서 ‘특정 입장이 피해자중심주의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2차 가해란 무엇인지’ ‘피해자와 피해호소인 중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는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러한 개념들의 기원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진행된 ‘반(反)성폭력 운동’이다. 반성폭력 운동은 여성의 억압적 현실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하고도 설득력 있는 사례로 성폭력에 주목했다. 한국에서 성폭력 문제의 공론화와 제도화는 이 시기의 반성폭력 운동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미니즘 열풍과 미투 운동을 계기로 다시 ‘여성 문제’로서 성폭력이 재부상하는 지금, 반성폭력 운동의 기억이 소환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반성폭력 운동을 크게 두 흐름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여성단체 중심의 입법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가·운동사회의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을 통한 운동이다. 후자는 학생운동·민중운동 진영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을 고발하고 해결하는 것을 주요한 정치적 실천으로 삼았다.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 상황을 ‘광의의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공동체 내부의 ‘반성폭력 규약’을 제정하는 것은 이 운동의 핵심 요소였다. 규약에는 일반적으로 △ 성폭력 개념 규정, △ 대책위원회 구성과 권한, △ 피해자중심주의 원칙, △ 2차 가해 행위 금지, △ 가해자 사과와 재교육 등의 일련의 원칙과 절차가 담겼다.

지금까지도 시민사회단체·노동조합·진보정당을 포함한 대부분 운동 조직은 반성폭력 운동의 문제의식이 담긴 ‘내부 규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과거 반성폭력 운동이 제안했던 사건 해결 방식과 개념들을 오늘의 성폭력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할까? 

반성폭력 운동의 원칙들은 실제 사건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딜레마에 부딪혔다. 대표적인 논점들은 다음과 같다. 성폭력 개념을 ‘최대한 넓게’ 적용하는 것이 가장 페미니즘적인가? 피해자중심주의란 사건 해석에서 피해자의 말이 언제나 옳다고 전제하며, 가해자 처벌 수위 등 해결 과정의 주요한 결정을 피해자의 의사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뜻인가? 2차 가해라 여겨지는 행위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그것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이 모든 질문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건 해결에 관해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할 때 그것이 어떻게 조율될 수 있는가이다. 

다양한 곤란 속에서도 반성폭력 운동의 사건 해결 절차는 애초의 개념과 틀을 고수한 채로 반복됐다.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곧 반페미니즘적인 행위,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행위로 여겨질 수 있어 논의가 어려운 조건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성폭력 사건 해결 방식이 특정한 운동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기지 말고 더 적합한 절차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진보연대는 2019년부터 내부 세미나와 워크숍을 통해 현재 시점에서 반성폭력 운동의 목표·방식·절차 등을 평가했다. 미투 운동 이후 다시금 대중적으로 소환되는 반성폭력 운동의 유산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피해자중심주의’, ‘2차 가해’ 개념뿐 아니라 20여 년 전 반성폭력 운동이 제안한 성폭력 사건 해결의 원칙과 절차를 하나하나 되짚어보았다. 그 결과, 2021년 정기 총회에서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규약」을 공식 폐기하고, 「페미니즘 활동가 윤리 결의안」을 합의했다. 

사실 운동 조직에서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규약」의 폐기는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건이다. ‘반성폭력 규약’이 조직의 페미니즘을 담보하는 기본적인 요소라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진보연대도 애초에 규약의 폐기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논의를 진행했던 것은 아니다. 논의의 끝에, 반성폭력 규약이라는 틀로 남겨두어야 할 내용이 특별히 없으며, 우리의 문제의식을 담기에는 「페미니즘 활동가 윤리 결의안」의 형태가 적합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글의 목적은 이러한 논의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혀 운동사회의 토론을 제안하는 것이다. 
 

2. 반성폭력 운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대학가·운동사회의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를 평가하려면 ‘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100인위원회(이하 100인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2000년도에 결성된 익명의 모임인 100인위는 17개의 성폭력 사건을 가해자 실명과 함께 공개하며 성폭력·성차별에 노출된 여성 활동가들의 현실을 가시화했다. 사건의 대중적 폭로는 진보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로서 ‘운동사회’가 책임을 함께 지고 변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100인위는 성폭력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성적 폭력으로 협소하게 정의하는 것을 거부하고, 운동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과 차별, 주변화, 성적 대상화 등 다양한 경험을 포괄하는 개념(‘광의의 성폭력’)으로 삼았다. 사건의 경중을 따지는 논리의 거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성폭력은 성립할 수 있다는 입장,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나 조직적인 사건 은폐를 비판하기 위한 ‘2차 가해’ 개념 규정 등 100인위가 표방한 원칙들은 1990년대 대학가 반성폭력 운동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으로, 지금까지도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노동조합 ‘반성폭력 규약’의 주요한 기준으로 남아 있다.

당시 100인위의 활동은 운동사회 내에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논란은 100인위의 문제의식이 규약으로 자리 잡고 새로운 사건들에 적용되면서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은 매번 비슷한 종류의 갈등과 소진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 과정이 여성의 권리에 관한 문제의식과 실천을 확대하기보다 ‘성폭력 사건만 없으면 괜찮은 것’으로, ‘가해자를 강력히 처벌하면 끝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여성학계나 여성운동 내에서도 100인위 이후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의 주체들이 겪은 어려움을 대면하려는 시도가 존재했다. 아래에서는 해당 주제를 다루고 있는 엄혜진의 논문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토론회 내용을 살펴본 뒤, 운동사회 반성폭력 운동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보겠다. 
 

1) 엄혜진의 평가: 탈정치화와 과잉 의미화

2009년 발표된 엄혜진의 글 「운동사회 성폭력 의제화의 의의와 쟁점: ‘100인위’ 운동의 수용과 현재적 착종」(『페미니즘 연구』, 2009.4.)은 100인위 운동의 전개와 의의를 돌아보고, 100인위의 문제의식이 이후 운동사회에 수용된 과정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저자는 활동가 네 명을 심층 면접하며 100인위 이후 반성폭력 운동이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 맞닥뜨린 새로운 난관에 대해 다룬다. 

첫 번째 문제는 제도화 이후 성폭력 사건 해결의 탈정치화다. 성폭력 사건 해결의 정치적 의미가 실종되고 가해자 징계를 통해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버리는 것, 또는 성폭력을 정파 경쟁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두 번째는 성폭력 개념의 과잉 의미화다. 운동 사회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젠더의 작용을 모두 성폭력으로 처리하는 일이 많으며 그에 따른 논란도 많다. 저자는 다양한 수준의 젠더 문제를 성폭력으로 뭉뚱그려 표현하고 사건화하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 ‘2차 가해’ 개념을 둘러싼 쟁점을 다룬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성차별적 문화를 방기한 책임을 묻는다는 명목으로 조직의 책임자를 2차 가해자로 규정하는 등 개념이 확장 적용되면서, 2차 가해 개념이 공동체의 성찰과 변화의 계기가 아닌 ‘계속적 단죄’의 기제가 된 것이다. 나아가 2차 가해에 대한 과잉 의미화로 인해 공동체 내에서 성폭력에 관한 ‘금언령’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오히려 성폭력적·성차별적 구조에 대한 침묵의 담합이 이루어지는 상황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이 여성 활동가에게 할당·전담되면서 생기는 문제가 있다.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이 여성 활동가들의 조직 내 정치적 입지를 제한하고, 개개인이 소진되도록 만드는 역설적인 현실은 성폭력 사건 해결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묻게 한다. 

저자는 운동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성폭력 사건을 잘 처리하는 문제”로, 페미니즘적 실천은 “성폭력 안 하고, 고운 말 쓰는 것”으로 이해되는 현실이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성폭력 의제를 넘어선 젠더 의제를 개발하고, 성폭력이라는 언어에 갇혀 해석되지 못한 다양한 의미들을 해방하자고 제안한다. 
 
 

2)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평가: 왜곡된 관성화, 개념의 절대화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2012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토론회를 주최했다. 2012년 토론회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은 성폭력 개념의 확장과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 절차를 전반적으로 돌아보고, 성폭력 사건 해결 이후 공동체 내 신뢰 회복과 치유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2017년 토론회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는 2016~2017년 페미니즘 열풍을 염두에 두고 2012년 토론회보다 대중적인 자리로 기획되었다. 그리고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 특히 쟁점이 되는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개념에 논의를 집중했다. 

2012년 토론회의 주 발제자인 전희경은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에 관한 절차와 제도가 어느 정도 마련된 것이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이지만, 현실에서 그 절차가 공동체의 변화를 추동하는 계기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절차가 그 자체로 절대적인 기준이 되거나, 절차를 완료한 후에는 어떤 문제 제기나 토론도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성폭력 운동은 성폭력 개념의 확장을 통해 그동안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들을 문제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여성이 경험하는 모든 종류의 차별, 억압, 무시, 배제, 타자화, 대상화, 괴롭힘, 폭력을 ‘광의의 성폭력’으로 간주하면서 다양한 언어와 전략이 개발되지 못하고, 문제를 제기하려면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에 전희경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폭력 개념 확장’이 아니라 ‘성폭력 이외의 개념 확장’이 아니냐고 묻는다. 아래는 발제문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여성주의는 성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 Gender violence)으로 설명해 왔으며, 이러한 설명 속에서 ‘문제적 성’과 ‘정상적 성’, 강간과 섹스 사이에는 분명하고 질적인 구분선이 없다. 이는 성폭력의 연속선 개념을 통해 설명되어 왔다. (…) 그런데 ‘문제적 성’과 ‘정상적 성’이 연속되어 있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우리는 이 ‘연속선’을 다룰 수 있는 언어와 전략을 갖고 있는가?”

“어떤 문제 제기가 ‘성폭력이냐 아니냐’의 논란을 낳고, 페미니스트/지지자들 역시 고민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무조건 지지’해야 하는 분열적 상황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성폭력‘만’ 문제로 간주되는 상황, 혹은 성폭력이 ‘가장’ 문제라고 간주되는 상황이 달라져야 한다. 하나의 방법은, 우선 그것이 ‘문제적 행동’이라는 것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표명하고, 더 적절한 이름과 대책을 마련해나가는 것이다.” 

그 외에도 발제문은 사건에 대한 비밀주의 원칙을 고수하느라 피해자를 지지하는 세력이나 담론을 만들 수 없는 것, 피해자 대리인의 위상이 커지면서 피해자가 수동화·주변화되는 것, 피해자의 요구안이 매뉴얼처럼 진행되지만(가해자 공개사과, 활동 정지·제명 등의 조직적 징계, 교육 프로그램 이수 등) 변화하거나 해결된 것이 없다고 느끼는 현실 등을 지적하며 사건 해결의 주체들에게 ‘형식적 절차를 이행하는 것’ 이상의 고민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2017년의 토론회는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의 특수한 개념인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에 관한 평가와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다. 토론회에 참가한 대부분 발제자와 토론자는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가 절대적인 기준으로 적용될 경우 반성폭력 운동의 정치적 의도를 왜곡하고 만다고 평가했다. 즉, 사건 해결 과정에 관한 결정과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겨 피해자를 소외시키거나, (2차)가해자를 지목하고 축출하는 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사건의 의미에 대한 논쟁과 설득의 과정을 소멸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개념을 매우 신중하게 사용하거나, 사용을 최대한 지양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발제자 중 전희경은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개념은 100인위가 당시의 정치적 지형에 개입하기 위해, 강력한 문제 제기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이후 ‘운동의 언어’로서의 의미가 소실되고 ‘절차의 언어’로 남아 버렸다고 평가한다. 또 다른 발제자인 권김현영은 가해자를 지목하고 단죄하는 표현인 ‘2차 가해’가 아니라 ‘2차 피해’로, 피해자의 판단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피해자 관점’으로 용어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3) 종합 평가: 반성폭력 운동의 한계에 관한 근본적 성찰 필요

엄혜진의 논문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토론회는 100인위 이후 반성폭력 운동의 현실에 대한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첫째,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이 성찰과 변화의 계기가 되지 못하고, 발생한 문제를 처리하는 형식적인 절차가 되어버렸다는 지적이다. (‘탈정치화’ ‘왜곡된 관성화’.) 둘째, ‘성폭력’ ‘피해자중심주의’ ‘2차 가해’ 등의 개념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사용되면서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잉 의미화’ ‘개념의 절대화’.)

이러한 현실 진단은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 대두된 곤란을 솔직하게 직면하고 운동사회의 토론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문제 제기다. 그러나 반성폭력 운동이 처한 문제의 원인을 활동가 또는 대중의 ‘잘못된 수용 방식’이라고만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반성폭력 운동의 개념들을 ‘제한적으로’ ‘사려 깊게’ 사용한다고 해서 대책위의 사건 해석이나 결정을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딜레마는 반성폭력 운동의 기획 자체에 내재해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지금이야말로 지난 20여 년을 돌아보며, 반성폭력 운동에 관한 발본적인 평가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성적 욕망과 실천이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여성의 일상적 경험과 극단적 성폭력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연속선’ 위에 있다. 그렇다면 페미니즘 운동이 이 연속선에 대처하는 전략이, 성폭력이 포괄하는 범위를 ‘최대한 넓히고’, ‘폭력의 목록을 세분화’하여 처벌의 대상을 늘리는 것이어야 할까? 과연 그러한 방법으로 성폭력을 감축하고,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바꿀 수 있을까?

2000년대 중반 사회진보연대는 운동진영 내에서 페미니즘이 개별 성폭력 사건 해결과 동일시되는 경향을 비판하고, ‘반성폭력 운동을 넘어’ 여성의 권리를 정의하고 가족과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는 여성해방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반성폭력 운동이 차용하고 있는 급진주의(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1970년대의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을 적대적 관계로 규정하고, 성폭력을 페미니즘 운동의 핵심 의제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성폭력의 범위를 성희롱, 포르노그라피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확대하고 사건의 공론화 및 법정 다툼에 주력했다. 

성폭력은 여성의 시민권이 부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매개로 한 페미니즘 정치는 필연적으로 몇 가지 한계에 봉착한다. 먼저,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적 절차는 성폭력을 ‘여성의 권리’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피해의 성립 여부’를 판가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사법적 절차든, 반성폭력 규약을 통한 공동체 내부의 절차든, 또는 여론 재판이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분명한 증거나 증인이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건에 관한 판단은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의 진술이 충분히 믿을 만한가’를 따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은 많은 경우 여성에게 또 다른 폭력으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또 다른 딜레마가 발생한다. 첫째, 성폭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피해자’라는 수동적 주체로서 여성의 위치를 강조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의 정치적 주체화와 권리의 확장을 꾀하는 운동과 양립하기 어렵다. 둘째,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공격을 제어하기 위해 ‘피해자중심주의’, ‘2차 가해’ 등의 원칙이 사용되지만, 이를 통해 공동체 구성원의 몰이해와 반감이 정정되기보다 은폐된다는 점이다. ‘처벌에 대한 공포’는 극단적인 몇몇 행동을 억압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문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결국, 성폭력의 감축은 개별 사건의 사후적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시민의 유대에 적합한 윤리 형성, 새로운 관계맺음의 발견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성폭력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문제는 성폭력 ‘사건’에 집중하는 것으로는 풀 수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건 해결을 위한 일련의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공동체를 바꾸는 페미니즘 운동의 핵심 전략’으로 삼는 것은 과도한 목표 설정이다. 반성폭력 운동의 모순은 바로 여기에 있다. 
 

3. 반성폭력 규약의 일반적 원칙 평가

 
반성폭력 운동의 근본적 한계에 대한 평가는 ‘실제로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관한 직접적인 답이 되지는 못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규약’의 일반적 원칙들을 구체적으로 평가해보겠다. 나아가 각각의 개념과 절차를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제안도 담았다. 
 

1) ‘성폭력 개념의 확장’ 전략의 역설

‘광의의 성폭력’ 개념은 반성폭력 운동의 핵심 전략이었다. 이러한 개념 정의에 따르면 여성에게 차별적이거나 적대적인 상황, 여성이 성적인 주체성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은 성폭력 사건으로 제기될 수 있으며, 그렇게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페미니즘적인 실천’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층위의 문제를 모두 성폭력으로 포괄하여 사건 해결 절차를 밟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성폭력 개념의 확장에 따른 사건화는 역설적이게도 여성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에 대한 능동적 판단과 대처를 제약한다. 불편한 농담·신체 접촉·폭력적 언사에 명확한 분노와 거부를 표현하는 것, 성적 관계에서 상대의 욕망을 배려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것,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연애 관계로부터 철수하는 것, 자신이 처한 문제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스스로 정리해서 표현하는 것 등은 여성들에게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문제가 언제나 ‘가해자’를 지목하고 ‘피해자’로서 고통을 호소하는 방식으로 제기될 필요는 없다.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언행, 또는 여성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문화는 그 자체로 비판이 필요한 문제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폭력 개념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해당 사건이 성폭력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지난한 논쟁을 부른다. ‘성폭력만 아니면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이라는 명명을 관철시켜야만 심각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은 변화해야 한다. 문제 상황에 관한 토론과 정정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한 토론과 정정이 가능하게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다양한 문제를 모두 성폭력 사건으로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2) 대책위원회 구성 및 권한에 대한 재논의 필요

반성폭력 규약은 성폭력 사건 해결을 전담하는 비상설·특별 기구인 ‘대책위원회’를 따로 두고, 대책위에 조직의 의사결정기구를 넘는 높은 수준의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체계는 성폭력 사건에 중요한 인물(조직의 대표 등)이 연루되었을 경우 성폭력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책위를 별도로 두는 일은 종종 조직의 공식 체계에서 보고와 논의를 억압한다. 또한, 사건 담당자들에게 너무 큰 정치적 책임을 부과하거나 사건 해결 경험이 있는 소수의 (여성)활동가에게 성폭력 사건 해결의 업무가 전가되는 문제를 만들기도 했다. 

사건의 성격에 비추어봤을 때 별도의 대책위원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조직의 기존 운영 체계를 통해서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조직 구성원이 사건 해결에 관한 역량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3) 피해자중심주의 원칙에서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피해자중심주의는 성폭력 사건의 해석에서 가해자의 의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경험과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제출된 원칙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사건의 성격 규정, 정보공개 수준, 가해자 징계 방식 등의 모든 결정을 ‘피해자의 의견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자 개인의 주관주의를 특권화하고, 피해자에게 주요한 결정의 책임을 떠넘긴다는 다양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피해자중심주의라는 원칙은 사건 해결 과정에 ‘페미니즘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합의로 대체되어야 한다. 페미니즘의 관점이란 성별 권력관계와 성적 이중규범 속에서 여성의 성적 권리가 갖는 제약에 대한 이해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반성폭력 운동이 ‘개인의 피해감’이란 기준으로 성폭력 개념을 확장해 포괄하려 했던 여러 문제가 ‘여성의 권리’라는 관점에서 비판과 정정이 필요한 문제로 인식될 수 있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존중,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조직적 소통은 중요한 부분이다.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사건 해결 과정이 피해자에게 또 다른 부담과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를 존중하면서도 사실관계에 관한 정확한 조사와 사건의 의미 규정, 다른 사례와의 비교를 통한 징계 수준 결정 등은 필요한 과정이다. 
 

4) ‘2차 가해 금지’가 아니라 정확한 정보 공유와 설득으로

앞서 확인했듯이 성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에는 페미니즘의 관점이 필요하다. 즉, 성적 욕망과 실천에 관한 남성 중심적 통념을 적용하여 여성의 행실을 탓하거나 남성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행위는 비판을 통해 지양되어야 한다. 
하지만 2차 가해 개념은 이러한 상황을 다시 행위자(2차 가해자)를 지목하고 징계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러한 방식은 성폭력 사건 해결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의 이해를 높이겠다는 반성폭력 운동의 애초 목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공동체 구성원의 잘못된 인식이 토론을 통해 정정되기보다 은폐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내 성폭력 논의 과정에서 제기되는 질문이나 이견을 2차 가해라고 명명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또한, 2차 가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건에 관한 정보를 완전히 비공개로 하거나 사건에 관한 논의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부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조직 내에서 공식적인 사건 해결 과정을 밟는다면, 구체적인 정보를 제한하더라도 사건이 접수되었다는 사실과 주요 경위, 진행 상황과 결과, 판단의 근거 등을 구성원들에게 공유할 필요가 있다. 
 

5) 가해자 축출보다 문제 상황에 대한 합의가 중요

반성폭력 운동은 성폭력 사건 해결을 통한 공동체의 성찰과 변화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해자에 대한 타자화와 엄벌주의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많은 경우 가해자 처벌은 성폭력 사건 해결의 목표이자 완성처럼 여겨졌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성폭력은 특정한 가해자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다. 현재 사회의 성애 관계는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은 인격과 존엄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남성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거나 만족시키는 존재로 여겨진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의 욕구(성애적 욕구뿐 아니라 인격적 관계와 소통에 관한 욕구)는 반복적으로 좌절된다. 여성의 우정이나 인간적인 신뢰·존경을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번역하는 남성, 상대를 배려한 조심스러운 거절이 부끄러움의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남성이 현실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 중심적 관계맺음이 보편적인 사회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가해자 처벌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여러 TV 드라마에서 벽치기와 기습 키스가 박력 있는 사랑 고백의 방법으로 그려질 때, 그러한 행동을 실행에 옮긴 남성 개인을 ‘강력히 처벌’하는 것이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이는 이성애 관계의 상징적 문화 전반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 해당 남성에게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문제일 수 있다. 

성폭력에 관한 ‘무관용 원칙’과 가해자의 ‘엄중한 처벌’은 공동체의 변화를 위한 본보기라는 명목으로 장려된다. 하지만 처벌에 대한 공포로 남성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방식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해나 동의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성폭력의 원인을 건드리지 못한다. 엄벌주의는 남성들의 잘못된 인식과 행동을 드러내어 정정하기보다 은폐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가해자 징계 및 후속 조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 것은, 해당 행동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왜 잘못된 행동인가’에 관한 가해자 또는 공동체의 성찰과 합의다. 
 

4. 반성폭력 규약이 아니라 페미니즘 윤리에 기반을 둔 문제 해결로

 

1) 반성폭력 규약을 폐기하는 이유

앞에서 반성폭력 운동이 제시했던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의 원칙과 절차에 관한 비판적 평가를 진행했다. 평가에 따르면 남겨야 할 것은 △ 성폭력 사건을 해결할 때 페미니즘의 관점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 △ 사건의 의미에 대한 조직적인 평가 토론과 합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별도의 반성폭력 규약에 담지 않아도 기존 조직 운영 규약의 문제의식에 포함할 수 있다.

별도의 반성폭력 규약을 두어 성폭력 행위를 규정하고 사건 해결의 원칙과 절차를 제시하는 형식 자체가 ‘금지와 처벌을 통한 공동체 윤리 형성’이라는 반성폭력 운동의 운동론에서 비롯한 실천이다. 따라서 반성폭력 규약의 폐기는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비판과 단절이다. 

다만, 반성폭력 규약을 폐기하는 것이 사회진보연대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용인하고 관련한 문제 해결을 소홀히 하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에 조직 운영의 원칙으로 삼을 수 있는 문제의식을 「페미니즘 활동가 윤리 결의안」을 통해 합의한다.

반성폭력 규약이 없으면 여러 문제 상황을 통제하기 어렵거나, 사건의 성격에 따라 조직 보위 논리가 작동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규약의 존재 여부에 따라 발생하거나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언제나 페미니즘에 대한 해당 공동체의 이해와 합의, 사건 해결에 관한 역량에 좌우된다. 어떤 강력한 규약이 존재하더라도 당면한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적절하냐에 관한 세부적인 이견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이견의 표출을 엄격히 금지하는 조치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하고 유예한다. 결국, 규약의 유무가 아니라 사건 해결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갈 수 있는 조직의 합의 수준 또는 역량을 키우는 데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한편, 규약의 부재가 사건 해결의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사건 해결 과정에서 공백과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오히려 ‘반성폭력 규약’이라는 접근법이다. 반성폭력 규약은 성폭력 개념 규정이 시작점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 사건이 성폭력인지 아닌지(규약의 적용 대상인지 아닌지)’에 관한 불필요한 논점을 수반한다. 반성폭력 규약의 틀 내에서는 성폭력 사건 성립 여부에 따라 위계가 생기며 그것이 사건 해석의 핵심 요소가 된다. 이러한 논점은 많은 경우 여성에 대한 의심과 비난으로 이어진다. 또는 공동체 구성원이 성폭력이라는 사건 규정을 납득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당면한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겉으로만 수긍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성폭력 성립 여부를 따지지 않더라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활동가의 문제적인 언행이 있다면 비판하고 해결할 수 있는 조직적 원칙을 합의하는 것이야말로 공백을 없애는 방법이다.  
 

2) 사회진보연대의 ‘페미니즘 활동가 윤리 결의안’

2021년 사회진보연대 정기총회에서 합의한 ‘페미니즘 활동가 윤리 결의안’ 전문을 아래에 싣는다. 
 

<1> 결의안 제출의 배경: 반성폭력 운동 평가

한국에서 반성폭력 운동은 아직까지 페미니즘 운동의 강력한 표상으로 남아 있다. 반성폭력 운동의 결과로 여러 성폭력 행위가 법을 통해 규제되고, 학생이나 직장인은 ‘성폭력 예방 교육’을 통해 어떤 행위가 왜 성폭력인지 교육을 받는다. 이러한 현실은 민중운동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다. 노동조합을 포함하여 다양한 운동 단체·조직은 페미니즘을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교육과 처벌 중심으로 이해한다.

반성폭력 운동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문제 상황을 성폭력 개념의 확장을 통해 포괄하고, 공동체 내에서 이를 고발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페미니즘의 주요한 정치적 실천으로 삼았다. 이러한 실천은 남성 개개인의 잘못된 행동을 금지하고 단죄함으로써 사회(여성의 삶의 조건)를 바꿀 수 있다는 관점을 전제한다. 그렇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감축해야 한다는 정당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운동 방식은 폭력의 원인에 개입하지 못했으며, 실천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정했다.

사회진보연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성폭력 운동이 여성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전략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평가를 통해 반성폭력 운동과의 단절을 꾀하고, 여성의 권리를 위한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 갈 것을 결의한다.

① 성적 폭력으로 인한 피해를 강조하고 여성에 대한 보호를 요청하는 담론은 여성을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수동적 주체로 만든다. 이는 여성의 정치적 주체화와 여성의 권리 확장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 

② 처벌에 대한 공포로 남성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방식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해나 동의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감축하는 데 한계가 크다. 잘못된 인식이 정정되기보다 은폐되는 부작용이 있다.

③ 법적 규제는 성폭력을 ‘성 중립적인’ 자유로운 개인 간의 의사소통 문제로 다룬다. 따라서 성폭력에 대한 재판은 여성의 거부 의사 표시가 충분했는지를 심판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사건의 공론화를 통한 여론 재판 역시 마찬가지다. 반성폭력 운동은 사건 해석에서 여성의 진술에 무조건적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지만, 성폭력 성립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종식시키지는 못한다. 이처럼 성폭력을 법적 처벌로 해결하고자 하는 접근법은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된 성적 규범과 성별 권력 관계 속에서 여성에게 고유한 곤란을 포착하지 못한다. 여성의 성적 경험에서 동의와 거부, 사랑과 폭력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④ 여성이 겪는 다양한 수준의 문제들을 광의의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다. 성폭력 개념의 확장은 역설적이게도 여성이 부딪히는 복잡한 상황들을 적합하게 분석하고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 “성폭력은 아니니까 문제가 아니”라거나, “성폭력이라고 명명해야만 사건의 심각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은 변할 필요가 있다. 문제 상황의 해결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은 페미니즘에 관한 전조직적인 이해와 합의다. 
 

<2> 페미니즘 이념·노선에 걸맞은 활동가 윤리 형성을 결의한다.

윤리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이념·노선에 대한 동의를 바탕으로 한 자기 성찰’을 통해 형성된다. 페미니즘과 관련한 윤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회원은 △ 여성에게 고유한 권리와 그것을 제약하는 사회 구조, △ 여성과 남성의 새로운 관계맺음(윤리)의 방식, △ 사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여성의 역사와 경험, △ 페미니즘 운동의 정세적 과제 등을 이해해야 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동의가 페미니즘 활동가 윤리를 형성하는 기본 토대이다.

또한 이러한 이해를 통해, 반성폭력 운동이 ‘개인의 피해감’이란 기준으로 성폭력 개념을 확장해 포괄하려 했던 여러 문제들을 ‘여성의 권리’라는 관점에서 비판과 정정이 필요한 문제로 재인식할 수 있다.

사회진보연대의 페미니즘 이념·노선은 마르크스주의의 혁신과 일반화, 성적 차이의 권리와 윤리라는 맥락 속에 존재한다. 반성폭력 규약은 이러한 관점을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결의함으로써 기존의 반성폭력 규약을 대체하려 한다.

① 여성은 사회진보연대의 모든 활동에서 배제되지 않고 평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여성 회원의 역량과 참여를 증진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나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

② 여성의 정신과 육체는 여성 자신의 소유이다. 성과 재생산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서 여성 자신의 욕망과 자유로운 결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섹스·임신·출산·양육 등에 관해 역사적으로 형성된 여성의 육체에 대한 예속은 사라져야 한다. 

③ 여성과 남성은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새로운 관계맺음을 만들어가야 한다. 여성을 인격을 지닌 동료 시민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며 남성들의 우정에 특권을 부여해 온 오랜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성간의 친밀감과 신뢰가 성애적 관계로만 가능하고 의미 있다고 보는 문화는 변형되어야 한다. 또한 연애, 결혼 등의 성애적 관계에서 여성의 의사 표현을 무시하거나 여성을 남성 파트너에게 종속된 존재로 간주하는 문화 역시 지양해야 한다.

④ 페미니즘은 윤리인 동시에 변혁운동의 핵심 과제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해방을 자기 과제로 삼지 않는 운동은 보편적인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변혁운동은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는 사회 구조를 인식하고 그에 맞서는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여성의 이중부담과 빈곤, 여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 역시 증가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 회원은 정세에 적합한 페미니즘 과제들을 분석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⑤ 사회진보연대 회원 역시 기존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성적 이중규범이나 남성 중심적인 인식을 드러낼 수 있다. 그래서 회원은 항상 스스로를 성찰해야 하며, 조직 내에서 페미니즘에 관한 비판과 토론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5. 나가며

 
반성폭력 규약을 폐기하고 결의안을 합의하기까지 꽤 오랜 논의가 진행되었다. 사회진보연대 페미니즘팀이 주도하여, 2019년 하반기부터 2021년 초까지 수차례에 걸친 회원 토론이 있었다. 긴 논의의 결론으로 우리는 ‘성폭력이란 무엇인가’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는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관계맺음(공동체)의 윤리 원칙은 무엇인가’를 규정해보고자 했다. 그것이 반성폭력 운동이 애초에 목표했던 ‘(여성의 권리에 대한)공동체의 성찰과 변화’라는 문제의식에도 더욱 부합하는 기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토론 과정에서 주요하게 나왔던 이야기는 회원들에게 이러한 결정의 의미가 무엇인가,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견이 제시되었다. 첫째, 특히 남성 활동가들에게 규약 폐기의 의미가 ‘족쇄로부터의 해방’, 그러니까 이전보다 마음이 편해지고 행동이 자유로워지라는 의미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 결의안은 ‘성폭력 사건만 안 일으키면 되지’ ‘나는 저런 파렴치한 가해자들과는 다르지’라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활동가들과의 관계, 연애 관계, 인생의 여러 선택 등등)을 폭넓게, 또한 구체적으로 성찰하고 개입하자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둘째, 여성 활동가에게도 이것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변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성폭력 운동은 여성을 주로 ‘피해자’의 자리에 두기 때문에 여성의 변화라는 측면이 강조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여성이 ‘페미니스트’로서 연애 및 성적인 관계를 포함하여 삶에 대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성폭력적인 상황에 대응하는 목표 역시 여성의 삶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가해자가 문제를 인정하는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왜 문제인지를 해석하고, 나의 주체성을 침해하는 상황이나 관계로부터 단절하고,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동료들을 만드는 것일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결의안 통과가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에 걸맞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조직 내에 관련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적’이라고 여겨지는 영역에 대해 활동가들 스스로 고민을 나누고, 상호 토론을 통한 개입이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별, 나이, 성적 지향, 활동 공간, 활동 연차 등이 다양한 조건에서 가족·연애·섹슈얼리티 같은 주제를 토론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사회진보연대는 결의안의 통과와 함께, 조직 운영에서 자신의 삶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페미니즘 회원 학습·토론’을 강화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이 사회진보연대라는 활동가조직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이질적인 개인들로 구성된 대중단위에는 어떤 식으로 적용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회원이 다수이고, 그렇다 보니 노동조합에 접수되는 성폭력 사건의 해결에 회원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상황도 잦다. 따라서 많은 회원이 결의안 방식으로의 전환에 동의하면서도, 대중조직에서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고민을 토로했다. 이에 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더 필요할 테지만, 기본적으로는 페미니즘에 대한 조직적인 이해와 동의 수준을 높이는 과정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투 운동 이후 성폭력으로 인정되는 행위의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 가능성과 수위를 높이자는 목소리가 높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회진보연대의 시도는 이질적이고, 어쩌면 위험천만한 주장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반성폭력 운동의 개념들이 대중적으로 소환되어 새로운 양상으로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성폭력’이라는 난제에 관한 페미니즘의 접근법을 돌아보며 허심탄회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진보연대 「페미니즘 활동가 윤리 결의안」의 내용과 방식은 아직까지 시론적인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진지하고 치열한 토론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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