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1 여름.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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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하 미국 노동조합의 과제」 독자에게

임월산 | 사회진보연대 회원, 국제운수노련 도시교통운영위원회 부의장

글에서 연대체 ‘흑인의 생명을 위한 운동’(Movement for Black Lives, M4BL)을 비롯한 미국 반인종주의 세력이 ‘인종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오늘날 트럼프와 트럼프 지지자의 백인 민족주의는 포퓰리즘일 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건국 시기부터 경제, 사회와 정치제도에 내재하여 내려온 인종주의의 현재적 모습이라고 이해한다고 하셨습니다. 경제·정치위기 속에서 형성된 불만이 성차별주의, 인종주의와 맞물려 여성 혐오, 이주민 혐오, 타인종 혐오 등을 강화하는 것은 오늘날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1. 그러나 미국 반인종주의 운동에 대해 ‘인종적 자본주의’ 분석틀을 취하면서, 오히려 그러한 인종주의가 너무나 뿌리가 깊기 때문에 사회운동이 바꾸기가 어렵다거나, 인종주의적 편견을 가진 사람들과는 공존하기 어렵다는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지는 않을지 우려됩니다. 

예를 들어 과거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라는 개념을 고대에서부터 현대 자본주의까지 일관되게 적용되는 분석틀로 ‘초역사화’하고, 그렇기 때문에 까마득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여성을 억압해 온 남성과는 화해·공존이 불가능하다는 실천적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로 운동이 분리주의 경향을 띠게 되었습니다. 

현재 미국 반인종주의 운동 역시 자본주의의 태동 이전부터 내려오는 인종주의의 역사적 계보 안에 오늘날 트럼프주의를 위치 짓고 있습니다. 인종주의의 계보를 이렇게 강조하면, 인종주의를 철폐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것으로 느껴질 것 같은데, 미국 반인종주의 운동이 이러한 곤란을 어떻게 타개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종적 자본주의’ 개념에 대한 추가적 설명과,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대한 이야기로 나누어 답하겠습니다. 
 

(1) ‘인종적 자본주의’ 개념에 대한 설명 

‘인종적 자본주의’는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남아공의 경제체제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먼저 등장했습니다. 1980년 초에 미국 흑인 정치이론가인 세드릭 로빈슨(Cedric Robinson)은 이를 특정 경제 제도를 지칭하는 개념에서, 현대 자본주의 자체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확대했습니다. 로빈슨의 분석에 따르면 서유럽 봉건사회에 내재한 인종적 사고방식(racial thinking)은 자본주의하에서 지속했을 뿐만 아니라, 진화했고 제도화되었습니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통해 펼쳐진 자본주의의 세계적 팽창은 인종적 차이에 대한 믿음에 의존했고, 그 차이를 위계화하고 재생산했습니다. 

로빈슨의 분석은, 현대 자본주의와 함께 현대사가 서유럽에서 시작했다고 보고 비유럽 지역의 식민화를 사회발전의 필연적인 단계로 정당화하거나 축소하며, 자본주의 팽창이 보편적 노동계급의 형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던 단순한 목적론적(teleological)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론이자 비판이었습니다.   

인종적 자본주의 개념을 소개한 『흑인 마르크스주의: 흑인 급진주의 전통』(Black Marxism: The Making of the Black Radical Tradition)이라는 로빈슨의 책이 출판된 후, 인종주의에 대한 로빈슨의 접근은 과도하게 본질주의적(essentialist)이거나 초역사적(a-historical)이고, 마르크스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식민주의와 미국 노예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재조명하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미국 학계에서는 (어느 정도는 미국 사회운동에서도) 현대 인종주의와 현대 자본주의의 관계에 관한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인종주의는 자본주의 이전에, 또는 자본주의와 무관하게 발생한 제도인지, 아니면 자본주의의 결과인지,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인종주의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물론 여러 의견이 존재하지만, 인종적 자본주의의 개념을 채택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에 동의합니다. ① 인종이 생물학적이거나 타고난 것이 아닌 것처럼 인종주의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민족주의(nationalism)를 뒷받침하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② 현대 인종주의 제도는 자본주의와 함께 탄생했고, 자본주의와 함께 진화합니다. ③ 양자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인종주의는 세계 자본주의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종주의는 여러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뒷받침하고 자본주의와 함께 재생산됩니다. 식민주의와 같은 원시적 축적의 근거를 제시하고 정당화하고, 일부 노동자의 노동력의 가치를 절하하여 초과착취를 가능하게 하며, 인종화된 하위계급을 만들어 산업예비군을 형성하는 데 기여합니다. 또한 국가(따라서 시민권의 범위)의 경계선을 설정하는 과정에 작동합니다.   

물론 시기와 장소에 따라 인종주의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미국 자본주의 형성 시기에는 노예제와 흑인 노예의 정치·경제·사회적 권리를 박탈하는 법·제도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유색인의 대량 투옥, 유색인 이민자에 대한 범죄화와 단속·추방 정책, 그리고 이 정책들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나타납니다. 한국에서는 동남아시아계 이주노동자의 직장 선택권과 사업장 이동의 자유, 귀화 기회를 박탈하는 법·제도의 형태로도 나타납니다.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백인 우월주의 또는 인종 분리주의)는 미국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 사상에 중요한 내용입니다. 사회세력으로서 백인민족주의는 미국 내전(남북전쟁) 시대 후, 남부의 내전 패배와 흑인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1950~1960년대에는 경제적 번영과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약화하였지만, 노동계급의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1980년대부터 다시 약진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백인 노동자를 재조직하려는 공화당이 백인민족주의를 의도적으로 부추겼고,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이 경향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물론 많은 백인 남성 노동자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를 ‘인종주의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단순한 진단일 것입니다. 인종주의가 더욱 강화되는 경제적 조건과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사회 제도(사법, 교육, 금융, 정치 제도 등)에 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인종주의를 단순히 개인 간의 혐오 또는 차별적 행위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복합적으로 대응해야 인종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인종적 자본주의 개념의 중요한 함의입니다.  

인종주의는 정부의 정책과 인종주의 반대 운동을 통해 약화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반인종주의 투쟁은 노예제의 폐지, 흑인의 투표권 획득, 아시아계 이민자의 시민권 획득 기회 보장, 경찰의 활동 방식 변화 등 여러 의미 있는 성과를 냈습니다. 흑인 민권운동 직후에 흑인의 교육 수준이 향상되었고, 일시적이었지만 흑인과 백인 간 소득 격차도 줄어들었습니다. 청소·경비, 가사노동, 물류 등 이민자와 유색인이 집중화된 산업에서 노동조합의 조직사업이 유색인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형평성을 개선한 성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운동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진행 중입니다. 

‘인종적 자본주의’가 완벽한 개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 좌파운동 내에 인종주의를 단순히 개인의 편견 또는 혐오로 보는 경향이 있고, 자본주의와 긴밀히 얽힌 사회적 제도로서의 이해가 너무 없어서 소개한 것입니다.    
 

(2)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흑인 민족주의와 정체성 정치

글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과 특히 ‘흑인의 생명을 위한 운동’(M4BL)이라는 조직을 소개한 이유 중 하나는, 최근에 한국 좌파운동 내에서 미국의 ‘흑인 운동’을 ‘반지성주의’나 ‘정체성 정치’, 따라서 ‘인민주의’로 비하 또는 축소하는 발언을 종종 듣기 때문입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의 기원, 성과와 한계를 진단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입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은 자유주의, 흑인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 많은 운동 전통에 뿌리가 있습니다. 흑인 민족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삶의 질이 하락하고, 백인 민족주의가 약진하는 1970~1980년대에 탄생했습니다. 흑인 민족주의를 채택한 조직들은 계급의식이 약했고 보수적인 백인 노동자를 단순히 자본주의 엘리트의 동맹세력으로 봤던 심각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흑인 거주 지역에서 지역사회단체를 결성하고 강화했으며, 다른 유색인 노동자·빈민의 조직화와 투쟁을 촉진한 긍정적인 영향도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결성된 조직들은 오늘날 반인종주의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흑인 민족주의 경향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화적 인정(cultural recognition) 또는 주류사회에의 진출을 목표로 하는 더 소프트한 정체성 정치 경향도 있습니다. 민주당이 후자의 경향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습니다. 미국 노동·사회운동 내 이 두 경향과 민주당과의 관계에 대해 세밀한 비판적 평가가 필요합니다.  

지난 기관지 글과 2020년 6월 29일 발표한 사회운동포커스 글에서는 2014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해시태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 비해, 현재 반인종주의 운동에 다인종적 동맹과 노동운동과의 연대를 도모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연대 활동을 통해 흑인의 특수한 경험이나 정체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조금씩 상대화되고, 흑인이 경험하는 차별을 인종주의 제도 전반에 대한 분석과 공공서비스 강화나 노동기본권 보장과 같은 보편적인 요구들과 연결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주류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글에서 소개한 ‘흑인의 생명을 위한 운동’(M4BL)의 활동에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보건의료와 공공부문 노조들이 반인종주의 단체와의 교류를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다양한 흐름이 있는 운동을 통으로 인민주의로 묵살할 것이 아니라, 반인종주의 단체와 노동조합 간의 연대를 발전시키면서 인종주의와 자본주의의 상호관계를 더욱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가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2. 글에서 2020년 미대선 과정을 소개하며, 노동조합의 대선 운동 중 2016년 트럼프를 지지했던 조합원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도록 재조직하는 것보다, 경합주 내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선거구에서 신규 유권자 등록 지원과 투표 독려에 주력한 것이 바이든 승리에 더 유효한 전략이었다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51:49의 성적만 거두어도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대통령 선거에서의 ‘전술’로서는 적합할 수 있어도,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글에서 지적하신 대로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나도 상당한 위험으로 남아있는 트럼프주의’에 대한 대응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이든이 가까스로 당선할 수 있었고, 작년에 트럼프가 얻은 표도 2016년보다 오히려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트럼프주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으로 보입니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조합원 내지 노동자계급을 어떻게 다시 조직할 것인지에 대한 미국 노동조합의 최근 고민이나, 필자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먼저, 지난 미 대선 투표율에 관해 조금 다른 해석이 필요합니다. 지난 대선에 유권자의 67%가 투표했으며, 약 33%는 투표하지 않았습니다. 바이든-해리스는 8100만 표로 역대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트럼프-펜스는 7400만 표로 역대 2위 득표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투표권이 있는 2억 3900만 미국 국민 중에 약 7900만 명이 사실상 기권한 것입니다. 범죄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투표권이 박탈된 2000만여 명을 포함하면, 어느 후보 쪽 득표수보다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상당히 많은 노동자·서민이 어느 후보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바이든을 당선시키기 위해 미국 민주당,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이 택한 전략이 트럼프주의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트럼프 지지자를 주로 조직화 대상으로 삼아야한다는 결론이 자동적으로 도출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트럼프에게 투표한 (백인 남성)노동자를 빨리 재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은, 의식화가 훨씬 용이한 수많은 다인종(multi-racial), 다젠더(multi-gendered) 노동자를, 보수적인 백인 남성 노동자만큼의 계급적 대표성이 없는 집단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현재 미국 주류 노동운동과 진보운동 내에 두 가지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트럼프를 지지한 노동자를 재조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른 경향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노동자들의 생각이 인종차별적인 것보다 경제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고, 그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설득하면 된다고 주장하며 이를 최우선적 과제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트럼프 지지자가 집중화된 산업 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노동조합들은 이 노동자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지역들에서 인종주의 제도(예를 들어 유색인 투표권을 박탈하는 법제도, 인종적 분리를 가르치는 교회 등)와 이데올로기는 깊은 뿌리가 있고, 백인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직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무시하거나 축소해선 안 됩니다. 

이 두 경향 중 어느 것도 트럼프주의를 극복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트럼프주의는 세계체제에서의 미국의 위상 하락과 구조적 경제위기가 야기한 불안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동시에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 미국 인종주의의 가장 최근 형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트럼프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위기의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단기적 정책과 함께, 경제적 대안에 대한 모색과 인종주의 제도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노동조합은 트럼프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이 과제들을 이해하고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사회운동과 연대해야 합니다. 또한 이 과제들을 이해하고 함께 수행할 수 있는 노동자 집단을 우선적 조직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일부 경우에는 그 조직대상에 트럼프 지지자가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팬데믹과 경제위기, 인종주의의 영향을 받는 유색인이 집중화된 저임금 부문의 노동자가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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