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재명의 포퓰리즘 정치와 진보정당
이번 가을호 특집은 ‘2022년 대선과 진보정당’을 주제로 잡았다. 특집의 여는 글 격인 임필수의 「누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나?」는 이번 특집을 기획한 배경을 설명한다. 첫 번째 글은 조국 사태에서 정의당이 왜 조 장관 임명 찬성에 손을 드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 이유는 단연 정당 명부 비례대표 확대를 위한 선거법 개정이었다. 그렇다면, 선거법 개정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정의당의 인식은 도대체 왜,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확립된 것인가. 이 문제를 따져보니 2010~20년, 10년에 걸친 야권연대, 또는 민주당과의 ‘전략적 연대’에 대한 평가로 확장되었다. 두 번째, 세 번째 글은 진보정당이 민주당과의 전략적 연대에 대한 자기 평가 없이 대선에 뛰어들면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포퓰리즘 정책 경쟁을 벌이려 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로 기획했다.
먼저 임필수의 「2010~20년 10년의 야권연대, 역사와 교훈」은 진보정당이 상당한 위기에 빠져있고 그 핵심적 원인이 ‘전략적 야권연대’의 최종적 붕괴에 있다고 본다. 2010년대 야권연대라는 전략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에 무엇이었는지, 그 과실은 누가 갖게 되었는지, 이 역사로부터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정의당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전략적 야권연대’를 실현할 기회를 엿보았다. 그것이 선거법-공수처법 패스트트랙 공조였다. 정의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찬성했는데, 이는 선거법 개정을 민주당과 공조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막상 선거가 다가오자 민주당은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했고, 그에 따라 2010~2012년부터 10년에 걸쳐 선거법 개정을 목표로 했던 진보정당의 ‘전략적 야권연대’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정의당이 선거법 개정을 몰두하는 동안 민주당은 야권연대를 통해 진보정당, 시민운동, 노동조합의 이슈, 정책을 자기 소유권 밑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야권연대의 최대 수혜자는 2011~12년 원탁회의, 혁신과 통합(시민통합당)을 이끌고 민주통합당의 주축이 되었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진보정당의 장기 비전은 문재인 정부에서 자신이 걸었던 행보를 냉정히 평가해야만 도출될 수 있다. 그런데 진보정당은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이재명 후보와의 포퓰리즘 정책 경쟁에 뛰어든 것처럼 보인다. 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 쪽과의 연대가 아니라 경쟁이기 때문에 지난 10년의 야권연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양당 포퓰리즘 정책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연대’ 시도로 급전환될 수 있다. 이는 지난 10년에 걸친 ‘전략적 야권연대’의 과오를 반복하는 길을 열 것이다. 남은 길은 문재인-이재명의 포퓰리즘 정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반(反)민주당 진보로 가는 길을 출발하는 것뿐이다.
김진현의 「일자리 보장제는 100조 원짜리 공공 근로?」는 최근 정의당이나 여러 정치단체, 민주노총이 종종 언급하곤 하는 ‘일자리 보장제’를 검토한다. 특히 정의당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일자리 보장제를 핵심 정책으로 밀어붙이는 듯하다. 해외에서도 일자리 보장제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데, 주로 ‘현대화폐이론’(MMT)의 신봉자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일자리 보장제는 실제 시행했을 때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일자리 보장제는 수요 창출이나 투자 확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해서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못한다. 오히려 민간 부문 일자리를 감소시킬 가능성도 크다. 찬성론자들은 돌봄 노동 같이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일자리나, 대체에너지 관련 부품 생산 같이 기후변화 대응 일자리도 언급하고 있으나, 이는 모두 일자리 보장제의 본질에 맞지 않는 일자리라서 현실화 가능성이 작다. 따라서 일자리 보장제는 현재도 시행되고 있는 공공 근로의 확장판에 불과할 것이다. 그에 비해 들어가는 재원은 60~100조 원 정도로, 2020년 법인세 총액보다 큰 수준이다. 따라서 복지 목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면 증세를 통한 재원 조달 계획을 내고 사회적 동의를 끌어내야 마땅하다. 하지만 찬성론자들은 상세한 재원 조달 계획 대신, 돈이 거의 안 든다는 식으로 쟁점을 회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빚더미에 짓눌리는 상황에서 증세 이야기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걸 인식하고 있고, 여차하면 국가부채로 재원을 충당할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의당과 민주노총이든, 집권 정당인 민주당이든 간에 그 누구도 국가 부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조유리의 「선심성 공약으로 청년 세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는 정의당의 청년 공약을 분석하고, 이재명 후보 측 공약과 비교한다. 정의당은 전통적으로 청년 공약을 강조했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의 대표적인 공약이 ‘청년사회상속제’였으며, 2020년 총선에서도 1호 공약으로 청년기초자산제가 제시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의 청년 고용률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봐도 낮고 청년실업률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실업률에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으로 노동시장 구조의 차이가 지목된다. 한국은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더 낮고, 상대적으로 계속 하락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하는 것을 역전시키거나 적어도 더 악화하지 않게끔 함으로써 청년실업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정의당과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청년고용 대책을 보완, 발전시키기보다는, 없던 복지를 대폭 강화하는 정책만 나열하고 있다. 정의당의 청년기초자산제와 이재명 후보의 청년기본소득은 얼마간 차이가 있지만, 오히려 공통점이 더 많다. 첫째, 두 정책의 목표가 명확하지도 않고, OECD의 분류에 따른 노동시장정책, 즉 직접일자리 창출, 직업능력개발, 고용서비스, 고용장려금, 창업지원이라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나 실업급여라는 소극적 노동시장정책 중 어느 범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특별한 목적 없이 지급되는 현금성 지원금은 청년을 일자리로 연결하는 노동시장정책과 달리 실업 해소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 둘째,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현금지원 정책이지만,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정의당이나 이재명 후보 쪽은 실질적인 문제해결보다는 표심을 고려한 선심성 공약에 관심이 많을 뿐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쟁점분석’으로, 이진숙의 「지역본부 노정교섭, 쟁점과 과제」는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지자체 간 ‘노정교섭’을 다룬다. 2018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여러 지자체가 노동정책을 도입했고, 민주노총 새 집행부는 중앙교섭-업종교섭-지역교섭을 통일적으로 진행할 체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자체 노동정책은 민주당 집권 지역에서 실행되고 있는데, 이를 선도한 서울시와 여러 단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노동표준과 독일 브레멘, 함부르크, 뮌헨, 스웨덴 예타보리, 미국 위스콘신에서 시행된 정책을 취해 패키지를 구성했다. 지역본부 노정교섭의 현재 목표는 중앙정부 정책과 노동법의 보호가 미치지 못하는 영세사업장, 취약노동자를 지원하는 제도의 초기 설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민주당과 암묵적인 지지·협력 관계가 형성될 우려도 있다. 지자체장 개인에 의존하지 않도록, 즉 지자체 노동정책이 전국적으로, 통일적으로 시행되도록 민주노총이 법·제도 개선 과제를 정리해서 정치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한편 지자체의 상담사업, 실태조사, 맞춤형 지원사업이 노동권익센터, 비정규직센터와 같은 중간지원조직을 통해서 시행되고, 여러 지역본부가 위탁을 받아 운영한다. 이러한 사업은 지역본부가 지역 노동시장의 실태를 파악하고 미조직사업을 펼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노동조합 조직화와 충돌하는 경로(자조모임)로 발전될 위험도 있고, 노동조합의 인적, 정책적 역량이 유출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지역본부가 지역 노동운동의 주도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종합적으로, 새로이 구성해야 한다.
‘세계사회운동’으로는 탈성장을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 《뉴 레프트 리뷰》 2021년 3·4월호에 실린 츠다 켄타의 「탈성장에 대한 소박한 질문」을 번역했다. 이 글은 탈성장론이 ‘성장’이나 ‘소비’와 같은 개념에 있어 경제학적이지 않고 불철저하며, 그 공백을 자기 절제의 도덕 이론으로 채우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탈성장론은 기술 개발이나 효율성 제고로는 기후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효율성 향상이 소비 확대로 상쇄된다고 일반화할 수 없다. 탈성장은 실행 과정에도 난관이 많다. 모든 산업과 기업에 대해 무엇이 꼭 필요하며 무엇은 그렇지 않은지를 누군가 일일이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탈성장론은 어디까지가 ‘필요’인지 판단할 기준이나, 누가 판단해야 할지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국제적 차원으로 가면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탈성장론이 경제의 성장이 아니라 침체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는 현실을 완전히 거꾸로 보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김성균의 「망국과 체제이행, 격동기 노동자 민중의 삶」은 ‘소설과 함께 보는 한국 노동자운동 역사’ 연재의 네 번째로 식민지 시대 노동소설을 다룬다. 이번에는 대략 1910년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소개하면서 조선에서 자본주의가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당시 노동자가 직면한 노동 현실은 어떠했는지를 다룬다.
이번 ‘페미니즘 읽기’는 문설희의 「무엇이 여성을 건강하게 하는가」로, 『200년 동안의 거짓말: 과학과 전문가는 여성의 삶을 어떻게 조작하는가』, 『무엇이 여성을 병들게 하는가: 젠더와 건장의 정치경제학』, 두 권의 책을 통해 여성의 건강이라는 문제를 검토한다. 첫 번째 책은 18~19세기 현대의료나 20세기 ‘가정과학’ ‘육아과학’이 정착하는 과정을 파헤치며 전문가의 손에 비틀린 과학, 즉 ‘사이비 과학’을 고발한다. 두 번째 책은 여성의 건강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분석하면서, 그 상황의 공통점을 찾으면서도 사회·경제·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하는 ‘공통된 차이’에 주목한다. 두 책의 접근방식에 관한 필자의 세심한 논평을 볼 수 있다.
임필수의 「김대중 정부 후반기 대북정책과 통일운동」은 사회운동사, ‘남북한의 통일정책과 통일운동, 역사와 평가’의 일곱 번째 글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이후 통일운동의 일대 변신 과정, 즉 ‘통일운동’이 ‘민간교류운동’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다룬다. 민간교류운동은 ‘온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발전하고자 했지만, 북한에는 ‘민간’이라는 파트너가 존재하지 않았고, 교류 과정에서 북한의 핵 문제나 인권 문제는 거론할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지적한다.
이아림의 「자본주의의 성장과 쇠퇴를 이해하는 열쇠」는 최근 번역된 헨릭 그로스만의 『자본주의 체계의 축적과 붕괴법칙: 동시에 위기이론』을 소개한다. 이 책은 1929년에 나온 그로스만의 대표작으로, 한글 번역은 1992년에 나온 영어 축약본을 대본으로 했다. 이 글은 그로스만의 생애나, 『붕괴법칙』이 출판될 때 상황과 초기 반응, 1970년대에 이뤄진 재조명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과천연구실의 해석과 평가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필자가 독자에게’는 지난 호에 실린 김동근의 『공정성과 능력주의에 대한 이론적·현실적 검토」에 대한 질문에 답한다.
2021년 9월 16일
편집장 임필수
편집장 임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