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략적 경쟁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본 전략적 경쟁
요약
2020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은 공화, 민주 양당의 초당적 정책 합의를 집약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 보고서의 키워드는 ‘원칙에 입각한 현실주의’와 ‘전략적 경쟁’이었다. 이는 지난 20년간 미중관계의 변화를 냉정히 평가할 때, 관여정책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는 선언인 셈이다. 왜 그런가. 중국이 ‘규칙이나 약속을 따른다는 합의’를 깼다는 것이다. 중국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규칙에 기초한 질서를 악용하기로 선택”했고, 이제 자신의 “이익과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도록 국제질서의 변형을 추구한다.” 그렇지만 보고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관여정책의 완전한 폐기나 봉쇄정책으로 복귀를 지향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주의 깊게 표현한다. 즉 많은 논자가 주장하듯 전략적 경쟁이 곧 신냉전은 아니라는 뜻이다.
1990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주도했던 조지프 나이도 미중관계를 ‘협력적 경쟁’이라고 규정한다. 첫째, 왜 경쟁이 불가피한가. 국가안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공급사슬의 일정한 분리는 양국 모두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부분적인 기술 분리가 완벽한 보호주의를 향한 상호보복전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하한선을 정하기 위한 협상을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 둘째, 왜 협력이 불가피한가. COVID-19나 기후변화와 같이 초민족적인 생태 이슈에서, 국가 간 협력은 제로 섬이 아니라 포지티브 섬을 낳을 것이다. 즉 다른 국가를 돕는 것은 도움을 주는 국가에게도 이익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을 너무 협소하게 해석해서, 1945년 이후 미국이 취해온 장기적이고 문명화된 국익 개념으로부터 이탈했다. 이제 미국은 세계적 공공재 생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중국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결국 ‘경쟁적 협력’이란 관여정책, 즉 서로 약속에 따라 행동하면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정책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새롭게 창출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이 경제, 가치(이데올로기), 안보 측면에서 전략적 경쟁을 선언한 후, 올해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그 시험대 위에 올라 섰다. 첫 번째로 가치(이데올로기)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바이든 대통령은 12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최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가치의 경쟁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인가, 미국 내에서도 찬반 토론이 전개되었다. 정치양극화, 인종적 부정의, 선거권 제한, 정치적 극단주의 등등, 국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미국이 민주주의의 효과적인 옹호자가 될 수 있냐는 비판이나, 필리핀이나 나이지리아 사례처럼 초청된 특정 국가가 과연 민주주의라 불릴 만한 자격이 있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와 같이 배제된 국가들의 상호접근을 촉진함으로써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사회운동은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해 각국 정부가 민주주의를 개선하도록 촉구하는 활동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접근법을 취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스트롱맨(독재자), 또 한편으로 인민주의가 세계적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는 현실에 사회운동이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경제(체제)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자가 개시했던 무역전쟁을 물려받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개방적이고 호혜적인 경제질서라는 세계 공공재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가.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규칙에 기반한 세계질서라는 원칙을 파괴하며 매우 협소한 의미의 국익을 추구하면서도, 무역적자 감소와 같이 사실상 매우 부적합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WTO와 여타 다자적 메커니즘을 존중하면서도 이러한 메커니즘 내에서 새로 부상하는 의제를 다루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개시해야 한다. 중국의 불공정 행위도 이러한 다자적 틀 내에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에 두 가지 계기가 있는데, 하나는 트럼프 행정부가 박차고 나간 CPTPP에 중국이 가입신청을 낸 것이다. 미국은 그 신청을 거절해서 중국을 고립시키라고 11개 가입국에 요청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도 가입해서 중국의 경제개혁을 촉진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다른 하나는 곧 개최될 WTO 각료회의인데, WTO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상소기구를 보이콧함으로써 기능을 마비시겼다. 바이든 행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 한 세계무역기구는 현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사회운동은 1999년 시애틀 전투 이후로 ‘WTO 체제가 지향하는 허구적인 자유무역 원리가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보호무역주의의 발호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사회운동은 반세계화가 보호무역으로 기울게 된 역사적 과정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보호주의라는 반동적 물결에 비해 볼 때, 국제무역의 규칙을 새로 구성하기 위한 다자적 노력은 노동권을 중심에 둔 대안무역질서를 모색하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세 번째로 안보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이 동·남중국해에서 주변국에 가하는 강압적 위협이나, 대만해협에서 벌이는 무력시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도 과도한 군사화를 피해야 하는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동·남중국해에서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한다고 본다. 회색지대 전략이란 전쟁의 확대가능성을 낮추되 시기를 거듭할수록 매우 조직적인 비군사적 방법을 사용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이익을 얻어내는 행동을 뜻한다. 오바마 정부 때까지 미국은 이 지역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는데, 미국의 동맹국, 동반자국이 오히려 지나치게 공격적인 행동을 펼쳐서 미국이 스스로 원치 않는 군사적 분쟁에 말려들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이 기회를 활용해서 회색지대 전략으로 타국을 희생시키며 자국의 세력권을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제 전략적 모호성이 더 이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즉 중국의 행동패턴에 따라 맞춤형 대응계획을 세우고 결단력을 보여주는 ‘힘을 통한 평화 유지’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게다가 2016년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는 중국의 남중국해 정책이 유엔해양법에 어긋난다고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행정부 때 뜨거운 주제가 북한이었다면,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대만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대만 침공설’마저 공공연하게 언론의 논제로 오르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이 설정한 핵심 레드라인은 대만의 독립선언과 외국군(미군)의 대만 주둔이다. 차이잉원 총통이나 바이든 행정부가 당장 이 선을 넘지는 않을 것이고, 갈등은 장기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사회운동은 대만 문제가 심각한 쟁점으로 떠오른 근원적 이유를 따져야 한다. 2014년 3월 대만의 해바라기운동, 2014년 9월 홍콩의 우산혁명은 대만과 홍콩에서 중국의 경제정책이나 통치방식에 대한 강한 반감이 표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도 대만에서 중국이 말하는 일국양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의구심을 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만에서 전개된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개혁 요구는 궁극적으로 대만이 주권적 실체로 남아 있어야만 계속적으로 진전할 수 있다.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흐름을 지지한다고 할 때, 대만에서 주권적 실체를 지키며 지속적으로 사회경제적 개혁을 추진하려는 사회운동의 흐름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한 만약 이러한 흐름에 중국이 군사적 위협을 가한다면, 그러한 위협을 강하게 비판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지금까지 언급된 쟁점, 현안은 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 CPTPP 가입이나 WTO협상·WTO개혁 문제,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 등등. 이제 점점 더 많은 논자들이 현안 각각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고, 한국 외교의 미래를 결정할 종합적인 판단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맡았던 문정인 교수는 한국이 택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을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① 미국과 같이 가야 한다는 ‘한미동맹 강화’, ② 중국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중국편승론’, ③ 독자적 핵보유 또는 중립화선언을 통한 ‘홀로서기’, ④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양자택일을 할 것이 아니라 두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는 ‘현상유지론’, 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진영외교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초월적 외교’론. 문 교수은 자신은 다른 네 가지 선택지가 모두 실현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초월적’ 전략을 제시한다. 곧, 미중 진영 외교란 틀에서 벗어나 다자협력과 지역통합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약소국도 편 가르기 진영 외교에서 탈피하여, 국제협력을 통해 새로운 규범, 규칙, 절차를 만들어 현안을 해결하고 위협을 종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초월적 외교론에는 분명한 맹점이 있다. 다자협력과 지역통합의 새로운 질서란 관여정책이 성공적으로 발전했을 경우 상정해볼 수 있는 미래다. 미국의 낙관적 관여정책이 계속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면 전략적 경쟁이라는 문제가 아예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가장 심각한 맹점은 초월적 외교를 실현하는 핵심 변수로 남북관계를 꼽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한미동맹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한미, 한중 간 균형외교를 전개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되고, 한국이 역량을 발휘하여 미중 협력 관계의 선순환 구도를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폐기할 의사가 없다면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하노이 노딜을 통해 확실히 증명되었다. 그런데다가 최근 문재인 정부의 흐름을 보면 이런 조건에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추구하다 보니, 오히려 중국 쪽으로 휩쓸려 가고 있다. 이는 초월적 외교를 향한 길이 아니라 실천적으로는 ‘중국편승론’으로 가는 지름길로 보인다. 그가 말하는 초월적 외교란 규범, 규칙, 절차를 세우는 외교인데, 초월적 외교를 위해 규범, 규칙, 절차를 무시하는 중국의 행위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종합하면, 필자는 미국이 추진하는 전략적 경쟁이 오히려 규범, 규칙, 절차를 세우는 외교에 더 가깝다고 본다. 따라서 다자주의적 협력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관여정책이 작동하는 조건을 구축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고, 따라서 신냉전이 아니라 오히려 관여정책을 향해 열려 있다고 판단한다. 또한 이러한 과정의 여러 측면에 대해서는 사회운동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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