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후보는 탁월한 행정가·정치인인가
2015∼2016년 대통령 후보 이재명의 탄생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 물망에 오른 것은 언제쯤일까. 뉴스를 찾아보니 한국갤럽이 2015년 4월 10일 발표한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이재명 성남시장이 후보군에 올랐다. 갤럽은 매월 예비조사에서 여야별로 자유응답 4위까지 선정해 여론조사를 시행했다. 당시 선호도 1위는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22%, 2위는 박원순 서울시장 12%, 3위는 안철수 의원 11%였다. 즉 야권이 1, 2, 3위를 모두 차지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1%의 지지율을 얻었지만, 광역단체장도 아닌 기초단체장이 대선후보 반열에 올랐다는 사실이 매우 이례적이었다. (바로 이 시점이 대장동 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개시된 때다. 대장동 개발사업 공모가 2015년 2월 13일에 시작되어 3월 26일 마감되었고, 단 하루만인 3월 27일에 성남도시개발공사는 하나은행 컨소시엄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결정했다. 그 후 컨소시엄은 시행사로 ‘성남의 뜰’을 설립했고, 성남의 뜰에서 자산관리회사로 화천대유를 선정했다.)
어떻게 이재명 시장이 여론조사 대선후보 명단에 오를 수 있었나? 당시 언론을 보면, “이재명 시장이 최근 무상급식 중단으로 화제가 된 홍준표 지사와 정반대의 복지정책을 펴고 있어 뉴스메이커가 될 수 있었다.”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차상위 130%는 이미 국비로 무상급식을 지원한다”면서, 전면 무상급식을 축소하는 대신 서민 자녀의 교육지원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였다. 3월 23일 이재명 시장은 페이스 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홍준표 지사님, 밥과 공부는 선택 문제가 아닌 (자치단체장의) 능력 문제입니다. 공개토론회를 제안합니다.”
4월 3일자 《한겨레21》은 ‘요즘 뜨거운 남자 이재명 성남시장의 승부수’라는 글을 실었다. 기사는 이재명 시장이 홍준표 지사와 논쟁을 넘어서, 보편복지의 새로운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그것은 바로 ‘무상 공공산후조리원’인데, 이에 대한 젊은 층의 호응과 지지가 크다고 전했다. 기사는 1월 15일 성남시가 발표한 ‘공공성 3종 세트’도 자세히 소개했다. 안전 분야의 성남시민순찰대, 의료 분야의 성남시립의료원·100만 시민주치의제도·무상공공산후조리원, 교육 분야의 무상급식·무상교복이다. 덧붙여 이재명 시장이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 후 3년 6개월 뒤 “이제 다 갚았다”고 선언함으로써 재선에 성공했다면서, 그를 ‘논쟁과 주목을 즐기는 시장’, ‘전략가이자 승부사’라고 칭했다.
이렇게 주목을 받았던 이재명 후보 지지율은 특별한 이슈가 없자 5월에 0%대로 내려갔지만, 6월에는 메르스 사태에 대한 강경대응으로 다시 2%로 상승했다. 이때 이재명 시장은 6월 6일 성남시 거주자 메르스 양성반응 환자의 직장, 거주지,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재명 시장의 정보공개는 큰 논란을 낳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시장이 자기 지역 시민의 개인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말했고, 어떤 의사는 “정치인이 감염병 논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재명 시장을 옹호하는 여론도 상당했는데, “개인정보 보호보다는 공공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게 근거였다.
또한 이재명 시장은 6월 19일 <2015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라는 행사에 참여해 “기본소득의 도입을 검토한 결과, 청년배당 도입을 위한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아주경제》는 중앙정부, 지방정부를 통틀어 한국 최초로 기본소득 정책을 도입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성남사랑상품권 등 지역화폐와 연계해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해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매우 유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시장 지지율은 7월에 3%, 8월에는 4%로 꾸준히 상승했다. 7월 31일 《프레시안》은 ‘이재명 시장이 뜨는 이유’라는 기사를 냈는데 부제가 ‘모험 즐기는 도전적 리더십’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7월 13일부터 1주일 동안 SNS에서 이재명 시장을 언급한 문서는 4만여 건으로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대표, 안철수 위원장에 이어 4위를 차지했고, 특히 문 대표, 안 위원장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이재명 시장에 관한 뉴스 언급량은 문재인 대표의 20%이므로, 뉴스관심도 대비 SNS 언급량은 압도적 1위인 셈이었다.
그렇다면 이재명 시장은 어떻게 해서 SNS 스타가 되었나. 그는 2014년 9월 “세월호 실소유자는 국정원이라 확신한다”고 썼다. ‘정의로운 시민행동’이라는 단체가 고발하겠다고 밝히자 “말만 말고 고발하시오”, “거 참 말 많네. 그냥 고발하라니까”라는 글을 연거푸 올렸다. 2015년 7월에는 국정원에서 휴대전화 해킹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구매한 일이 드러난 후 국정원 직원이 숨진 채 발견되자 “아무리 봐도 유서 같지 않네”라는 글을 올리며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8월에는 북한이 연천군 인근의 대북확성기에 포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때 이재명 시장은 “북에서 먼저 포격? 연천군 주민들은 왜 못 들었을까”라는 글을 올리며 논란을 벌였다. 이재명 시장은 “국민의 합리적 의문과 의혹 제기를 괴담으로 몰아 입을 막는 것 또한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10월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청년배당 사업이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자, 이재명 시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기초노령연금 약속이야말로 “선거용 포퓰리즘 공약”이라고 맞받아쳤다. 성남시 수준의 청년배당 사업이 전국적 쟁점으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식으로 2015년 하반기부터 이재명 시장의 지지율은 3∼5%대를 유지했다. 2015년 11월 새정치민주연합은 소속 정치인의 SNS를 한데 모은 ‘SNS 스크럼’ 사이트를 열었는데, 여기서 ‘희망스크럼’으로 불린 대선주자 6명으로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안희정, 김부겸, 이재명을 꼽았다. 2016년 4월 총선 선거운동 때,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박근혜 정부 심판과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면서 “우리에게는 문재인, 박원순, 손학규, 안희정, 김부겸, 이재명 등 기라성 같은 잠재적 대권주자들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명 시장은 계속 이슈를 생산해냈다. 2016년 1월 성남 시의회가 ‘성남시 3대 복지사업’, 즉 청년배당(113억 원), 무상교복(25억 원), 공공산후조리원(56억 원) 경비를 반영한 2016년도 예산안을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하지 않은 채 의결했다. 사회보장법은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때 타당성, 기존 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에 미치는 영향, 운영방안을 복지부 장관과 ‘협의’하도록 되어 있다. 2015년 법제처는 협의가 복지부 장관의 합의, 동의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성남시에 재의를 요구했지만, 성남시가 거부했다. 경기도는 이를 대법원에 제소했다. 2년이 지나 이재명 시장이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 2018년 7월 경기도는 이 제소를 취하했는데, ‘셀프 취하’라는 평을 들었다.
이재명 시장은 2016년 6월에는 광화문에서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며 광화문에서 10일간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행정자치부가 법인지방소득세의 약 50%를 공동세로 전환해 가난한 시군에 재분배하고, 시군에 조정되는 조정교부금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 더 많이 배분하기로 한 방침을 정했는데, 이재명 시장이 선봉에 서서 반발한 셈이었다. 이재명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을 꼭 찍어 공격하고 있다는 식으로 구도를 세웠다. 그는 “지방자치 제도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체계적이고 집요한 공격이 있었는데 지금 마지막 총공세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성남시처럼 말 안 듣는 곳은 근본적으로 손을 보자는 거다”라고 말했다. 농성장에 붙은 현수막은 “김대중 대통령이 살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키우고 박근혜 대통령이 죽이는 지방자치를 지키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성남 외에 수원, 화성, 용인, 고양, 과천 6개 시 주민은 6월 11일 광화문에서 시민문화제를 열기도 했다. 단식농성이 영향이 있었는지, 이재명 시장의 지지도는 7.4%를 기록해, 야권에서 문재인, 안철수에 이어 3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6월 20일 《미디어 오늘》에 ‘더 많은 이재명이 필요하다’는 글을 실었다. “이재명은 지방자치 행정가로서, 정치인으로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고”, “청년 배당, 무상 산후조리, 무상교복 지원 등 가난하고 소외된 시민들을 위한 정책들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고 평했다.
이재명 시장은 7월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서도 후보 물망에 올랐다. 당 대표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12.7%로 1위를 차지해, 추미애 의원 10.5%, 송영길 의원 10.3%보다 앞섰다. 하지만 그는 시장으로 소임을 끝까지 다하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하여, 《오마이뉴스》는 ‘이재명 더민주 불출마가 아쉬운 이유’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만약 그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12월 말까지 당 대표에 사퇴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관측도 나왔다. (8월 대의원대회에서 추미애 의원이 당 대표로 당선되었다.)
9월에 들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가 불거지면서 철옹성 같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끝나자 문재인, 김부겸, 안희정, 이재명 대선모드’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 선출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이재명 시장은 “2-6위가 연합하면 1위(문재인 전 대표)를 제칠 것 같다. 그게 이재명일 수도 있고...”라며 경선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렇지만, 9월 중순 《연합뉴스》는 ‘대선주자 지지율 4개월째 정체’라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반기문, 문재인, 안철수 등 선두권 3강 주자도 정체상태고, 이재명 시장도 2~4% 정도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머지않아 결정적 반전의 계기가 찾아왔다. ‘최순실 의혹’이 연일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10월 중순에 이르러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선 아래로 떨어졌다. 처음으로 20%대 국정수행 지지도를 기록했다.
이때 대통령 탄핵을 처음 언급한 인사는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10월 13일 그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면서 “이런 야만적 불법행위와 권력남용을 자행하는 현 정부와 대통령은 탄핵대상이 아닌가요”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는 이재명 시장도 탄핵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10월 14일 김어준 씨의 방송에 출현해 “국회에서 의결될 가능성 제로, 거기다 역량을 소진할 순 없어요.” 그러다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 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 건을 보도하면서 비선실세 의혹이 폭발했다. 그러자 이재명 시장도 10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야권에서도 최종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탄핵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하야, 탄핵을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10월 29일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주최로 광화문에서 1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때 이재명 시장은 연단에 올랐다.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이 아닙니다. 즉각 하야해야 합니다.” 이재명 시장의 지지율은 11월 초에 10%를 돌파하게 된다. 두 자리 대의 지지율을 지닌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탁월한 지방자치 행정가이자 정치인인가
2015∼2016년 이재명 시장이 대통령 후보로, ‘정치적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재명 시장 본인의 SNS, 언론 플레이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뉴스를 꼼꼼히 보면 몇몇 생소한 언론사가 이재명 시장을 띄우는 기사를 꾸준히 냈고, 《한겨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과 같은 ‘진보언론’에도 이재명 시장을 대선 후보군에 올리자는 오피니언이 계속 올라왔다. (위에서 언급한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의 표현을 쓰자면) 이재명 후보가 ‘탁월한 지방자치 행정가이자 정치인’이라는 게 그 근거였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얼마나 사실에 부합할까.
첫째, 탁월한 지방자치 행정가라는 이미지는 이재명 시장 본인이 선언했던 모라토리엄을 3년 반 만에 극복했다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나 정말로 모라토리엄이 불가피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차례 팩트 체크가 이뤄졌다. 당시 이재명 시장은 전임 이대엽 시장(한나라당)이 판교특별회계에서 5200억 원을 갖다 썼는데, 돈을 빌려 준 국토해양부가 정산을 요구했지만 갚을 돈이 없어서 지불유예를 선언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강한 반론도 나왔다. LH공사나 국토부가 빚을 갚으라고 독촉한 적이 없다, 5400억 원을 일시 상환할 필요가 없었고 실제로는 350억 원 정도만 LH에 갚으면 됐다, 설사 일시상환 요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매년 2000억 원의 초과이익이 나고 있었으므로 모라토리엄은 전혀 불필요했다 등등. 따라서 이런 반론에 따르면, 모라토리엄 선언은 전임 시장의 실패를 부각시키고,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전임 시장의 사업을 중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둘째, 무상 공공산후조리원으로 보편복지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는 얼마나 타당할까. 공공산후조리원 이슈 자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재명 후보의 ‘말의 수법’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해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이낙연 후보는 “전라남도 도지사 시절 전국 최초로 공공산후조리원을 설치했다”고 주장했고, 이재명 후보도 “경기도지사가 된 후 전국 최초로 여주 공공산후조리원을 설립했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제주도 서귀포시가 전국 최초고 2013년 3월에 개원했다고 밝혔다. 공공산후조리원 설립계획을 처음 발표한 곳은 2011년 송파구였다. 게다가 이재명 후보가 말한 여주는 남경필 지사 시절에 착공한 것으로 경기도와 여주군이 예산을 분담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재명 지사의 말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의도된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공공산후조리원은 민간시설보다 가격이 저렴하지만 무상은 아니다. (당시 시점에 2주간 154∼190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이재명 시장이 ‘무상’ 조리원을 최초로 제안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실현되지 않았다. 복지부가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지역 간, 산모 간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이미 시행 중인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사업이나 출산장려금을 확대해서 해결할 수 있다면서 성남시 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이재명 시장이 무상 공공산후조리원을 설립한 실적은 없다.
그런데, 지난 해 말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 시절 공공산후조리원을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반대해서 싸우다, 싸우다 실패했다”, “경기도지사가 된 다음 여주에 하나 짓고 포천에 짓고 있는 중”이라고 또다시 말했다. 이 역시 사실을 교묘히 왜곡한 것이다. 만약 성남시가 ‘무상’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공공산후조리원 설립은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실패한 것이 ‘무상’ 조리원을 지칭한 것이라면, 경기도지사가 된 후에도 여전히 실패한 상태인데, (남경필 지사 시절 착공한) 여주 역시 ‘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산후조리원도 아닌 ‘무상’ 공공산후조리원이 우리 사회 복지정책에서 그렇게 시급하고 중요한가, 당시 복지부와 이재명 시장 중 누구 입장이 타당했던가, 이런 문제는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아니다. 필자가 관심을 두는 문제는 이재명 후보가 ‘전국 최초’라든가, “박근혜 대통령과 싸워 실패한 것을 도지사가 되어 성공했다”라든가, 사실과 전혀 다른 말을 천연덕스럽게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함께 주목해야 할 점은 무상 시리즈와 ‘반(反)박근혜’를 연결시키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2010년대 초반, 무상복지, 반MB, 야권연대가 민주당의 선거승리 공식이 되었는데, 이재명 시장은 이를 계승해 성남시의 무상복지를 박근혜 정부가 가로막았다는 구도를 제시했다. 행정자치부가 법인지방소득세의 50%를 공동세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세우자, 이재명 시장은 박근혜 정부가 자기를 꼭 찍어 탄압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이에 대한 거부를 반(反)박근혜 투쟁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셋째, 청년배당을 통해 정부 최초로 기본소득을 도입했다는 주장은 얼마나 타당한가.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이 언제나 받을 수 있고(보편성), 그 사람의 활동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무조건 제공되며(무조건성), 가족이나 회사가 아니라 나에게 지급된다(개별성)는 특징을 지닌다. (기본소득이 고용·복지 정책의 대안인가라는 문제도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사회진보연대가 발표한 『이재명 대통령이 위험한 이유』에서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을 자세히 다루었다.) 문제는 이재명 시장의 청년배당이 과연 기본소득 개념에 부합하냐는 것이다. (상품권이 기본소득이냐는 문제도 있겠다.) 이재명 후보 식으로 말하면 다양한 종류의 현금성 복지에 모두 기본소득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다. 문화예술인 기본소득, 농민 기본소득, 노인 기본소득, 아동 기본소득 등등. 이재명 시장은 기본소득이 조세와 복지체계의 심대한 변화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전국 지자체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금 복지를 ‘한국 최초 기본소득’으로 포장할 뿐이었다.
넷째, 이재명 시장의 메르스 의심환자 개인정보 공개는 정당했는가. 당시까지 정부 역시 주요 전파 경로가 원내 감염인지 지역사회 감염인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고, 모든 정보를 숨기기만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재명 시장이 의심환자의 동선을 공개할 때, 전문가나 보건복지부와 협의도 없었고,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어떤 노력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경솔하고 독단적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 최근, 2022년 2월 18일, 이재명 후보는 광주 유세장에서 “밤 12까지 영업해도 되는데, 혹시 (단속에) 걸리면 다 사면해주겠다”, “3월 9일에 선거 끝나면 3월 10일에 그렇게 조치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직 대통령이 아닌 당선자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지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 발언 역시 대통령이라면 전문가나 보건복지부와 협의 없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그의 발상을 잘 보여준다.
종합해보면 이재명 시장의 특징은 첫째로 발 빠른 모방전략과 네거티브다. 큰 틀에서 보면 각종 무상복지 시리즈는 이재명 시장이 처음으로 제안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이를 재빠르게 모방하여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보이도록 언론 홍보에 큰 공을 들였다. 특히 이를 박근혜 정부와의 싸움처럼 보이도록 하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지자체의 각종 현금 복지 사업도 ‘기본소득’이라는 상표를 붙여 자기만의 것으로 바꾸고자 했다.
둘째, 발 빠른 모방전략과 네거티브에 능하다는 말은 곧 일관된 노선이나 정책이 없고, 정치공학적 고려에 따라, 즉 여론 상황을 뒤따라가면서 말을 계속 바꾼다는 뜻이다. 그는 박원순 시장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주장에 대해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하다가 여론 상황이 바뀌자 광장에 나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 탄핵을 외쳤다. 가까운 사례를 보면, 코로나가 창궐한 후 그는 줄기차게 선별지원에 반대하며 전국민 재난지원금만을 주창하다가, 윤석열 후보가 소상공인 50조 원 손실‘보상’을 제시하자 별다른 설명도 없이 소상공인 ‘지원’을 들고 나왔다.
셋째, 그러면서도 그는 지도자의 능력, 지도자의 의지를 강조한다. 모라토리엄 선언이라는 지도자의 결단, 모라토리엄을 빠르게 벗어난 지도자의 능력. 메르스 사태를 돌파해내는 과감한 결단과 능력.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연출된 것이었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정부 당국과 전문가와 협의는 완전히 불필요했다. 나아가 지도자의 능력, 의지를 강조하는 입장은 곧 ‘국가주의’와 연결된다. 지도자가 의지와 능력만 있다면 국가가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1·5·5 공약(수출 1조 달러, 국민소득 5만 달러, 세계 5대 경제강국)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학적 근거가 없다. 정치인이 의지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
넷째, 그는 책임 있는 공직자라면 함부로 언급할 수 없는 각종 ‘음모론’의 스피커 역할을 하면서 SNS 스타로 부상했다. 하지만 김어준 씨나 그를 따르는 일부 86세대가 심취한 음모론은 민주당 정치를 타락으로 이끄는 중대한 위협이다. 이재명 시장은 이런 음모론이 ‘합리적 의심’이라고 포장하지만, 오히려 음모론이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김어준 씨는 쥴리, 생태탕 등, 수많은 사례에서 드러나듯 극악한 네거티브의 진원지가 되었고, 오히려 민주당 선거에 파괴적 영향을 끼쳤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왜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여러 장점도 많은데 왜 김어준 씨의 생태탕 이슈에 끌려다니다가 선거를 망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 김어준 씨는 최근, 2월 18일에는 민주당 경선 마지막에 ‘신천지 10만 명이 이낙연을 찍었다’는 말로 또 다시 폭탄을 던졌다.
지금까지 2015∼2016년 이재명 성남시장이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는 과정을 살펴보며 ‘탁월한 지방자치 행정가이자 정치가’라는 평가가 타당한가 따져보았다. 필자는 이재명 시장의 특징이 ▵발 빠른 모방과 네거티브, ▵일관된 노선과 정책이 없는 정치공학, 상황 추수, ▵지도자의 의지·능력에 대한 강조, 당국·전문가와 협의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 대한 무시, 경제학적 근거가 없는 국가주의적 믿음, ▵음모론적 선동이라고 꼽았다. 또한 이러한 그의 특질이 2022년 대선 후보로서도 분명히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도 짚어내고자 했다. 필자는 이 모든 특징이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원리, 원칙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인민주의자’라는 규정과 정확히 부합한다고 판단한다. 이재명 후보가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결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일 잘하는 탁월한 행정가이자 정치인이라는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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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특집은 지난 겨울호에 이어 ‘2022년 정세전망과 한국 대선2’로 구성했다. 저번 특집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주제에 관한 글을 모았다. 첫 번째 글, 김진현의 「창궐하는 인민주의: 지속불가능한 경제정책과 반지식인주의」는 먼저 킬 세계경제연구소와 본대학 연구소의 분석을 소개하며 전 세계적으로 인민주의가 창궐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1900년부터 2018년 사이 세계 주요 60개국, 1500명의 정치지도자를 분석한 결과, 인민주의 세력이 가장 강력한 시기는 2018년으로, 인민주의 정권이 들어선 곳이 25%에 달한다. 이 연구는 노무현 대통령을 우파 인민주의로 분류하는데, 그의 담론에서 경제적 불평등은 핵심이 아니었고, 오히려 민족주의적 수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그를 ‘역사 수정주의자’라고 규정한다. 문재인 정부에 관해서는 신기욱 교수의 연구를 인용하는데, 이 연구는 문 정부에 들어서 반자유주의적 행태가 인민의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문 정부가 헌법과 민주주의에 적대적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새로운 파워엘리트로 자리 잡은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이 민주주의의 후퇴에서 핵심 역할을 해서 충격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자크 비데가 어떤 점에서 라클라우와 무페의 ‘좌파 인민주의’를 비판했는가 설명한다. 첫째, 인민주의는 주류경제학을 체계적으로 지양하는 경제학 비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반자본주의를 외치지만 자본주의 경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대신 그저 부패했다고 비난할 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어떻게 구조적으로 변혁할 것인지 구체적 계획이 없고, 집권을 하더라도 막대한 재정지출로 생산의 토대를 무너뜨리거나, 쫓아냈던 경제관료를 복귀시켜 집권 이전으로 회귀한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반지식인주의는 과학적 토론과 논쟁을 억압하고, 전문가 사이에 합의된 과학적 진실을 정당한 비판 없이 무시하는 ‘반지식인주의’를 드러낸다. 저자는 현실 사례로 라틴 아메리카, 특히 베네수엘라의 경제 붕괴와 이탈리아 오성운동의 반백신운동을 든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대선에 나선 이재명 후보의 인식에 우려를 표한다. 조세연구원이 지역화폐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자 연구원을 적폐로 낙인 찍고 엄중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권력으로 연구와 토론을 억압하려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는 기본대출 공약을 제시하며 현재 서민금융이 ‘족징, 인징, 황구첨정, 백골징포’라 했는데, 현대 금융시스템에 대한 합당한 비판 대신 금융기관에 대한 증오만을 부추긴다. 그는 국가부채가 GDP 대비 100%가 넘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며, 스스로 고통 받는 약자를 위한 포퓰리스트가 되겠다고 말한다. 저자는 2022년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인민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결론을 맺는다.
노동위원회의 「노동 없는 대선?」은 대선후보의 고용·노동 분야 정책을 평가한다. 이재명 후보의 노동공약은 쟁점 중 빠진 게 거의 없고 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인데, 많은 수의 노동계 전문가가 선거캠프에 참여한 결과로 보인다. 심상정 후보는 가장 먼저 노동공약을 제시하고 열악한 노동현장을 방문하며 노동 이슈를 부각시키고자 했다. 1월에는 잠행에서 복귀하면서 “진보의 금기를 공론화하겠다”고 말했는데, 연공서열제 임금체계와 연금개혁이 그 핵심이 될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금기’를 크게 부각시키기보다는 주4일제와 같이 주로 정규직 노동자의 관심을 끌 만한 이슈를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심상정 후보의 노동공약은 노동계에서 제기한 여러 쟁점을 담고 있고, 접근방식이 대체로 유사하다. 윤석열 후보는 거시경제 활성화와 신산업 발전전략을 통한 민간부문 일자리 확대를 강조한다. 또한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도 제시하는데, 구체적 방안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안철수 후보도 민간 일자리를 강조하나 첨단기술 산업부문의 성장에 중점을 둔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제정책만으로 고용문제는 물론 ‘노동문제’라 불리는 쟁점을 모두 해결할 수 없다. 현 정부에서도 좋은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들고, 단시간 노동, 플랫폼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민간부문 비정규직이 증가 추세에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재명 후보나 심상정 후보는 노동공약의 실현가능성과 직결되는 거시경제적 조건에 대해 무관심해 보인다. 이재명 후보는 추가 재난지원금이나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대규모 국채발행을 주장하고, 심상정 후보도 전국민 일자리보장제를 위해 증세와 적자재정을 찬성한다. 그런데 이를 강행하면, 국채가격 하락, 금리인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가계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대출이자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재명 후보는 1·5·5 시대(수출 1조 달러, 세계 5강, 국민소득 5만 달러) 공약을 제시하는데, 확장재정과 국가부채를 통해 단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성장을 실현하더라도, 곧 거시경제 침체와 외환위기까지 올 수 있다. 윤석열, 안철수 후보의 경우, 국민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중소영세, 비정규직, 특수고용(플랫폼) 등 취약 노동자의 처지가 자동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말로라도 ‘친노동’ 의지를 보여주는 후보 쪽이 낫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론적 근거가 없이 추진한 정책이 오히려 큰 부작용을 낳았다는 사실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증명되었다. 이재명 후보와 한국노총이 맺은 정책협약에는 집권당으로서 민주당이 거부했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공약의 진정성도 신뢰하기 어렵다. 노동조합은 정부가 필요한 모든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기본소득을 지급해 소득격차를 메워줄 것이리라 기대하기 전에, 노동조합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 공동의 임금단체 교섭과 투쟁을 통해 임금격차를 줄여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동조합 내부의 혁신에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대선이 ‘노동 없는 대선’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각 후보에게 있다기보다는, 노동자운동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김유미의 「20대 대선이 페미니스트에게 던진 질문」은 5년 사이에 여성 이슈를 둘러싼 풍경이 급변했다고 말한다. 2017년에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당시 문재인 후보의 말처럼 여야 후보가 여성 유권자를 잡기 위해 분주했다면, 2022년에는 후보 대부분이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 부담스러워 한다. 심지어 가장 주목을 받는 이슈는 ‘여성가족부 폐지’다. 저자는 ‘이대남’(20대 남자)이 문재인 정부 시기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가장 크게 하락한 집단이기 때문에 여야 후보가 주목한다고 지적한다. 먼저 국민의힘은 가장 적극적으로 이대남 소구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윤석열 후보는 기존 여성가족부 정책이나 페미니즘 운동에 선을 긋되 여성과 남성의 이해를 절충하고자 했다. “세대 간, 젠더 간 갈등이 다 있을 수 있는데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고 봉합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 성범죄 처벌과 무고죄 처벌을 모두 강화하겠다, 싱글맘처럼 싱글파파도 지원했다는 정책을 내세우고, 이수정 교수나 신지예 위원장을 영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와 갈등을 봉합하며 새로운 선본을 구성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 원“이란 짧은 공약을 내걸고, 여성가족부 폐지에 관해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청년 유권자의 요구가 이준석 대표를 매개로 윤석열 캠프에 반영되었고, 1월을 기점으로 2030년 세대의 윤 후보 지지율이 반등하면서 이대남 소구 전략이 효과성이 사후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안티페미니즘 분위기에 편승하는 윤 캠프의 행보는 위험하다. 과연 오늘 여성의 현실이 ‘개인적 수준의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성 청년의 존재를 지우는 정치는 사회적 논의를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이끌며 청년 세대의 갈등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이재명 후보도 지난해 11월 초 “이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주셔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님”이란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이대남의 관심을 끌어볼까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기존 지지층을 잃을 위험성을 더욱 중요하게 고려한 듯, 1월 초부터 여성정책을 발표하며 20대 여성을 공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지만 민주당의 여성정책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몇 가지 핵심적 이유가 있다. 첫째,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당 여성정치가 몰락했기 때문이다. 주요 정치인이 권력형 성범죄자가 되었고, 윤미향 의원에게 지기된 비리 의혹, 남인순 의원의 박원순 피소사실 유출은 민주당은 물론 그와 협력적 관계를 맺어온 여성운동 전반을 위태롭게 했다. 둘째, 이재명 후보 본인의 과거 행적이 걸림돌이 되는데, 예를 들어 변호사 시절 조카 사건을 ‘데이트폭력’이라 명명하여 사건의 심각성을 축소했다는 비판이 크게 일었다. 셋째, 민주당이 상대 후보 배우자에 대한 여성혐오성 공격을 활용하거나 방치하고 있고, 여성운동 출신 정치인마저 ‘선택적 침묵’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이 여성 인사 몇몇을 영입하여 그럴듯한 여성정책을 발표한다고 무너진 신뢰가 회복될 것 같지 않다. 페미니즘에 대한 현재 인식은 문 정부와 민주당, 여성운동의 지난 5년에 대한 평가를 반영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어려움에 부닥친 이유는 한 축으로는 민주당과 연계해 온 여성운동 전략의 파산인데, 여성가족부로 상징되는 전략의 목표, 내용, 운영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 논의를 피할 수 없다. 다른 한축은 2010년대 중반의 페미니즘 열풍이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 귀결된 현실인데, 이러한 전략은 피해자로서 여성의 위치를 강조하고 실천적으로 남성과의 분리주의로 연결되었다. 분리주의적 페미니스트는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보다 여성우선주의를 강하게 주장했고, 젠더 갈등을 가속화했다. 종합해보면, 현재 청년세대에게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이란 성별로 나뉘어 자기 몫의 파이를 챙기려 싸우는 ‘제로섬 게임’처럼 여겨진다.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2022년 대선을 거치며 우회할 수 없는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오늘날의 구조적 성차별을 무엇이라 설명하고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할 것이냐는 문제부터, 페미니즘 운동이 ‘내 파이 되찾기’를 넘어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기획연재, ‘소설과 함께 보는 노동자운동의 역사’는 식민지 시대를 다루는 세 번째 글로 김성균의 「사회주의 운동, 식민지 시대 노동자·민중의 각성을 이끌다」를 싣는다.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심훈의 「동방의 애인」, 「불사조」를 통해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태동을 살펴본다. ‘페미니즘 읽기’로는 김유미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풀지 못한 문제들: 사랑, 여성, 가족」을 담았다. 지난 겨울호에 메리 게이브리얼의 『사랑과 자본』을 소개하는 글이 실렸는데, 그에 이어,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 더 담게 되었다.
이번 호 책소개는 세 편이다. 상효정의 「‘민주주의 붕괴’가 보내는 경고의 신호」는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를 다룬다. 조유리의 「중국식 경제성장의 이면과 그 정치적 의미」는 훙호펑의 『차이나 붐: 왜 중국은 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가』를 소개한다. 이진호의 「욕망을 걷어내고 바라 본 한국고대사」는 젊은 역사학자 모임에서 낸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왜곡과 날조로 뒤엉킨 사이비역사학의 욕망을 파헤치다』를 다룬다. 앞으로도 회원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책이나, 읽기를 권유하는 책을 꾸준히 소개하고자 한다.
2022년 2월 21일
편집장 임필수
편집장 임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