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2 봄.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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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이 페미니스트에게 던진 질문

민주당식 여성 정치의 파산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김유미 | 페미니즘팀장

1. 5년 사이 급변한 대선의 풍경

 
선거 시기 여성 문제가 주요 이슈로 호출되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2017년과 2022년 대선의 풍경은 유난히 상반된다. 2017년에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재인 후보의 발언이 상징하듯 여야 후보들이 여성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분주했다. 반면, 2022년 대선 후보들은 대부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부담스러워한다. 심지어 가장 주목받는 여성 분야의 정책은 ‘여성가족부 폐지’다. 이는 지난 5년 사이 페미니즘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지형이 급변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2010년대 중반에 청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열풍이라 할 만한 흐름이 형성되었다면, 지금은 청년 남성들의 안티페미니즘이 심상치 않은 기류로 포착된다. 

지난 1월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는 국민의힘 선대위 장예찬 청년본부장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출연하여 여성가족부 존폐에 관한 토론을 벌였다. 윤석열 후보가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 공약을 올리고, 이에 응답하듯 심상정 후보가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강화’를 올린 날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었다. 

자신만만한 태도로 토론에 임한 장예찬 청년본부장은 “한번 깔끔하게 박살을 내놓고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격한 표현까지 쓰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따르면 여성가족부의 성인지교육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상정하여 남성혐오를 조장한다. 다른 한편, 여성가족부는 여성을 위한다면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 비겁한 스탠스를 취했다. 결국,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서 여성가족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매우 높아 부처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반면 류호정 의원은 여성 비정규직 비율, 코로나19 시기 여성 취업자 감소치 등, 한국 사회 여러 통계를 보면 여성가족부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의 운영에 실책이 있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부처 폐지가 해법이 될 수는 없다며, 성차별 해소 등 시민의 인권을 지키는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여성가족부를 성평등부로 개편하여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여성가족부가 여당 인사들의 성비위(性非違)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으며, 부처의 역할이 모호하기 때문에 타 부처와의 조율 및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결정적 차이는 여성가족부가 성인지 교육 등으로 성폭력 문제에 접근하는 ‘내용’에 대한 평가에서 발생한다. 장 본부장은 그 내용이 잘못된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며 “사실상 남성혐오”라고 평가했다. 진행자가 이에 관한 의견을 묻자, 류호정 의원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혐오와 젠더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답변하면서 관련 토론은 더 진행되지 못했다. 

두 청년 정치인의 토론은 이번 대선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을 만했다. 민주당 정부의 무능과 위선을 지적하며 여성가족부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주도하는 국민의힘, 여성의 현실을 근거로 들어 여성가족부를 방어하는 정의당, 그리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부재 또는 침묵이라는 면에서 그렇다. 

당일 토론 말미에 지적되었듯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는 비겁하다. 이재명 후보는 ‘여성안심 평등사회’란 슬로건하에 각종 여성 정책을 발표해 왔지만, 여성가족부 존치와 성소수자 인권 문제처럼 실제 논쟁이 되는 문제들에 관해서는 모호한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여성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연결될 수밖에 없으며, 자칫 잘못하면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집단과 비우호적인 집단 모두의 표를 잃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되었을 테다.

분명한 사실은, 이번 대선에서의 페미니즘이란 더불어민주당과 페미니즘 운동의 지난 5년에 대한 평가를 동반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청년 남성들의 안티페미니즘을 어떻게 보고 대응할 것인지도 이러한 평가와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20대 대선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려 한다. 먼저 20대 대선에서 여성 문제가 왜 이대남('20대 남자'의 줄임말) 득표 전략에 종속되었는지 돌아보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의 선거 전략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다음으로 현재 청년 남성들에게서 광범위하게 확인되는 안티페미니즘의 내용과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논한다. 마지막으로는 페미니즘 운동이 왜 이토록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짚어본다. 


2. 민주당 비판 세력으로 부상한 이대남

 

1) 이대남은 어떻게 대선의 주인공이 되었나


이번 대선의 여성 이슈는 가치 판단이나 정책 이전에 선거공학적인 표 계산에 가장 크게 종속되어 있다. 1, 2위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전문가가 2030 유권자 표심이 당락을 결정하리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다른 세대에 비해 2030 세대의 투표 성향은 기존 정치구도로 포섭되지 않는 경향을 보여, 대선 직전까지 변동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주목받는 것은 단연 이대남의 표심이다.

선거운동이 ‘이대남 표심 잡기’ 경쟁이 된 배경에는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 2030 여성 유권자에게 비호감 이미지가 강해 지지율 확대를 꾀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남이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기 정부 지지율 하락세가 가장 뚜렷했던 집단이라는 점이다. 2021년 4·7 보궐선거는 이대남의 ‘민주당으로부터의 이탈’을 눈으로 확인하는 계기였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지지율은 72.5%에 달한 반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 지지율은 22.2%에 불과했다. 22.2%는 모든 세대와 성별을 통틀어 가장 낮은 민주당 지지율이었다. 

이대남 정부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중론은 이들이 조국 사태, 부동산 정책 실패,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86세대 민주당 정치인들이 보인 위선과 내로남불에 분노하고 ‘공정’이라는 가치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국민의힘은 보궐선거 때와 같은 압도적 득표를 반복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은 이탈하는 표를 붙잡아 오기 위해 이대남에 대한 호소가 중요해졌다. 양당이 앞다투어 청년 정책을 쏟아내고, 입을 모아 ‘병사 월급 200만 원’을 약속하는 현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청년 세대 내에서 성평등에 관한 현실 인식 차이가 확연하다는 사실이다. 2021년 3월 여성가족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는 항목에 청년 여성은 74.6%가 동의를 표했지만, 청년 남성의 동의는 18.6%에 불과했다. 반면 청년 남성의 절반 이상인 51.7%는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응답했으며, 청년 여성 중에 이에 동의하는 비율은 7.7%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 2021) 이렇게 상반되는 현실 인식 속에서, 여성 정책에 집중하는 일은 곧 이대남의 지지를 잃어버리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20대 대선에서 여성 정책은 여성의 현실에서 출발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지 못하고, 여야의 손익 계산에 전적으로 내맡겨져 버렸다. (사회진보연대, 「여성가족부를 둘러싼 여야의 분주한 손익계산서」 2022.01.22.)
 

2) 국민의힘의 이대남 소구 전략이 갖는 위험성


현재 이대남 소구 전략의 가장 적극적인 행위자는 국민의힘이다. 이러한 선거 전략이 본격화한 것은 1월 초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당대표의 ‘전격 화해’ 시점이다. 12월 21일 이준석 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하며 불거진 당내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선대위가 이 대표가 주장해 온 세대포위론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세대포위론은 대선 승리를 위해 6070과 2030을 결집하자는 것인데, 사실상 국민의힘이 2030 남성들의 표심을 주되게 공략해야 한다는 의미다. 

작년 말까지 윤석열 후보의 태도는 여성가족부나 페미니즘 운동의 기존 방식은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선을 긋되, 여성과 남성 청년의 이해를 절충하는 것에 가까웠다. “세대 간, 젠더 간 갈등이 다 있을 수 있는데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고 봉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작년 8월의 발언은 이를 반영한다.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는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홍보 등으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줬다”며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선대위 출범 후에는 성범죄 처벌과 무고죄 처벌을 둘 다 강화하겠다거나, 싱글맘과 마찬가지로 싱글파파도 지원하겠다거나 하는 ‘기계적 평등’ 방식의 청년정책을 내세웠다. 11월 19일에 이수정 교수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고 12월 20일에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신지예 대표를 새시대준비위원회에 영입한 것은 여성과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인사로 평가되었다.

1월 초 상황은 급변했다. 1월 3일 신지예 새시대준비위 수석부위원장은 국민의힘 당내 반발을 암시하며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1월 5일 기존 선대위를 해체하고 새로운 선대본부를 출범시킨 윤석열 후보는 며칠 동안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 원’ 등의 짧은 메시지를 올리며 이목을 끌었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 하태경 의원을 선대본부 게임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게임 관련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2월 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 입장에 관한 질문에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라고 답했다. 

국민의힘 선대위의 전략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민주당 비판세력으로 부상한 이대남의 관심사와 요구에 확실히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전의 절충적인 전략이 청년세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호소력이 없을 뿐 아니라, 이대남의 이탈을 부른다는 상황판단에 근거했을 것이다.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일부 청년 남성 유권자들은 안티페미니즘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마치 게임하듯 대선판을 흔들었다. 이들의 요구는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홍준표 후보에게로 모였다가, 지금은 이준석 대표를 매개로 윤석열 선대본부에 반영되고 있다. 1월을 기점으로 2030 세대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등하자 이대남 소구 전략은 정당성을 획득했다. 

이대남의 표심을 잡으려 안티페미니즘 분위기에 편승하는 국민의힘 선대본부의 행보는 위험하다. 우선 이러한 행위는 임금과 고용, 성폭력 등 한국 사회 여성의 현실을 가리키는 수많은 지표에 눈감고 해결을 방기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이 코로나19 2년 동안 돌봄 부담으로 여성들의 고통이 증폭된 시점에 치러진다는 사실은 특히 역설적이다. 오늘날 여성의 현실을 정말 개인적인 수준의 차별이나 폭력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윤석열 후보는 제대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선거 전략이 성평등을 둘러싼 청년 세대의 현실 인식이 확연히 갈리는 상황에서 한쪽 편의 손을 들어주는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다. 여성 청년의 존재를 지우는 정치는 앞으로 여성의 권리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크다. 당장의 표에 눈이 멀어 청년 세대의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가 될 수 있다. 
 

3) 더불어민주당의 여성 정책이 외면 받는 이유


2030 세대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표 계산은 복잡하다. 앞서 살펴봤듯이 민주당으로서는 20대 남성이 돌아선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 경선 막바지인 11월 10일, 이재명 후보가 “이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주셔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님”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홍카단이 이재명 후보님께 드리는 편지’)을 페이스북에 공유한 것은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처한 딜레마는 이대남에 대한 적극적 구애가 기존 민주당 지지층의 표를 깎아 먹을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잃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민주당은 한편으로는 이대남 눈치를, 한편으로는 기존 지지층 눈치를 살펴야 했다.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던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이대남 소구 전략을 본격화했던 1월 초부터 맞대응 전략을 택했다. 국민의힘의 전략을 ‘퇴행적 정치’라 비판하며, 여성 정책을 연달아 발표한 것이다. 자궁경부암백신 무료 접종, 데이트폭력 처벌 강화, 디지털성범죄 전담수사대 설치,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국민의힘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점하며,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으로 분류되던 20대 여성을 공략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대남을 위한 정책은 군 복무에 대한 보상 강화와 청년세대 전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중심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략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20대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30%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이다. 민주당의 여성 정책이 20대 여성을 포함하여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집단의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민주당 자신의 과오다. 이번 대선에서 여성가족부의 존폐 여부가 거론되도록 한 주요 요인은 다름 아닌 민주당식 여성 정치의 몰락이다. 문재인 정권 시기에 페미니즘은 민주당 ‘내로남불’의 대표 사례로 전락하고 말았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등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이 연달아 권력형 성범죄의 가해자로 지목되었으나, 민주당은 반성과 성찰의 태도를 보이기는커녕 당헌을 개정해 보궐선거 출마를 강행했다. 윤미향 의원에게 제기된 비리 의혹, 남인순 의원의 박원순 피소 사실 유출 등은 민주당과 협력적 관계를 맺어온 여성운동 전반의 정당성도 위태롭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대외적으로는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포지션을 취하지만, 그것마저 사익 추구의 수단일 뿐이라는 평가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걸림돌은 후보 본인이다. 이재명 후보의 과거 행적이 여성 인권 존중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화는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대선 경쟁 시점에 논란이 되었던 일은 여성 대상 살인사건 변호와 그에 대한 사과다. 작년 11월 이재명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과거에 조카의 살인사건을 변호했던 일을 사과했다. 여성 대상 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 일이 세간에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은 2006년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으로 알려진 김 모 씨가 헤어진 연인과 그 모친을 잔혹하게 살해한 일이다. 당시 변호사였던 이 후보는 이 사건을 맡아 피의자의 심신미약에 따른 감형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후보가 사과의 글에서 명백한 교제살인 사건을 데이트폭력이라 명명하여 심각성을 축소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피해자 유족 측은 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 이재명 후보가 ‘데이트폭력처벌법’ 제정을 주장하는 것은, 대장동 의혹의 당사자이면서 ‘초과이익환수법’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기만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마지막 문제는, 이번 대선에서 유례없는 네거티브전을 펼치는 민주당이 상대 후보 배우자에 대한 여성혐오성 공격을 활용 또는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에 관해 남편에게 반말을 한다는 것,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없다는 것, 성형과 관련한 외모 평가 등이 민주당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현역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김건희 씨가 과거 ‘쥴리’라는 이름으로 성매매에 종사했다는 비공식적인 의혹을 방치하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의 네거티브전은 86세대 정치인의 여성에 대한 인식 수준과 여성운동 출신 정치인의 선택적 침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넘어설 것인지가 제시되지 않은 채, 여성을 위한다는 이재명 후보의 말에서 진정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여성 인사 몇몇을 영입하여 그럴듯한 여성정책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3. 20대 남자의 ‘안티페미니즘’은 무엇인가

 

1) 차별과 혐오라는 규정은 적절한가?


2021년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 국면을 거치며 이대남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 정치의 행위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의 입장을 무엇이라 인식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질문은 대선이 끝난 후에도 한국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일각에서는 이대남이 언론이나 정치인이 만든 프레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신지예 씨는 ‘이대남 신드롬은 기획된 것입니다’라는 제목의 기고글(2월 16일 《중앙일보》 게재)에서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개인을 이대남이라고 묶어 부르는 셈”이기 때문에 현재 호출되는 이대남이란 “가상 집단”이며, 이대남 신드롬을 “분열로 이득을 취하려는 일부 집단의 정치적 공작”이라 평가했다. 그로부터 며칠 전인 2월 9일에 20대 남성들의 모임인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은 “우리는 이대남이 아닙니까”라며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역시 청년 남성을 동질적인 집단으로 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또 다른 접근법은 이대남의 요구와 그에 호응하는 정치를 ‘차별과 혐오’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혐오 정치의 방조자들’이라는 제목의 2월 10일 자 《한국일보》 칼럼은 국민의힘 선거 전략을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극우 포퓰리즘”이라 비판했다. 2월 12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을 포함한 여성 단체들의 제안으로 열린 집회인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차별과 혐오, 증오선동의 정치를 부수자’도 유사한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대남에 관한 논의를 ‘정치 공작’ 또는 ‘차별과 혐오’라고 규정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할 수 있다. 최근 수년 동안 진행된 여러 연구조사는 페미니즘에 대한 청년세대의 인식이 다른 세대의 인식과 차이가 있으며, 청년세대 안에서도 성별에 따른 인식 차이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현재 20대 남성의 절반 이상은 ‘페미니즘은 남성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라고 인식한다. 이대남이 가상의 프레임이라고 하는 순간, 이러한 현실을 분석하고 해법을 찾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또한 20대 남성이 성평등에 강한 동의를 표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의 안티페미니즘이 명시적인 성차별, 여성혐오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차별과 혐오 세력이라는 손쉬운 딱지 붙이기는 사회적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 
 

2) 『20대 남자』를 통해 본 이대남의 안티페미니즘


2019년경부터 20대 남자 현상 또는 젠더 갈등을 해명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조사가 진행되었다. 여기에서는 단행본으로 출간된 천관율·정한울의 『20대 남자: ‘남성 마이너리티’ 자의식의 탄생』을 참고하여, 20대 남성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을 몇 가지로 추려보고자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여론조사는 2019년 《시사IN》 기획기사를 위해 진행된 것이다. 정식 학술연구는 아니지만 208개라는 적지 않은 문항을 통해 ‘20대 남자’ 현상의 의미를 성실하게 추적하고 있으며, 해당 조사에서 20대 남성들이 보인 응답 성향은 이후 정부기관 등에서 진행한 조사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나므로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첫 번째 특징은 남성 차별에 대한 인식이다. 20대 남자의 68.7%가 ‘남성 차별 심각하다’고 인식한다. 다른 집단에서는 남성 차별에 관한 질문에 ‘심각하지 않다’는 응답이 절반이 넘는데 20대 남자에게서만 이러한 인식이 강하게 확인되는 것이다. 어떤 영역에서 남성 차별을 느끼는 것일까? 이들은 노동시장에서의 차별 피해를 적극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세대 여론과 달리, ‘취업, 승진 등에 여성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이는 여성의 취업이나 승진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이 남성에 대한 차별 또는 불공정이라는 주장과 연결될 수 있다. 남성에게 불공정한 영역으로는 연애와 결혼 문화, 그리고 법 집행을 꼽았다. ‘연애와 데이트 문화가 여성에게 더 유리하다’는 응답이 77.5%, ‘결혼 문화가 여성에게 더 유리하다’도 66.3%에 달했다. 또한 초중고 교육제도, 대학 입시제도, 재산과 소득 분배 등의 영역에서 ‘법 집행이 남자에게 불공정하다’는 응답이 20대 남자에서 53.6%로 다른 세대 남자보다 두 배 높았다. 

두 번째 특징은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감이다. ‘페미니즘은 남녀의 동등한 지위와 기회 부여를 이루려는 운동이다’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2.3%에 달했다. 반면 ‘페미니즘은 남녀평등보다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한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78.9%가 동의를 표했다. 같은 질문에서 30대 이상 남자의 응답(57.1%)보다 20%포인트 이상 높다. 해당 조사는 페미니즘에 관해 여섯 개 문항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여섯 개 모두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강한 반대’ 입장을 표한 집단이 20대 남성의 25.9%에 달했다. 연구는 잠정적으로 이 25.9%를 ‘반페미니즘 정체성 집단’이라 가정하고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한 이 집단의 응답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분석에 따르면 이 집단의 페미니즘 반대 입장을 ‘덮어놓고 여성혐오’라고 볼 수는 없다.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여성 지원과 보상 정책’에 동의하는 비율이 64%에 달하고 ‘부모 세대에서 여성 차별은 심각했다’는 명제에는 79.2%가 동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일한 집단에서 ‘취업 시 여성 할당 정책’에 반대 응답이 100%였던 것과는 큰 차이다. 

셋째, 세간의 추측과 달리 정치적 보수화, 경쟁에 대한 선호 등이 확인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0대 남성은 시장 개방에 대한 태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태도, 복지국가에 대한 태도 등, 정치 성향을 보여주는 여러 질문에서 정치적 보수화의 징후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또한, 공정이나 경쟁에 대한 가치판단을 확인하는 질문에 대한 응답 성향도 다른 집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20대 남자』는 20대 남성의 ‘남성 마이너리티 자의식’이 우리 시대 새로운 현상이라 분석한다. 그리고 이들이 갖는 폭발적인 분노의 핵은 “젠더와 권력이 만나는” 지점에 있으며, “남자와 여자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권력이 여자 편을 든다”는 인식이라 결론 내리고 있다. 이들에게 정부의 양성평등 정책은 게임의 법칙을 왜곡하는 불공정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3) 기회의 평등이 곧 성평등이라는 인식


페미니즘이 존재한 이래 반발은 언제나 있었다. 이대남의 안티페미니즘 담론은 분명 2010년대 중반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열풍에 대한 ‘백래시(반격)’로서의 성격이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은 종종 사회에 광범위한 여성혐오와 결합하여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관찰되는 안티페미니즘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도태될 흐름이라거나, 구시대적인 여성혐오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적절한 대응이 될 수 없다. 

『20대 남자』의 저자 중 한 사람인 《시사IN》 천관율 기자는 “당혹스러운 것은, 이들의 반응이 ‘정의로운 분노’라는 정의의 감각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외부 공격이 가해질수록 더 세진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결 구도를 만들어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안티페미니즘 담론은 내용과 조직을 갖춰 ‘대응사회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발전해나가고 있어, 더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취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김선해, 「안티 페미니즘 운동의 정당성 획득 전략에 관한 연구」,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2019) 이를 무시 또는 비난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역사적 의미를 분석하며 페미니즘 운동의 정당성을 새롭게 제시해야 한다. 

20대 남성 다수는 페미니즘에 반대하지만 성평등에는 동의를 표한다.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입장은 성평등을 ‘기회의 평등’으로 이해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제도적·문화적으로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대우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내면화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러한 가치가 부정당하는 상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남성만 군 복무를 하는 것이나 취업이나 고위직 선발에 여성할당제를 적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성평등에 대한 20대 남성의 이해 방식은 전통적인 여성혐오라기보다는 19세기적인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머물러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정치·경제·교육 등의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면 여성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보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페미니즘은 사라져야 할 낡은 이념이다. 즉, 오늘날 안티페미니즘의 핵심적인 내용은 “페미니즘이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인식”으로서 ‘포스트페미니즘’이다. (정인경, 「포스트페미니즘 시대 인터넷 여성혐오」, 《페미니즘연구》, 2016) 현실에 성차별이나 성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런 행위를 한 개인을 규제 또는 처벌할 문제로 인식된다.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후보의 발언은 20대 남성의 현실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다른 한편, 이들은 연애를 포함한 사적 영역에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접근법에 반발하고 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기회의 평등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적 영역에서의 여성 문제를 제기하며 20세기 중반에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의 운동을 19세기 말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의 운동과 구분하며 ‘2세대 페미니즘’이라 명명했다. 여성의 성적 권리, 재생산의 권리에 대한 주장은 2세대 페미니즘의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은 남성을 가해자로, 여성을 피해자로 상정하며, 남성에 대한 철저한 분리주의로 귀결되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는 ‘여성 피해자화’의 거울상처럼 ‘남성 피해자화’라는 양상을 띤다.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성차별적 문화의 피해자라는 주장과, 성폭력 문제에 대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응이 객관성을 무시하여 억울한 남성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운동은 그 역사가 길지 않은 만큼 다양한 경향이 구분되지 않고 동시에 진행된 면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안티페미니즘 담론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된다. 무엇보다 오늘날 안티페미니즘 담론과 실천은 ‘개인의 능력, 선택, 성취의 옹호’, ‘피해의 호소’, ‘폭력적·차별적 언행의 고발과 처벌’ 등 페미니즘 운동의 전략을 모방하고 있다. 페미니즘 운동이 무엇을, 왜, 어떻게 바꾸고자 하는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4. 페미니즘 운동이 답해야 하는 질문들

 

1)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유


2022년 대선에서 여성의 현실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가 실종된 것을 이대남과 일부 정치인, 언론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안티페미니즘 담론은 한편으로 지난 5년 동안 페미니즘 운동 전략의 실패에 대한 반작용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악의적 선동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 운동의 한계를 성찰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진보연대, 「‘이대남’ 논란: 어떤 페미니즘이 필요한가?」, 《사회운동포커스》, 2021.05.11.) 

현 시점에 페미니즘 운동이 어려움에 부닥친 이유를 두 가지로 짚어볼 수 있다. 첫째, 민주당과 연계해 온 여성운동 전략의 파산 선고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성주류화 전략’을 채택한 한국 여성운동은 주로 민주당을 통해 정치권에 진출하고 여성 정책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문재인 정권 시기를 거치며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여성운동 출신 정치인들이 진영 논리에 잠식되어 집권 여당의 잘못을 덮기에 급급하거나, 여성운동 이력을 사익 추구에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2000년도 김대중 정권하에서 여성부가 출범하고 20여 년이 흘렀다. ‘폐지냐 아니냐’로 논의가 촉발되기는 했지만, 여성가족부로 상징되는 전략의 목표, 내용, 운영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 논의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둘째, 2010년대 중반에 시작된 ‘페미니즘 열풍’의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의 귀결이다. 페미니즘 열풍에 동참한 청년세대 여성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성차별과 성폭력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성폭력이 남성의 폭력성에서 기인한다고 전제하고, 처벌의 공포를 통해 남성들의 행동을 규제하려 시도한다. 이러한 전략은 피해자로서의 여성의 위치를 강조하고, 실천적으로 남성과의 분리주의와 연결되며 청년 세대의 젠더 갈등을 가속했다. 한편 분리주의적인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승인하기보다 ‘여성 우선주의’를 강하게 주장했는데,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난민 수용 반대,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 반대를 주장하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지난 5년 동안 페미니즘 운동은 그 보편성과 정당성에 크게 손상을 입었다. 기존 정치세력과 운동세력이 대안적인 흐름을 만들지 못하는 틈을 타고 안티페미니즘이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2) 페미니즘 운동의 과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당”이라 말하며 주요 대선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페미니즘과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 현재 정의당이 취하는 ‘페미니즘 방어’ 전략은 의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계적이기도 하다. 페미니즘 운동이 처한 위기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기회와 자원의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거나, 문제적 행위자를 고발하는 실천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내용은 ‘페미니즘의 역사적 시효가 만료했다’고 주장하는 안티페미니스트로서 이대남이 공유하는 현실 인식이기도 하다. 청년세대에게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이란 성별로 나뉘어 자기 몫의 파이를 챙기려 싸우는 ‘제로섬 게임’처럼 여겨진다. 

안티페미니즘 담론에 대항하기 위해, 페미니즘 운동은 기회의 평등으로 해결되지 않는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설득해야 한다. 19세기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기대와 달리, 성적 차이가 고려되지 않는 ‘동등 기회’는 2등 시민으로서 여성의 지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세계 각국에서 법제도적 평등이 달성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좁혀지지 않고 남아 있는 성별 격차는 이를 증명한다. 여성 문제의 해결이 요원한 이유는 ‘중성적 개인의 권리’만으로 성과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이 겪는 문제들을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는 여성의 성적 권리는 성폭력의 문제로만, 여성의 재생산 권리는 저출산 해소를 위한 제도적 지원의 문제로만 다룬다. 페미니즘은 여전히 평등과 차이라는 오랜 딜레마 속을 배회하고 있다. 성적 차이에 의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새로운 사회의 원리가 필요하다. 

한편, 공적 영역에서 기회의 평등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 가족 제도를 통한 사회의 재생산이라는 조건은 건드리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이성과 개인성이라는 공적 영역의 평가 기준, 돌봄과 이타성이라는 사적 영역의 평가 기준을 둘 다 달성해야 하는 모순적 지위에 처했다. 저성장과 경제위기라는 조건 속에 이러한 이중 요구를 만족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결국, 점점 더 많은 청년 여성들이 비혼과 비출산을 택하는 등, 가족제도가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로부터 개인적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연애·결혼을 포함하여 성적인 관계에서 여성과 남성 청년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는 것 역시 이러한 조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도덕적 호소를 넘어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라는 현 정세와, 세계체계 속에서 한국 사회가 놓인 특수성 속에서 여성의 현실을 분석하고 운동적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대선을 거치며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운동은 우회할 수 없는 질문들을 마주하고 있다. 오늘날의 구조적 성차별을 무엇이라 설명하고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할 것인가? 할당제로 대표되는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는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유의미한 접근법이 될 수 있는가?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성폭력을 감축하고 여성과 남성의 관계맺음을 변화시키고 있나? 페미니즘 운동이 ‘내 파이 되찾기’를 넘어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공격이 거셀수록 페미니즘 자체를 방어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냐는 두려움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전략의 쇠퇴가 분명해지는 지금이야말로 페미니즘 운동의 필요성을 새롭게 설득하고 전략을 재구성할 시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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