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2 여름.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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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과 전망

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지해야 한다

김진영 | 정책교육국장
이번 6월 3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0일째가 되었다. 침공 직후부터, 이 전쟁의 성격과 전망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논쟁이 이루어졌다. 사회진보연대는 이 전쟁은 러시아가 국제법과 민스크협정을 위반하고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보전을 침해한 명백한 침공으로 어떠한 사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으며, 진보적 사회운동은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든 개전 근거는 전부 궤변에 가깝다는 것 또한 분석하였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한 이래로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주권국가였으므로, 고대사나 민족적 유사성을 근거로 하여 우크라이나-러시아의 특수 관계와 개입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리는 수용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내 네오나치의 영향력은, 실제로 푸틴이 주장하는 만큼 심각하거나 인근 국가들과 비교해 대단히 두드러지는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하 나토)의 확대는 그 자체로 비판할 수 있지만, 이것이 이번 침공의 직접적 ‘원인’이나 ‘본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전쟁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이번 전쟁과 같이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현상 상태를 바꾸려는 시도가 성공한다면,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의 붕괴를 가속할 것이며 세계 각지의 팽창주의 세력에 비슷한 군사적 모험을 부추기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보았다.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현황·쟁점에 관한 Q&A』, 2022.03.3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사회운동의 엇갈리는 시각」, 2022.04.04.

그런데 전쟁이 100일 넘게 지속되고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조짐을 보이면서, 전쟁 장기화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 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더해졌다. 실제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 현재 어떠한 상황인가를 구체적으로 보면, 전망이 좀 더 명확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과 평화협상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진보적 사회운동은 앞으로도 자국이 설정한 목표 달성을 위해 전쟁을 장기화하는 러시아의 군사행위 중단과 철군 요구를 가장 우선으로 하여,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착상태와 장기전화

 

 

6월 초 현재 전황을 보면, 전반적인 형세에서 교착상태에 있어 장기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러시아군은 동부 지역 전체 점령과 남부 점령 지역 확대를 노리고, 우크라이나군은 남부와 동부 일부 지역을 탈환하려는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 6월 3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가 현재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점령한 영토는 네덜란드 영토와 비슷한 크기이며,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1/5 가량에 해당하는 광대한 지역이다. 동남부에 집중된 점령 구역은 우크라이나 경제에 중요한 공업기지와 항구 상당수를 아우른다.

 

 

전선의 현황

 

 

현재 핵심 전선은 동부와 남부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항전으로 키이우 점령이 무산되고 군사적 요충지 마리우폴 함락도 빠르게 진행되지 않자, 3월 중순 이후로는 북부 전선 병력을 동부로 돌려 러시아군 점령 지역을 넓히는 전략을 취해왔다. 이를 이 전쟁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공식 명칭인 ‘특별 군사작전’의 ‘2단계 개시’로 선언하고,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 일대를 일컫는 말)의 완전한 해방’을 목표로 내세웠다.
 
우크라이나 북부와 서부에도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과 공습은 이어지고 있으나, 대대적 전투의 대상은 아니다. 수도인 키이우는 상징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거점으로, 침공 당시 북부 국경과 가까워 3일 안에 함락이 가능하다고 예상되었으나, 3월 중순 기점으로 우크라이나군이 키이우 이북 지역들을 탈환하였으며 4월 1일 기준으로 러시아군은 북부 전선에서 전면 철수하였다.
 

러시아군이 ‘완전 점령’을 목표로 하는 동부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포위 폭격에도 불구하고 5월 16일,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를 탈환한 성과가 있었으나, 6월 1일 현재 도네츠크주의 60% 가량, 루한스크주의 95% 가량이 러시아군의 점령하에 있다. 2월 24일 침공 이전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이 차지하고 있던 구역은 각각 도네츠크주의 1/3, 루한스크주의 1/4 미만이었다.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잇는 요충지인 마리우폴은 전쟁 초기부터 집중적인 공격에 맞서 항전하였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최악의 비핵무기’라고도 불리는 비인도적 무기 백린탄 사용에까지 나서자 우크라이나 정부가 부상병들의 생존을 위해 ‘군사작전 종료’를 선언하여 침공 82일만인 5월 17일, 아조우스탈 공장에 남은 마지막 부대가 항복하였다. 
 
마리우폴 함락 이후 현재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대상은 루한스크주의 임시 주도 세베로도네츠크와 리시찬스크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곳들이 함락되면 우크라이나는 루한스크주에 대한 통제권을 모두 상실하게 된다. 6월 4일,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부대들이 세베로도네츠크 전투에서 치명적 손실을 보고 리시찬스크 방향으로 퇴각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6월 5일,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을 매일 분석하여 게시하는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48시간 동안 러시아군을 외곽으로 밀어내는, 제한적이고 국지적이지만 성공적인 반격을 하였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6월 7일에는 러시아군이 세베로도네츠크 주거지역 대부분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치열한 공방 속에서, 러시아군 사상자도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영국 《더 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5월 시베르스키도네츠 강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군사적으로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 상식인 도하 작전을 무리하게 여러 차례 감행하다 73대의 탱크와 장갑차, 1000~1500명의 병력을 잃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군이 방어에 집중하던 전쟁 초기를 지나 탈환 작전에 나서면서, 러시아군의 점령 지역 유지 가능성이 확고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러시아에서는 군사 문제를 다루는 블로거들의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알려졌는데, 전쟁연구소의 6월 1일 보고에 따르면, 유명 블로거들은 러시아군이 세베로도네츠크에 집중하면서 이미 점령한 다른 동부·남부 지역들에 우크라이나군이 반격할 가능성을 점점 더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팔로워 10만 명 이상의 친푸틴 텔레그램 채널 ‘드미트리예프’는 현재 러시아군이 점령했거나 교전 중인 헤르손, 하르키우, 자포리자 등의 지역을 방어하기에 충분한 러시아 병력이 없으므로, 우크라이나군이 7~8월에 대대적 반격을 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점령 지역 내부에서의 저항도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중앙정보국(GUR)은 6월 1일 러시아의 루한스크주 지배에 대한 저항을 북돋기 위해 ‘루한스크 빨치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러시아가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에 특별 파견대를 파견한 것이나, 직접적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동부 하르키우주 내 점령 지역인 쿠팡스크로 대대전술단(BTG)을 이동시킨 것 또한, 러시아 당국이 점령 지역 내 저항을 예상하고 대응하는 정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정황은 우크라이나 동부가 ‘친러’ 성향이라는 단순한 공식과 달리, 2014년부터 계속된 돈바스 전쟁과 이번 침공의 여파로 반러 여론이 상당해졌다는 여러 분석과 맥을 같이 한다. 
 

러시아의 장기 점령 시도와 우크라이나의 탈환 시도가 부딪히는 남부


우크라이나 남부는 흑해와 맞닿아 있어, 이곳을 완전히 잃으면 우크라이나는 수출입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항구들과 해군력을 잃고 ‘내륙국가’가 될 것이다. 침공 직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최남단 지역 즈미이니 섬(스네이크 섬)을 점령하고 빠르게 흑해 통제권을 차지했다. 이는 현재 세계 식량위기를 불러온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곡물의 98%는 흑해 항구를 통해 수출되는데, 이것이 완전히 발이 묶이게 된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오데사 항구에 2000~2500만 톤의 곡물을 실은 85개의 선박이 러시아군의 흑해 봉쇄로 묶여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4월부터 우크라이나 해군은 반격에 나섰는데, 4월 15일에는 우크라이나 해군이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함인 모스크바함을 격침하는 대사건이 있었다. 모스크바함은 해군 전력 측면에서도, 수도의 이름을 땄다는 상징적 측면에서도 의미가 컸다. 러시아군의 선전 위주로 보도하는 러시아 국영 매체도 모스크바함의 침몰을 보도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는 러시아 내 여론에도 충격을 주었다. 이 지역에 러시아 해군력이 보충될 수는 없는데, 발트해, 태평양, 북극해 등에 배치된 러시아 함대가 흑해에 진입하려면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야만 한다. 그러나 터키는 나토 가입국으로서 러시아 해군에 통로를 열어줄 명분이 없다. 

헤르손은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탈환 작전이 집중된 곳이다. 헤르손 자체가 흑해와 드니프로 강이 만나는 중요한 항구 도시인 데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도 흑해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이며, 몰도바 접경지역인 오데사로 나가는 길목이라 중요하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남부 점령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편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3월 12일, 크림반도 병합 때와 유사하게 먼저 헤르손을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된 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하게 하였으나, 곳곳에서 반러 시위가 진행되는 가운데에서 44표 차이로 부결되었다. 이때 헤르손주 의회는 헤르손이 여전히 우크라이나 영토임을 확인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런데도 점령지역에 지속해서 ‘러시아화’ 정책을 실시하고 있어 다시 주민투표를 내세워 영토 편입을 시도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헤르손과 멜리토폴 중심부에 구소련 국기와 러시아군 승전 깃발을 게양했다. 러시아 군정청은 5월부터 헤르손과 남부 자포리자 주 멜리토폴에서 우크라이나 화폐 흐리브냐 대신 러시아 화폐 루블을 사용하는 전환을 실시했고, 공용문서나 학교 교육도 러시아식으로 바꾸었다. 5월 25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주민의 러시아 국적 취득 절차를 간소화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는 도네츠크·루한스크 인민공화국 주민에 적용되던 기존 대통령령을 보완한 것이다. 

5월 7일 러시아 국영통신사 《스푸트니크 통신》은 헤르손 주 러시아 군정청 고위 관리자를 인용해 병합 의지를 드러냈다. “원래 러시아 땅이었던 지역들은 그들의 원래 문화와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6월 1일, 러시아 독립언론 《모스크바 타임스》는 러시아 의회 외교위원회 의장이자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협상팀 일원인 레오니드 슬루츠키가 “‘해방된 영토’들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논리적’이며, 이르면 7월에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러시아 정부) 대변인은 “우리는 그들이 최선의 결정을 내리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6월 8일 《로이터》에 따르면, 멜리토폴에서도 러시아가 임명한 갈리나 다닐첸코 멜리토폴 군민합동정부 수장이 “러시아 연방은 영원히 이곳에 있을 것”이라며 주민투표 준비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6월 초 현재 멜리토폴시와 그 주변 지역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 지역 중 지역 주민들의 반러 빨치산 저항이 가장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지역이며, 헤르손시에서도 저항이 벌어지고 있다. 6월 5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헤르손에서 러시아가 통제하는 공군 기지가 지역 주민들에 의해 24번이나 폭발 공격을 당한 사례를 소개했다. 
 

전쟁 장기화로 인한 동요가 감지되는 러시아 사회  


푸틴 대통령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을 궁극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러시아 민중이라는 점에서, 러시아 사회의 동향도 중요하다. 침공 직후부터 러시아 전역 150여 개 도시에서 반전 시위가 일어났고, 사회운동·페미니스트·사회주의자·노동조합 등의 전쟁 반대 성명과 행동도 이어졌다. 그러나 즉각 이에 대한 탄압과 언론·여론 통제가 고강도로 진행되었는데, 3월 4일, 러시아군 운용에 관한 ‘허위 정보’를 공개적으로 유포할 경우 최대 3년의 징역형에 처하고, 허위 정보가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을 경우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부과토록 하는 형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허위 정보’에는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컫는 공식 용어 ‘특별군사작전’이 아닌 ‘전쟁’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는 수백 명의 기자가 러시아를 탈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202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편집장인 《노바야 가제타》 등은 발간 중단을 당했다. 현재까지 체포된 반전 시위자는 1만 8천 명이 넘는다. 3월부터 러시아 정부는 자국 내에서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주요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는 것도 차단하였다. 
이러한 언론, 반전운동에 대한 탄압과 국영언론의 선전이 효과를 발하여, 반전 시위가 표면적으로는 확대되지 않았고, 4~5월 기준 푸틴 정권 지지율이 80%를 넘고 있다. 그렇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많은 손실이 나면서, 실제 전선의 상황이 러시아 내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동요가 감지된다. 

전력 손실로 인한 추가 징병이 특히 쟁점일 것으로 보인다. 6월 초 기준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 추산 러시아군 전사자는 3만 명이 넘는데, 부상자를 합치면 초기 전력의 1/3을 잃은 것으로 추산되는 상황이다. 영국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 국방정보국(DI)도 이번 전쟁에서의 러시아군 전사자가 1979년부터 10년간 진행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공식 전사자 수(1만 4453명)를 넘겼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러시아는 3월 3일 국방부 대변인이 언론 브리핑을 통해 498명이 전사했고 1597명이 다쳤다고 발표한 이후 전사자·부상자 수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3월 20일 러시아의 친정부 언론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가 러시아 국방부를 인용해 개전 뒤 3주 남짓 동안 전사한 자국군이 9861명, 부상자는 1만 6153명이라고 보도하였으나, 사망자 숫자를 삭제한 뒤 해킹으로 부정확한 정보가 실렸다고 해명한 일이 있었다.)
이에 러시아는 병력 자원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5월 28일 푸틴 대통령이 군복무법 개정 법안에 서명하면서, 계약제 군인 지원 연령 상한은 50세로 확대되었다. 러시아 정규군 90만 명 가운데 계약제 군인은 약 40만 명에 달한다. 현행법은 18~40세 러시아인과 18~30세 외국인만 계약제 군인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는데, 연령 제한을 풀어 의료·통신·기술 등 전문 분야 종사자들을 군대에 더 많이 영입하겠다는 것이다. 

모병 확대만이 아니라 추가 징병 가능성이 예상되면서 저항이 일부 표출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18세~27세 모든 청년은 1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하며, 매년 봄·가을에 실시하는 징집을 기피하면 최대 2년 징역 혹은 무거운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4월 초, 봄 정기 징집의 일환으로 13만 4500명의 입대를 명령했는데, 이는 예년에 비해 확대된 규모로, 침공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전쟁이 길어지고 병력 손실이 계속되면, 징집병의 제대를 연기하거나 예비군을 동원할 수도 있다. 

4월 23일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부터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거부’ 인권 단체에 징집 대상 청년, 부인, 여자친구, 가족 등으로부터 징집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1989년 결성되어 1994~2009년 체첸전쟁에서 전쟁을 반대하며 사상자 실태 파악, 불법 징집 폭로, 포로 석방과 유해 송환 지원 등 활동을 펼친, 러시아의 대표적인 군인인권단체 ‘병사 어머니회’의 스베틀라나 골룹 대표는 영국 《가디언》에 “수많은 전화를 받고 있다. 이 상황은 눈물의 바다와 같다”고 말했다. 

5월 들어서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인근 도시들에서 군대 병무사무소 등 징병 관련 시설이 잇따라 공격당했는데, 전장으로 끌려갈 수 있다는 우려에 휩싸인 청년들의 저항으로 해석된다. 《모스크바 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화염병 공격 등의 피해를 본 러시아 입영사무소가 5곳에 달한다. 5월 18일에는 모르도비야 지역 입영사무소에 화염병이 날아들어 징집병 모집이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3월에도 보로네즈, 스베르들롭스크, 이바노보 지역 입영사무소에 화염병 공격이 있었다. 범인으로 붙잡힌 청년들은 러시아의 전쟁에 저항해 징집을 방해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2월 24일 침공 직후 단 십여 일 만에 주로 중산층, 전문직, IT 노동자 중심으로 20만 명이나 되는 러시아 시민이 출국하는 ‘러시’가 일어난 것 역시 전쟁과 푸틴 정권에 대한 반대, 징병 회피를 나타낸다고 해석된다.

반대로 전쟁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도, 국가 동원령을 발동하여 러시아가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이 제기된다. 5월, 미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 전쟁연구소, 모스크바 카네기 센터 등은 푸틴 정권이 언론을 통제하고 반대 목소리를 억누르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내 ‘매파’ 성향 퇴역군인과 군사 블로거 사이에서 푸틴 정권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으며, 이들은 정권에 ‘끝까지 싸울 것’과 국가동원령을 요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전직 군인들의 모임인 ‘전(全) 러시아 장교 회의’는 5월 푸틴 대통령과 다른 고위 관료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키이우를 점령하지 못한 것을 ‘실패’로 규정하고 군의 장비 부족을 비난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협상은 왜 중단되었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평화협상의 실패를 보면, 러시아에 과연 종전 의지가 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6월 초 현재까지, 3월 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5차 협상 이후로 양국 간 실질적인 협상은 없는 상태가 2달 넘게 지속하고 있다. 침공 직후부터 진행된 1~5차 양국 협상을 보면, 러시아는 협상 중에도 군사 공격을 지속했으며 협상의 주요 쟁점에서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먼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를 보면, 2014년부터 영토 분쟁을 겪어온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나토를 이 분쟁에 직접 개입시키는 것으로, 침공 시점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안이었다. 2021년 11월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기 위해선 나토의 기준에 부합해야 하고, 30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하지만 아직 나토 내 합의는 없다”고 말했듯, 단시간에 가입이 추진될 가망은 없었다. 

그런데도 러시아의 침공이 이뤄진 상황에서, 3월부터 젤렌스키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사실상 포기해왔다. 3월 15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 ‘합동원정군’(JEF) 지도자 회의에서 “나토 가입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발언하였으며, 집권당 ‘국민의 종’ 역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는 대신 미국·러시아·터키 등이 참여하는 ‘새 안전보장 조약’에 서명하는 안을 제안하였다.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비무장화·안전보장


우크라이나 협상단은 나토 가입 추진 대신 중립국화와 유럽연합(EU) 가입 추진으로 선회할 의지를 밝혔고,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는 러시아의 요구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군사동맹 가입 대신 중립국이 된다고 했을 때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크라이나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중립국 모델을 택해야 하는가가 쟁점이 되었다. 

3월 29일 우크라이나 협상단은 우크라이나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중립국 지위를 채택할 것이며, 그 경우 우크라이나는 핵무기 개발이나 외국 군사기지 유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 러시아·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독일·중국·이탈리아·이스라엘·터키 등 주요 국가들로부터 안전 보장 약속을 받고, ‘나토 회원국이 공격을 당하면 다른 회원국들이 지원한다’는 나토 조약 5조(집단안보 원칙)와 유사한 내용을 명시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에 반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요구한 ‘스웨덴·오스트리아 모델’ 중립국은 국방력을 전혀 보유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군축을 요구하는 것이다. (2021년 세계 군사력 순위를 기준으로, 스웨덴은 31위, 오스트리아는 59위, 반면 러시아는 2위, 우크라이나는 22위다.) 3월 16일, 러시아 대표단은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와 비무장화에 대한 대화가 진행 중”이라며 “우크라이나 군대 규모와 관련된 모든 범위의 문제들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러시아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은 상황에서, 상당한 수준의 군축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 사실상 ‘항복’ 요구로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양국의 군사력이 매우 크게 차이 나고, 러시아가 세계 최다 핵탄두 보유국인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군축이 러시아에 절박한 안보 이해라고 보기도 어렵다. 

우크라이나 대표단의 입장은 “우리는 러시아와 직접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고려하여 “중립국화 모델은 오직 우크라이나식으로만 돼야 하며, 법적으로 검증된 안전보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국적이며 집단안보 원칙을 명시한 안전보장에 대한 요구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수 있다. 1994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이 소련 해체 후 형성된 자국 영토에 남은 소련 핵무기를 평화적으로 폐기하는 대신, 미국·영국·러시아가 이들 국가의 주권과 국경을 존중하고, 위협이나 무력 사용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가 성사되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돈바스 전쟁에 개입한 것은 부다페스트 각서 위반에 해당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그런데도 ‘법적 개입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타국으로부터 직접적인 안전보장을 받지 못했다. 1997년 5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러시아가 크림반도 세바스토폴(러시아 흑해함대의 모항)을 우크라이나로부터 20년간 임차하는 협정과,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귀속을 인정하는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한 바도 있다. 양국 의회의 비준을 거친 조약은 법적 구속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결국, 러시아가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안보 우려를 인정하고, 우크라이나의 법적 안전보장에 합의해야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이는 물론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를 명분으로 젤렌스키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러 정권을 세우고자 한 당초 계획을 생각하면 푸틴에게 최상의 선택지는 아닐 것이나, (러시아를 포함할 수도 있는) 다국적 안전보장에 따른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우크라이나에 외국 군사기지를 두지 않겠다는 제안은 러시아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보다는 확실히 나은 안이다. 그러나 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푸틴 대통령 본인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을 주된 침공 이유로 꼽았던 것과 배치되며, 협상보다는 전쟁의 장기화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의도로 읽혔다. 
 

우크라이나 영토 문제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영토 문제에 대해서, 젤렌스키 정부는 “크림반도와 돈바스의 분리주의 지역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영토”라는, 2014년 이후 일관된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입장을 취하면서도, 실제 전쟁의 해법에 대해서는 ‘2월 24일 침공 이전의 영토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즉, 이미 2014년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나 ‘독립 공화국’을 선언한 도네츠크·루한스크 공화국을 이 전쟁을 계기로 수복하겠다는 목표를 적극적으로 세우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도 “승리란 가능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느냐는 것”, “물론, 우리의 땅은 중요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통치 구역일 뿐이다”라고 발언했다. 러시아가 요구하는 돈바스 지역 분리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구체적인 요구를 밝히지 않은 채 양측 정상 간 협상에서 별도로 논의될 수 있다고 했다. 5차 평화협상에서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에 대해서는 향후 15년의 협상 기간을 두고 크림반도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하였으며, 돈바스 분리주의 지역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요구를 밝히지 않은 채 양측 정상 간 협상에서 별도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평화협상에서도, 침공 이후 러시아가 새롭게 점령한 지역만을 협상의 대상으로 하자고 한 것이다.
 
 

러시아는 과연 협상 의지가 있는가? 

 
 
3월 말 5차 협상 이후로 지금까지 협상이 사실상 진전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러시아가 4월부터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완전 점령을 목표로 군사작전을 펼치는 전략으로 선회하고 5월 9일 전승절 행사에서 이를 다시 천명하였으므로, 적어도 이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러시아는 평화협상을 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6월 3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가 모든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우크라이나에서 ‘특별 군사작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하였으며,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도 러시아군이 전쟁 진행을 가속화하기 위해 새로운 불특정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협상의 부진에는 4월 초부터 러시아군이 철수한 부차, 이르핀 지역 등지에서 발견된 민간인 학살 증거도 영향을 주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조사를 제외하고라도 위성사진, 외신, 국제 인권단체 등을 통해 발견된 전쟁범죄 증거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가짜 뉴스’, ‘우크라이나의 조작’, ‘오히려 전쟁범죄·제노사이드의 주체는 우크라이나’라는 식으로 대응해왔다. 예를 들면, 주한 러시아대사관도 “부차에서 어떠한 범죄가 있었다는 모든 사진과 영상자료는 도발이며 서방을 위한 연출”, “러시아군이 부차를 통제하는 동안 단 한 명의 주민도 폭력 행위로 고통받지 않았다”는 러시아 국방부 성명을 페이스북에 한국어로 게시하여 지탄을 받았다. 이러한 행태는 당연히 협상을 실질적으로 어렵게 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요구도 더 강경해졌는데,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은 묵인하던 기존 입장에서, EU 가입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5월 12일 드미트리 폴랸스키 UN 주재 러시아 대표부 제1 부대표는 “EU가 앞장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했고, 따라서 EU와 나토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졌다”며 그 근거를 들었다. 

5월 16일 항복한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 병력에 대해서, 우크라이나 측의 전쟁포로 반환 협상 요청에 응하는 대신, 이들을 전범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밝히면서, 인도적 명목의 협상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데니스 푸실린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정부 수장은, 전범 재판이 마리우폴이 속한 도네츠크주 관내에서 열릴 것이라고 밝히며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범죄는 민간인 강간, 고문, 조롱, 살해 등이며 이 범죄 행위들에 대해 최고 수준의 형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전략에 따른 장기전화

 
 
정리하면, 전쟁의 외교적 해결에 있어 3월 한 달간 진행된 양국 협상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나토 가입 포기 의사와 전쟁 이전 이미 사실상 러시아 관할하에 있던 지역에 대해서는 협상 의제로 삼지 않을 의사를 밝히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이러한 내용이 푸틴 대통령 스스로 밝힌 개전 명분을 상당 부분 충족함에도 협상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4월부터는 점령 지역 확대에 집중하면서 더더욱 협상의 여지가 사라졌다. 전쟁 100일을 넘긴 6월 현재에도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나아가, 러시아군의 전략 선회 후 돈바스 지역, 남부 헤르손·자포리자 등에서의 장기 점령 시도를 보면, 우크라이나의 분단과 내륙국가화, 러시아 영토로의 병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분단’ 가능성은 궁극적으로 사태가 ‘초장기화’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민중의 입장에서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 미래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여파는 우크라이나 민중에 그치지 않았는데, 러시아는 과거부터 그래왔듯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EU의 대러제재에 대한 ‘무기’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의 대표적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 곡물의 수출을 흑해 봉쇄로 막으면서 식량마저 무기화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그 결과로 주로 ‘제3세계’에서 심각한 식량 위기가 발생하여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다. 국제연합(UN)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은 전 세계 2억 7600만 명이 이번 식량 위기의 대상이라고 추정하는데, 데이비드 비즐리 사무총장은 5월 18일 UN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항구 봉쇄는 세계 식량 안보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심장이 있다면 제발 항구를 열어달라”고 푸틴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과연 러시아의 ‘정의의 전쟁’이었나? 

 
 
이러한 현황과 전망을 보고 이 전쟁의 의미에 대한 논쟁을 다시 돌아보자. 만약에 이것이 일각의 주장대로 러시아의 ‘정의의 전쟁’이라거나(물론 이는 UN 헌장과 국제법, 전후 질서에 반하는 주장이다), 러시아에 일말의 정당성, 즉 나토의 위협에 대한 대응 측면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실제 전황은 이러한 주장을 증명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나? 그렇지 않다. 동부·남부 지역 점령지를 최대한 늘릴 때까지 전투를 지속하겠다는 전략, 우크라이나의 ‘분단’ 내지는 내륙국가화와 점령지의 러시아 영토 병합을 꾀하는 정책, 몰도바로의 확전을 고려하는 자세, 세계에 대한 핵무기 사용 위협과 식량 수출 봉쇄, 수많은 전쟁범죄 등에서 정의는 찾을 수 없다. 전쟁은 푸틴 대통령 스스로 최초에 밝힌 전쟁 명분에 비춰 봐도 굉장히 과한 전략으로 진행되어 왔다. 

전쟁으로 삶과 일상이 파괴된 우크라이나 민중도 러시아군을 전혀 ‘해방군’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토의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이 전쟁을 통해 역설적으로 나토가 확대 강화되고 있는 것처럼,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의 존재를 부정한 푸틴 대통령의 연설과 정반대로 우크라이나 민중의 독자적 정체성이 강화하고 있다. 2014년 이전에는 적지 않은 우크라이나 시민이 자신에게 러시아인의 정체성도 존재한다고 여기거나 러시아어를 모어로 써왔으나, 2014년 이후 상황과 특히 이번 전쟁의 여파는 그러한 상황을 바꿔놓았다. 우크라이나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우크라이나어를 자신의 모어로 여긴다는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 4월 27일 우크라이나의 NGO 여론조사기관 ‘레이팅’(Rating)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2월 말 러시아의 침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사회의 이념적 관점에 ‘탈러시아화’라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응답자의 89%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군의 행동을 우크라이나인 집단학살(제노사이드)로 인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2008년~2014년까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83%가 우크라이나인, 15%가 러시아인이라고 답했으나, 2014년 크림반도와 돈바스 일부 점령 이후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응답은 88%로 늘었고 러시아인이라는 응답은 11%로 줄었다. 이러한 추세가 8년 동안 계속되던 중 올해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에는, 92%가 자신을 우크라이나인으로 여기는 데 반해, 5%만이 러시아인으로 여긴다고 답했다. 마찬가지로, 2012년에는 57%가 우크라이나어를 자신의 모어로 여겼으나 2022년 4월 말 그 비율이 76%로 매우 증가했다. 반면 러시아어를 모어로 여기는 비율은 2012년 42%에 2022년 4월 말 15%로 매우 감소했다. (이는 러시아어 사용자가 자신을 ‘이중언어 구사자’로 표현하게 된 영향이 큰데, ‘이중언어 구사자’라고 답변한 비율은 15%에서 33%로 많이 증가했다.) 실제로 점령 지역에서는 러시아군이 기대했던 ‘환영’ 대신 반러 시위와 저항이 잇달았다. 러시아 사회를 보더라도 전쟁이 강화한 것은 권위주의적 국가통제와 러시아 민족주의, 언론과 시민사회에 대한 탄압, 징집에 대한 공포일 뿐이다. 
 
 

전망 

 
 
전쟁 직후부터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진행된 이 전쟁의 결과를 단언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 6월 초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군이 무조건 불리해 보이지는 않으나, 이것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이어질지, 지속적인 교착상태로 갈지, 결국 러시아의 점령 지역 확대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관건은 동부·남부 전선의 상황에 있으나, 전선을 결정짓는 각각의 전투에 관해서도 도시 전체가 황폐화된 상황에서도 80일 넘게 항전하며 러시아 병력을 묶어놓은 마리우폴 전투나, 하루 이틀 사이에도 상황이 바뀌는 세베로도네츠크 전투의 사례가 보여주듯, 현재로서 향방을 예측하기 대단히 어렵다. 러시아의 징집 확대나 국가총동원령 발동 가능성, 갈수록 ‘초토화’ 전술로 가는 러시아군의 점령 전략,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의 규모, 러시아 점령지 내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 등 변수도 많다. 

다만 전쟁이 장기화하더라도 전쟁 직전 예측된 시나리오 중 최악, 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역 점령은 어렵게 되었다. 키이우 점령 혹은 드니프로 강을 기준으로 하는 키이우 동서분단 역시 가능성이 작다. 이러한 시나리오들은 러시아군이 막대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진격하고, 서방이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예상과 달리 러시아군의 전쟁 수행 능력이 그렇게 좋지 않았으며 우크라이나군이 결사항전하면서 서방이 지원을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서방 국가들은 대러 경제제재·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통해 이 전쟁에 발을 많이 들였다. 예를 들어, 4월 28일 미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에 굴복하면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며 330억 달러(약 42조 원)의 우크라이나 지원(군사·경제·인도주의) 예산안을 의회에 추가 요청했다. 미 상하원도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수월하게 하는 ‘무기대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영국, 캐나다, 독일, 폴란드 등에서도 무기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사태를 장기화하는 것이 미국과 유럽연합의 목표인가?


이러한 동향에 대해서 서방의 무기 지원이 협상을 통한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하고 있으며, 사태를 장기화하는 요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상기한 러시아의 행보를 보면, 러시아의 전쟁 전략 자체가 장기전을 꾀하는 것이며, 협상에 응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전쟁을 러시아가 끝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우크라이나나 서방이 전쟁을 지속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근본적 국력 차이를 고려하면,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 점령지 전체를 수복한다고 하더라도 전선을 러시아 영토까지 확대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젤렌스키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줄곧 2월 24일 침공 이전 상황으로의 복귀와 러시아의 철군을 요구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5,900여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장국이라는 점 때문에라도,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도 러시아 영토까지 전선이 확대되는 상황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소모전화를 통해 러시아의 국력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것이 서방의 목표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서방’의 목표나 이해관계 자체가 단일하지 않은데, 대러제재의 수위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전쟁의 출구전략에 대한 입장차가 미국과 유럽연합 간에도, 유럽연합 내에도, 각국 사회에도 지금까지 상당한 쟁점으로 존재하는 상황이다.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의 국력이 약화하여 침공이 확대·재발하지 않기를 바랄 수 있으나, 각국이 실제로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전쟁을 확대하기에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높지 않은 정권 지지율과 인플레이션 압박, ‘분유 대란’ 등 국내 민생 문제 등에 시달리는 미국 바이든 정부나, 대러제재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을 직접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유럽 각국 정부들의 셈법은 복잡하다. 이 때문에 5월 27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국가들이 “협상을 통해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끝내자”는 주화파(主和派)와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도록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전파(主戰派)로 나뉘고 있으며, 서방의 리더인 미국의 입장은 모호하다고 분석했다. 미국 내에도 논쟁이 있는데, 5월 세계경제포럼 연차회의(다보스포럼)에서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매니지먼트 회장은 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전쟁을 조기에 끝내고 가능한 한 빨리 푸틴을 끌어내려야만” 인류문명이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 데 반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의 수치스러운 패배를 추구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5월 31일 《뉴욕 타임스》 기고문은 미국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하라는 국내외의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글에서 러시아 영토로의 확전이나 러시아와의 직접적 전쟁은 피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3월 26일 바이든 대통령의 “푸틴은 권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발언, 4월 25일 오스틴 국방장관의 “러시아가 침공 장기화로 타격을 입어, 이 같은 침공을 반복하지 못하게 되기를 바란다” 발언이 논란이 된 바 있는데, 이러한 어조와도 구분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고문에 나토와 러시아 간 전쟁을 추구하지 않으며, 푸틴의 축출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도 명시했다. “미국이나 동맹국들이 공격받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보내거나 러시아군을 공격함으로써 이 분쟁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우크라이나가 국경을 넘어서 공격하는 것을 부추기지도 않고, 그런 능력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이 전쟁을 장기화해서 러시아에 고통 주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푸틴은 과연 멈출 것인가


한편,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에 구소련 영토, 나아가 과거 러시아 제국의 ‘실지’(失地) 회복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면,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와 국경을 맞댄 몰도바는 가장 유력한 ‘우크라이나 다음 목표’로 꼽힌다. 우크라이나와 유사하게, 몰도바도 유럽연합·나토 가입을 추진하는 정권과 러시아군이 주둔한 친러 분리주의 지역이 공존하는데, 이미 러시아군이 몰도바로의 전선 확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정황들이 있다. 4월 중순, 몰도바 내 친러 분리주의 반군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55세 이하 성인 남성 전원을 대상으로 병력 모집을 개시한 동향이 포착되었으며, 루스탐 미네카예프 러시아 중부군 부사령관이 “우크라이나 남부를 통제하는 것은 러시아어 사용자들이 억압받고 있는 트란스니스트리아로 가는 또 다른 길”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만약 우크라이나 남부 전체가 점령되고 몰도바로 확전된다면, 역사적·정치적으로 무수한 쟁점이 있는 인근 국가들로 전쟁의 여파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러시아 주변국에서 침공 발발 이후 EU 가입 신청(몰도바, 조지아), 나토 가입 신청(핀란드, 스웨덴), 강력한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 표명(폴란드, 발트 3국) 등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가능성


전장 확대 외에도, 핵무기·생화학무기 등 대량 살상 수단의 사용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러시아는 이미 이 전쟁에서 백린탄, 집속탄, 진공폭탄 등, 불특정 다수의 인체에 말할 수 없이 참혹한 피해를 주는 ‘비인도적’ 무기, 국제협약으로 금지된 다양한 무기를 많이 사용해왔다. 특히 인류의 생존과 전후 질서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되는 핵전쟁의 가능성은, 주로 러시아군의 핵무기 실전 사용 가능성에 따른 것이다. 

러시아는 전쟁 초기부터 6월 초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핵 사용 위협을 가해왔다. 6월 3일에도,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핵전쟁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틀리다”며 재래식 무기를 통해서라도 국가 존립을 위협할 정도의 공격을 받는다면 러시아는 핵무기로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1945년 나가사키 이후 실전에서 사용된 적 없는 핵무기 사용이 현실화하면 이어질 후폭풍은 러시아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것으로, 이러한 핵 위협은 아직까지 서방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군사력의 선언적 사용과 실제적 사용은 명확히 분리된 것이 아니다. 선언적 사용이 효과가 없으면, 좀 더 강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 실제적 사용 위협을 강화하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실제로 러시아는 2월 28일, 핵무기 운용부대에 준비 태세를 강화하고, 5월 4일 칼리닌그라드에서 핵탄두 공격 모의 훈련을, 6월 1일 모스크바 인근에서 핵전력 기동훈련을 진행하면서 위협해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의도적·비의도적인 요인들로 인한 실제 사용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핵전쟁 시나리오의 상식이다.

한편,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기준이 굉장히 느슨하고 공세적이어서, 전시인 현재에는 언제든 이를 충족한다고 볼 수 있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탈냉전기 러시아의 핵전략은 1993년 ‘선제불사용(NFU, No First Use)’ 원칙을 철회한 이후 핵무기 사용의 문턱을 지속적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1999년 군사독트린에서 전술핵무기 사용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였고, 2014년 군사독트린에서 상대방의 핵 공격뿐만 아니라 자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재래식 공격에 대해서도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2020년, 푸틴 대통령이 공개한 ‘핵 억지력 분야 국가정책 원칙’은 이를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여기에 적시된 핵무기 사용기준은 ① 적의 핵무기 또는 탄도미사일 발사에 관한 확실한 정보가 입수될 경우, ② 주요 국가·군사 시설에 대해 사이버나 전자기 공격 등에 의해 피해가 막대할 경우, ③ 적의 재래식 무기 공격이 러시아의 존립을 위협할 경우, ④ 상대방의 극초음속 미사일과 공격용 무인기 등이 근접 배치되는 상황이다. 

5월 10일, 알렉산드르 그루시코 러시아 외교차관은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선제적 핵 공격을 배제할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군사교리를 갖고 있다. 여기에 모든 것이 명백하게 적혀있다”고 답했는데, 위의 ‘원칙’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이성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의 핵 위협 의도와 한반도 안보에 대한 시사점」, 국가안보전략연구원, 2022년 3월 28일.) 
 

세계 각국의 군비증강, 군사동맹 강화


주지하듯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 각국이 군비증강, 군사동맹 강화에 나서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오랜 중립국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나토 가입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아(양국 모두 사회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다), 양국 모두 5월 나토에 가입 신청을 한 일은 상징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영향으로 군비증강을 공식적으로는 억제해 온 나라에서도 ‘재무장’에 탄력을 받았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사흘 후 “이번 전쟁은 독일과 전 세계에 분기점이 됐다”며 “강력하고 최첨단의 혁신 군대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6월 3일, 독일 연방하원은 1000억 유로(약 134조 원) 규모의 특별방위기금 조성안을 승인했다. 독일군 현대화에 쓰일 이 기금 확보로, 독일은 2014년 나토에 약속한 대로 2024년까지 매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2%를 국방비로 지출하는 목표를 달성하게 되었다. 동시에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 방위비 지출국이 되었다. 독일 의회는 이를 위해 헌법까지 개정했다. 기금 마련을 위한 추가 채권 발행을 위해, 부채 조달 규모를 GDP의 최대 0.35%로 제한한 헌법을 바꾼 것이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일본에서는 ‘평화헌법’(헌법 9조) 개헌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올 3~4월 《교도통신》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헌법 9조에 명시된 전쟁 포기, 전력 비보유를 유지하되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자민당 개헌안에 대해 67%가 찬성했고 30%가 반대하였다. 작년에 비슷한 질문에 찬성 응답이 56%였던 것에서 크게 상승하였다. 집권 자민당은 이에 힘입어 7월 선거 공약에 5년 후까지 방위비를 현재 규모의 2배(GDP의 1%에서 2%로) 증액할 것과, 자위대의 ‘반격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이라는 이전 표현을 바꾼 것) 보유를 명시하겠다고 나섰다.

만일 이 전쟁이 러시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선례로 남으면, 각국이 자국 보호를 위해서든, 러시아와 같은 적극적 군사행동에 나서기 위해서든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사회운동은 러시아의 침공 중단을 요구하고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지해야 한다

 
 
사회진보연대는 ‘반제국주의’라는 대의, 또는 공격적 현실주의의 논리를 빌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일부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사실상 지지하는, 일각의 흐름에 반대했다. 2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전후 국제질서에 ‘강대국이 약소국에 무제한적으로 원하는 바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포함된다면, 이러한 원칙은 진보적 사회운동 또한 지지해야 하는 것이며 미국이든, 러시아든, 어떠한 국가든, 이를 위반할 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을 부정한다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를 넘어,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와 미중 간 ‘전략적 대결’이 가속화하는 세계를 ‘제국주의 대 제국주의’가 맞붙는 역사적 퇴행으로 향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기를 주저한다면, 그것은 과학적 인식이라고 할 수 없는 진영 논리(campism)의 반영이라고 보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사회운동의 엇갈리는 시각」, 《사회운동포커스》, 2022년 4월 4일을 참고하라.)

그런데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이 전쟁이 시작은 강대국 러시아의 약소국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더라도, 서방의 지원이 시작된 이후로는 서방(혹은 미국)과 러시아가 부딪히는 ‘대리전’ 혹은 ‘제국주의 간 충돌’이 되었다는 주장도 세계 사회운동 안에서 대두되었다. 따라서,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적 저항이라는 의미를 이미 상당히 잃었으므로, ‘이 이상의 인명 피해를 막고, 확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서방이 개입을 중단하고 즉각 휴전을 요구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는 전쟁 초기에 러시아의 즉각 침공 중단, 철군을 통한 휴전을 최우선순위로 요구했던 것과는 달라진 기조다. 

이 전쟁을 언제 어떻게 끝내야 할지는,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의 생명이 걸린, 신중을 기해야 하는 문제다. 나아가 향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회, 세계 전반의 전망에 끼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 활동가인 타라스 빌로우스는 「자결권과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글에서, 우크라이나 민중은 2014년부터의 경험으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이미 잘 알고 있으며, 이 전쟁에서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 어떠한 타협을 이룰 것인지 결정할 권리는 우크라이나 민중에 있다고 강조한다. (사회진보연대가 번역한 전문을 「자결권과 우크라이나 전쟁」, 《사회운동포커스》, 2022.05.20.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대리전’ 주장을 강하게 비판하는데, 미러 간 분쟁이란 측면이 있다고 해서 이 전쟁을 ‘대리전’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며,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단순한 꼭두각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저항이라는, 자신의 분명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보았을 때,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젤렌스키 정부와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는 ‘준파시즘’으로 치닫는 푸틴으로부터 지켜낼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해야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주변 구소련 국가들에 진보적 변화의 가능성이 살아남을 수 있다. 나아가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이는 곧 무력으로 국경을 변경하는 시도의 성공이므로, 전 세계를 제3차 세계대전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고 호소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반식민지운동도 추축국이 아닌 연합군을 지지했듯,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지지하는 것이 미국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분명히 한다.
 
빌로우스의 글처럼 6월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민중이 러시아의 군사공격과 점령 통치에 저항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군사작전과 점령이 멈추지 않는 한 ‘서방의 대대적 지원’이 없다고 해서 전쟁이 장기화되지 않을 것 또한 단언할 수 없다. 한 가지 시나리오는 게릴라전의 지속이다. 2달 넘게 공세를 버틴 마리우폴의 예가 보여주듯 끝까지 항전하는 세력들이 곳곳에서 출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가능성은 개전 전부터 시나리오로 있었다. (1940년대 시작한 우크라이나 내 반소련 게릴라전이 10년 넘게 지속된 역사도 있다. 앞서 언급한 레이팅의 여론조사는 이 반소련 게릴라전을 ‘민족해방투쟁’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현재 81%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2010년의 4배, 2015년의 2배로 늘어난 수치다.) 동부·남부 점령지역에서 반러 시위와 소규모 무장항쟁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 역시 확대되거나 장기화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다음 공격대상이 자국이 될 것을 우려하여 전선을 우크라이나 안에서 멈추기 위해, 강력한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표명하는 폴란드나 발트 3국과 같은 국가들도 있다. 이들의 이해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연합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국가들과도 다르며, 우크라이나는 이런 국가들의 지원을 통해 전투를 지속할 수도 있다.

결국, 단순히 ‘대규모 전투’의 부재는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평화나, 우크라이나 민중이 민주주의와 존엄할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전쟁을 넘어 어떠한 미래를 지향할 것인가로 인식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 민중이 저항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푸틴 정권의 성격과,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동유럽의 사회·역사에 대한 더욱 풍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이번 호 특집은 이러한 목표를 담아내고자 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동유럽을 포함하여 세계 노동조합 운동의 입장과 실천에 대해서는 류미경의 글을, 푸틴 정권의 성격과 푸틴 집권 시기 러시아의 대외정책에 대해서는 임필수의 글을, 우크라이나 경제가 입은 피해와 재건 전망에 대해서는 임지섭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빌로우스를 비롯하여 폴란드의 얀 스몰렌스키·얀 두츠키위츠, 리투아니아의 ‘데모스 비판사고연구소’와 같은 동유럽 좌파들은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서구의 담론에는 냉전 이후 동유럽 현지의 정치 지형과 러시아의 주변국 압박·개입에 대한 구체적 이해가 빠져있으며, 서방이 주도한 나토의 확장과 이에 대응하는 러시아의 안보 이해라는 구도로만 상황을 바라보면서 동유럽 민중을 주체로 파악하는 대신 피해자화한다고 비판해왔다.   

4월 7일 《레프트이스트》에 발표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공동성명 「러시아 제국주의에 반대한다」 또한, 러시아 주변국에 러시아의 세력권에 든다는 것은 러시아에 대한 정치적 종속과 러시아 자본의 팽창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해 왔으며, 2008년 조지아 침공과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이 러시아의 세력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나토의 확대만을 신경 쓰는 것은 유럽을 미국의 세력권과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나누려는 푸틴의 목표를 비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지역 질서, 나아가 세계 질서에서 강대국의 세력권을 인정하여 ‘전투가 없다는 의미에서의’ 소극적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혹은 그러한 소극적 평화라도 보장할 수 있느냐는 물음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넘어 오늘날 세계에 중요한 제기다. 타라스 빌로우스의 또 다른 글 「우크라이나 전쟁, 국제 안보, 좌파」는 “모든 군사협력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강대국들의 (유럽 혹은 세계적 차원의) 세력권 분할을 실질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각 강대국의 세력권을 인정해주면서 당장의 전투를 피하자는 주장은 우크라이나와 같이 강대국 세력권 안에 있거나 ‘완충지’로 여겨지는 약소국 민중의 자결권을 침해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나아가 그는 현재 세계정세의 핵심은 미중 간 대결이므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를 인정하는 선례를 남기면 대만 침공에 대한 중국의 이해를 인정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대만 민중의 자결권을 침해하며, 전장을 동아시아에 열게 될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 세계 좌파는 어떻게 러시아와 중국의 이해관계를 고려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모든 강대국의 지배와 전쟁으로부터 (상대적) 소국들을 지켜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곳곳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위기를 연결 짓는 분석이나, 1938년의 뮌헨협정(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간 협정으로, 나치 독일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독일에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일부를 할양하였다)이 결국 1년 뒤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운동의 과제

 
 
사회운동은 러시아의 개입과 침공에 맞선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지하고, 이 전쟁이 세계에 미칠 부정적 여파를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러시아의 무조건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국제적 목소리에 동참해야 한다. 예를 들어, 6월 8일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노동자그룹 전체회의는 우크라이나에 관한 긴급 결의문을 채택하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억압에서 벗어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우크라이나를 만들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경의를 표하며”, “전 세계 각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 군대가 조건 없이 철군하도록, 즉각적인 휴전으로 개시되는 이상적인 공동안보를 촉진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그룹 결의문이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의 경제, 기반시설과 제도의 재건을 위한 지원을 개시할 것”을 촉구한 것처럼,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재건을 위한 지원 확대를 한국 정부와 국제 사회에 요구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민중에 대한 연대 기금 마련, 우크라이나 난민 정착 지원에 나선 해외 사회운동의 사례들이 보여주듯, 긴급 구호 모금 확대, 우크라이나인·고려인 난민 입국 및 정착 지원 등에 있어서는 시민사회도 주체가 될 수 있다.

이 전쟁의 여파를 극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주체는 결국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이들과 깊은 역사적·정치적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국 민중이므로, 이 지역 사회의 진보를 지향하는 사회운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들과 연대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사회운동은 우크라이나의 외채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소련 해체로 인한 혼란과 경제 정책의 실패를 경험해 온 우크라이나는 침공 이전에도 이미 유럽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나라 중 하나였으며, 이로 인해 국제금융기구들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요구나 채권국 러시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3월 9일 국제통화기금(IMF)이 ‘3~5년 내 상환’을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에 신속금융제도(RFI) 14억 달러 지원을 결정한 것처럼 우크라이나의 국가부채를 늘리는 식의 지원은, 이러한 종속을 심화시킬뿐더러 실제 상환이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통해 이미 1조 달러(1,280조 원) 이상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는 지금은 재건을 위한 천문학적 비용을 고려해서라도 부채 탕감이 절실하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각국의 군비증강 움직임을 비판하는 가운데에서도, 세계를 위협하는 ‘절대무기’ 핵의 철폐를 통해 국가 간 전쟁이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감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이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한반도가 향후 핵전쟁의 전장으로 유력하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운동에 특히 절실한 과제다. 북한이 남한과 일본을 타격하는 전술핵무기 개발을 핵전략으로 두고, 7차 핵실험 초읽기에 있는 상태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관련하여 일본 평화운동의 활동을 참고할 수 있다.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협),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원수협), 일본평화위원회와 같은 일본의 대표적 반핵평화운동단체들은(‘원수폭’은 핵무기인 원자폭탄, 수소폭탄을 묶어 가리키는 명칭이다. 피단협은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러시아 정부에 핵무기 사용에 관한 일체의 계획과 행동·위협의 중단, 우크라이나에서의 즉각 전투 중단과 철군, 평화적 수단을 통한 분쟁의 해결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4월 28일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실행위원회 운영위원 항의 성명). 3월 4일 피단협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세계 피폭자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에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도 참여했다. 성명은 “푸틴 대통령의 결단은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행위”라며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통해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 핵무기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호소했다. 핵전쟁의 가능성을 소멸해야 한다는 의미로, 일본 정부에 핵무기금지조약 비준을 요구하는 서명운동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활동, 우크라이나 시민 긴급 지원 ‘해바라기 모금’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서명은 6월 21~23일 제1차 핵무기금지조약 당사국회의까지 기시다 총리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7년 7월 UN총회 통과, 2021년 1월 발효된 핵무기금지조약은 전 세계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를 목표로 핵무기의 개발, 시험, 생산, 비축, 사용, 사용 위협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사상 최초의 국제적 합의다. 2022년 5월까지 61개국에서 비준되었고, 28개국이 서명 후 비준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UN총회 표결 당시부터 지금까지 불참 입장이다.)
 
국제적 핵군축 차원에서는 핵무기 보유국들에 대한 압박이 필요한데, 국제 반핵평화운동은 6월 핵무기금지조약 당사국회의, 8월 1~26일 제10차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에 결집하여 모든 국가가 핵무기의 사용 위협·사용을 묵과하지 않을 것을 서약할 것, 핵군축 의무를 명시한 NPT 6조를 준수할 것,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할 것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2019년 파기된 미러 간 중거리핵무기폐기조약(INF)을 되살리는 것도 중요한데, 파기 당시 이 조약에 포함되지 않은 중국의 핵 고도화도 쟁점이 되었던 만큼 미국·러시아뿐만 아니라, 냉전 이후 핵심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포함한 핵군축 협상을 요구해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 질서의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성립된 UN은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냉전 시기 진영을 넘어서 작동했다. 소련은 UN의 구상과 창설에 중요한 주체로 참여했다. UN의 핵심적 결정을 맡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에도 소련(해체 이후 러시아)과 중화인민공화국(1971년부터 중화민국을 대신하여)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결정에 상임이사국들의 만장일치가 필요한 현 안보리 체계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서도, 만일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행동이 있을 시 중국에 대해서도 규탄 결의와 제재가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를 차치하고서도, 러시아와 중국은 점차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진영논리에 따라 UN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중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시작한 미얀마 사태에 대한 결의안 채택을 거부했다. 전후 세계 갈등 관리의 상징인 UN의 무력화는 당연히 세계의 ‘블록화’, 군사동맹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저 한 국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세계와 전후 질서 전체에 중대한 문제를 던지고 있다. 진보적 사회운동, 평화운동을 자처해온 세력이 여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또한, 이 전쟁을 넘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계에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남한과 세계 사회운동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러시아의 군사행위 즉각 중단과 철군을 요구하며,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지해야만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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