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2 가을. 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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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주의와 팽창주의의 세계적 위협

이유미 | 사무처장

1. 들어가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팽창주의를 현실화했다. 이를 신호탄으로,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워 대만을 침공할 위험도 커지고 있다. 만약 대만 침공이 현실화된다면 동북아시아는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핵무력을 고도화하는 북한도 무시할 수 없는 위험이다. 물론 대만과 우크라이나는 다르고, 중국이 단기에 무력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팽팽한 긴장 속에서 한국이 대만의 무력통일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중국의 섣부른 군사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위기는 2차 대전 이후 식민주의와 팽창주의에 반대하는 질서를 수립한 미국, 소련(러시아), 영국, 중국 간의 균열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다. 이 네 국가는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이들 사이의 직접적 충돌은 피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전후 국제질서를 유지한 기반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개의 축이 흔들리면서, 국제정세가 근본적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있다. 

국제질서가 동요하는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의 쇠퇴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시행한다면 어떤 나라든지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라는 신화에 파산선고가 내려졌다. 세계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졌고, 기존의 경제정책으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뉴노멀’(New Normal)이 되었다. 한편, 신자유주의로 인해 세계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정치가 불안정해졌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중국과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팽창주의가 강화되었고, 다른 나라들에서는 인민주의가 부상했다. 인민주의와 권위주의 국가들의 팽창주의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부정적 결과에 대한 각기 다른 반응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정세는 저성장이 ‘뉴노멀’인 것과 동시에, 인민주의와 팽창주의가 기존의 국제관계와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특징을 보인다. 즉, 인민주의와 팽창주의는 쇠퇴하는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며, 신자유주의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것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몰락하고 있으나,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도,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과 같은 대안적인 길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혼란을 해결할 수 없다. 국내적으로는 트럼프가 상징하는 인민주의가 혼란을 야기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달러환류 메커니즘의 핵심국가이지만 팽창주의적 경향을 강화하는 중국을 다시 미국 중심의 질서로 포섭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은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로 떠오른다기보다는, 세계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현 정세에서는 사회운동이 대안이념과 운동을 건설하지 못하면 ‘투쟁하는 두 계급의 공멸’로 향할 수 있다. 이러한 시기, 사회운동은 민주주의와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유실하지 않으면서, 대안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즉, 권위주의 국가들의 팽창주의 위험이 높아지는 가운데, 사회운동은 현재의 국제질서가 후퇴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어떻게 현존 질서 이상의 대안적 질서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과제로 삼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인민주의가 부상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실에 대해, 사회운동은 현재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지 않는 동시에, 현존 민주주의를 넘어선 대안사회를 건설하는 운동으로 나아갈 방안을 찾아야 한다. 
 
 

2. 인민주의와 팽창주의의 부상

 
 
오늘날 정세의 특징인 인민주의와 팽창주의가 부상하게 된 원인을 살펴보자. 이윤율 저하를 반등하기 위해 금융을 해방하고 계급타협을 해체하면서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심각한 불평등을 낳았고 민족국가의 정치위기를 심화했다. 이에 대한 인민주의적 반응은 불평등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선동하면서 아웃사이더 정치인이 민주주의 제도를 공격하고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다른 한편, 권위주의 국가들은 정권교체가 불가능한 조건에서 팽창주의적 경향을 강화했다. 권위주의 국가들은 경제의 고속성장을 강력한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성장 감속 국면에 진입하자 민족주의와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러한 권위주의 국가의 예다.
 

 1) 인민주의, 금융화와 불평등의 딜레마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불평등의 심화와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불신을 야기했다. 세계경제가 금융 중심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초국적 자본과 금융기관,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은 자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권과 복지에 대한 부담을 낮췄다. 그 결과, 불평등이 심화되었으나, 경제가 세계적으로 통합된 상태에서 각국 정부의 해결능력은 제약되었다. 국민의 의사가 대의기구에 반영되지 못하자, 민주적 제도들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증대하여 정당성의 위기를 초래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인 인민주의는 반세계화 경향을 보인다. “국가의 통제권을 되찾아오자”는 브렉시트의 구호는 이러한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럽연합에 빼앗긴 주권을, 유럽연합에서 탈퇴하여 되찾아오자는 것이다. 또한 인민주의는 대의기관과 사법제도가 국민의 요구보다 초국적 자본과 금융기관에 부응하므로, 인민의 의지를 실현하는 데에 걸림돌이라고 규정한다. 의회나 사법기관을 불신하면서, 국민투표처럼 직접적으로 인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식이 민주적이라고 여긴다.  
  
인민주의가 초래하는 문제는 지배 엘리트에 대한 반감으로 대중을 동원하는 정치스타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민주의적 지도자들이 시민의 권리를 제약하고 법치를 위협한다. 독재자의 출현을 예방하는 제도들이 해체되고 있다. 사법기관과 언론이 공격받고, 시민의 권리를 제약하거나 정치적인 적을 제거하기 위한 법안이 통과되는 등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사례가 단적이다. 미국 국내에서는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요체라 할, 삼권분립과 권력기관의 견제와 균형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대통령과 긴장 관계에 있어야 할 연방수사국(FBI) 등의 정보기관에 충성을 요구했고, 특별검사를 다양한 방법으로 협박했다. 심지어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판사에 대해 “선출되지 않은 판사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위협한다”고 비난하여, 자신의 지지자들이 판사를 압박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 대해서는 ‘가짜뉴스’라는 딱지를 붙이며 비난했고, 트위터로 직접 가짜뉴스를 유포하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공정선거자문위원회를 만들어 가난한 소수민족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압력을 가한 것도 트럼프가 민주주의 규범을 파괴한 대표적 사례다.

국제적으로 보면, 트럼프는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적 수준의 여러 기구를 파행으로 이끌었다. 트럼프의 반세계화 담론이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라는 일방주의 외교로 귀결한 탓이었다. 트럼프는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단숨에 엎어버렸고, 오랜 국제적 협상의 결과물이었던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으며, 자유무역협정을 개악해 관세장벽을 세웠고, 심지어 ‘무역전쟁’이란 프레임까지 만들어냈다.

그런데 트럼프는 사실상 오바마가 시행한 개혁의 한계 속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 확대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사회적 불만을 동원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렇다면 간신히 트럼프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바이든은 다른 결과를 맞이할 수 있을까. 인민주의는 금융세계화가 초래한 불평등을 토대로 성장했기 때문에, 미국이 금융 중심의 경제를 유지하는 한 불평등 완화를 달성할 수 없다. 

오바마는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부실자산구제금융(TARF)과 비전통적 수량완화(QE)로 대표되는 경제정책을 시행했다. 이는 거대 금융기관을 부활시키는 데는 성공적이었지만, 금융자본 규제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경제의 이윤율 하락이 본격화되어 산업자본 주도의 생산·고용 확대가 불가능했고, 따라서 금융 주도 경제를 포기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오바마는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금융기관이 세계적 잉여가치를 미국으로 더 많이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자산 소유자의 이익이 극대화되도록 움직이는 금융 주도 경제에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악화는 불가피하다. 즉,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의 경제 재건은 경제적 불평등의 증가라는 희생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었다.

바이든 정부는 오바마보다 더 나쁜 조건에서 출범했다. 세계 금융위기의 부작용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코로나19 경기부양책도 시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막대한 부채를 안고 대규모 경제부양을 실행하려면, 미국으로의 세계적 잉여가치의 이전이 오바마 정부 때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이는 금융 주도의 경제를 유지해야만 가능하지만, 경제적 불평등 심화를 동반한다. 이 때문에 금융세계화와 불평등의 완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불평등이 개선되지 못하므로 사회적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인민주의의 자양분이 된다. 최근 미국에서, 그간 저조했던 바이든의 지지율이 반등하고 있으나 차기 대선을 장담할 수는 없다. 미국 차기 대선 가상대결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지지율은 엎치락뒤치락하는 형국이라, 다시금 미국 사회에 인민주의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울 수 있다.
 

2) 중국 경제성장 둔화와 시진핑 지도체제 


중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힘입어 수출을 확대하며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은 임금 억압, 통화 평가절하, 저금리 정책으로 가계소비를 억압했고, 이를 토대로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국유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그 결과,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달성했으나, 경제성장 과정에서 극심한 빈부격차가 발생했고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었다. 그럼에도 강력한 국가적 통제가 가능했던 것은,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국면이었기 때문이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미래에 생활이 개선되리라는 국민의 기대 속에서, 국가통제가 정당화되고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성장은 둔화하고 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은 수출과 함께 내수를 활성화하는 ‘쌍순환’ 전략과, 첨단산업 육성정책인 ‘중국제조 2025’를 제시했다. 문제는 중국의 내수활성화를 위해서는 도시화 개발 투자를 통한 기존 성장방식을 전환해야 하나, 금융위기 위험과 국유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 때문에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술혁신의 성공 가능성도 낮게 점쳐진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수출에 의존한 경제의 위험성을 확인하고, 내수를 활성화시키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중심으로 4조 위안의 경기부양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대규모의 과잉중복 투자가 발생했는데, 도시화 개발 성과를 지방 관료들의 승진 인센티브로 삼는 구조가 부추긴 측면이 있다. 또한 금융기관과 지방정부는 정부 시책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부실 대출을 늘렸고, 그림자금융이 확대되면서, 부채가 급증했고 부동산 거품이 심각해졌다. 결국 도시화 개발 투자를 통한 성장은 한계에 부딪혔고 부채가 위험 수준에 도달해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정책 전환은 쉽지 않은데, 정책 조정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규모 도시화 개발 사업을 주도한 국유기업들은 과잉투자와 부채문제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지만, 국유기업의 파산이 은행과 주식시장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배관료들의 이해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리고 부동산에 대규모 자산이 묶이면서 소비 여력이 제한되어 가계소비 확대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결국 도시화 개발 투자를 통한 성장방식이 내수활성화를 위한 가계소비 확대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중국제조 2025’은 제조업 기술 경쟁력 강화 및 최첨단 산업분야 고속 성장을 목표로 한다. 주요기술 및 핵심부품의 높은 대외 의존도 탓에 중국 제조업의 발전이 제약된다고 진단하고, 기술적 독립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성공은 불확실하다. 기술 발전은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과 연계된다. 비판적 사고와 탐구의 자유를 보장하는 교육시스템과 개방적 사회 분위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건에서는 창의성을 토대로 하는 기술 혁신은 어려울 수 있다. 

경제성장 둔화는 중국 정치의 안정성을 위협한다. 양극화와 빈곤으로 인한 대중들의 불만이 정부를 향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성장을 위한 경제구조 전환은 성공이 불확실하고 금융위기 위험 속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시진핑 정부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운다. 중국 내 민족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미 시진핑 정부는 홍콩 ‘우산혁명’ 탄압, 홍콩보안법 제정 등 홍콩에 대한 강경정책으로 중국 대중의 호응과 지지를 얻은 바 있다. 특히, 올해 10월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정치적 관례를 깨고 3연임을 공식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므로,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에 대중의 지지를 모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시진핑 정부가 대만에 대한 압박과 군사도발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당이 중화민족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는 인식을 확산하여, 중국 대중의 지지를 결집시키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중국은 대만과 홍콩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중국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저항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고자 한다. 중국은 시진핑을 중심으로 당의 강력한 구심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판적 논의를 봉쇄하고 디지털 감시 기술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해왔다. 그런데 홍콩에서 2014년 우산혁명과 2019년 송환법 반대시위가 벌어졌고, 대만에서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2014년 ‘해바라기 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흐름을 위협으로 여긴 중국은 홍콩의 민주화 요구를 강력히 탄압했고,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대만에 대해서도 위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3) 푸틴 장기집권 체제의 정당화 수단, ‘대러시아 애국주의’


러시아 경제는 사적인 관계를 기초로 특혜가 오가는 연고자본주의, 또는 부패한 정치지도자가 정치권력을 바탕으로 부를 누리는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러시아 경제는 성장잠재력을 소실하고 장기적인 정체 상태에 빠졌다.

1998~2008년 러시아는 연간 평균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에 달할 정도로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 당시는 푸틴의 첫 번째 집권기로, 이때 국민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하면서 푸틴은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로 러시아 경제는 정체상태에 빠졌다. 앞으로도 경제성장이 2% 이하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졌다. 경제성장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푸틴 정권의 지지 기반이 침식될 수밖에 없었다. 돌파구를 위해서는 부패와 권위주의가 결합한 러시아 경제구조를 개혁해야 했으나, 푸틴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지배집단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결국 푸틴은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는 2008년 경제위기 대응에서도 확인된다. 러시아는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행했다. 특히 국가와 올리가르히(러시아 지배층인 신흥 재벌 집단)가 소유한, 비효율적인 거대기업들을 지원했다. 이들 기업들은 저조한 수익성 때문에 이미 부채가 상당했지만, 전략적 국유기업으로 선정되어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지원을 받았음에도 생산성은 하락했고 기업 규모만 커졌다. 결국, 푸틴 정부의 정책은 최악의 기업에 돈을 쓰는 것이었고, 효율적인 기업은 몰려났다. 그 결과, 러시아 경제는 2009년 이후로 정체 상태를 극복하지 못했다. 1인당 국민총생산은 1만 달러에 근접했으나 더 치고 오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는 중위소득에서 정체에 빠져 고소득 국가로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경제성장이 정체되자 푸틴은 경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해졌다. 2011년 총선과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푸틴이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복귀하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러자 푸틴의 인기는 급락했고,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집회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푸틴은 불리한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저항세력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대러시아 애국주의’를 한층 더 강조하기 시작했다. 

2012년 대통령으로 다시 선출된 후, 푸틴은 유럽-대서양에 대항하는 유라시아주의를 제일의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미 이전부터 푸틴은 러시아 정교와 애국주의, 영웅주의에서 서방의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적 원천을 찾고 있었는데, 이것이 이제 푸틴의 핵심적 정치 이데올로기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면서 푸틴은 과거 소련의 영토에 속했던 독립국들을 향한 팽창 의지를 노골화 했다.

또한 푸틴은 러시아 주변국인 조지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인, 일명 ‘색깔 혁명’들이 러시아의 정치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보았다. 주변국의 민주화 운동 바람이 러시아에서도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저항을 촉발시킬 수 있다고 여겨서다. 결국 푸틴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한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민주화 요구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었던 동시에, ‘대러시아 애국주의’를 실현화하는 최적의 케이스였다.  

크림합병으로 푸틴의 지지율은 급격히 치솟았다. 이후 선거에서도 승승장구하면서 푸틴은 2020년 개헌을 통해 초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푸틴 체제가 장기화할수록 러시아의 자산은 경제력이 아니라 군사력 강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점점 더 불균형하게 배치될 것이다. 러시아 군사력의 고도화는 다시, 푸틴 정권이 자신감을 가지고 군사공격을 채택하는 배경이 된다. 이러한 과정으로 푸틴 정권은 군사공격과 ‘승리하는 전쟁’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의 원인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3.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 중국의 도전

 
 
‘헤게모니’를 세계적 수준에서 경제적, 정치적 규범을 만들 수 있는 능력으로 규정한다면, 미국의 헤게모니는 미국이 국내외 양자에서 규범적 혼란을 겪으며 약화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트럼프로 상징되는 인민주의가 민주적 제도와 국제관계를 위협하고 있다. 인민주의는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불평등을 토대로 성장했다. 따라서 미국이 금융 중심의 경제를 유지하면서 불평등 완화를 달성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금융화 유지와 불평등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에 도전하는 중국을 다시 포섭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미국경제는 달러환류를 통해 유지되고 있으며, 중국은 이 메커니즘을 지탱하는 핵심국가다. 그러나 중국은 계속 미국의 하위파트너로 남아있을 수 없다. 중국 역시 경제성장 둔화를 겪으며 팽창주의 경향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경쟁’으로 규정하고 가치(이데올로기), 경제, 안보 각각의 측면에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갈수록 세계질서로부터의 원심력이 커지는 중국을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에 다시 포섭하려는 시도다. 만약 중국이 응하지 않고 질서를 위협한다면 배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과거와 같은 미국 중심의 질서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속에서 마련한 대응책의 성격을 가진다. 

그렇다면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 이 역시도 불투명하다. 중국의 경제성장 모델은 다른 나라가 모방할 수 없다. 또한 중국은 세계가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이념을 주창하기보다는, 중국은 서구적 보편주의로 해석될 수 없는 예외적 지역이므로 중국에 간섭하지 말라는 ‘수세적 예외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은 새로운 대안적 가치와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도전자’의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1) 미국 중심 금융세계화를 지탱하면서도 위협하는 중국이란 딜레마


중국은 미국에 대한 위협인 동시에, 미국이 주도한 금융세계화의 핵심 요소가 되는 국가다. 금융자본은 직접 잉여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의 저수지가 필요하다. 1990년대 이래로 중국이 그 저수지 역할을 해왔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 중국과 미국의 교역은 생산성이 높은 미국과 생산성이 낮은 중국의 부등가 교환이다. 즉, 미국은 중국 제품을 가치 이하로 구매해 소비한다. 중국은 이렇게 얻은 무역흑자 상당 부분을 미국 금융시장에 재투자한다. 이것이 ‘달러환류’다. 이를 통해 미국은 무역적자로 소비를 얻었고, 중국은 무역흑자로 축적에 성공했다. 바이든은 이 구조를 깰 수 없다. 중국과 부등가 교환으로 이득을 얻지 않고서는 미국이 생산 이상의 소비를 유지할 방법이 없고, 금융세계화의 토대도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중국은 동시에 위협이기도 하다. 중국은 고속성장의 시대가 저물어가자 한편으로는 기술혁신을 통해 첨단산업을 강화하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군사적 패권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은 기술혁신을 위해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연구개발비에 돈을 많이 쏟아 붓는 곳이 중국이다. 동시에, 중국은 정부가 앞장서서 중국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고 있다. 중국은 외국기업이 중국에 투자를 하려면 합작회사를 설립하거나 기술을 이전하는 것을 선행조건으로 걸고 투자를 허가했다. 또한 첨단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중국 국유기업들이 미국 기업 및 자산을 인수하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충돌한다. 미국 GDP의 38%가 지식재산권, 기술독점 수입에서 발생하므로, 미국은 중국의 기술탈취가 미국의 경제적 이해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간주한다. 그리고 IT, 항공우주 등의 첨단기술은 군사력과 직결되므로, 안보위험도 제기하고 있다.

안보 문제는 기술경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경제적, 군사적 패권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일대일로를 통해 물류네트워크를 새로이 구축하고 지정학적 요충지를 장악함으로써, 일본과 미국 중심으로 구축된 아시아-태평양 역내 패권 을 약화하려는 구상을 실행 중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해군력이 강화될수록 역내 다른 국가와의 분쟁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해군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자, 남중국해 영토분쟁문제(남사군도 분쟁)나 동중국해 영토분쟁문제(일본명 센가쿠 열도 또는 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아베 일본 총리와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직전까지, 동중국해의 군사적 긴장은 실제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이러한 영토분쟁 지역의 갈등은 국지전 가능성을 높인다. 한편, 역내 국지전은 언제든 미국과의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처럼 중국은 미국에게 필요하지만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에 대해 ‘전략적 경쟁’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수립했다. 이는 기존 관여 정책의 완전한 폐기나 봉쇄 정책의 복귀를 뜻하지 않는다. 국가안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공급사슬의 일정한 분리는 양국 모두 불가피하나, 부분적 기술 분리가 완벽한 보호주의를 향한 상호 보복전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하한선을 긋는 협상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코로나19나 기후변화와 같이 초민족적 생태 이슈에서도 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결국, ‘전략적 경쟁’은 관여 정책, 즉 서로 약속에 따라 행동하면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정책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새롭게 창출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2) 중국, 새로운 헤게모니인가 기존질서의 파괴자인가


중국은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가 되기 어렵다. 첫째로, 중국의 경제성장 모델은 다른 나라들이 모방할 수 없으며, 중국의 이익이 다른 나라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는 새로운 자본축적체제를 만들어내고, 다른 나라들이 따라할 수 있는 성장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은 2차 산업혁명과 법인기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모델을 제시했다. 하지만 중국경제는 대규모 잉여노동, 화교자본, 거대한 내수시장의 존재라는 특수한 조건에 힘입어 성장했다. 중국에는 마오쩌둥 시절의 유산으로 농촌잉여노동이 대규모로 존재했고, 화교자본의 투자 덕분에 개혁개방 초기에 자본시장, 금융시장의 개방 없이도 자본축적이 가능했다. 이러한 특수한 사례는 다른 나라들도 시도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발전 모델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 유럽이라는 시장을 두고 동남아,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저임금 경쟁을 벌이는 제로섬 관계에 있다. 즉, 중국의 성장이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발전과 연결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대량 원조와 자국의 시장개방을 통해서 서독, 일본, 한국, 대만 등 핵심 반공 국가들에 경제 발전의 길을 열어 준 것과는 대조적이다.

둘째로, 중국은 시장과 민주주의로 자유와 풍요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미국의 자유주의 이념을 대체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모델은 경제적 차원의 성장을 바탕으로, 이념적 차원에서도 세계적인 모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21년 ‘3차 역사결의’에서 중국은 새로운 보편적 가치와 질서를 제시하는 대신, 서구식 자유나 인권의 잣대로 중국을 평가할 수는 없다며, 보편성을 결여한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단적으로, 코로나19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며, 여기에서 중국 체제의 우월성이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자국민에 대한 감시, 억압, 조작, 검열, 정치적 통제를 확대했다. 시민에 대한 보상 및 처벌기제로서 ‘사회신용시스템’을 활용하여, 오직 순종적 시민만이 사회, 경제체제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기반의 권위주의적 통제 모델을 중동,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권위주의적인 정권들에게까지 확산하고 있다. 자국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홍콩과 대만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억압하고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는 권위주의적 통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사일 뿐,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는 특징을 보인다. 미국의 자유주의 이념을 대체할 새로운 보편성을 제시하는 대신, 자유주의 이념에 미달하는 권위주의적 통제모델을 국제적으로 확대하는 중국의 행태는 세계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4. 사회운동의 대응과제  

 
 
미국 헤게모니는 몰락하고 있다. 미국은 이윤율을 반등시킬 수 없으며,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역시 중국과 러시아 팽창주의의 부상이 보여주듯이 무너져가는 중이다.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라는 미국의 시도는 붕괴를 얼마간 지연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나, 붕괴 경향을 역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세계는 ‘투쟁하는 두 계급의 공멸’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20세기 초 러시아혁명과 같은 사회주의적 대안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운동은 대안이념과 운동을 건설하는 것에 친화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 현존 국제질서를 파괴하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팽창주의와 인민주의에 대항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안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은 자유주의적 유산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유산을 유실하지 않으면서 이를 넘어선 더 나은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존속과 강화를 위해서도 민주주의적 토대가 필요하다. 

사회운동의 과제는 첫째로, 전후 세계질서에 대한 후퇴를 거부하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합의로 수립된 전후 ‘얄타 체제’는, 강대국이라고 해도 무력을 통해서 원하는 바를 밀어붙일 수는 없도록 강제하는 국제질서다. 물론 이러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항상 그 이상에 부합하게 운영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이 이러한 질서를 자국에 유리하도록 위선적으로 활용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력으로 타국의 주권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질서의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원칙을 준거점으로 삼아 오히려 강대국의 위선적 행태를 비판하고, 더 민주적이고 공정한 대안적 국제질서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차피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이유로 현존 질서를 부정하는 것은 세계대전 이전 시대로의 퇴행을 낳을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고, 중국도 대만을 위협하면서 전후 세계질서를 흔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가 좌절되어야 중국이 대만에 대한 섣부른 군사행동을 감행하기 어려워진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즉, 강대국이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현상을 변경하고자 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팽창주의 세력에 비슷한 군사적 모험을 부추기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러시아에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고,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지지해야 한다. 

군사행동 시도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은 점차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진영논리에 따라 UN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시작한 미얀마 사태에 대한 규탄 결의안 채택을 거부했다. 전후 세계 갈등 관리의 상징인 UN의 무력화는 당연히 세계의 ‘블록화’, 군사동맹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8월, 전후 세계의 대표적 핵 통제 합의인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의 제10차 평가회의도 러시아의 최종 선언문 채택 반대로 인해 합의 없이 폐회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협은, 세계를 위협하는 절대무기 핵의 철폐를 통해 국가 간 전쟁이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감축할 필요성을 다시 일깨웠다. 이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한반도가 향후 핵전쟁의 전장으로 유력하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운동에 특히 절실한 과제다. 북한이 남한과 일본을 타격하는 전술핵무기 개발을 핵전략으로 두고, 7차 핵실험 초읽기에 있는 상태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국제적 핵군축을 위해 핵무기 보유국들에 핵군축 의무를 명시한 NPT 6조를 준수하고, 핵무기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가입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북한의 핵무장을 규탄하고 한국의 핵무기금지조약 가입을 주장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둘째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 반대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각국 내부에서는 인민주의에 의해서, 외부적으로는 권위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위협받고 있다. 인민주의 세력은 인민의 진정한 대변자를 자처하면서, 언론이나 사법부 등의 ‘선출되지 않은’ 기관들과 야당은 인민의 의사를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권력을 잡으면 이러한 기관들부터 먼저 장악하거나 폐지하려 든다. 언론은 가짜뉴스를 퍼뜨린다고 공격하고, 법관들은 인민의 의사와 거리가 먼 판결을 내린다고 비판하며, 야당들의 선거 참여는 이런저런 이유로 제한한다. ‘인민주권’을 내세우며 국민투표를 애용하고, 법을 고쳐 정치적 게임의 규칙을 바꿔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인민주의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을 비판해야 한다. 사회운동 일각은 인민주의를 좌파적 해법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역할은 단지 인민의 불만과 요구를 수용하는 것을 넘어선다. 인민 스스로 통치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인민주의는 대중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뿐, 스스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해나갈 능력을 강화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구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결여된 정념적 대처로, 대중의 역량을 침식시키고 대안 모색을 요원하게 할 뿐이다. 사회운동은 이러한 인민주의와 단절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행태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이 인민주의의 가짜 대안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대안세력으로 거듭날 가능성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권위주의 국가들이 주변 국가를 통제하려고 시도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주변 국가들의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자, 이것이 러시아 내에서 권위주의적 통치에 반발하는 흐름으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여 주변 국가의 정치에 개입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시진핑의 등장 이후 급격히 권위주의적 통치가 강화되고, 내부적 단결을 위해 민족주의적 수사가 강조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홍콩 통제와 대만과의 통일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중국은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홍콩 사회운동을 탄압했고, 중국 권위주의의 지배를 원치 않는 대만을 위협하고 있다. 게다가 자국의 디지털 권위주의 모델을 다른 나라들로 수출하며 민주주의 위협을 확대한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우크라이나, 홍콩, 대만 민중에게 민주주의적 제도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탄압하는 러시아와 중국을 비판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주의란 이상과 현실이 괴리된, 한계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과 러시아의 권위주의가 대안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운동이 존속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사상과 언론의 자유, 사법권 독립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와 사회운동이 탄압을 겪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마지막으로, 팽창주의에 맞서 반전평화를 요구하고, 권위주의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키는 국제적 민중연대를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러시아의 침공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민중을 지지하고, 동시에, 푸틴의 권위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 민중과 연대해야 한다. 한편, 중국의 대만 침공은 동북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갈 것이며, 한반도는 북한 핵 위험이 상존한다. 이를 막으려면, 사회운동이 앞장서서 중국의 군사행동에 반대해야 한다. 중국 정부의 탄압에 맞서는 대만, 홍콩 민중, 그리고 팽창주의와 핵무기에 반대하는 일본 민중과 함께,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국제연대를 건설해 나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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