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전개되는 국제정세
2022년 가을호 특집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주제로 최근 국제정세의 주요 쟁점을 다뤘다. 첫 번째 글, 이유미의 「인민주의와 팽창주의의 세계적 위험」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영토적 팽창주의를 현실화했고, 이를 신호탄으로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우며 대만에 직접적으로 무력개입을 펼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위기는 2차대전 이후 식민주의와 영토적 팽창주의를 억제하는 데 뜻을 같이 둔 유엔 상임이사국, 즉 미국, 러시아(구소련), 영국, 중국 간 균열이 커지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이자, 심지어 그들 간 직접적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위험을 의미한다. 필자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2008~09년 금융위기와 함께 정책적, 이데올로기적 호소력을 점차 상실한 후, 인민주의와 권위주의 그리고 팽창주의가 빠르고 강하게 부상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필자는 영토적 팽창주의 세력의 군사적 모험주의야말로 전후 질서에 대한 세계적 합의를 곧장 붕괴시킬 위험이 크다고 강조하면서, 팽창주의에 맞서 반전평화를 요구하고, 권위주의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국제적인 사회운동 연대에 주목한다.
두 번째 글, 김진영의 「북핵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중 전략경쟁과 북핵 위기의 한복판에 있는 한반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북한은 경제위기, 코로나19, 자연재해라는 삼중고에 처해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그 동맹국 대 러시아와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대립구도가 강화되고 북핵 문제에 대한 압박이 감소한 상황을 이용하여 대북제재를 회피하고 핵 개발을 고도화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성공을 거둔다면, 장차 북한도 유사한 군사행동 모델을 고려할지도 모른다. 러시아는 핵 위협을 통해 서방의 직접적 군사개입을 차단하면서 우크라이나의 탈무장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치적 통제권 확보, 영토할양을 얻어내려 했다. 러시아가 이런 목표를 달성한다면, 북한도 핵위협을 통해 외부의 개입을 차단하고 전술핵을 앞세워 남한 정치에 대한 통제권, 탈무장화, 경제적 이권을 요구하는 방안을 장차 생각해볼지도 모른다. 한편 국내 정치세력이나 사회운동 일각에는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가운데 부분적인 핵동결, 핵감축을 협상하는 북한식 ‘조선반도 비핵화’ 노선을 수용해야 남북관계가 풀려나갈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북핵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러니까 곧 남핵, 남한의 핵무기 개발도 지지해야 한다는 논리에 무력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도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담긴 위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며, 북핵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입장을 펼쳐야 한다.
마지막 글, 임지섭의 「전략경쟁 시대, 경제안보라는 새로운 쟁점」은 ‘경제안보’라는 키워드로 국제정세에 접근한다. 2000년대 세계화의 급속한 확산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이 구축되고 국가 간 상호연계성이 강화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상호의존성을 배경으로, 특정 국가가 자국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국에서 생산되는 자원, 핵심소재, 부품, 장비를 무기화할 위험성도 등장했다. 2010년 중국이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로 일본으로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 사건은 국제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 이후 2019년 일본이 단행한 수출규제 강화도 그러한 공급망 무기화라는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러시아와 중국의 팽창주의는 새로운 위험을 더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출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한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개입을 단행한다면,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망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이처럼 핵심적인 자원, 소재, 부품, 장비의 공급망 확보는 나라 전체의 안보와 직결된다는 판단에 따라 ‘경제안보’라는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필자는 경제안보 개념의 배경에는 세계적인 수준에서 권위주의와 팽창주의의 확산이라는 정세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사회운동이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라는 일관된 입장에 따라 권위주의와 팽창주의에 맞서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세초점으로 임필수의 「미국의 인플레이션 논쟁과 정책적 함의」를 싣는다. 2021년 초 바이든의 1.9조 달러짜리 대규모 재정지출 패키지를 두고 경제학자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경기침체에 대처하기 위한 재정지출이 필요하지만, 그 규모가 과대해서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하는 ‘인플레이션 팀’과 그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여유만만 팀’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올해 들어 지난 40년간 최고치를 연거푸 갈아치웠다. 이처럼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빠른 속도로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지거나 부채위기가 폭발할 수 있다. 그렇다고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을 포기하면, 경기침체와 물가인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미국 경제는 장기침체, 부채위기,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케인지언 경제정책은 현재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적자재정과 정부지출, 통화정책 완화를 통해 뒤로 미룰 수는 있어도 영원히 제거할 수는 없다. 미래를 향한 도피는 결국 부채위기나 폭발적 인플레이션을 통해 표출될 수밖에 없다.
쟁점분석으로는 김성균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레닌의 민족자결론」, 임필수의 「레닌과 윌슨: 레닌의 민족해방론에 담긴 역사적 의의」를 싣는다. 좌파운동 일각에서는 레닌의 민족자결론을 원용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한다. 서방제국주의(미국과 나토)의 지원을 받는 젤렌스키 정부의 무장저항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게 그러한 주장의 핵심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주장이 레닌의 입장에서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인가. 첫 번째 글은 1차 세계대전의 와중인 1916년 레닌이 발표한 명제에 주목한다. “한 제국주의 열강에 대항한 민족해방 투쟁이 어떤 조건하에서는 다른 열강의 제국주의적 목표를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유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민족자결권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또한 레닌은 “전쟁의 본질이 외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면 그러한 전쟁은 피억압민족의 관점에서 진보적”이라고 규정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친러시아란 이유로 그들의 자결권이 거부될 수 없듯이, 친서방이라는 이유로도 부정될 수 없다. 필자는 레닌의 민족자결론을 자세히 검토함으로써 왜 이런 결론이 도출되는가 설명한다.
두 번째 글은 1차 세계대전이 격렬한 이데올로기적 경쟁의 장이기도 했고, 이때 사회주의자 레닌과 자유주의-보수주의자 윌슨이 민족자결권을 두고 경합을 펼쳤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나 윌슨은 세계대전 승전국에 속한 식민지의 민족자결권을 무시한 반면, 레닌은 코민테른을 통해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실천적 지원을 펼쳤다. 바로 이런 이유로 레닌은 식민지 사회운동의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내고, 사회주의 운동의 호소력을 높였다. 이러한 레닌의 입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좌파의 실천에 함의하는 바가 클 것이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지원하는 반면 사회주의와 좌파운동이 저항운동에 무심하다면, 결국 사회주의와 좌파는 ‘친러시아’라는 결론만 남기지 않을지 숙고해야 한다.
이번 호에는 여러 편의 책소개가 실렸다. 첫 번째, 장명호의 「스탈린 시대, 속삭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올랜도 파이지스의 『속삭이는 사회』를 다룬다. 앞으로 여러 차례, 여러 필자가 러시아와 중국 사회주의의 역사를 다루는 책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진호의 「토붕와해의 위험 속 경장을 주장하다」는 한영우의 『율곡 이이 평전』을 다루는데, 경세가로서의 율곡에 주목한다. 이조운의 「재정위기는 어떻게 도래하는가」는 제임스 오코너의 『현대국가의 재정위기』를 소개한다. 1973년에 나온 책으로,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재정위기의 발생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한 초기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홍현재의 「좌파는 민주주의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는 제프 일리의 『더 레프트 1848-2000』를 소개한다. 이 책의 원제가 ‘민주주의를 단련하다’인 것처럼, 좌파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단련하며 성장했고, 또한 현실 사회주의가 민주주의를 배반함으로써 실패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들은 회원이 참여하는 여러 책읽기 모임에서 함께 본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기획을 이어 나갈 생각이다.
2022년 9월 13일
임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