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 논쟁과 정책적 함의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의 인플레이션 편향과 한계점
미국의 헤드라인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올해 3월 (전년 동월 대비) 6.6%, 4월과 5월 각각 6.3%, 6월 6.8%, 7월 6.3% 상승했다. ‘헤드라인 PCE’는 가격변동성이 높은 식품, 에너지를 포함한 물가지수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코어 PCE는 같은 기간 3월 5.2%, 4월 4.9%, 5월 4.7%, 6월 4.8%, 7월 4.6% 상승했다. 즉 7월 들어 인플레이션이 약간이나마 가라앉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높은 수치다.
이처럼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올해 들어 지난 40년 동안 최고치를 연거푸 경신했다. 그에 따라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성격, 향후 전망, 정책적 처방전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논쟁을 검토하면서,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러한 인식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루고자 한다.
1. 미국의 인플레이션 논쟁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성격
먼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에서 초점은 주된 요인이 수요압박이냐, 아니면 공급압박이냐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 문제는 아닌데, 두 가지 결정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공급측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 감소가 동반되는 반면, 수요측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 증가가 동반된다는 사실이다. 둘째, 공급측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이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공급측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수요측 요인에 비해 훨씬 더 나쁜 뉴스라는 사실을 우리가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공급측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을 감소시키고 실업을 악화시키는 데다가, 중앙은행이 직접적으로 통제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현재 거론되고 있는 각각의 요인을 살펴보자. 우선 공급측 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 노동공급의 감소: 코로나19에 대한 공포, 조기 은퇴, 이민의 감소, 학교폐쇄 등등이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는 노동시장 참가율을 낮추거나, 자연실업률을 올리거나, 또는 양자 모두의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여기서 자연실업률이란 인플레이션을 가속하지도, 감속하지도 않은 상태로 노동시장이 균형을 이룰 때의 실업률을 뜻한다. 자연실업률이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고, 여러 가정을 전제로 이론적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래서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는 실제 실업률이 자연실업률 추정치에 도달하면 ‘완전고용’을 달성했다고 간주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자연실업률이 상승했다는 주장은 매우 중대한 정책적 함의를 지닌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다룬다.)
○ 코로나19 창궐에 따른 강제 직장폐쇄
○ 코로나19 봉쇄에 따른 연쇄효과: 즉 공급망 문제, 해운과 국경통과의 중단.
○ 영국의 경우, 브렉시트에 따른 비용상승과 교역중단: 이는 유로 지역에도 얼마간 영향을 미쳤다.
○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상품가격 상승.
○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소비자수요가 대면서비스에서 상품으로 이동했다: 이에 따라 생산능력이 제약에 부딪치고, 상품가격 상승과 공급망 중단에 기여했다.
○ 일부 중앙은행의 경우,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는 신뢰성이 떨어졌다. 특히 신흥시장에서는 그에 따라 기업이 가격을 올리거나 산출을 줄였다.
가장 중요한 수요측 요인은 다음과 같다.
○ 팽창적 재정정책: 2020년과 2021년, 가계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정책이 동원되었다.
○ 통화정책의 완화: 2020년 일부 국가에서는 통화정책도 완화했다. (통화정책의 변화에 따른 환율변동도 물가상승 문제에서 고려할 수 있는데, 환율은 수요와 공급 양자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자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입품의 가격이 상승하여, 국내상품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수입상품의 공급을 줄인다. 또한 한 국가의 통화가치 하락은 곧 다른 국가의 통화가치 상승을 의미하므로 서로 상쇄하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공급측 요인과 수요측 요인이 둘 다 엄존하는데, 어느 요인이 더 지배적인지 계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가.
수요 요인과 공급 요인에 대한 계량적 분석
샌프란시스코 연준은행의 아담 샤피로는 「공급과 수요는 얼마나 많이 인플레이션을 추동하는가」(2022년 6월 21일)라는 글에서 수요 요인과 공급 요인을 분리하여 계량하는 간단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간단한 수요공급 곡선을 떠올려보면, 수요가 증대하면 거래되는 수량과 가격이 모두 상승하고, 수요가 감소하면 가격과 수량이 모두 감소한다. 즉 수량과 가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반면 공급이 증대하면 수량은 증가하나 가격이 하락하고, 공급이 감소하면 가격은 상승하나 수량이 감소한다. 즉 수량과 가격이 반대로 움직인다.
그는 PCE를 구성하는 100개 이상의 상품과 서비스 범주를 활용하여, 공급과 수요 각각이 추동하여 가격이 변화한 범주와, 무엇이라 판정하기 어려운 범주를 구분한다. 보통 공급이 추동하는 범주에는 식품, 가계소비품(식기, 리넨, 종이제품)이 들어가고, 수요가 추동하는 범주에는 자동차 관련 제품, 중고차, 전기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특히 2021년과 2022년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예외적인 가격변화를 보여준 범주를 열거해 보면, 공급 추동의 경우(즉 공급이 감소한 경우)는 신차, 연료, 수리 서비스가 두드러진다. 반면 수요 추동의 경우(즉 수요가 증가한 경우)는 가정 내 소비품, 예컨대, 가구, 의류, 장난감, 비디오장비, 취사도구가 두드러진다. 또한 코로나19 대유행이 잦아든 이후 다시 문을 연 레스토랑, 박물관도 수요 추동에 포함된다.
이를 종합해보면, 최근 12개월 인플레이션과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10년(2010~2019) 평균을 비교할 때, 공급 추동은 2.5%p 더 높고, 수요 추동은 1.4%p 더 높다. 즉 공급 추동이 최근 12개월 인플레이션의 절반 이상을, 수요 추동이 1/3 정도를 기여했다. 코어 PCE 인플레이션을 보면, 패턴이 얼마간 비슷하지만 공급과 수요 두 요인이 각각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이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그래프를 통해서 인플레이션 추이가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2020년 전반기부터 나타난 인플레이션율의 하락은 수요 요인의 감소 때문이었다. 또한 2021년 3월부터 시작한 인플레이션율의 상승은 주로 수요요인의 증가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경제활동이 재개되었고, ‘미국구제계획’(1.9억 달러에 달하는 바이든 행정부 경기부양 계획)이 제정되어서 수요 요인을 더 강화했다. 이러한 요인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와 관련된 감염확산으로 인해 2021년 여름에 약화되기 시작했지만,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누그러진 가을에 재부상했다.
반면 공급요인은 2021년 4월에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약간 늦은 반응을 뜻한다. 그 후로 공급측 인플레이션은 상승한 채로 남아 있다가, 최근에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가속화는 식품과 에너지 공급의 혼란 탓으로 돌릴 수 있고,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된 부분도 포함된다. 무엇이라 판정하기 어려운 모호한 부분도 적지 않다. 요약하면 최근 인플레이션에는 수요 측면이 아닌 요인이 2/3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이유를 고려하면, 경제 전체로 볼 때 매우 나쁜 소식이다. (그런데 미국의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는 특정 상품들에 관한 공급측 요인이 완화되더라도 오히려 다른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므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게 약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분석을 내놓는다. 거대한 재정팽창이 수요측 인플레이션 압박요인으로 지속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분석인데, 이는 뒤에서 다시 다룬다.)
선진국 인플레이션에 대한 비교 분석
그렇다면 미국 외에 다른 국가의 인플레이션은 어떤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조셉 가뇽은 「주요 나라마다 인플레이션 내력은 서로 다르다」(2022년 6월 30일)라는 글에서 위에서 소개한 방식과는 다른 식으로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을 분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미국과 유럽, 일본의 상황을 비교한다.
그는 전체 경제에 적용되는 총공급-총수요 그림을 그려서, 가격수준(즉 인플레이션)은 수직축으로 측정하고 실질 국내총생산(즉 경제성장)은 수평축으로 측정한다. 물가가 하락하면 지출이 증가하고, 물가가 상승하면 지출이 감소하기 때문에, 총수요 곡선의 기울기는 아래로 기운다고 가정한다. 또한 물가가 상승하면 생산을 촉발하고, 물가가 하락하면 생산 의욕을 꺾기 때문에, 총공급 곡선의 기울기는 위로 솟는다고 가정한다.
위의 그림에서 실선은 2019년 12월에 시점에 추정한 2022년 미국의 공급-수요 곡선이다. 이때의 물가와 실질 GDP를 100으로 잡는다. 점선은 가장 최근인 2022년 6월의 추정치다. 점선의 교점을 보면, 2019년 말의 예상에 비해 물가는 5.0% 더 높고, 실질 GDP는 1.4% 더 낮다. (수평축을 통해서 총공급, 총수요 곡선의 이동 거리를 각각 측정하면) 수요는 예상보다 3.6% 더 많고, 공급은 예상보다 6.5% 더 적다. 이러한 방법을 활용해서 미국과 유로지역, 영국, 일본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일단 실질 GDP 측면에서 보면, 미국, 유로지역, 일본, 영국 모두 코로나19 경기침체에서 완전히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다만 그래도 미국이 가장 나은 편이다. 인플레이션 측면에서 보면,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상보다 높다. 영국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미국, 유로지역 순이다. 반면 일본은 추정치(즉 코로나19 이전 추세)보다 2.5% 더 낮다. 인플레이션 요인 중 수요충격(수요증가)을 보면, 미국과 영국이 두드러지게 크다. 유로지역은 약간 양의 값을 보이며, 일본은 현저하게 음의 값을 보인다. 공급충격은 모든 경제에서 음의 값을 보인다(모든 경제에서 공급이 감소했다). 일본의 공급감소가 제일 적고, 영국의 공급감소가 제일 크다.
그렇다면 왜 다른 나라에 비해 미국과 영국이 수요충격이 두드러지게 큰가. 첫째, 코로나19 위기가 발발한 2020년에 미국과 영국은 통화정책을 확연히 완화한 반면, 유로지역과 일본에서는 통화정책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둘째, 모든 국가가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지출을 실행했으나, 미국의 재정지출은 가계에 대한 직접 이전이 컸고 가계는 그 이전액을 지출했다. 반면 일본의 경우, 가계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지출을 삭감했다. 영국은 공급충격이 가장 큰데, 브렉시트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브렉시트로 인해 무역이 제한되고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성장이 감속하고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종합해보면, 미국과 영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실질 GDP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율이 높으며, 수요충격이 상대적으로 크다. 따라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반면 유로지역은 실질 GDP 성장률이나 인플레이션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수요충격도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유로 지역은 수입품, 특히 에너지 수입품이 인플레이션을 추동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긴축적 통화정책을 쓰더라도 미국보다는 온건하게 접근할 수 있다. 나아가 일본의 경우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없다. 즉 나라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성격이 다르므로 경제정책이 각각 다르게 실행되어야 한다.
공급요인이 중요하더라도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가?
미국의 인플레이션에서 공급충격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더라도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하느냐는 쟁점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공급감소 문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2007~09년 금융위기 당시 연준 의장을 맡았던 벤 버냉키는 이 문제에 대해, 그렇더라도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1970년대를 다시 불러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2022년 6월 14일)라는 글에서 “공급제약이 완화되기를 기다리면서도, 연준은 수요의 성장을 느리게 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의 감소를 도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수요충격의 영향도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에 따라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는다면, ‘가격인상→임금인상→가격인상’이란 식으로, 인플레이션이 자기영속적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즉 중앙은행이 가파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는 모습을 보이면, 대중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누그러뜨리는 심리적 효과를 발휘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기대 인플레이션이란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인플레이션을 뜻한다. 뉴케인지언 이론은 코어 인플레이션의 장기추세가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에 의해 결정되며, 장기추세와의 괴리는 경제의 유휴수준(slack), 수입품 가격변화나 특이한 충격에 따라 나타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코어 인플레이션이 식품, 에너지 가격의 변동과 결합해 총인플레이션으로 표출된다고 본다. (아래 그림4, 그림5는 이에 대한 재닛 앨렌 전 연준의장, 현 재무부장관의 역사적 분석과 설명을 담고 있다.) 따라서 뉴케인지언 이론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처방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을 꺾는 게 가장 중요하다. 버냉키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한 셈이다.
중앙은행의 긴축적 통화정책인가, 정부의 물가통제인가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유가 인상을 비롯한 비용요인(공급요인)에 의해 물가가 급상승했던 1970년대와 비견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반되었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귀결되었다. 왜 그랬나. 버냉키는 1970년대의 경우, 중앙은행이 적극적 대응을 피했고, 의회와 행정부가 나서서 직접적인 물가통제를 시도했으나, 참담한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1968년 닉슨 대통령이 당선된 후, 1970년 8월 민주당 의회는 행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제안정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닉슨은 대통령에게 가격-임금통제 권한을 부여한 이 법에 의거하여 1971년 8월 포괄적인 임금-가격 동결을 단행했다. 미국에서 전쟁시가 아닌 평화시에 최초로 이뤄진 동결책이었다. 90일간에 걸쳐 강제적으로 일반적인 가격, 임차료, 임금, 봉급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이 기간이 지난 후, 11월부터는 임금-가격 동결은 중지되었으나, 이를 통제하기 위한 조직이 구성되었다. 가격과 임차료에 관해서는 7명의 공공위원으로 구성된 가격위원회가 구성되고, 임금에 대해서는 기업가대표 5명, 노동자 대표 5명, 공공위원 5명이 참여하는 삼자임금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임금상승률은 5.5% 이내로, 인플레이션은 2.5% 이내로 묶는 게 목표였다.
최초 임금-가격동결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으나, 동결이 풀리자마자 억눌렸던 가격과 임금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가격위원회나 삼자임금위원회가 아무리 위로부터 다시 억누르려고 해도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가격위원회와 삼자임금위원회는 생계비위원회로 대체되었고, 현실에 맞추어 정책을 조정하려는 시도는 결국 가격통제를 완화 및 폐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1974년 4월, 경제안정법도 폐기되고 생계비위원회도 가격 모니터링이라는 기능만 남김으로써 사실상 문을 닫았다. 정부의 가격통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길을 연 셈이었다. 1980년대 볼커의 충격요법이 적용된 후에야 인플레이션이 끝났고, 매우 길고 깊은 경기침체를 겪어야 했다.
버냉키는 지금은 1970년대와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르기 때문인가. 첫째, 과거에도 인플레이션은 매우 인기가 없었지만, 1970년대 당시에는 이자율을 올려서 인플레이션과 싸우겠다는 연준의 정책대응 방향이 극심한 정치적 저항에 직면했다. 존슨 대통령은 매우 인기가 없는 베트남전쟁에 따르는 경제적 비용을 숨기기 위해, 이자율을 낮게 유지하라고 연준에 압력을 가했다. 1972년 닉슨은 재선을 앞두고 경기하강을 참지 않겠다고 연준에 분명히 밝혔다. 닉슨이 사임한 후로도 의회는 반(反)인플레이션 정책을 피하라고 연준에 압력을 가했다. 1978년 의회는 실업률 목표를 3%로 설정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반면 현재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낮추고자 하는 정책대응 방향에 대한 백악관과 의회 모두의 지지를 받는다.
둘째, 인플레이션의 원천과 연준의 책임에 대한 인식도 결정적으로 다르다. 1970년대 연준 의장 번스는 비용인상 이론을 신봉하며, 인플레이션이 일차적으로는 대기업과 노동조합 때문에, 즉 경기하강 때에도 그들이 시장지배력을 행사해서 가격과 임금을 올리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었다. 연준은 이런 힘에 대항할 능력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면서, 이자율 인상의 대안으로 행정부가 임금과 가격을 통제해달라고 닉슨을 설득했다. 하지만 이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버냉키의 말을 종합해보면, 공급부족이나 비용인상과 같은 공급측 요인의 상대적 중요성이 크더라도, △ 직접적인 가격-임금통제는 실행가능성이 없고, △ 수요를 감소시키고 기대 인플레이션의 상승을 꺾는 한결같은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처해야 한다. 그의 주장은 특히 대중의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이야말로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는 최악의 상황을 낳을 것이라는 인식을 밑바탕에 두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한 가지 문제를 덧붙이자면, 한국의 노동자운동 내에서는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금리인상보다 가격통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논자들이 꽤 있다. 즉 가격통제를 하자면서도 임금인상은 용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정부가 물가통제를 실시할 때에는 어김없이 임금통제도 반드시 동반되었다.(부르주아 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임금은 ‘노동’의 가격이다.) 코로나19 경기침체에도 큰 폭의 이윤을 남긴 소수 대기업은 가격을 인상하지 않더라도 임금상승을 감내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경제 전반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운동이 정부에 물가통제를 요구하면서 임금만 예외로 하자고 주장하는 게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필자는 전쟁도 아닌 조건에서는 정부의 인위적인 물가통제와 임금통제 그 자체가 성공을 거두기 매우 어렵다는 버냉키의 역사적 분석에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인플레이션 전망: 연착륙인가, 경착륙인가, 스태그플레이션인가
그렇다면 금리인상은 어느 선까지 치고 올라가겠는가. 그리고 그에 따른 경기침체의 강도와 기간은 얼마나 되겠는가. 미국 의회조사국이 발표한 「미국 경제는 어디로 향하는가: 연착륙, 경착륙, 스태그플레이션?」(2022년 6월 28일)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면서도 동시에 경기침체도 없다는 의미의 연착륙이다. 이럴 경우 성장률은 완만하기는 하지만 양의 값을 보이고, 실업률 상승도 완만할 것이다.
두 번째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는 하지만 경기침체가 동반된다는 의미의 경착륙이다. 2022년 1분기 미국경제의 성장률이 음의 값을 보인 후(마이너스 1.4%), 경착륙을 예상하는 경제학자들이 늘어났다. (게다가 의회조사국의 글이 발표된 후, 2분기 성장률도 마이너스 0.9%로 나왔다. 경제적 정의상 ‘경기침체’란 2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이 나오는 경우다.)
세 번째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높은 실업률과 경기침체를 동반하는 경우다. 이러한 세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어느 것이 점점 더 유력해지고 있는가.
연준 인사들 중에서는 7월 시점까지도 연착륙 가능성을 종종 언급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연준 이사 크리스토퍼 월러는 기업이 이미 많이 구인 요청을 해놓은 상태인데, 앞으로 노동자를 해고하기보다는 구인활동을 중단하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기 때문에 연착륙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수치를 보면 일자리 공석이 실업자당 1.9개까지 증가했다. 즉 실업자가 600만 명이고 빈 일자리가 1150만 개였다. (뒤에서 언급할 서머스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일자리의 매칭 효율성이 갑자기 개선되리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공석이 다소간 감소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실업이 증가할 것이며, 따라서 연착륙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5월 시점에 “연착륙을 지금 당장 달성하기에는 상당히 어렵다”면서 연착륙 가능성에 유보적인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고, 그 후 그러한 톤을 점점 더 높였다. 나아가,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때 재무부장관을 했던 래리 서머스는 연준의 표준적 견해보다 훨씬 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서머스, 장기 침체와 장기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다
연준은 6월 15일 기준금리를 0.75%p 올린다고 발표하면서 경제전망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이 현재 6%를 넘는 수치에서 내년에 3%로, 2024년에 2%에 가깝게 내려갈 것이며, 실업률 중간값 예측도 5월 3.6%에서 상승해도 2024년 4.1% 수준일 것이다.
반면 6월 21일, 서머스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실업률이 5년간 5%를 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2년간 7.5%의 실업률, 5년간 6%의 실업률, 아니면 1년간 10%의 실업률을 겪어야 한다”, “이러한 수치는 연준의 견해에 비하면 뚜렷하게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연준의장) 폴 볼커가 강행했던 가혹한 통화긴축을 해야 할 수도 있다”면서, “우리가 장기 침체와 장기 스태그플레이션, 두 가지 길로 갈 수 있는 공통적 요인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지 두렵다”라고 덧붙였다.
서머스가 자신의 계산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 서머스는 현재 실업률(3.6%)이 자연실업률(또는 물가안정실업률, NAIRU)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 위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서머스는 자연실업률이 5%라고 가정한다.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자연실업률이 올라갔다.) △ 인플레이션을 1%p 낮추기 위해 실업률이 몇 %p 올라야 하는가를 뜻하는 희생률(sacrifice ratio)을 2로 가정한다. 이는 역사적 추정치와 대체로 일치한다. △ 연준이 연간 2%라는 인플레이션 목표에 도달하려면 인플레이션을 2.5%p 낮춰야 한다고 간주한다. (2.5%p라는 수치가 너무 낮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변동성이 높은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측면에서 보면 타당할 수 있다.)
종합해보면, △ 낮춰야 할 인플레이션율 2.5%p에 희생율 2를 곱하면 5%p다. △ 따라서 자연실업률 5%보다 5%p 더 높은 (1년간의) 10%의 실업률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또는 5년간 6%, 2년간 7.5%.)
어떤 사람들은 그의 주장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1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실직해야 한다는 뜻이므로 너무나 가혹하다고 말한다. 민주당의 ‘진보파’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황폐화시킬 경기침체를 일으키는 일은 무모하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물론 실업이 초래할 노동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서머스의 설명과 예측이 잘못된 것이기를 희망해야겠다. 하지만, 희망과 현실은 구분해야 한다.
이러한 계산법이 아주 정교하고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고, 세부적인 쟁점에 대해 거시경제학자들 간의 여러 논의가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자연실업률 추정치가 너무 높은 것은 아닌지, 실업률 감소가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한 것은 아닌지 등등)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서머스의 계산이 거칠기는 하지만 현실과 역사적 경험에 근거를 둔다는 사실에 있다. 실제로 서머스 본인도 이러한 계산에는 높은 불확실성이 따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그러면서도 연준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접근법보다는 더 나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달리 말하면 연준의 현실 인식에 대한 매우 강한 경고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서머스, 바이든의 과도한 재정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리라 예상
사실 서머스는 지난해 2021년 초부터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는데, 그 때에도 서머스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는 「재정자극 정책에 대한 나의 컬럼이 많은 질문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 나의 답변이 있다」(2021년 2월 7일)라는 글에서 자신이 금융위기 당시 오마바 행정부의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지하다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서는 왜 강한 우려를 표명하는가를 설명했다.
첫째,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재정지출 규모는 GDP 갭(실제 산출량에서 잠재 산출량을 뺀 값)의 절반 수준이었으나, 바이든 행정부의 부양책은 GDP 갭을 세 배나 초과하는 규모로, 잠재GDP를 훨씬 더 초과하는 경기과열을 일으킬 것이다. (이는 2021년 3월에 발표된 인프라 투자계획을 반영하지 않은 수치다.) 둘째, 공공투자와 같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효과가 큰 부문에 대한 투자보다는 개인 소득보전 비중이 높다. 그는 바로 이런 이유로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정책은 코로나19 위기 이후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올리비에 블랑샤르도 「1.9조 달러 구제계획에 대한 우려를 옹호한다」(2021년 2월 18일)에서 재정지출 승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즉 추정치의 범위가 0.4에서 2.0에 이르러 그 폭이 매우 넓다), 경기부양책의 규모는 GDP 갭에 대비해 과도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재정지출이 수요압력 외에도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에 반응하여 상승한다면, 인플레이션의 폭이 매우 커질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우려가 지나치다는 반론도 많이 나왔다. 폴 크루그먼이 대표적이다. 첫째, 미국의 GDP 갭이 의회예산국의 추정치보다 더 클 것이다. 즉 바이든의 재정정책이 잠재산출량을 크게 초과하는 경기과열을 일으킬 정도는 아닐 것이다. 둘째, (실업률과 물가의 반비례 관계를 뜻하는) 필립스 곡선이 현재 평탄화되어 있다. 즉 실업률이 하락해도 물가상승율 증가는 미약하다. 셋째, 재정지출의 구조를 보면 일회적으로 납세자에게 제공되는 수표는 소비지출보다는 저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주정부나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은 여러 해에 걸쳐 점진적으로 지출되므로 재정지출 효과가 분산될 것이다. 따라서 크루그먼은 바이든의 재정정책이 결코 과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는 지난해 3월 “바보나 정치꾼(즉 서머스)과 토론하는 일은 이상하지만 익숙해져야 한다”며 서머스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이 크루그먼이 올해 7월 21일 《뉴욕 타임스》에 「인플레이션에 관해서 내가 틀렸다」는 글을 발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크루그먼은 2021년 초반 1.9조 달러의 미국구제계획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의 입장이 오판이었다고 인정했다.
결국 2021년부터 이어진 인플레이션 논쟁에서 서머스의 예측이 더 타당하다고 판가름이 난 셈이기 때문에, 장기침체나 장기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서머스의 목소리에도 자연스럽게 힘이 실린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몹시나 음울한 것이다. 첫 번째, 연착륙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 중앙은행이 강력히 대응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더라도 장기간 큰 규모의 실업이 불가피한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이다. (즉 장기침체) 세 번째, 최악의 경우는 중앙은행이 적절한 대응에 실패해 장기간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일이다. (즉 장기 스태그플레이션) 그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두 가지 나쁜 길 중에, 그래도 장기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장기 침체가 덜 나쁘다는 우울한 진단을 내놓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서머스가 바이든 행정부의 과도한 재정정책(수요요인)이 이러한 상황을 촉발했다는 진단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서머스는 공급망 문제가 완화되더라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공급부족이 완화되어 중고차나 가솔린 가격이 하락한다면, 사람들이 다른 상품을 더 구매할 것이므로 물가상승 압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금리인상과 부채위기: 루비니, 부채위기를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다
줄곧 어두운 전망을 제시하여 닥터 둠(종말의 날)이라고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는 다른 각도에서 음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그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의한 부채위기라는 위험이 불안스럽게 다가온다」(2022년 6월 29일)라는 글에서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이고, 수요요인과 공급요인이 혼합되어 있긴 하지만 점점 더 공급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중앙은행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경착륙, 즉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전제로 한다.
그의 요지는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 경기침체로 이어질 때, 과연 중앙은행이 매파적 결단, 즉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있다. 많은 분석가들은 중앙은행이 매파적 태도를 유지하리라 예측하지만, 루비니는 중앙은행이 겁을 먹고 오히려 높은 인플레이션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왜 그런가? 세계 GDP에 대비할 때 민간, 공공의 부채수준이 과거보다 훨씬 높다. 1999년 200%에서 2022년 350%로 상승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이자율이 상승하면 대출이 많은 좀비 가계, 기업, 금융기관, 정부는 파산과 지불불능으로 빠질 것이다. (여기서 좀비란 죽었는데 산 것처럼 행동하는 자를 뜻한다. 곧 갚기 어려운 부채로 연명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즉 경기침체와 함께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높아지면 중앙은행이 매파적 입장을 포기할 공산이 크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첫째, 공급요인이 큰 상태에서 금리인상이 중단 또는 역전되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있었지만 대규모 부채위기는 없었고,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부채위기가 있었지만 그 후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 압력이 뒤따랐다. 따라서 우리는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과 2008년식 부채위기가 결합될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즉 금리인상이 중단 또는 역전되더라도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간 이어진다면 부채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이럴 때 중앙은행과 정부는 사면초가에 빠질 수 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공격적으로 완화하기도 어렵고, 정부가 부채위기 상황에서 재정수단을 활용하기도 어렵다.
최근 세계 각국 중앙은행 대부분이 이미 긴축적인 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 버블이 꺼지고 있다. 공모펀드와 사모펀드, 부동산, 주택, 밈 주식(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주식), 암호화폐, 스팩주(기업인수목적회사가 발생하는 주식) 등등 모든 게 그러하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가격은 하락하지만, 부채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상승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부채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신호다.
종합해보면, 서머스는 바이든 행정부의 과도한 재정정책이 촉발한 수요요인이 급격한 인플레이션의 기저를 이루고 있으며 공급측 요인이 완화되더라도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장기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하려면 중앙은행이 단기적으로는 상당히 파괴적인 효과를 내더라도 공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다른 한편, 루비니는 부채위기의 폭발 가능성을 강조한다. 그는 중앙은행이 공격적인 정책을 써도 부채위기가 발생할 수 있고, 이를 중단 또는 역전하더라도 스태그플레이션이 이어지면 부채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머스와 루비니의 전망에 따르면 세계경제의 미래는 밝지 않다.
실제로 앞으로의 상황이 서머스나 루비니의 예측대로 전개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의 예측은 연준의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예측대로 전개되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로서, 우리가 그 위험성을 분명히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과 정부 부채의 감소효과: 재정적 물가이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소개한 뉴케인지언 인플레이션 이론과 다른 부르주아 경제학 이론도 있다. 새고전파 거시경제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하버드대학의 로버트 배로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짧은 글, ‘최근 미국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해’(2022년 8월 30일)에서 공격적인 재정정책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연준은 단기 명목이자율을 제로(0%)로 유지하고 수량완화 정책을 확대해 연준의 대차대조표를 4조 달러에서 9조 달러까지 늘렸다. 그는 연준이 2022년까지 정책금리를 올리지 않았고, 따라서 명목금리로 인플레이션 상승을 억누른 데 실패하면서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연준의 정책만으로 이번 인플레이션을 설명할 수 없다.
금융위기 이후, 즉 2009년 초반부터 2015년 말까지 7년 동안에도 단기 명목금리가 제로로 고정되어 있었고, 연준 대차대조표도 2008년 8월 0.9조 달러에서 시작해서 4조 달러까지 증가했다. 그렇지만 인플레이션은 연평균 2%였고, 기대 인플레이션도 이와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그때와 현재의 차이는 무엇인가.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봄에 개시된 대규모 재정정책이다. (연방정부의 이전 지출은 대침체 기간에 비해서도 거대하게 증가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연방정부의 지출은 연간 5조 달러 규모였는데, 2022년 1분기까지 이를 넘어서는 초과지출의 누적액이 4.1조 달러에 달해, 2021년 GDP의 18%에 이른다. 트럼프가 대통령이던 2020년 2분기에 지출은 (연율로 환산해) 9조 달러, 3분기에 7조 달러였고, 바이든 대통령 하에서 2021년 1분기, 2분기 각각 8조 달러였다.
여기서 배로는 ‘재정적 물가이론’을 끌어온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부가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올려서 추가적 지출에 필요한 돈을 조달할 계획이 없다면, 정부의 ‘수입’은 기대하는 수준을 뛰어넘는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정부채권의 실질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이를 지금 현실로 설명해보면, 공공이 보유하고 있는 순공공부채의 액면가는 2020년대 중반 21조 달러였다. 그런데, 소비자물가가 11% 급상승했기 때문에 순공공부채의 가치는 2.3조 달러 감소했으며, 이는 곧 연방정부의 ‘수입’을 의미하게 된다. (물가가 갑자기 급상승했기 때문에 정부가 지불해야 할 명목이자율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초과지출이 4.1조 달러인데, 인플레이션에 따른 정부 ‘수입’이 아직 2.3조 달러이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려면 인플레이션이 더 급상승해야 하고, 11%를 넘어 19% 수준까지 올라야 한다는 산술적 결론이 도출된다.
물론 중앙은행이 이런 상황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좀 더 합리적으로 예상하면, 소비자 물가지수 인플레이션은 현재 수준에서 상당히 빠르게 하락하여, 앞으로 5년쯤은 3.5% 수준을 유지하고, 궁극적으로 2% 수준으로 내려올 수 있으나, 급상승한 물가수준은 영구적으로 지속될 것이다. 즉 2%라는 기존의 목표 인플레이션 수준을 초과하는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지속되어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부채의 실질가치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이러한 ‘재정적 물가이론’에 따르면 정부는 적극적 재정정책이라는 명분으로 부채를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용인함으로써 무작위 대중의 희생을 대가로 부채 부담을 줄인다. 정부가 얼마나 의도적으로 고인플레이션을 용인했느냐는 정치적 논점을 일단 뒤로 미루어 놓고 본다면, 과도한 재정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고, 인플레이션이 정부의 부채 부담을 완화하고, 대중의 실질임금, 실질구매력 약화라는 희생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다.
2. 한국의 인플레이션과 정책대응 쟁점
한국의 인플레이션, 현황과 전망
이제 한국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올해 6월 한국은행이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월 전년동기대비 4%를 웃돈 후 빠르게 상승하여 5월에는 5%를 넘었다. (보고서 발표 후) 6월에는 6.05%를 기록해 외환위기 이후 2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7월에는 다시 6.3%로 더 올랐으나, 8월에는 5.7%로 오름폭이 다소 낮아졌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2~4월 3%대를 보이다가 5월 이후 4%대로 올라와, 7월에는 4.5%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글의 앞부분에서 제시한 것처럼) 인플레이션을 요인을 수요요인과 공급요인으로 나누어 명확히 계량화해서 제시하지는 않는다. “공급측면뿐만 아니라 수요측면의 인플레이션 요인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정도로 표현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국내 전가와 시사점」(2022년 7월 13일)에 따르면, 6월의 6.05% 상승에서 근원품목과 에너지·식료품의 기여도가 각각 3%p, 3.05%p로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 근원 인플레이션이 높은 미국, 영국, 캐나다와 유사하다고 보았다. 또한 근원 인플레이션은 대부분 서비스의 가격상승 때문으로 보는데, 이는 대체로 수요회복에 기인한 것으로 간주한다. (가중치를 고려할 때 서비스가 근원품목의 69%를 차지한다. 서비스가 아닌 상품은 내구재(10.9%, 기타 공업제품(8%), 섬유제품(5.6%), 의약품(2%)으로 구성된다.) 비용측면에서는 전산업에서 명목임금 상승률이 올라갔고 (지난해 4/4분기 5.2%에서 올해 1/4분기 7.2%), 제조업과 금융·보험업에서 특별급여도 증가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꼽는다.
한국은행이 8월 25일 발표한 「경제전망」에 따르면 “금년 중 소비자물가는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수요압력 지속, 농산물가격 상승 등으로 5월 전망 수준을 상당 폭 상회할 전망”이다. 즉 6월 「통화정책신용보고서」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5월 시점에서) 하반기 4.6%, 연간 4.5%로 예측했는데, 8월 「경제전망」에서는 하반기 5.9%, 연간 5.2%로 더 높게 조정했다. (이에 동반하여 5월 전망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금년 2.7%, 내년 2.4%로 예측했는데, 8월 전망에서는 각각 2.6%, 2.1%로 하향 조정했다.)
8월 2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2.25%에서 2.50%로 올려서 4회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는 1999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금리목표제)를 도입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날 발표한 「통화정책방향」에서는 “물가가 목표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한국의 인플레이션, 정책적 쟁점과 함의
지난 7월 13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75%에서 2.25%로, 한 번에 0.50% 올리기로 발표했다. 한 번에 0.50%를 내린 적은 있어도 올린 적은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결정이었다. 이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국은행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때 질의응답을 보면 무엇이 쟁점인지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물가상승이 국제 유가나 글로벌 공급 같은 외부요인의 영향이 더 커서 금리만으로는 잡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는 공급요인이 커서 중앙은행 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미국에서의 논쟁과 유사하다. 이 문제는 한국은행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문제로 보이는데, 올해 4월 한국은행 연구진은 「고인플레이션에 대응한 통화정책 운영」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 글 중 일부가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도 다시 실렸다. 이 글은 1970년대 미국과 독일 사례를 비교하는데, 결론은 “유가상승 등 비용충격 발생시에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안정을 도모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정책을 운영하는 게 중장기적 시계에서 긴요하다”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행의 분석에서는 공급측면뿐만 아니라 수요측면에서의 인플레이션 압력도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강조한다.)
한편 이창용 총재는 “물가를 금리만으로 잡을 수는 없다”라는 표현보다는 “물가를 금리만으로 잡으려고 하면 그 비용이 너무 크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비용이란 금리를 1%p 올리면 1년 내에 경제성장률이 0.2% 정도 하락한다는 뜻이다. 만약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겠다는 강한 시그널을 보내더라도 가격-임금이 서로 마주보고 거세게 올라가는 물가상승 회오리 같은 일이 발생하면, 이를 억누르기 위해 더욱 강한 금리인상이 요구될 것이며, 경제성장률 하락폭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경제주체의 협력을 통해서 물가를 잡는 것이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한국은행이 인위적인 가격-임금통제를 옹호하거나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고물가의 위험과 경기둔화의 위험 중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6%의 물가상승률, 4%의 근원물가상승률이 경기가 어떻든 간에 너무 높은 수준이고, 고물가가 고착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그는 “6%가 넘는 물가상승률이 계속되면 경기보다도 우선적으로 물가를 잡는 것이 경기에도 좋고 거시경제 운영에도 좋다”고 말했다. 즉 고물가가 고착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최악의 상황으로 간주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셋째,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감내할 수 있다고 보냐는 질문이 계속 나왔다. 이에 대해 그 수준을 절대적으로 얼마라고 말할 수는 없고, 자본유출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외환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를 구체적으로 관찰하면서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한국의 인플레이션 정책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정책과 정책적 틀이나 그에 동반되는 위험이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둘 다 뉴케인지언 거시경제정책의 기본 틀을 공유한다.) 첫째, 인위적인 가격-임금통제 정책은 시행할 여건도 없고 성공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 둘째, 중앙은행이 적극적 대응책을 찾지 않을 경우, 장기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악화될 위험이 상존한다. 셋째, 그렇다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중앙은행의 정책적 대응이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는데, 근원(코어) 인플레이션, 기대 인플레이션이 급속하게 올라가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큰 폭의 금리인상과 그에 따른 경기침체 위험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넷째, 그럴 경우 경기침체를 넘어 부채위기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데, 특히 한국의 경우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쟁점이다. 다섯째, 한국의 경우 한미 금리역전이라는 문제도 정책적 시야에 포함되어야 한다. 어디가 임계점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금리 격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한국경제는 살얼음판 위를 매우 조심스레 걷고 있는 형국이다.
3. 인플레이션에 대한 마르크스 경제학의 관점과 분석
마르크스 경제학과 인플레이션: 현대적 화폐신용체계와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의 인플레이션 편향
마지막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은 인플레이션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검토하겠다. 쉬잔 드 브뤼노프는 『국가와 자본』(1976)에서, 중앙은행권(불태환 민족화폐)을 바탕으로 중앙은행이 정점에 서있는 현대적 화폐·신용체계와, 이를 기초로 한 케인지언 경제정책(재정정책, 통화정책)이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 편향’을 지닌다고 진단했다. 왜 그런가.
첫째, 현대적 화폐·신용체계에서는 개별 기업이 생산한 상품이 판매되고 수익을 남길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은행이 자신이 보유한 예금을 기초로 기업에 신용을 공급한다. 또한 중앙은행은 은행이 보유한 예금을 중앙은행권과 교환해준다. 그런데 한 번의 예금과 대출이 다음 번의 예금과 대출을 낳는다. 대출을 받은 사람이 다시 예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복적 과정을 신용창조라고 부르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얼마나 통화량이 증가했는가를 측정하는 게 통화승수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기업의 상품이 판매되지 않아 실현 위기가 즉각 발생할 위험을 시간적으로 뒤로 미루되, 인플레이션을 낳을 잠재력을 동반하게 된다.
둘째, 케인지언 거시경제정책은 공급과잉을 흡수하고 사회적 수요를 창출하고자 정부지출을 확대한다. 그런데 예산적자를 통한 국가의 지출은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미래의 조세수입으로 갚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최종결제을 미래로 연기하는 셈이거나, 심지어 △예산적자를 더 확대함으로써, 즉 국가가 새로운 빚(국채)을 내서 과거의 빚(국채)을 갚는 부채누적을 허용한다는 의미에서, 최종결제를 무기한 연기하는 셈이다. 그런데 국채의 발행은 은행의 신용창조 과정에서 늘어난 통화량을 매개로 하거나, 심지어 중앙은행이 직접 화폐를 찍어 구매할 것이므로(국채의 화폐화) 인플레이션 잠재력을 지닌다. 즉 현재 발생할 위기를 정부의 적자재정과 정부지출을 통해 미래로 미룰 때, 인플레이션 위험을 동반하게 된다.
이를 종합하면, 한 마디로 인플레이션은 위기의 연기이자 분산이고, ‘미래로의 도피’다. 자본주의가 성장기일 때는 이러한 인플레이션이 ‘온건하게’ 나타날 수 있었다. (1948~71년 사이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연간 물가상승률은 평균 3%였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면 1970년대처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비화될 수 있다.
케인지언 경제정책의 인플레이션 편향의 폭발: 1970년대 구조적 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
보통 1970년대를 ‘비용인상형’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1965~66년부터 미국에서 자본축적의 곤란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역사적 사실을 엄밀히 말하면, 비용이 인상되어서 경제가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 경제가 어려워져서 가격이 상승한 것이다.
기업의 생산성이 하락하고, 이윤유보를 통해 투자에 자금을 조달하기도 어려워졌는데, 이는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지표였다. 서방의 산업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50년 70%에서 1973년 49%로 감소했고, 1971년에는 20세기 이후 최초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처럼 미국이 자본축적에서 어려움을 겪자 이는 곧 달러지배력의 약화로 나타났다. 국제통화로서 달러의 약화되자 미국 내부에서도 달러약화가 이어졌다. 즉 1973-4년 연간 물가상승률이 10%를 상회해서 두 자리 숫자 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1974년에 이르게 되자, 현재로부터 미래로의 도피, 즉 인플레이션의 가속화로도 실업률의 급상승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곧 스태그플레이션이 가시화되었다.
요약하면,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며 위기를 미래로 연기하는 케인지언 경제정책에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생산성 하락이나 이윤율 하락과 같은 구조적 위기와 조우하면 물가인상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파괴적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폭발할 수 있다.
이러한 브뤼노프의 분석을 통해서 1970년대 나타난 (케인지언) 비용인상 인플레이션 이론이나, 통화주의 이론(현대적 화폐수량설)이 지닌 맹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비용인상 인플레이션 이론은 비용인상 요인을 강조하지만, 사실 투입물 가격의 상승에 따라 산출물의 가격이 상승했다는 ‘동어반복’일 뿐이다. 이는 산업에 가해진 비용-가격 압박이 나타난 진정한 원천에 대한 설명은 없고, 대체로 ‘외생적’ 충격으로 다룰 뿐이다. 즉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진정한 그 원천인 자본생산성 하락, 이윤율 하락 경향에 대한 분석이 없다.
다음으로, 통화주의 이론은 인플레이션이 화폐공급이 과잉 급증한 결과로 본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경제의 자연적 성장능력에 맞추어서 통화공급을 엄격히 통제한다면 인플레이션이 감소하고 저지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통화의 급격한 팽창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1970년대에 나타난 인플레이션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왜 그런가. 통화주의 이론은 재화와 서비스가 가격이 없는 상태로 시장에 진입한다고 가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생산자가 교환 이전에 가격을 설정하고, 이때 생산조건이나 시장의 상황에 의존한다. 화폐 증가는 사후적으로 고려하는데, 설정하는 가격이 충분한 수입을 보장하느냐를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화주의는 화폐 증가를 고려하기 전에, 즉 시장에 진입하여 교환이 이뤄지기 전에 설정하는 가격이 상승하는 문제를 무시하는 셈이다.
2020년대, 케인지언 경제정책의 인플레이션 편향이 다시금 위기로 폭발하는가
이처럼 1970년대나 1990년대에 제시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접근법, 즉 자본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하락이라는 맥락에서 2007~09년 금융위기와 장기침체에 접근할 수 있다. 여기에다가 2007~09년 금융위기와 장기침체, 즉 자본주의가 원활히 재생산되기 어려운 위기에 직면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대처하며 떠오른 새로운 현실, 즉 엄청난 규모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에 대한 분석을 추가해야 한다.
앞에서 서머스나 배로가 지적한 것처럼, 금융위기 이후 연준의 명목금리 목표는 장기간 제로 상태를 유지했고, 대규모 수량완화 정책이 개시되어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2008년 8월 0.9조 달러에서 시작해 코로나19 대유행 직전까지 4조 달러로 급증했다. 이를 축소하려는 정책(테이퍼링)이 충분히 진행되기도 전에 코로나19 대유행과 그에 동반된 경기침체가 개시되었고,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다시금 거대하게 팽창해 9조 달러에 이르렀다. 또한 루비니가 지적한 것처럼, 여기에다가 대규모 재정정책이 지속되면서 1970년대와 달리 미국의 정부부채가 급격히 누적되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재정지출은 금융위기 때 규모를 능가했다. 미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규모는 1970년대 30%대에 불과했으나, 2022년 130%를 기록했다. 이러한 대규모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인플레이션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 상상할 수는 없다. 이는 지금 수십 년 만에 새로운 기록을 낳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웅변하는 현실이다.
이때 강도 높은 통화긴축이 벌어지면 경기침체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기업의 생산성이 하락하고 이윤율이 하락하면 기업은 유보이윤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고 부채가 누적된다. 이때 금리가 올라가면 부채위기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인플레이션 위험이나, 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서머스가 주장하는 장기침체나, 루비니가 예상하는 부채위기의 폭발 가능성은 케인지언 경제정책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고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 위기 가능성을 분석하는 마르크스 경제학이라는 틀을 통해서 그 의미를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