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2 겨울.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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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라는 쟁점으로 살펴본 세계경제

임필수 | 정책교육실장
2020년 말에 발표한 사회진보연대의 경제전망은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이런 저인플레이션은 지속 가능한 것일까? 2021년 당장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저인플레이션이 가능한 조건은 점차 침식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21년 말에 발표한 경제전망에서도 이렇게 언급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또 다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굴리에모 카르케디와의 공동연구를 바탕으로, 미국이 향후 수년간 3% 이상의 인플레이션과 2% 미만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생산성이 하락 중이고 유동성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2022년은 세계 각국이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지지 않게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조정할 수 있을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시기다.”

이제는 2023년 경제전망에서, 이미 폭발한 인플레이션의 충격과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이 가하는 경기침체 위험을 살펴보아야 할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2023년에 특히 주목해야 할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이 강력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연준의 금리인상, 양적 긴축이 단행된 후, 자금경색과 금융 불안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연준의 결단이 지속될 것인가.
둘째, 중국의 부동산 시장 악화, 소비 위축이 정부의 적극적인 부동산 대책, 소비 진작책으로 역전될 수 있을까.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구제하려는 구제금융 정책은 부동산 거품을 키우는 결과를 낳지 않을 것인가. 
셋째, 대외경제 상황에 취약한 한국경제는 세계적 통화긴축, 경기침체를 버텨낼 수 있을까. 수출 부진과 투자 부진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의 하방 압력은 경제 전반에 걸쳐 어떤 파급효과를 낼 것인가.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핵심 문제들을 살펴보고, 이러한 문제가 얼마간 관리된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저성장, 이른바 ‘장기침체’라는 본질적 문제가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기저에 깔려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도록 하겠다.
 
 

1. 2023년 세계경제 전망 

 
 
2023년에는 세계경제 성장이 한 단계 더 가라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10월 6일에 발표한 추산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이 2021년 5.8%에서 2022년 2.9%로, 2023년 다시 1.8%로 내려갈 것이다. 통화정책 긴축이 세계적인 성장감속의 가장 중요한 추동력이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에너지 가격 충격이 끼치는 직접적 영향이나, 중국의 어두운 전망도 그에 기여하는 중대한 요인이다.   
 

1) 국가별 전망 


먼저, 선진국들을 살펴보면, 경기침체가 곧 닥칠 듯하다(그림1). 미국의 2022년 GDP는 2021년보다 1.7% 상회했으나, 2023년에는 2022년보다 0.5% 하락할 전망이다. 유로지역 경제는 2023년에 수축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는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제한으로 타격을 입었다. 영국의 경우, 에너지 위기, 고인플레이션, 기타 요인이 경제를 짓누르며, 최근 데이터는 이미 경기침체가 진행되고 있다고 시사한다. 일본의 경우, 인플레이션이 온건하고 따라서 통화긴축이 별로 필요 없지만, 다른 나라들의 경기감속 때문에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행이 11월 24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는 2023년 미국의 GDP 성장률을 0.3%, 유로존 –0.2%, 일본 1.3%, 중국 4.5%로 내다보았다.)
 

신흥시장국도 2023년에 대부분 부진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경제부양책이 코로나 폐쇄에 따른 상당한 장애와 부동산 부문의 하강을 상쇄할 만큼 강하지 않았다. 그 결과 경제성장이 계속해서 정부 목표에 밑돌 가능성이 크다. 인도는 팬더믹 취약성에서 회복하기 시작했으나, 올해의 성과가 통화긴축과 외부역풍으로 약화될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상당한 경제적 파급효과와 제재로 인해 계속 고통을 받을 것이다. 브라질의 경제적 성과는 정치적 교착상태로 인해 손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룰라 후보에게 1.8%p 격차로 패배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결과에 불복하고 지지자들이 대선 후 3주 이상 폭력을 동반하는 강력한 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룰라 당선인은 친시장 성향의 부통령 후보와 출마했고, 집권 당시에도 재정안정과 아마존 환경보호에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의 당선이 경제적 성과를 불러올 것이라 기대하는 흐름도 있다. 그러나 브라질의 정치적 양극화가 워낙 격렬하므로 정책집행에서 큰 갈등과 충돌을 예상할 수 있다.)
 

2) 미국의 인플레이션 전망


미국의 핵심 이슈는 거의 1년에 걸친 경제성장 감속이 주목할 만한 인플레이션 하락을 낳지 못했다는 점이다(그림2). 연준은 정책금리를 올렸고, 금융긴축이 이어졌다. 주택수요가 하락했고, 소비자 지출도 감소했다. 그러나 미국 노동시장은 여전히 타이트하고, 임금성장은 팬더믹 이전에 비해 여전히 빠르다. 나아가 노동공급이 증대하여 노동시장이 느슨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없어 보인다.

가장 최근의 상황을 보면, 2022년 10월 중 단기(1년) 기대인플레이션이 7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서고, 장기(5년) 기대인플레이션도 4개월 만에 다시 상승하였다. 이를 반영하여, 한국은행의 보고서, 「최근의 미국경제 상황과 평가」(2022.11.)는 “적극적인 통화긴축에도 불구하고 서비스관련 가격은 오히려 상승세가 확대되고 기대 인플레이션까지 오르는 등 높은 인플레이션 지속 가능성이 커진다”고 평가했다. 현재 조건을 볼 때,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와 폭이 온건해질 것이라고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따라 미국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미국 실업률은 2022년 8월 3.7%에서 상승하여, 내년에는 5.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다만 이렇게 실업률이 올라갈 경우, 코어 개인소비지출(PCE) 인플레이션은 2022년 4분기 동안 4.6%에서 2023년 4분기 동안 3.6%로 완만해질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한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견해에 따르면,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경기침체는 역사적 기준에서 보면 온건한 편에 속한다. 모든 소득분포 수준에서 (즉 소득이 높건 낮건 간에) 개별 가계의 자산이 팬더믹 이전 수준보다 높고, 기업 이윤도 역사적 기록 중에서 높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가계와 기업이 이러한 수준의 경기침체는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반면 미국의 전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는 이미 2022년 6월 21일 시점에 훨씬 더 어두운 예측을 한 바 있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실업률이 5년간 5%를 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2년간 7.5%의 실업률, 5년간 6%의 실업률, 아니면 1년간 10%의 실업률을 겪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머스는 10월 31일에 발표한 글, 「인플레이션 억제가 최우선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멈출 수 없다」는 글에서도 미국의 거시경제가 처한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지난 75년을 통틀어 가장 복잡한 거시경제적 도전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현재는 실업률이 낮고, 그래서 2007~9년 금융위기나 1970년대 인플레이션만큼 암울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로 얽혀있는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는 말이다.

첫째, 코어 인플레이션율이 여전히 7%에 가까우며 하락하지 않고 있다. 둘째, 인플레이션의 역기능과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의 역기능이 결합함으로써 2023년에 경기침체가 개시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연준은 실업률이 4.4%를 넘지 않고서도 인플레이션이 2% 목표치로 내려올 수 있다고 암시했는데, 이는 타당성이 없다. 셋째, 연준은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수준으로 이자율을 올렸다. 시장은 충격을 받아 휘청거렸는데, 이는 국채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다른 시장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줄 가능성이 있는 수준이었다. 넷째, 미국의 이자율이 오르고 기록적인 달러 강세가 나타나자 세계경제 모든 곳에서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상황이 완전히 종식된 것도 아니며, 이번 겨울에 발병이 늘어날 수 있다.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장기적인 코로나 상황으로 고용에서 철수한 것으로 추산되며, 나아가 코로나의 영향으로 미국의 생산성 성장이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8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비농업부문에서 시간당 산출로 측정된 2분기 노동생산성은 전년 대비 2.5% 하락했다. 반면 단위노동비용은 급상승하여, 강한 임금압박이 지속되고 있다고 시사했다.)

평상시라면 이러한 문제 각각이 매우 중요한 의제로 다뤄졌을 것이다. 서머스는 이러한 문제들이 서로 얽혀있는 복잡한 상황에서 정책입안자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질문한다. 그는 정책목표는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일자리를 원하는 노동자가 최대한 많이 고용되고, 가능한 한 높은 소득을 얻는 것이다. 나머지는 오로지 고용과 소득이라는 목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한다. 그는 1980년대 초반, 연준 의장 폴 볼커가 심각한 경기침체라는 비용을 무릅쓰고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구사한 것도, 그가 노동자의 고용과 소득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억제가 늦어질수록 고통이 가중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원칙이 현 상황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의 구인공고(job opening)가 최대 수준에 도달하고 노동부족이 심각해 노동자의 협상력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자의 실질소득은 상당히 감소했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되지 않으면, 노동자의 구매력이 증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서머스는 연준이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다. 연준 의장 파월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충분히 긴축적으로 끌고 가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사람들이 연준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신뢰할수록, 인플레이션 억제가 성공할 가능성도 커지고, 고통도 감소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연준에게 이자율을 높게 올리지 말라고 정치적 압력을 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매우 유익하다. 

그런데, (폴 크루그먼처럼)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논자들 중에는 연준의 통화정책 긴축이 과잉될 경우, 과도한 경기침체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다. 물론 민간주택 부문 데이터나 여타 일부 지표는 2023년에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것이라고 암시하기도 하지만 아직 확신을 줄 정도는 아니다. 혹자는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이 억제되고 있으므로 연준이 좀 느긋해져도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역이다. 즉 서머스는 연준이 예상보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이 억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통화정책 긴축이 당연히 독성효과를 동반하므로 여러 정책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첫째, 미국 국채시장이나 여타 시장의 위기가 나타나기 전에 정책당국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은행 부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데 비해 비은행 금융부문에 대한 규제는 미흡한 측면이 많기 때문에, 다음번 위기는 비은행 금융부문에서 출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적절한 규제조치가 필요하다. 둘째, 1980년대나 2009년 금융위기 당시 나타난 라틴아메리카의 부채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따라서 신흥시장 국가들을 위한 채무 구조조정, 금융지원책을 찾아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좀 더 살펴보자. 
 

3) 연준의 양적 긴축 이후: 금융불안과 기업의 자금경색  


2022년 5월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0.5%p의 금리인상(빅 스텝)을 단행하면서, 동시에 양적 긴축(quantative tightening, QT)을 실시한다고 공식화했다. 여기서 양적 긴축은 양적 완화(quantative easing, QE, 수량 완화)의 반대라고 볼 수 있다. 양적 완화 정책은 연준이 시장에서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함으로써, 긴급하게 유동성을 주입해 채권금리를 낮추고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는 정책을 뜻한다. 반대로 양적 긴축은 보유자산의 재투자 중단이나 보유자산의 매각을 통해 연준의 자산과 부채(즉 대차대조표 규모)를 줄이는 정책을 뜻한다. 이럴 경우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고, 채권의 금리를 높인다.

연준이 5월에 발표한 방식은 보유자산의 재투자 중단이었다. 즉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나 MBS를 만기정산을 하는 방식으로 보유채권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연준은 줄여나가는 양을 국채의 경우 월 300억 달러에서 시작하여 3개월 후 600억 달러로 하고, MBS의 경우 175억 달러에서 시작하여 3개월 후 350억 달러로 한다고 발표했다. 이럴 때 국채의 발행자인 재무부는 재정균형을 이루고자 한다면 매달 300억 달러(9월 후는 600억 달러)의 국채를 새로 발행해 연준이 아닌 다른 주체에게 팔아야 한다.

여기에다가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야심 찬 재정지출 프로그램에 따라 매년 1조 달러의 재정적자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이 달러 강세 기조에 따라 자국 통화 약세 흐름을 방어하기 위해 환율 개입에 나설 때, 각국 중앙은행은 미국 국채를 팔아 달러를 조달해야 한다.
 
 

따라서 이처럼 어마어마한 미국 국채와, 그에 덧붙여 MBS를 미국 민간과 해외부문이 어떻게 흡수할 것이냐는 문제가 떠오른다. 민간과 해외부문이 미국 국채물량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유동성이 증발할 경우, 세계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미국 국채 가격이 추락하고 시장이 마비되면서 금융시장 전체가 불안에 빠질 위험이 있다.

또한 세계적 수준에서 달러 유동성이 위축되면서 기업의 자금경색이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할 수 있다. 기업이 채권을 발행해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여건도 악화하고, 은행의 대출기준이 강화되면서 은행대출이라는 간접 조달 경로로 좁아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가 발표한 「주요국의 기업부도 증가와 전망」(2022.11.22.)에 따르면, 주요국의 기업부도 건수는 코로나 발생 이전보다 대체로 낮은 수준이지만, 올해 2분기 이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점차 증가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저금리 여건에서 존속할 수 있었던 한계기업, 중소기업이 재정, 통화정책의 동시적 긴축과 경기둔화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또한 회사채의 디폴트가 증가할 경우, 채권시장의 불안이 확대될 것이다.
 
 

4) 미국의 통화정책과 근린궁핍화 


다른 한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모리스 옵스트펠드는 「세계적 조정이 없는 통화정책이 역사적인 세계적 경제둔화라는 위험을 낳는다」(2022.9.12.)에서 미국 통화정책의 국제적 측면을 분석한다. 먼저 그는 1980년대의 반인플레이션 정책이 ‘근린궁핍화’(beggar-thy-neighbor), 즉 이웃국가를 가난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 이자율을 올리면, 한국의 통화는 그에 대비해 가치가 하락한다. 한국의 수출이 미국 통화로 이루어진다면, 한국의 수입물가가 올라갈 것이다. 즉 미국의 통화 긴축은 인플레이션을 무역상대국에 수출함으로써, 근린궁핍화 효과를 냈다는 뜻이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미국이 이자율을 올릴 때 다른 나라 중앙은행의 고금리 정책도 고려하여 너무 과도한 수준에 이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달리 말해, 외국의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올리면 그 나라의 유휴수준이 높아지며, 그 나라로부터 수입하는 상품의 가격이 낮아져서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나라의 모든 중앙은행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즉 고금리 정책으로 가면 다른 나라들의 금리상승 효과를 한층 더 강화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경기침체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주장은 기본적으로 타당성이 있으나, 이를 고려한 각국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적정 수준을 계량적으로 도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또 한편, 서머스와 같은 논자는 과도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보다 과소한 정책을 오히려 우려한다는 사실을 볼 때,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에 대한 논란은 불식되지 않을 것이다.
 
 
 

5) 중국의 부동산 위기


한국은행은 「경제전망」(11.24)에서 제로코로나 지속, 부동산 시장 침체로 경기부진이 당분간 이어지리라 전망했다. 올해 중국의 (전년동기대비) GDP 성장률은 1/4분기 4.8%, 2/4분기 0.4%, 3/4분기 3.9%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내년 전망치를 4.5%로 내놓았다. 그런데 중국 경제의 부진한 실적은 단지 제로코로나 정책과 같은 일시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올해 10월 26일 《월 스트리트 저널》은 중국이 ‘중간소득국가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기고문을 내놓았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후진성의 이점’을 활용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하여 중진국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이러한 이점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상승과 자체적인 기술혁신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모형을 구축해야 하나, 숱한 개도국이 이에 실패하여 장기간 중진국 수준의 국민소득에 머물게 된다. (중진국 함정은 뒤에서 한국경제를 언급할 때 다시 나온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시진핑 주석의 독주체제, 강압통치가 강화될수록 중국의 장기적 성장전망은 어두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미 중진국 함정에 접어들고 있는 와중에, 국유기업이 늘어나고 국가자원의 관료적 배분이 확대되면서 비효율과 낭비가 커지고, 혁신역량이 감소한다는 의미다. 
 

중국의 부동산 부문은 이러한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베이징의 정책당국이 GDP의 고성장을 설정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인프라 투자와 주거용 부동산 활황 덕분이었다. 지방정부는 토지매각과 부동산 개발회사의 일자리에 큰 덕을 보았다. 개발 붐에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이 GDP의 25% 수준을 뛰어넘고, 가계소득 성장의 75%를 차지하는 것은 불건전하고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이 너무 지나쳤기 때문에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주택가격 폭락으로 가계소득이 줄고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줄었다. 그러면서 소비지출이 줄고, 곤경에 처한 대형 부동산회사가 디폴트에 빠지게 되었다.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들은 완공되지도 않은 아파트 대출금 상환을 거부하고 있다. 정부는 소비 진착책을 펴고 부동산회사에 대한 구제금융에 나섰지만, 상황이 빠르게 개선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외에도 중국경제가 처한 상황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면서, 중국은 GDP 규모에서나 세계적 생산허브, 수출대국으로서의 위상에서나 여전히 경제대국으로 남겠지만, 중진국 함정에 빠진 채로, 세계적 불안정성을 유발하는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금 당장 위기의 폭발점으로 꼽히고 있는 중국의 부동산 시장 상황을 좀 더 살펴보면, 15위 부동산 개발 업체인 쉬후이는 10월 말 만기였던 4억 달러(약 5,554억 원) 해외 채무 상환에 실패한 뒤 11월 1일 상환 연기를 발표했다. 쉬후이는 정부의 보증을 받았는데도 상환에 실패했다. 11월 8일 쉬후이의 2024년 만기 채권은 시장에서 96센트에 거래되고 있다. 올해 1월만 해도 15달러에 거래됐는데 1년도 안 돼 가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같은 날 중국에서 가장 큰 부동산 개발사인 비구이위안의 2024년 만기 채권도 1.59달러에 거래돼 지난 1월보다 89% 급락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중국의 달러 표시 역외채권의 최근 1년간 디폴트율은 5.79%를 기록했다. 작년 12월만 해도 2.42%였지만 이후 급등해 지난 7월부터 4개월 연속 6%를 넘기기도 했다. 문제는 부동산 업체들의 대규모 채무 만기가 계속 도래한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올 연말까지 중국 부동산 업계의 국내외 채무 537억 달러(약 74조 3000억 원)에 대한 만기가 도래하고, 내년까지는 최소 2,920억 달러(약 404조 7,000억 원)를 갚아야 할 것으로 본다. 미국 투자사 루미스세일즈는 “중국 부동산 업계의 달러 채권 위기가 심각해져 더는 분석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빚을 상환하기 위해 필요한 수입은 오히려 줄고 있다. 지난 9월 중국의 주거용 부동산 거래량은 9,200만㎡로 전월 대비 12.5% 상승하긴 했지만, 여전히 작년 동기의 66%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3개년과 비교하면 55% 수준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미완성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주택이 중국 전역에 200만 채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 정부는 부동산 경기의 급격한 둔화를 막기 위해 다종다양한 지원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여전히 거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6) 소결: 강력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지속할 수 있을까


2023년 세계경제 상황을 살펴보았을 때, 초점은 결국 미국의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이 금융불안, 기업의 자금경색과 부도 위기로 나타날 조짐이 확대될 경우에도 금리인상 정책을 지속할 수 있느냐는 문제로 모인다.

지난 호 기관지에서 소개했듯이, 루비니 교수는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 경기침체로 이어질 때, 과연 중앙은행이 매파적 결단, 즉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많은 분석가는 매파적 태도를 유지하리라 예측하지만, 루비니 교수는 중앙은행이 겁을 먹고 오히려 높은 인플레이션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왜 그런가? 세계 GDP에 대비할 때 민간, 공공의 부채수준이 과거보다 훨씬 높다. 1999년 200%에서 2022년 350%로 상승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이자율이 상승하면 대출이 많은 좀비 가계, 기업, 금융기관, 정부는 파산과 지급불능으로 빠질 것이다. (여기서 좀비란 죽었는데 산 것처럼 행동하는 자를 뜻한다. 곧 갚기 어려운 부채로 연명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즉 경기침체와 함께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커지면 중앙은행이 매파적 입장을 포기할 공산이 크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공급요인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금리인상이 중단, 역전되면 스테그플레이션이 도래할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에는 스테그플레이션이 있었지만 대규모 부채위기는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부채위기가 있었지만, 그 후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 압력이 뒤따랐다.) 따라서 우리는 1970년대식 스테그플레이션과 2008년식 부채위기가 결합할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즉 금리인상이 중단, 역전되더라도 스테그플레이션이 장기간 이어진다면 부채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중앙은행과 정부는 사면초가에 빠질 수 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공격적으로 완화하기도 어렵고, 정부가 부채위기 상황에서 재정수단을 활용하기도 어렵다. 달리 말하면, 부채위기를 우려하여 매파적 입장을 포기한다고 해도, 결국 부채위기를 피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2. 저생산성과 부채위기라는 늪에 빠진 세계경제  

 

1) 세계적인 생산성 하락 


그런데, 더 본질적인 문제는, 경기침체를 감내해내면 세계경제가 팬더믹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빠른 경제성장으로 진입할 수 있냐는 데 있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시점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아담 포젠과 제로민 제텔마이어는 『저생산성 성장을 직시하자』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서두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지적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사실상 모든 나라는 평균 생산성 증가율이 감소했는데 이는 이전 10년 동안의 평균과 전후 장기 평균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총요소생산성(TFP) 성장의 일시적 호황이 끝난 후 하락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다른 주요 국가에서는 1970년대 초에 시작된 [하락] 추세가 지속됐다.”
 

세계적인 생산성 하락은 신흥국으로서도 매우 어두운 소식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신흥국과 미국 사이의 1인당 GDP 격차는 좁혀졌지만 이는 대부분 신흥국의 빠른 물적, 인적 자본 축적에 따른 결과였다. 사실 신흥국의 총요소생산성 성장은 미국보다도 느렸다. 신흥국의 생산성 상승은 선진국의 생산성 상승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아마도 대체로 무역과 관련된 파급효과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의 생산성 상승세가 둔화하면 신흥국은 이미 어려운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신흥국이 생산성 상승을 가속할 수 없다면 선진국의 생활수준을 추격하는 일은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2) 저생산성과 재정위기 


그런데 생산성 하락은 국가의 부채 문제에도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 부채수준이 높을 때, 노동생산성 성장률의 하락, 인구 고령화, 이자율 상승은 국가채무의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 노동생산성 성장 하락이 정부 채무에 영향을 끼치는 각 요소, 즉 기초적자, 이자율-성장률 격차, 환율, 우발부채에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생산성 성장률의 하락은 정부의 기초적자를 늘릴 개연성이 매우 높다. 생산성 성장의 감속은 소득 성장의 감속으로 이어지고, 따라서 정부지출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를 늘릴 것이므로 GDP 대비 정부지출은 증가할 것이다. 반면 GDP 대비 세금수입은 감소할 개연성이 높다. 누진세 구조에서는 실질소득이 증가해야 납세자의 과세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인구 고령화는 정부재정, 연금체계, 보건 분야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우, 급여와 비용이 불변이라고 가정할 때, 고령화는 보건 분야에서 연간 GDP의 1~2% 추가 지출을, 연금에 GDP의 1~4%의 추가 지출을 해야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두 번째로, 이자율과 경제성장률의 격차 문제를 보자. 개념적으로 생각하면, 이자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면 GDP 대비 채무의 비중이 증가하기 때문에 충분한 기초흑자가 필요하다. 반대로 경제성장률이 이자율보다 높다면 정부적자가 크더라도 채무가 안정화될 수 있다. 2007~2009년 금융위기 이후 이자율이 역사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정부의 채무 상환 비용을 크게 낮추었다. 

그런데 노동생산성 상승률 감속은 이 격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노동생산성 상승이 감속하면 성장률 상승도 감속한다. 그런데 저생산성이 이자율에 미치는 영향은 다소 모호하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이 생산성 성장은 감속하는데 이자율이 급격히 상승할 경우, 정부부채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세 번째로, 환율을 살펴보자. 이자율의 하락은 환율의 평가절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해외통화표시 채무를 지닌 국가에서 GDP 대비 채무가 추가로 증가한다는 함의를 지닌다. 부채의 추가적 증가 정도는 국내 이자율과 세계 이자율의 격차, 해외통화표시 채무의 비중에 달려 있다. 

네 번째로, 우발부채를 보자. 1990~2014년, 80개국에서 우발부채의 현실화로 GDP 대비 평균 6%의 채무가 확대되었다. (최고 기록은 아시아 위기 당시 인도네시아로, GDP 대비 57%가 늘었다.) 한국은 우발부채와 관련된 재정비용이 GDP의 31.2%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노동생산성 하락과 연결된 GDP 성장률 하락은 GDP 대비 우발부채의 비중이 커진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자율 하락은 위기가 발생할 때 통화정책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글은 코로나 위기 발생 이전에 쓰인 글로, 코로나 위기가 또다시 대규모의 정부 부채를 축적한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종합해보면, 미국, 일본, 영국은 지난 15년간 기초예산적자가 채무창출의 주요 추동력이었다. 또한 우발부채의 물질화(예를 들어 은행 구제금융)에 따른 비용은 재정적자로 기록되었다. 그에 따라 이러한 국가들은 낮은 성장률과 과중한 채무라는 난관에 직면해 있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 경제에서 장기침체와 노동생산성의 장기적 하락은 국가의 부채위기라는 형태로 표출될 잠재력을 지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부채위기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3. 한국의 경제전망

 

1) 2023년 경제전망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2년 11월 10일에 발표한 「KDI 경제전망」에서 “우리 경제는 2023년에 수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하고 투자 부진도 지속되면서 1.8%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는 세계 경제의 성장률이 2.7%라는 낮은 수치를 보이고, 원유 도입단가가 2022년보다 15% 하락한 배럴당 84달러를 기록하고, 실질실효환율로 평가한 원화가치가 4% 절하될 것이라는 전제로 도출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11월 24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는 경제성장률을 1.7%로 예측했다.) 

특히 수출의 경우, 세계적 경기둔화로 1.6%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보았다. 설비투자는 반도체 경기둔화와 대외불확실성으로 인해 2022년 –3.7%를 기록한 데 이어, 2023년에도 0.7%라는 낮은 증가율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상황은 이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미국의 매우 빠른 금리인상이 지속되면 세계무역이 위축되면서 한국의 수출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이 제로코로나 정책과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수요 부진이 나타날 때도 한국의 수출이 둔화할 것이다. 또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도 원자재와 곡물가격 불안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남아 있다.

국내요인을 보더라도, 민간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 경기둔화가 커질 것이다. 최근 회사채 시장을 중심으로 기업의 자금조달 문제가 큰 이슈로 떠올랐는데, 자금조달 사정이 나빠지면 투자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부동산 경기 하락은 건설업체의 자금경색으로 이어지고 건설투자 부진으로 나타날 것이다. 
 

다만 경기회복세가 약화하고 있음에도 2022년 고용은 ‘양호한’ 흐름을 보인다. 고용률이 높은 수준으로 빠르게 상승하고, 실업률도 장기추세를 크게 하회하여 경기상황과 대조적인 흐름을 보여서 그 원인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고용 확대에 가장 기여한 업종은 ▵전문과학, 정보통신, ▵운수창고업, ▵보건업, 사회복지 서비스업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업종은 코로나 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대면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배달 관련 인력수요가 빠르게 증가했고,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정보통신 관련 일자리도 증가했다. 물론 방역과 돌봄 인력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 (반면 숙박, 도소매와 같이 코로나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업종은 아직도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KDI는 취업자 수가 2022년에 79.1만 명 증가한 데 비해, 2023년에는 8.4만 명 늘어나는 데 그치리라 전망했다. 특히 생애주기에서 고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시기인 핵심노동인구(30~59세)의 비중이 급락하고, 대면서비스업의 고용회복세가 빨라지더라도 경기둔화의 영향으로 제조업과 비대면서비스업의 증가세는 둔화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인구요인이나 (2022년의 급증에 따른) 기저효과에 의한 것으로, 고용여건은 여전히 양호한 흐름을 이어간다는 뜻이다.
 
 
 

2) 11월 한국은행 금리 정책의 의미 


11월 24일 금융통화위원회는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3.00%에서 3.25%로, 0.25%p 올리면서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높은 수준의 물가오름세가 지속되고 있어 물가대응 정책대응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소비자 물가는 10월에도 5.7%의 높은 오름세를 지속했고,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율과 기대인플레율도 4%대 초반의 높은 수준을 이어갔다. 따라서 이는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둘째, 그런데 경기둔화 정도가 8월 전망치에 비해 커질 것으로 예상되며, 외환부문의 리스크가 완화되고, 단기금융시장이 위축된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아래 표를 보면, 여기서 외환부문의 리스크가 완화되었다는 것은 원달러 환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10월에 달러당 1,424원에서 11월 23일 1,352원으로 내려가 리스크가 어느 정도는 완화된 것으로 판단한다는 뜻이다. 단기금융시장이 위축되었다는 것은 기업어음(CP) 금리의 상승으로 표현되는데, 특히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관련된 자산담보부기업어음(PF-ABCP)의 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거래가 위축된 상황을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은 한국은행이 금리인상 폭을 좁게 한 근거가 된다. 

역으로 보면,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을 강하게 누르기 위해 금리인상 폭을 넓힌다면 단기금융시장의 위험이 커지고, 경기둔화가 심해질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먼저,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가 보여주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문제를 살펴보자. 
 
 

3) 레고랜드 사태의 파급효과: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에서 채권시장 경색으로


한국은행은 이미 9월 22일에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에서 비은행권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의 “건전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2011~2013년 부동산 PF대출 부실사태 후, 은행권은 PF대출을 크게 늘리지 않았지만, 비은행권, 즉 저축은행, 증권사, 여신전문회사는 이를 대폭 확대했다. 2014년부터 2022년 6월까지 증가액을 보면 은행은 6.9조 원인데 반해, 비은행권은 70.1조 원에 이르렀다. 또한 은행과 보험사의 대출은 대형사업장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하지만, 저축은행과 증권사, 여신전문회사는 중소규모 사업장의 아파트 외 주택, 상업시설을 중심으로 했다. 게다가 PF대출 관련 유동화증권 발행이 증가하면서 증권사의 채무보증도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비은행권의 PF대출 부실이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보고서 발표 직후인, 9월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의 개발을 맡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기업회생 신청이란 상환해야 할 금액 중 대부분을 자사의 주식으로 대신 지불하고, 나머지 15%를 수년에 걸쳐 갚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한 ‘아이원제일차’가 10월 4일 부도처리 되면서, 기업어음 시장이나 회사채 시장에 엄청난 충격이 밀려왔다. 그 후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이 참여한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가 열려 채권시장 경색에 대처하기 위해 ‘50조+α’를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여기서 50조라는 수치는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뽑은 수치일 것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 중 여유자금 1.6조 원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사들이고,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의 회사채·기업어음 매입프로그램도 8조 원에서 16조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주택금융공사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 안정을 위해 2023년까지 10조 원 규모의 보증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4) 주택담보대출 금리인상의 파급효과: 기업의 자금난 확대 


부동산 시장의 냉각이 미치는 파급효과는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기업어음, 회사채 시장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안심전환대출’ 문제도 있다. 안심전환대출은 고금리로 받은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연 3.7~4.0% 고정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정책 금융상품으로, 주택가격 6억 원 이하, 부부 합산 소득 1억 원 이하여야 신청할 수 있다. 올해와 내년에 총 45조 원이 공급될 예정이다. 

문제는 신용등급이 높은 주택금융공사가 관련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MBS(주택담보대출 유동화증권)를 발행할 경우 올해 한전채가 시중자금을 빨아들였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주택금융공사가 국내에서 발행하는 MBS 잔액은 올해 말 139조 5,980억 원에서 내년 말 167조 4,641억 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주택금융공사의 MBS는 신용등급이 AAA로 최상급인 데다 금리도 연 5%대 수준으로 높아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올해 회사채 금리 급등을 촉발한 한국전력도 내년에 추가로 한전채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11월 22일 국회 산업통상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한전채 발행 한도가 자본금과 적립을 더한 금액의 2배에서 5배로, 경영위기 상황에선 6배로 늘리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될 경우, 올해 말 70조 원 내외일 것으로 추정되는 누적 한전채 발행 잔액은 내년에는 110조 원 규모까지 늘어나게 될 수 있다. 

이처럼 주택금융공사나 한전이 발행하는 막대한 규모의 채권은 다시금 회사채 시장을 압박하는 위험요인이 된다. 기업은 이자율 상승으로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이나, 은행을 통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되고, 부동산 시장 침체로 부동산 자산 매각도 곤란할 수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이익의 감소도 당연히 동반될 것이다. 이는 기업의 투자, 고용증대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5) 소결 


2023년 전망을 보면 수출 부진,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부진이 직접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 하방압력이 미치는 다각적인 파급효과가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이 기업어음이나 회사채 시장을 압박하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채권시장안정펀드는 다시금 은행채 발행을 늘려 회사채 시장을 압박하여, ‘아랫돌을 빼서 윗돌로 괴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또한 주택담보대출 금리인상에 따른 정부의 정책대응 역시 채권시장을 압박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경기침체, 금리인상이 장기화될 경우 자금시장 경색, 기업의 재무 상황 악화가 위험 수위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 경제의 위기 상황이 연출되면 정부의 직접적인 정책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그렇지만 정부의 미시적인 경제개입은 다양한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을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전이시킬 수 있다. 단적인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안심전환대출의 경우, 주택가격 6억 원 이하, 부부 합산 소득 1억 원이라는 제한이 있는데,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현재 수도권에 살거나 부부 맞벌이를 하는 경우 받을 수 없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반대로 이러한 요건을 완화할 경우, 이른바 ‘영끌족’, 즉 주택가격이 치솟을 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라 기대하면서 변동금리 상 저금리로 돈을 빌려 집을 마련한 사람들까지 세금으로 구제해 주어야 하냐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또한 금리가 오르는 상황을 대비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고정금리를 선택한 사람만 손해 보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올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미시적 정책개입을 하면 할수록, 즉 정부가 직접 나서서 금리, 가격, 임금의 결정에 개입하면 할수록, ‘누구는 도와주고 누구는 안 도와주고, 기준이 무엇이냐’라면서 형평성을 따지는 문제제기가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도 경제위기는 ‘인민 내부의’ 갈등과 불화가 커질 뿐만 아니라 그 불만이 정부로 집중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4.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률 전망 

 
마지막으로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 전망도 살펴보자.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률을 다루는 모든 연구는 상당히 비관적인 전망을 한다. 아래 그림처럼 한국의 경제성장률 추이를 보면, 1980년대 8%대, 1990년대 6%대, 2000년대 4%대, 2010년대 2%대로서 10년마다 2%p씩 하락했다. (장기추세를 나타내는 10년 이동평균 성장률이 1990년대 중반 이후로, 5년마다 1%p씩 하락했다는 분석도 있다.) 
 

KDI의 「장기 경제성장률 전망과 시사점」은 (성장률 간 관계를 뜻하는) 성장회계를 통해서, 성장률 하락을 분석한다. 즉 경제성장률에 기여하는 항목을 총요소생산성 상승률, 노동공급 증가율, 자본공급 증가율로 구분하여, 각각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정도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살펴본다. 

KDI의 추산에 따르면, 2000년대에는 경제성장률 하락이 자본공급 증가세의 둔화에 기인했다면, 2010년대에는 생산성 증가세의 둔화에 주로 기인한다. (노동공급의 기여도는 전체 기간에서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먼저 노동공급 측면을 보면,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 2020~2070년』에 따르면 생산연령(16~64세) 인구는 2011~2020년에 117만 명 증가했으나, 2021~3030년에 357만 명 감소하고, 2031~2040년에는 더 확대되어 529만 명이 감소할 것이다. 그에 따라 생산연령비중이 2020년 72.1%에서 2050년 51.1%로 하락할 것이다. 

이처럼 노동공급이 감소한다고 했을 때, 이를 보완하여 경제성장률을 높이려면 총요소생산성 상승이 필수적이다. KDI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상위 25%와 50% 사이의 값인 1.0%를 총요소생산성 상승률의 기준값으로 잡고, 낙관적 시나리오는 상위 25% 수준인 1.3%로, 비관적 시나리오는 2011~2019년 사이에 한국에서 나타난 실제 값 0.7%로 설정하였다. (KDI는 2011~2019년에 나타난 0.7%라는 낮은 수치가 금융위기의 여파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영구적 현상인지 판별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이 수치를 ‘비관적’ 시나리오의 기준치로 설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KDI가 추산한 값은 아래 표와 같다. 2023~2030년에, 낙관적 시나리오는 2.4%, 비관적 시나리오는 1.5%이며, 2041~2050년에 낙관적 시나리오는 1.1%, 비관적 시나리오는 0.2%다. 기준시나리오로 보면 2010년대 2%대에서 2020년대 1%대로, 2040년대에 0%대로 하락하는 셈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장기적으로 하락한다는 분석과 전망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시되었다. 나아가, 2013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한국개발연구원(KDI), 하버드대학 공동 연구시리즈 중 첫 번째 책, 『기적에서 성숙으로』는 성장률 하락 현상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과거 빈곤국가로 저수준 균형 함정을 성공적으로 벗어나 빠른 성장을 구가한 특성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따라잡게 되는 것은 곧 인건비 상승과 그로 인한 가격경쟁력 약화를 의미한다. 단순히 기술을 수입하는 것만으로는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고, 그 대신 비용이 많이 발생하고 어려운 원천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성숙기와 수렴의 시대에 성장둔화는 불가피하다.” 즉, 일반적으로 1인당 소득이 1만 4천 달러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둔화가 발생한다는 것이고, 이를 이른바 ‘중진국 함정’이라고 부른다. 한국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기적에서 성숙으로』는 한국의 경험에서는 몇 가지 독특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탈산업화의 속도가 이례적으로 빠르다. 제조업 고용비중이 1989년에 정점에 도달한 후 10년간 연 0.91%p 하락했다. (대만을 제외하면 어느 국가보다 빠르다.) 또한 탈산업화가 시작된 GDP 수준 역시 이례적으로 낮았다. 

둘째, 생산·고용 부진을 개선해주리라 예상되는 서비스 부문이 만성적인 저생산성을 보인다. 특히 도소매업과 의료, 교육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정보통신 분야는 기술적으로 빠르게 성장하지만, 서비스 부문 고용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작다.) 

셋째, 한국의 상품수출은 비교적 잘 지탱되어 왔다. 기적적인 성장의 시기에 이룬 높은 수출증가율 대비 그 후 부진한 상품수출 증가는 한국경제의 성숙으로 인한 필연적인 성장둔화의 결과다. (누적수출증가율이 둔화한 시점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이후에 나타난다.) 다만 수출의 증가가 과거처럼 고용을 창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는 수출산업이 생산하는 제품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노동집약적 투입요소를 해외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중국에서 부품을 수입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서비스 수출실적이 미미하다. OECD 국가는 서비스 수출이 GDP의 10% 이상을 차지하는데, 한국은 7%에 불과하다. 

넷째,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규모는 한국경제의 특징을 근거로 기대되는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또한 외국인직접투자가 중국으로 몰리게 되어 한국의 외자유치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의 해외직접투자 수준은 정상적이다. (‘한국의 해외직접투자 규모가 지나치게 커서 국가경제의 공동화를 초래한다’는 대중의 불만과는 상반된다.) 

다섯째, 한국경제는 위기에 대한 취약성을 보였다. 지난 40년간 네 차례의 위기를 겪은 것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지만 평균보다는 좀 더 위기에 취약한 편이었다. 이는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조달보다 부채(특히 단기부채)를 선호하는 개발전략에 따른 필연적 결과였다. 

다양한 연구에서 제시되는 성장률 하락에 대한 진단과 대책은 사실 모두 대동소이하다. 문제는 한국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어떤 대책이든 단기적 처방으로 해소될 수 없는 중장기적 과제라는 사실에 있다. 경제성장론의 관점에서는 경제의 개방성을 높여야 한다, 교육과 연구개발을 혁신해야 한다, 기업활동과 노동 관련 규제 제도를 바꿔야 한다 등등 과제는 제시된다. 이러한 과제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도 달성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실제 현실에서는 ‘정치적 실행가능성’이라는 문제가 개입하므로, 급격한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교육제도의 개편 문제를 보더라도, 수많은 쟁점과 갈등이 존재한다. 단적인 사례를 들면, 현 정부는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해 수도권 대학의 첨단분야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는데, 보도에 따르면 전국 대학총장 133명 중 수도권 대학총장은 87.5%가 찬성, 비수도권 대학은 92.9%가 반대하여, 종합적으로 대학총장 65.9%가 반대한 결과가 나왔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명확히 갈리는 가운데, 정부 정책은 힘을 얻어 추진하기 어렵고, 추진하더라도 심각한 갈등과 후유증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해, 한국경제의 장기 저성장 추세는 그 누구도 쉽게 역전시키지 못할 것이다.
 
 

5. [보론] 장기침체와 마르크스의 정상상태론/구조적 위기론

 
부르주아 경제학에서 말하는 ‘장기침체’를 마르크스의 정상상태론/구조적 위기론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더 분명한 정치적 함의를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먼저, 마르크스의 이론을 간략히 살펴보자. 

성장의 한계라는 관념은 이미 스미스가 고전파 경제학을 확립하는 시기에 제시한 것이다.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상태를 정상상태(定常狀態)라고 지칭한다. 즉 고정자본과 국민소득의 성장이 정지한 상태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다.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이러한 쟁점을 포괄한다. 

마르크스는 스미스와 리카도를 비판하면서 이윤율 하락을 자본주의의 내재적 법칙으로 설명한다. 자본축적의 진전에 따른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즉 자본생산성의 하락이 이윤율 하락을 야기한다. 이윤율 하락은 자본축적의 둔화, 즉 고정자본 성장률의 하락을 야기하고 그것이 경제성장률도 하락시킨다. 마르크스는 스미스와 반대로 이윤율의 하락의 원인이 제한된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아니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로 인해 잉여가치를 추출할 기회가 감소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이윤율의 하락의 결과 제한된 잉여가치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되고 자본의 집중이 발생한다. 그 결과 성장의 한계에서 ‘자본의 과잉’과 ‘인구의 과잉’(상대적 과잉인구)이라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된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보면 정상상태에 근접하는 것은 사회의 경쟁과 갈등과 불행을 증폭시킨다. 왜냐하면 정상상태에 근접하면 점차 확대재생산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단순재생산으로 수렴하고, 자본간 경쟁이 심화될 뿐만 아니라 노동자 내부에서의 경쟁도 심화된다. 취업노동자와 실업노동자의 경쟁, 취업노동자 내부의 경쟁,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경쟁, 생산적 노동 및 비생산적 노동 각 내부에서의 경쟁도 심화된다. 다만 생활수준은 과거보다 높다. 이것이 궁핍화의 현실적 의미일 수 있다. 즉, 과거보다 생활수준은 높지만 경쟁과 갈등이 격해지고,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마르크스 이후 부르주아 경제학자, 대표적으로는 존 스튜어트 밀과 케인즈는 정상상태로 근접할수록 풍요와 행복이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밀은 정상상태를 향한 경향의 기본적 원인을 자본축적에 의해 야기된 부의 증가에서 찾는다. 즉 너무나 많은 부가 존재해서 더 이상 자본축적이 심화될 필요가 없고 자본축적에 대한 자극도 없는 사회가 도래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이자율은 0이 되고, 어떤 사람도 자기노동의 생산물 이상의 것을 벌지 않게 될 것이다. 즉 밀에게 정상상태란 곧 ‘사회주의’다. 

자유주의자로서 케인즈도 밀과 유사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우리의 자손들을 위한 경제전망』에서 단기적 불안정성이 50~60년 정도 안정화될 수 있다면 자본의 한계 생산성이 0이 되는 지점까지 자본축적이 진행될 것이고 이윤율과 이자율도 매우 낮아지리라 생각했다. 밀과 유사하게 이는 사실상 자본가계급의 소멸을 의미한다. 매우 높은 노동생산성과 낮은 이윤율 수준에서 임금은 거대한 양의 소득을 나타낼 것이며 이에 따라 소득분배는 훨씬 더 평등할 것이다. 막대한 부를 물질적 소비에는 좀 더 작게 지출하고 여가와 자기발전에는 더 많이 지출할 것이다. 밀과 케인즈에게 있어 정상상태는 행복이 최대화되는 상태다.

경제성장률이 0으로 접근하는 정상상태에 대한 마르크스와 밀·케인즈의 분석 중 어떤 것이 현실에 더 부합하는가. 자본주의의 내재적 원리가 극대화되는 경쟁과 불행인가, 자본주의의 현실적 모순이 사라져가는 풍요와 행복인가. 우리는 마르크스의 전망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함의는 사실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장기침체에 빠질수록 노동자 내부의 경쟁과 불화가 증폭된다는 사실은 노동자운동에 매우 심각한 도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속성장 시대에 전형화된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과연 장기침체 시대에 적합한 변화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근본적 문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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