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2·3조 개정안 분석
예견된 흐름, 뒤집기가 필요하다
입법폭주와 입법방해의 프레임 전쟁
지난 2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 전체회의 심의를 마치고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 회부되었던 노조법 2·3조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이 5월 24일 본회의에 부의 요구되었다. 입법과정에서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본회의에 부의되기 전에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를 거쳐야 한다. 다만 소관 상임위에서 법사위로 넘어간 법안에 대하여 법사위가 이유 없이 60일간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소관 상임위 투표로 해당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해 달라고 국회의장에게 요구해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를 생략할 수 있다.
본회의 부의 요구가 의결되고 난 뒤 30일 이내에 여야 원내대표 합의가 없으면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의 본회의 부의 여부를 묻는 무기명 투표를 해야 한다. 본회의에 부의되면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심의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토론을 거쳐 법안의 표결 처리가 가능하다. 5월 24일 본회의 부의 요구를 의결했으니 6월 말 본회의에 부의되고 빠르면 6월 말에라도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게 된다.
국민의힘은 이에 반발해 5월 30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효력정지가처분도 신청했다. 효력정지가처분이 6월 말 이전에 인용되면 본회의 부의-상정-처리는 중단된다. 국민의힘은 절차가 중단되지 않고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본회의에 부의될 경우에 대비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본회의에서 가결될 경우를 대비해 대통령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 건의를 예고한 상태다.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가처분은 방송법과 마찬가지로 법사위에서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은 것이 ‘이유없’는 것인지가 쟁점이다. 국민의힘은 야권 공조에 의한 입법폭주라는 입장이다. 여당은 이유 있는 계류라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3월, 4월 임시회에 이어 5월 임시회에서도 노조법 개정안을 법사위에 회부했다. 반면에 민주당과 정의당은 법사위의 심사 지연은 입법방해라는 입장이다. 법사위는 법률안의 체계와 자구 심사에 그쳐야 하기 때문에, 법사위가 법률안의 실질적인 내용을 토론하는 것은 심사지연을 목적으로 한 방해행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법은 ‘법사위는 회부된 법률안에 대하여 체계와 자구의 심사 범위를 벗어나 심사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5월 임시회에서는 노조법 개정안을 올려놓기만 하고 다루지 않았다.
입법폭주와 입법방해의 프레임 전쟁은 노조법 2·3조의 개정 가능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여야가 사실상 정반대의 당론을 확정한 상태에서,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여야 합의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입법폭주 프레임을 씌워 ‘발목잡힌 대통령’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총선에서 ‘대통령을 도와주는 국회’로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어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반면에 민주당은 반복된 거부권 행사에 대해 ‘입법권 침해’, ‘행정에 의한 입법방해’ 프레임을 씌워 ‘독선적인 불통 대통령’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 총선에서 유리하리라 판단할 것이다. 누구도 쉽게 자기 입장을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팽팽한 대립 속에 가결될 예정이다.
이 경우 윤석열 대통령은 본회의 의결을 마친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간호법에 대해 이미 거부권을 행사했다. 다수의 언론이 대통령실 관계자를 인용해, 대통령실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이 재의 요구(거부)한 법안이 통과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서처럼 국민의힘은 자력으로 노조법 개정안의 재의결을 막을 수 있다. 이런 흐름을 중간 어딘가에서 끊지 못한다면 20년 만에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노란봉투법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다. 결정적 시간이 멀지 않았다. 개입 지점을 찾아야 한다.
자본의 공포 소구와 갈라치기
자본은 중요한 시기라는 판단 아래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경제6단체(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비판하는 카툰북을 공동으로 제작·배포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 요구 요건인 60일이 도과(경과)한 직후였다. 5월 환노위 전체회의가 가까워 지면서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이 돌아가면서 공포에 소구하는 호소전을 활발히 펼쳤다.
문제의 카툰북은 자본의 여론전술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자본의 전술은 공포 소구(fear appeal)다. 카툰북은 노조법 2·3조의 위험을 다소 과장하는 수준을 넘어 괴담 수준의 황색선동 일색이다. 카툰북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을 합법화’하고,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며, ‘파업이 상시화’한다. 근로조건에 ‘영향력이 있으면 사용자로 인정’하기 때문에 원청은 ‘수십 수백 곳의 하청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 ‘365일 노동분쟁’이 벌어진다. ‘고도의 경영사항에 대해서도 파업이 가능’해진다. 산업생태계가 붕괴되고 국내공장이 철수하고 일자리가 소멸한다.
정말 이 정도라면 재앙 수준이다. 개정안에 대한 찬반을 떠나 큰 변화와 혼란이 생긴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만일 노조법 2·3조가 실제로 개정되었다고 가정할 때에도 자본이 이와 같은 해석을 유지할까? 불법파업은 합법화된 것으로, 손해배상청구는 제한된 것으로, 노동조건에 영향력만 있으면 사용자인 것으로, 원청이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노조의 단체교섭에 대해서도 당사자인 것으로 받아들일까? 글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정부의 전략도 마찬가지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본회의 부의 요구 직후 성명을 내고 노조법 개정안 반대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밝혔다. 불법파업을 조장하고,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주며, 산업현장에 극심한 갈등과 법률분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기에 갈라치기도 더한다. 소수 “특정노조의 기득권이 강화”될 것이고, “다수 미조직 근로자와의 격차를 오히려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며, “자율과 연대에 기반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 노력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이하에서는 노조법 2·3조 개정안 제출의 배경, 경과와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을 살핀 후 개정안이 현실에 미치게 될 영향을 중심으로 자본과 정부의 공포 소구 전술을 다시 검토한다.
노조법 2·3조 사회쟁점화 약사(略史)
노조법 2·3조 논의의 연원은 2003년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열사, 한진중공업의 김주익 열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정부 이후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대한 자본과 정부의 핵심 탄압수단은 구속·수배에서 손해배상·가압류로 옮겨갔다. 2002년 당시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2년 10월까지 파업 등 노조활동과 관련해 청구된 손배·가압류 액수는 1천 6백억 원을 웃돌았다. 월급뿐만 아니라 본인과 가족 명의의 부동산, 신용보증인의 재산에 가압류가 들어왔다. 가압류는 신속하게 제기됐지만, 반대로 본안인 손해배상 소송은 천천히 진행됐다. 자본의 목적은 손해의 전보(塡補), 원상의 회복이 아니라 최대한 오래 고통스러운 상황이 이어지는 것,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배달호 열사는 유서 첫 마디를 “재미가 없다”고 시작했다. 이는 손배·가압류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드러낸다. 손배·가압류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삶을 살아나가는 의미 또는 삶 그 자체다. 임금노동자가 아무리 노동력을 팔아도 대가를 받을 수 없다고 느낄 때, 노동은 의미를 잃는다. 아무리 열심히 현재를 살아도 평생 빚더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인식할 때, 미래 역시 의미를 잃는다. 삶과 노동이 재미있을 리 없다. 차라리 형벌은 미래까지 빼앗지는 않는다. 손배·가압류가 노동조합 탈퇴로 끝나지 않고 삶의 포기로 이어지는 구조적인 이유다.
손배·가압류 제한 입법에 ‘노란봉투법’이라는 별칭이 붙은 계기가 2014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노동자에 대한 47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수원지법 평택지원은 쌍용자동차가 제기한 소송에서 33억 원, 경찰이 청구한 소송에서 14억 원을 인용했다. 판결 전 회사와 경찰은 29억 원 어치의 자산을 가압류로 묶었다. 직장을 잃은 데 그친 것이 아니다. 다시 시작할 토대가 될 퇴직금도 묶였다. 평생의 노동으로 장만한 부동산도 묶였다. 있던 자산은 빼앗겼고 앞으로 들어올 임금도 없다.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의 문제다. 생활고 폭탄과 소송 폭탄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그리고 죽음이 이어졌다.
손배·가압류에 대한 분노가 다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갔다. 여기에 손배·가압류의 목적이 재산상 손해의 회복에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해 준 여러 사건이 기름을 부었다. 2010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파업에 대해 현대자동차가 제기한 일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금속노조 탈퇴를 조건으로 취하되었다. 울산1공장 CTS공정 점거파업 이후 현대자동차는 466명의 조합원에 대해 213억 5천만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 제기 이후 피고(조합원) 상당수는 소 취하를 조건으로 노동조합을 탈퇴했다. 2014년 9월 서울중앙지법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1,179명에 대해 직접고용 의제/의무를 확인하는 판결을 선고하자, 이번에는 손배청구소송 취하를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취하와 교환하고자 했다.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재산권의 행사가 아니라 ‘보복조치’에 해당한다는 점은 다양한 경로로 확인되었다. 2017년 10월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는 쟁의행위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한 형사처벌과 그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쟁의행위 참가 노동자를 상대로 한 보복조치라고 보았다. 파업권 행사가 합법파업 요건의 제한적 해석으로 인해 실효적으로 저해되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우리나라 정부에 합법파업의 요건을 완화할 것, 정부에 의한 파업권 침해 행위를 자제할 것, 쟁의행위 참가 노동자에 대해 이루어진 보복 조치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복적 손해배상은 지금도 부단히 계속되고 있다. 다단계 하청구조 또는 특수고용으로 분절된 이중구조 노동시장의 밑단에 자리하고 있던 노동자가 실제 모든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재벌 대기업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보복적 손해배상을 청구당했다. CJ대한통운 노동자는 20억, 하이트진로 노동자는 28억,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는 470억이다. 하청 노동자의 핵심적인 노동조건을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빚더미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원청이 하청을 이용해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 고질적인 폐해가 전사회적으로 공론화되었다. 이중구조 해소에 대한 열망이 강한 만큼, 그리고 재벌 대기업의 갑질과 괴롭히기 소송에 대한 분노가 강한 만큼,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 배상청구소송을 제한하는 노조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되었다. 지난 2월 21일 위원회 대안이 환노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면서 폐기된 노조법 개정안은 모두 11개다. 그만큼 높은 사회적 관심을 방증한다.
손배·가압류의 진짜 목적은 노동3권의 저지
노동조합과 조합원에 대한 손배와 가압류는 역설적으로 손해의 전보라는 표면적 목적을 포기하면서 제 기능을 수행한다. 현실의 손배와 가압류는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일단 주장된 손해배상책임을 탕감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재산권의 행사가 아니라 재산권의 포기로 목적을 달성한다는 사실로부터 실제로는 손배·가압류의 목적이 재산상 손해의 회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손배·가압류를 두고 노동권과 재산권의 충돌 운운하는 프레임은 손배·가압류의 실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기 위해 고안된 의사(疑似, pseudo) 쟁점인 것이다. 진짜 목적은 타인의 권리행사, 특히 노동조합의 가입(단결권)과 파업(단체행동권)의 자유를 저지하는 데 있다.
소의 제기가 재산상 손해의 회복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소송상 또는 소송 외에서 상대방을 괴롭힐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막대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과시해 상대방 또는 상대방과 유사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축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소권 남용으로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의가 사회화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미국의 전략적 봉쇄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SLAPP’) 개념을 국내에 도입하자는 논의가 그것이다.
연구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전략적 봉쇄소송이란 통상 ‘공공정책, 공공 관심사, 공익 등 공적 사안에 관한 청원권의 행사 또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기 위해 정부, 공직자, 대기업 등 우월적인 지위에 있는 기관 또는 단체가 비판적 의견을 표명한 상대적 약자인 개인 또는 단체에 대해 제기하는 손해배상 청구 등의 민사소송’을 말한다. 어떤 소송이 전략적 봉쇄소송에 해당하면, 법원의 판단 또는 입법에 따라 소송의 각하, 사실인정 중단, 입증책임 이전, 역봉쇄소송 배상금 제공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전략적 봉쇄소송을 억제한다.
우리나라처럼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특히 기업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 결과에 대해 노조 혹은 조합원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많은 경우에는 전략적 봉쇄소송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보호대상인 기본권에 단체행동권을 포함하고 단체협약 체결을 공적 사안으로 포섭해, 기업이 쟁의행위를 위축시키기 위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도 전략적 봉쇄소송 제한의 법리를 적용할 수 있다.
민사소송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이미 형성된 ‘소권 남용’의 법리를 확장할 수도 있다.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한 목적’ ‘사법 인력의 불필요한 소모’ ‘사법 기능의 혼란과 마비의 조성’ 등 소권남용의 표지와 상당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노조법 제3조의 면책구조
개정 법률안의 중심은 노조법 제3조의 개정이다. 노조법 제3조 개정에 대해 다양한 접근이 제안되었다. 어떤 측면의 접근이었는지, 그 중에 최종적으로 위원회 대안으로 살아남은 접근은 무엇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고려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불법행위책임의 구조를 간단히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은 크게 ① 계약관계를 전제로 계약상 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과 ② 계약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고 일반적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으로 범주화할 수 있다. 전자를 채무불이행 손해배상책임이라고 부르고 민법 제390조가 규율하며, 후자를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이라고 부르고 민법 제750조가 규율한다.
노조법 제3조가 논의되는 평면은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이다.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①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행위가 있을 것, ② 가해행위가 위법할 것, ③ 가해행위에 의하여 손해가 발생할 것, ④ 행위와 손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 요구된다.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결과를 누구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것인가 하는 물음을 해결하는 데는 필요한 사고의 순서가 있다. 먼저 책임을 지울 주체를 상정한다. 통상은 가해자다. 다음으로 해당 주체에 책임을 지우기 위한 근거를 찾는다.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해당 원인을 유발한 주체가 고의나 과실이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그 원인에 고의나 과실이 아니라 주체의 영역 그 자체로부터 연유하는 위험이 있는 경우, 그 위험이 책임을 지우는 근거가 된다. 전자를 과실책임이라고 하고 후자를 위험책임이라고 한다. 과실책임에서는 고의 또는 과실이 귀책사유가 되고 위험책임에서는 위험이 귀책사유가 된다.
현재 민법에서 위험책임의 법리에 따른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은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인공적 작업으로 만들어진 물건) 소유자의 책임이 대표적이다. 공작물 소유자는 공작물 점유자가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懈怠)하지 않은 경우 설치·보존의 하자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게 되는데, 이때 손해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과실)를 묻지 않는다. 건물의 소유자는 건물이라는 위험원에 내재한 설치·보존의 하자로 인한 손해라는 위험이 실현되었을 때 그러한 위험원을 창출했거나 관리했던 데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휴대폰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던 중에 휴대폰이 발화해 화상을 입은 경우,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제조업자는 제조물(휴대폰)의 결함으로 인해 생명·신체·재산에 발생한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데, 이때에는 제조물이 위험원이 된다.
오늘날 민법의 책임귀속 원칙은 원칙적으로 과실책임주의, 예외적으로 위험책임주의를 취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현대법에서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결과를 누군가에게 귀속시키기 위해서는 현실화된 결과가 그 누군가의 직접적인 행위로부터 발생했거나(과실책임), 적어도 그 누군가의 행위영역에 존재하는 위험으로부터 발생했어야 하는 것이다(위험책임).
쟁의행위에 대한 면책구조를 손해배상책임의 내재적 원리에 기초해 이해해 보자. 정당한 쟁의행위에 의한 손해도 원칙적으로 과실책임주의가 적용된다. 따라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은 본래 행위자에게 직접 귀속되어야 한다. 다만 그 손해는 쟁의행위라는 헌법적 허용에 내재해 있는 위험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이므로,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는 자신의 영역에 정당한 쟁의행위라는 위험을 보유하고 있는 사용자에게 분담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법기술적으로 정당화해주는 조항이 노조법 제3조가 된다.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고 이 쟁의행위는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것이며 고의 또는 과실과 손해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으면, 일단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한다. 하지만 헌법과 노동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의 행사라는 점에서 그 위법성이 차단(=조각阻却)되고 허용된 행위가 된다. 따라서 해당 손해를 고의 또는 과실이 있는 행위자에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보유하고 있는 사용자에게 귀속시킨다. 현행 노조법 제3조는 손해분담의 원리에 있어 위험책임주의를 실현하는 조항이다.
한편, 위와 같은 논의는 일단 쟁의행위가 위법함을 전제로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합법성을 부여하는 면책적 접근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접근은 잘못이며 쟁의행위가 쟁의권이라는 기본권 행사이므로 적법하다는 전제에서 이를 권리남용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책임 유무를 가리는 권리중심 접근이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 구조에 더 적합하다는 주장도 있다. 쟁의권은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임을 헌법이 명백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쟁의행위라는 개념이 정당성 여부를 불문하고 언제나 그 자체로 사용자의 업무를 저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쟁의권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은 단체행동권이 유감스럽지만 참아야 하는 단순한 인내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필요불가결한 권리임을 승인한다는 주장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노조법 개정 의원발의안의 접근방식
지난 21대 국회에 11건의 노조법 개정안, 1건의 국민동의입법청원이 제출되었다. 이들은 현행 노조법 제3조를 통한 손해분담의 원리가 사회통념에 비추어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부당한 결과로 귀착된다는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손해배상책임과 관련된 노조법 제3조 개정에 대한 접근은 크게 다섯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다. 먼저 손해배상청구의 제한 범위를 확대하는 접근이 있다. 이는 사용자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위험을 확대하는 방향이다. 폭력·파괴를 주되게 동반하지 않는다면 노조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외의 노조활동까지 손배청구 제한에 포함시킨다. (강병원, 강은미, 임종성, 이수진, 강민정, 양경숙, 이은주, 노웅래, 고민정)
둘째, 집단적 폭력·파괴 행위로 인한 손해를 개인에게 배상청구하는 것을 제한하는 접근이다. 노조 의사결정의 수행이나 계획, 결의, 지시·통제 등의 경우 임원·조합원 등 개인에 대한 손배 또는 가압류를 제한한다. 이는 집단적 결정에 따른 집단적 행위에 있어 책임 귀속의 주체는 오직 집단일 뿐이고 개인에게는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다는 취지이다. (강병원, 강은미, 임종성, 이수진, 강민정, 양경숙, 이은주, 노웅래, 고민정)
셋째, 손해배상의 액수를 제한하는 접근이다. 영업손실과 제3자에 대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 등을 제외한다거나, 노동조합의 존립이 불가능한 수준의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한다거나,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액의 상한을 설정한다. (강병원, 강은미, 임종성, 이수진, 강민정, 양경숙, 이은주, 고민정)
넷째, 손해배상액 감면의 근거를 만드는 접근이다. 민법은 일반규정으로 배상액 경감청구 제도를 두고 있으나(민법 제765조) 이는 고의 또는 중과실인 경우 경감청구가 불가능한 바, 이를 확대하는 방법이다. 손해배상의 액수는 상당인과관계에 따르되 특별한 사정을 참작하는 경로를 제공한다. (강병원, 임종성, 강민정, 이은주, 노웅래, 고민정)
다섯째, 손해배상 책임범위의 개별적 분담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비율을 정한다. 민법은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불법행위를 하면 배상의무자 각자가 독립하여 전액에 대해서 배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그 불법행위가 공동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도 여러 사람의 행위 중에 누구의 행위가 손해를 가한 것인지 알 수 없을 때도 여러 배상의무자가 각자 독립하여 전액을 배상하도록 규정한다. 이에 대해 개별적인 인과관계가 미치는 범위 내로 책임 범위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이외에 사용자의 책임 면제 근거를 마련한다거나, 소권남용 금지 등의 접근도 있었다. (고민정)
의원발의안의 곤란
제출된 개정안에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하는 난점이 있었다.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법리는 재산권과 쟁의권이라는 두 헌법상 기본권의 충돌을 야기한다. 기본권 충돌의 국면에서 한 기본권이 다른 기본권에 일방적으로 우선한다고 할 수는 없기에 양자를 절충하는 조화로운 규범해석이 필요하고 현행법도 그 일환이다. 제출된 개정안의 내용은 재산권과 쟁의권 사이의 균형점을 쟁의권에 가까운 지점으로 이동시키려는 시도인데, 이 과정에서 특히 기존 불법행위책임 법리와의 충돌이 문제 된다. 아래에서는 이와 관련한 논의를 자세히 살펴본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 쟁의행위까지 사용자 영역에 내재한 위험인가 하는 점이다. 손해가 발생하고 행위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는 경우 손해에 대한 책임은 행위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원칙이다. 책임을 사용자에게 분담시키기 위해서는 이때의 손해가 허용된 위험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노조법에 의한’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든 ‘노조법에 의하지 않은’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든 모두 허용된 위험으로 평가해야 사용자에게 부담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법에 의하지 않은 쟁의행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논리적 엄밀성에 따르자면, ‘이 법에 의한’ 쟁의행위가 정당화된다는 것이 반대로 ‘이 법에 의하지 않은’ 쟁의행위가 모두 정당화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두 명제는 논리적으로 ‘이(裏)’의 관계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쟁의행위의 합법/위법 판단을 면책적 접근 방식이 아니라 권리중심 접근 방식에 의하는 경우에는 ‘노조법에 의하지 않은’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도 허용된 위험으로 평가할 수 있다. 헌법적 결단에 따라 쟁의권이 헌법상의 권리 행사에 해당하고 하위규범인 노조법이 규정한 제한을 지키지 않는다고 모두 쟁의권의 남용으로 평가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면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면책 자체가 과실책임주의의 예외인데, 그 예외를 법에 의하지 않은 쟁의행위까지 넓히는 것이 무리라는 입장도 있다.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동반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그 자체가 위법한데 그에 대해 위법성을 차단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취지다. 또한 책임면책에서 폭력과 파괴를 주되게 동반하는 행위를 제외하는 근거도 모호하다고 주장한다.
앞서 채무불이행 손해배상책임과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을 구별하였는데, 채무불이행 손해배상책임의 경우 책임의 근거가 되는 계약상 의무가 계약 내용에 따라 달리 정해진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반면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의 경우 책임의 근거가 되는 일반적 주의의무는 일반적 사회적 생활관계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이 다른 각 개인에게 동일하게 부담하는 의무라는 점에서 무차별적이다. 일반적 주의의무가 무차별적이라는 것은, 일단 어떤 행위가 위법하다고 평가되면 그 행위의 종류는 책임 발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불법행위라고 하는 구체적 사실이 위법성이라는 추상적 평가에 포섭되면 모두 위법한 것인데 왜 그중에 유독 폭력과 파괴라는 일부의 행위만 위법성이 차단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둘째, 개인의 책임을 제한하는 접근에 대해서도 곤란이 있다. 대법원은 불법쟁의행위를 기획·지시·지도하는 등으로 주도한 노동조합 간부가 아닌 일반 조합원의 경우 쟁의행위의 집단적 성격, 헌법상 보장되어야 하는 노동3권의 최대보장, 일일이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데에 대한 기대 불가능성 등을 근거로 단순 노무 제공 중단 조합원의 책임을 제한한 바 있다. 개정안은 파괴·폭력 행위를 제외한 쟁의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이 제한된다는 전제에서, 이 책임 제한의 논리를 파괴·폭력 행위에 대한 간부들의 책임 제한으로 확장한 것이다.
먼저 검토해야 할 것은 쟁의행위의 주체가 노동조합이라는 전제에서, 집단적 결의에 따른 노동조합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조합원 개인에게 추급할 수 있는가다. 현재 대한민국 법원은 민법 제35조 제1항을 ‘유추’ 적용해 노동조합의 불법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다. 민법 제35조 제1항은 법인의 대표자가 가해행위를 했을 때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법인도 대위책임을 진다는 특별규정이다. 일반규정인 민법 제750조가 자연인(사람)의 불법행위를 예정한 규정이기에 이를 ‘직접’ 법인 또는 비법인사단의 불법행위에 적용할 수는 없어서다. 즉 현행 해석론은 노동조합의 간부가 불법쟁의행위를 기획, 지시, 지도하는 등으로 주도한 경우에 일단 이와 같은 간부 개인의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평가해 개인에게 불법행위책임을 지운다. 그런데 이는 노동조합 집행기관으로서의 행위이므로 노동조합에게도 불법행위책임을 지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법 제35조를 유추하는 법리가 부당하다는 비판이 있다. 민법 제35조가 적용을 예정한 사안과 다수의 조합원이 하나의 단일한 목적을 위해 집단적 의사결정을 통하여 조직한 노동조합의 ‘쟁의행위’ 사이에는 유추라는 방식의 전제가 되는 사안의 구조적 유사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쟁의행위는 조합원의 행위들의 단순한 총합(總合)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집단적 의사결정에 따라 조직된 ‘하나의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추급은 민법 제35조 제1항 제1문을 유추하는 방식이 아니라, 쟁의행위가 노동조합의 행위라는 점을 정면으로 긍정하고 노동조합에 귀속시킬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만 노동조합의 책임을 긍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체행동권의 행사를 통해 쟁의행위에 참가한 개별 조합원의 행위가 단일한 단체행동으로 합성된다. 반대로 단일한 단체행동으로 합성된 개별조합원의 행위는 그에 흡수되어 독자성을 상실한다. 노동조합의 책임과 조합원(간부)의 책임 간에 부진정 연대의 관계를 긍정할 이유도 없게 된다. (부진정 연대의 관계란,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 전부를 노동조합과 조합원 개인이 각기 독립하여 갚아야 하는 관계를 말한다. 세부적인 내용은 뒤에 다시 다룬다.)
쟁의행위를 노동조합 그 자체의 행위로 보는 이유는 쟁의행위가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투표와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민주적·집단적·집합적 의사결정에 따라 그 실행 여부가 결정되는 특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실제 쟁의행위는 노동조합의 대표자나 대표기관의 결정에 따라 이를 하느냐 여부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쟁의행위를 조합원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쟁의행위가 위와 같은 조합원 개개인의 의사 내지 행위의 단순한 총합도 아니다. 이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불법적인 쟁의행위에 책임을 진다고 해서, 반드시 노동조합의 간부 또는 조합원 개인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견지에서도 파괴·폭력을 동반한 행위의 책임까지도 개인에게 돌릴 수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 있다. 제안된 다수의 개정안은 파괴·폭력을 동반하지 않은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선제적으로 면책한 상태이므로 남은 책임, 즉 파괴·폭력을 동반한 책임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간부, 조합원 등 개인에게 추급하지 말고 노동조합 그 자체에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이다. 만연한 손배·가압류가 개인의 삶을 파탄내는 현실을 바꾸어 내어야 한다는 당위에서 나온 고민일 것이지만, 개인의 파괴·폭력 행위가 독립적으로 불법행위책임을 구성하는 경우까지도 쟁의행위가 예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논리구성이 광범위한 소구력을 가지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 외에 손해배상액을 제한하는 접근(영업손실의 제외, 제3자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 제외, 노동조합의 존립이 불가능한 손배 금지, 손해배상액의 상한 제한 등), 손해배상액 감면 근거를 만드는 접근(배상액 감경청구 제도)도 다양하게 제출되었다. 불법행위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는 모두 배상되어야 하는 것이고 여기에 불법행위 수단의 종류나 방법이 배상 책임주체나 손해의 범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견해가 불법행위책임법의 통념적 해석이다. 그렇다면 재판상의 해석을 통해서 특정한 손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입법적 예외를 설정할 타당한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쟁점이다. 손배액 감면청구의 경우는 현행 민법상의 배상액 경감청구가 제외하고 있는 고의나 중과실의 경우가 쟁점일 수 있는데, 법원의 평가를 예정하고 있다는 점, 이미 법원을 통해 ‘손해의 공평한 분담’, ‘신의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의해 배상액이 제한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법적 안정성을 흔들거나 혼란을 야기할 정도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상 대부분의 난점은 기존의 불법행위책임 법리와의 충돌에 관한 것이다. 헌법 제23조의 재산권과 헌법 제33조의 노동3권 사이의 기본권 충돌 상황에서, 하나의 기본권이 다른 기본권에 대해 일방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양 규범을 조화롭게 해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미 현행 노조법 제3조가 규범조화적 해석의 일환이었을 것이지만 현실적합성이 크게 낮아진 상태이다. 현행법에 대한 법원의 해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많은 입론이 있어 왔지만 법원의 견고한 보수적 해석을 넘어서기 어려웠다. 입법적 해결이 제안되는 배경이다.
제출된 개정안들은 결국 그 수단과 정도를 다소 달리할 뿐 현실과 괴리된 현재의 절충 지점을 재산권에 가까운 곳에서 쟁의권에 가까운 곳으로 일부 이동시키고자 하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재산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수정은 필연적이다. 다만 불법행위법의 무차별적이고 일반·추상적 특성이 부분적 예외 설정에 있어 걸림돌이 된다. 현행법이 야기하는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손해배상의 제한범위를 넓혀야 하는데, 그럴수록 위헌의 위험을 포함하여 법체계 내에서의 수용성이 낮아진다는 딜레마가 있었던 것이다.
노조법 개정 환노위 대안의 접근 방식
이런 기본권의 딜레마 상황에서 현실에서도 두 가지 요구, 긴급한 구제의 필요와 전면적 제도 개선의 필요가 부딪혔다. 부분적이더라도 빠르게 갈 것인지, 느리더라도 전면적으로 갈 것인지는 종합적 정세평가에 따른 전술적 판단의 문제다. 여기서 제21대 국회 환노위는 양자의 필요를 애매하게 절충하지 않고, 파격적으로 긴급한 현실 개선의 필요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25일 환노위 전체회의를 통해 의결된 환노위 대안(代案)은 놀랍게도 기존의 불법행위책임 법리에 특별한 예외를 설정하는 것으로 보이던 제안의 대부분을 삭제했다. 노조법에 의하지 않은 쟁의행위에 대한 면책, 조합원 개인에 대한 손배청구 금지, 손해배상액 범위의 제한, 손해배상액 감면청구 등 복잡한 법률적 판단에 기초해 기존의 법체계에서 여전히 양립가능한지를 살피는 쟁점은 대부분 대안 작성 과정에서 없어졌고, 이런 내용을 담은 11개의 개정안과 1개의 입법동의 청원은 폐기되었다. 환노위 대안이 제안하는 현행 법리에 대한 유일한 예외는 민법 760조 부진정연대책임에 대한 것이다.
부진정연대채무란 하나의 동일한 급부(給付)에 대하여 여러 명의 채무자가 각기 독립하여 그 전부를 급부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는 채무를 말한다. 쟁의행위로 인해 사용자에 손해가 발생했을 때 여러 조합원이 각각 사용자 손해의 전액을 배상할 책임을 부담하고, 다만 여러 채무자 중 일부가 채권을 만족시켰을 때, 즉 손해배상채무를 변제(대물변제)하거나 공탁을 하였을 경우에만 다른 채무자들도 채무를 면한다. 반면에 채권자(사용자)가 배상의무자(조합원) 중의 일부에 대해서만 채무를 면제해 주었을 경우에는 면제받은 그 일부의 채무자만 손해배상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나머지 조합원은 여전히 전액을 배상할 책임을 계속 지게 되는 것이다.
민법에는 부진정연대채무에 대한 어떤 규정도 없다. 부진정연대채무의 개념 및 그 효력은 대법원 판례에 의해 창설된 것이다. 이 부진정연대채무의 성질을 이용해 사용자는 일부 조합원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손해배상채무를 면제하는 방식으로 노동조합을 탈퇴시키거나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취하시켰다.
부진정연대채무 제도는 여러 부진정연대채무자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내부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와 무관하게 채권자에 대한 채무 전액의 지급을 확실히 보장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통상 다수의 사람이 공동으로 불법행위에 가담해 피해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그 피해자가 다수인 가해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있기에 가해자인 채무자 일부가 의도적으로 책임재산을 빼돌려 집행할 재산이 없게 되는 위험(무자력 위험)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입법정책적으로 특별히 정한 채권자 보호수단이다. 이런 취지의 제도를 오히려 반대로, 사회적으로 압도적으로 강자인 대기업이 거대한 규모의 사업운영에서 발생한 손해 전액을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개인에게 청구할 때에도 그대로 관철하는 것이 사회 일반의 법감정에 비추어 올바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의 일반원리, 즉 자기책임의 원리로 돌아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별한 입법적 보호를 제공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불법행위책임은 원칙적으로 행위자 자신의 책임이며, 특히 단체행동권은 헌법이 국민 개인에게 부여하고 있는 권리라는 점을 고려할 때 노동조합과 조합원 각각이 얼마나 책임을 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산정해 그에 합당한 책임만을 지우는 것이 필요하다. 쟁의권은 노동자 개인의 권리이고 쟁의행위는 노동자 개개인의 목적의식적인 연대에 기초하여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을 통하여 실현되는 것인 만큼 쟁의행위로 빚어진 손해배상의 문제도 기본적으로는 쟁의행위를 구성하는 쟁의 관련 당사자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가담행위를 위법성 판단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법원도 부진정연대책임을 그대로 관철할 것인지 이를 부정할 것인지는 국회가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법원행정처는 입법취지에 공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손배책임범위를 개별적으로 법원이 정하도록 하는 것은 노동자 개인에게 과다한 배상책임이 부과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라는 이유다.
요컨대 이번 5월 본회의에 부의 요구된 환노위 대안은 불법행위책임법 체계와의 충돌이 없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환노위가 구체적인 타당성과 현실적합성을 기하기 위해 기존의 불법행위책임법 체계를 수정하는 전면적 개정 전략에서 책임법 체계 내에서 책임법의 기본 원리인 자기책임의 원칙을 오히려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개정 전략으로 선회하였음을 의미한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개정안이 거부권 행사 없이 또는 거부권 행사를 넘어서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다시 위헌심사의 대상이 되어 그 위헌성 여부에 대해 사법적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법적인 불안정 상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까지 숙고한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노동조합, 간부, 조합원 개인 등의 어떤 행위가 어떤 이유로 불법행위가 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피게 된다. 집단적인 노무제공의 거부에 그친 것인지, 사용자의 비조합원에 대한 노무수령권을 방해한 것인지, 결과적으로 다른 거래처와의 계약을 지키지 못하게 만든 것이 허용한계를 넘은 것인지 등 일련의 쟁의행위를 구성하는 각각의 행위가 위법한지, 각각의 행위가 다양한 손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각 행위에 대해 해당 행위자가 어떤 책임을 부담하는지를 구별해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쟁의행위 전 과정을 하나의 행위로 평가해 정당성 여부를 판단한 다음 그에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모든 손해에 대하여 막연하게 부진정연대책임을 지우는 방만하고 게으른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법원이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를 만연히 과다하게 인정하는 부당한 관행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릴 수 있다. 우리나라 법원은 쟁의행위가 없었더라면 달성할 수 있었을 매출이익과 쟁의행위가 있었을 때의 매출이익을 비교해 소극적 손해를 산정하고, 쟁의행위 기간 무용하게 지출된 고정비를 적극적 손해로 인정한다. 이때 생산하지 못한 사실로부터 생산했더라면 판매되었을 것이고, 판매되었다면 매출이익을 얻었을 것이며, 매출이익으로부터 고정비를 일부 회수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이미 과다한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파업 기간에 그 재고를 소진해 적정 재고수준으로 복귀한 경우나 공장가동률이 100%에 미달하던 중 단기간의 파업(조업 중단) 후 곧바로 100% 가동이 이루어진 경우까지 사용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사용자는 재고를 소진하는 이익을 얻는 동시에 소진된 재고(판매분)로 얻은 이익을 노동조합 등에 한 번 더 청구할 수 있게 된다. 파업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부당하게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고정비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통상 고정비용은 불확실한 영업활동의 결과인 판매를 통하여 그 전부 또는 일부만이 회수된다. 쟁의행위가 없는 경우 고정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생산과 판매를 계획대로 진행해야 하는데, 쟁의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영업 또는 매출이익의 발생과는 무관하게 그 전부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결과가 된다. 지출된 고정비용이 손해배상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면 오히려 쟁의행위가 없는 때에 비해 더 과도한 배상을 용인해 그 차액의 부담, 생산과 판매의 리스크까지 노동자에게 전가하게 된다. 이런 국면에서는 손해배상책임을 충실히 인과에 따라 평가하라는 요청이 필요하다.
환노위 대안 중 쟁의행위 목적의 정당성 확대 부분
이처럼 노조법 3조 개정을 위한 환노위의 대안은 여러 사회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필요최소한의 개정으로 정리되었다. 기존의 불법행위책임 법리를 거의 수정하지 않은 결과는 과연 이 개정안이 현실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우려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쟁의행위의 정당성 요건을 완화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쟁의행위의 정당성 요건 완화 필요성은 손배·가압류뿐만 아니라 업무방해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바다. 정당한 쟁의행위를 넓게 인정하게 되면 현행 노조법 3조에 따르더라도 면책(위법성 차단)의 범위가 넓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노조법 제2조 제5호가 규율하는 ‘노동쟁의’의 정의 조항의 확대가 노조법 제3조와 함께 논의되었다.
노웅래 의원은 현행의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를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이은주 의원은 노동쟁의 대상에 정리해고를 포함시키고 ‘근로조건 및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확대하고자 했다. 고민정 의원은 여기에 더해 ‘근로자의 지위(사업재편 등에 따라 영향을 받는 노동조건과 근로자의 지위 포함),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 관한 사항, 그 밖에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확장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후 2월 환노위 논의 과정에서 노조법 제2조 제5호는 노웅래 의원의 개정안, 즉 ‘근로조건의 결정’을 ‘근로조건’으로 개정하는 수준으로 조정되었다. 노조법 제3조 개정안의 조정에서와 마찬가지로 노조법 제2조 제5호 개정안의 조정도 필요최소한만 남기는 방향을 취한 것이다. 이로써 노동쟁의의 정의를 확대해 쟁의행위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는 상당 부분 철회되었다.
사실 환노위 대안의 문구인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는 현행 노조법의 전신인 노동쟁의조정법 규정과 같다. 1953년 처음 제정되어 1996년 폐지되기까지 노동쟁의의 정의가 달라진 적은 없었다. 1997년 노동쟁의조정법과 노동조합법이 현행 노조법으로 통합되면서 별다른 논의 없이 스윽 들어온 것이다. 이때 법원은 구법 해석과 관련하여 “노동조건에 관한 노동관계 당사자 간의 주장”이라는 문구는 개별적 노동관계와 단체적 노동관계의 어느 것에 관한 주장이라도 포함하는 것이고, 그것은 단체협약이나 근로계약상의 권리의 주장(권리쟁의)과 그것에 관한 새로운 합의의 형성을 꾀하기 위한 주장(이익쟁의)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고 하여 이익분쟁과 권리분쟁 모두를 중재위원회의 중재대상으로 본 바 있다.
권리분쟁을 노동쟁의의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지는 사업장 내의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의 문제와 연결된다. 권리분쟁을 교섭대상에 포함할 때 쟁점이 되는 것은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처럼 사법적 구제절차가 별도로 있는 경우에 해당 사법적 구제절차의 존재가 자동적으로 자율적 노사교섭의 영역을 축소하는 것이 올바른가의 문제이다. 실제 노사관계의 현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왜 이 점이 문제가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현실의 교섭에서 사측이 해당 의제를 수용하는 경우 체불임금 청산 의제, 해고자 복직 의제, 단체협약 위반(불이행) 시정 의제 등은 문제 없이 교섭에서 다뤄지고 또 실제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권리분쟁을 교섭에서 다룰 수 없다고 버티는 경우 노사관계가 사법화되고 소송이 길어짐에 따라 갈등도 장기화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이를 교섭에서 다루는 경우 체불임금 등의 요구가 교섭을 구성하는 다른 요구와의 관계에서 조정될 수 있는 여지도 커져 소송의 승패에 따라 ‘모 아니면 도’로 해결되는 충격도 절충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노사자율의 원리가 지배하는 단체교섭 법제에서 사법적 해결은 자율적 해결에 대해 보충적인 성질을 가진다. 첨예한 노사갈등으로 인해 교섭을 통한 해결 노력이 도저히 성과를 낼 수 없는 최후의 경우 해당 쟁점을 사법부에 들고 가는 것이다. 보충적인 수단인 사법적 해결의 존재가 원칙적인 수단인 자율적 교섭과 조정을 구축(驅逐)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을 때 노사 간 갈등을 더 쉽게 완화하고 조정의 기간과 비용을 더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은 상식적이다.
기업이 상대적으로 더 오래 걸리고 돈이 더 많이 드는 소송상의 해결을 고수하는 것은 기업과 개인의 소송에 대한 접근성 격차를 이용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개인의 권리를 더욱 충실하게 보장하고 기업과 개인의 힘의 격차를 보정하기 위해서라도 실체적 해결, 교섭을 통한 조정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환노위 대안 중 사용자 개념 확대 부분
이상 노조법 제3조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과 제2조 제5호 노동쟁의의 정의 조항의 개정안을 훑어보았다. 그렇지만 두 개정안이 모두 제출된 대로 개정되더라도 손배·가압류로 인한 단체행동권 침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2010년 현대자동차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상대로 제기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최근 CJ대한통운 노동자, 하이트진로 노동자, 대우조선해양 노동자에 대한 보복적 손해배상청구가 다시 상기시킨 문제는 원청의 손배·가압류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협력업체와 민사 손해배상에 대한 면책을 합의하더라도 그 합의의 구속력이 원청에까지 자동적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청 대기업의 손해배상청구는 원청 대기업의 막대한 영업 규모에 연동해 도저히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액수가 된다. 협력업체와의 면책합의는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노조법 3조가 개정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노조법 제2조 제2호 사용자 정의 조항에 대한 개정안이 함께 제출되었다.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지 않으면 노조법 제3조 개정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 그 사업의 노동조합에 대하여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자(강은미, 이은주), △ 근로자의 근로조건·작업방법·수행업무(강민정, 이수진, 양경숙, 노웅래, 윤미향, 고민정)·노동조합 활동(강민정, 양경숙, 고민정)에 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 △ 도급이 이루어진 경우로서 하수급인의 업무에 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상위 수급인(윤미향) △ 원사업주가 자신의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사업주에게 맡기고 자신의 사업장에서 해당 업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경우의 원사업주 등도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하여 현행 노조법 상 사용자의 개념을 확대하는 개정안이 다수 제출되었다.
그 외에도 강민정 의원은 직접·간접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 전 협의절차, 간접고용 노동자의 선택적 단체교섭권, 신청받은 직접·간접사용자에 단체교섭의무 등을 담은 간접고용 특례를, 윤미향, 양경숙 의원은 원청과 하청노동자의 단체교섭에 있어서는 교섭단위를 분리한 것으로 보는 개정안을 제안하였다.
결국 2월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위원회 대안 문구는 실질적 지배력설에 기초해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로 정리되었다. 강은미, 이은주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이 제안했던 문구는 ‘노동조합에 대하여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자’였는데 이는 ‘실질적 대항관계설’에 기초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질적 대항관계설은 그 외 다른 개정안이 취하고 있는 ‘실질적 지배력설’에 비해 노조법상 사용자성을 더욱 넓게 인정한다. 이를 고려하면 역시 노조법 제2조 제2호 개정안의 조정에서도 노조법 제3조 개정안의 조정에서와 마찬가지로 필요최소한만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위원회 대안이 기초하고 있는 실질적 지배력설이 최근에 새롭게 대두된 논의인 것은 아니다. 실질적 지배력설은 오래전부터 상당한 정도로 논의가 되어 왔다. 학설상으로는 이미 1990년대부터 원청과 간접고용 노동자 사이의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원청의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인정하는 데 적극적인 흐름이 주류를 형성해왔다.
실질적 지배력설이 법원을 통해 확인된 것도 2006년부터이니 이미 17년이 흘렀다. 2006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노조활동 방해금지 가처분을 구한 사건에서 울산지방법원이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자의 노조법상 사용자성을 인정한 이후, 법원은 다수의 사건에서 원청사업주의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노조법상 사용자성 여부를 판단해왔다. 대법원은 2010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현재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의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취소 사건에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현대중공업 원청의 사용자성을 확인했고 그 이후에 나온 대부분의 하급심 결정·판결에서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교섭거부·해태의 부당노동행위 사용자성을 판단하고 있다. (지엠대우 사내하청노동자의 가처분 사건, 대구경북지역의 건설노동자에 대한 형사소송, 한국수자원공사 청소노동자의 가처분 사건,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에 대한 형사소송 등.)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CJ대한통운이 집배점 택배노동자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면서,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의 실현을 중심으로 접근했다. 원청의 필요에 의해 하청 노동자를 자신의 지배·영향 아래 이용하는 계층적, 다면적 노무제공이 확산되고 있어 노동조건에 대한 지배·결정권도 복잡하게 분화한다. 그럼에도 계속 근로계약관계를 기준으로 책임을 판단하게 되면, 지배·결정권이 있는 원청에는 교섭을 요구하지 못한다. 지배·결정권이 없는 하청에 교섭을 요구해도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없고 파업도 무력해진다. 결국 복합적인 노무관계를 형성한 원청 사업주의 경영 방침 또는 사업구조의 설계에 따라 하청 노동자가 하청업체에 요구할 수 있는 노동조건 향상의 범위가 바뀌는 것이다. 이는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 행사범위가 오직 원청 사업주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과 같아서 유지·개선을 기대할 수 없는 노동조건에서의 노무제공을 합법화하고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을 형해화시키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노조법상의 ‘사용자’에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할 권한을 갖는 사업주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헌적 법률해석이고 오히려 ‘사용자’를 근로계약의 존부(存否)나 밀접성에 한정하는 것이 위헌적인 법률해석이 된다.
자본과 정권의 호들갑
이제 노조법 2·3조 개정에 대한 자본의 선동을 다시 확인해 보자. 앞서 언급했던 경제6단체가 발행한 카툰북에 따르면 노조법 제3조 개정은 ‘불법파업을 합법화’하고,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며, ‘파업을 상시화’한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실제 노조법 개정안에는 쟁의행위의 면책범위를 지금보다 확대하는 내용도 없고 손해배상청구 자체는 어떤 제한도 없이 가능하며 단지 자기 책임의 원리 아래 손해를 산정한다는 손해배상책임의 일반원리를 강화한 것에 불과하다. 쟁의행위의 절차가 완화된 것이 없어, 여전히 조정전치주의 아래에 있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에서 ‘파업이 상시화’할 리 만무하다. 의원 발의의 노조법 개정안들이 폐기되기 전인 2월경에 작성된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카툰북이 발행된 시점은 이미 법사위 전체회의를 떠들썩하게 한 후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본회의 부의 요구를 할 것인지 고민하던 4월 말이다.
관련해서 재계와 정부가 반복해서 인용하는 프랑스 사례가 시사적이다. 1980년을 전후해서 프랑스의 르노가 프랑스 노총 CGT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법원이 이를 인용하자, 그에 대한 대응으로 1982년 집권 사회당이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금지를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프랑스는 법안을 시행하기 전에 사전적으로 헌법위원회에서 위헌심사를 진행하는데 이때 헌법위원회가 동법안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중대한 결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단결권 행사와 간접적으로라도 관련되면 어떠한 배상도 요구할 수 없다는 내용의 법안은 그 입법목적은 정당하지만 평등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헌법위원회에 따르면 입법자는 파업권과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행사요건, 위법과 적법의 구별, 적절한 배상제도 등을 강구할 수는 있지만, 피해자의 권리를 원칙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재계와 정부는 그 이후에 프랑스가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인용하지 않는다. 프랑스 대법원은 헌법위원회 결정에 따라 특별한 법리를 고안하지 않았다. 다만 일반 민사법리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노동조합은 파업노동자의 개인적인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연대책임을 지지 않으며, 반대로 파업노동자는 노동조합이나 다른 파업노동자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연대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용자는 각각의 노동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과실을 범했는지, 그로 인해 얼마의 손해가 발생했는지, 과실과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이때 파업 그 자체는 과실이 아니다. 따라서 파업 그 자체 이외에 파업권의 남용으로부터 발생한 손해만 산정해야 한다. 사용자는 각각의 노동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불법행위에 가담했는지를 명시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지금 본회의에 부의 요구된 환노위 대안과 차이가 없다.
또 재계와 정부는 근로조건에 ‘영향력이 있으면 사용자로 인정’하기 때문에 원청은 ‘수십 수백 곳의 하청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거나 ‘365일 노동분쟁’이 벌어진다고 주장한다. 노조법 제2조 제2호 개정안에 따른 우려다. 무슨 대단한 변화가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행 환노위 대안은 이미 1990년대 학설의 주류를 이루었고 무려 17년 전에 법원을 통해 표현된 문구를 그대로 가져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법원에 의해 적용되고 있는 법리의 근거가 해석에서 법률로 변경되는 것에 불과하며, 그로 인해 법률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오히려 입법적으로 해결되어 소모와 낭비가 줄어든다.
자본과 정권은 대중의 공포에 호소한다. 단지 ‘근로조건에 영향력이 있’기만 하면 사용자가 되는 것처럼 호도한다. ‘대기업은 수백 개의 하청 업체 노조와 교섭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노동위원회와 법원은 원청 사업주의 교섭응낙의무를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하다. 대법원에서 교섭응낙의무가 인정된 사례는 사실 원청과 사내하청 노동자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 성립을 다툴 수 있을 정도로 사용종속관계가 강하게 드러난 예외적인 경우였다.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구체적·실질적으로 노동조건을 결정·지배할 수 있는 지위’는 인정하고도 구체적인 의제에 대해 교섭응낙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경우도 다수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청소노동자 사례에서 대전지방법원은 ‘사용종속관계의 징표’ 운운하면서 수자원공사의 사용자성을 부정하여, 2010년 현대중공업 사건의 법리에서도 더욱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노동조건을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에 해당하는지는 원청과 하청의 관계, 하청 노동자의 업무가 원청 사업에 있어 상시적·필수적인 업무인지, 하청의 업무가 원청의 사업체계의 일부로 편입됨으로써 노동조건을 지배하거나 결정하는 원청 사업주의 지위가 지속적으로 계속되는지 등을 고려해서 판단하게 된다. 무제한적 확장은 일어나지 않는다.
‘고도의 경영사항에 대해서도 파업이 가능’해진다는 말도 허위에 기초한 악선동이다. 권리분쟁은 대부분 이미 결정된 사항을 이행하는 문제이기에 성질상 고도의 경영사항일 수 없다.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단협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그 이행을 요구하는 쟁의행위가 가능해질 수 있지만, 실제 구조조정 사업장에서는 임금 등 이익분쟁을 중심으로 하는 쟁의행위를 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분쟁이 대폭 증가한다고 보기 어렵다. ‘원청이 결정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교섭요구가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실질적 지배력이 없는 의제에 대해서는 교섭응낙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소수 특정노조의 기득권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만 강조할 뿐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특정노조의 기득권이 강화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노조법 2·3조와 관련해 사회쟁점이 되었던 노동조합을 되돌아보면 이정식 장관이 말하는 소수 기득권 노조를 특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노조법 개정으로 이익을 보게 될 소수 기득권 노조는 제조업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공공부문 청소노동자, 택배노동자다. 이들의 권리가 강화되는 것이 어떻게 미조직 부문과의 격차 확대와 연결이 되는지, 자율과 연대에 기반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게 되는지 알 수 없다. 오히려 노조할 권리가 보장되면 그간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노조를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던 미조직 노동자가 노동권을 보호받으면서 권리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어 자율에 기초한 이중구조 해소가 촉진될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물론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 당장 교섭거부·해태의 부당노동행위를 둘러싼 법적 분쟁은 증가할 것이다. 노동위원회나 법원이 실질적 지배력설을 채택할지 아닌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되기 때문에 교섭 상대방으로서 원청의 지위를 확인하는 데 따르는 위험이 감소한다. 또한, 입법에서 실질적 지배력설을 규정하더라도 대법원에서 단체교섭 상대방으로서 원청기업의 사용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사업구조에 따라 정립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업자별로, 의제별로 개별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이 분쟁의 폭증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일단 개정 노조법을 바탕으로 원청의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 정립된 이후에는 현장의 많은 혼란이 교섭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되는 토대가 만들어질 것이다. 노사관계 당사자는 제도에 반응해 적응하기 때문에 원청은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구체적 결정·지배를 거둬들이고 하청의 독립적 경영을 승인할 수 있다. 이는 부수적으로 원하청 사이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제한하는 효과를 낳는다. 반드시 실질적 지배가 필요한 사업부문의 경우 하청을 유지하면서 그 부분에만 직접 교섭을 진행할 수도 있고, 상시적이고 필수적이며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 예정된 경우에는 원청의 사업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장기적으로 법적 분쟁의 증가상태가 지속되기는 어렵다.
요컨대 현재 환노위 대안으로 제출된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애초에 제기되었던 의원 발의 노조법 개정안과 비교해 대폭 축소된 내용이다. 노조법 제3조 개정안(부진정연대채무의 예외)은 민사 손해배상법리의 기본적 내용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 오히려 과실책임주의, 자기책임주의에 충실한 규정이다. 많은 외국의 사례를 통해 불안정과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노조법 제2조 제2호(사용자 개념의 확대)는 원청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일부 노동조건을 결정하거나 지배하는 경우에 그 일부에 대해서만 교섭응낙의무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무제한적 확대가 이미 내부의 원리로 통제되고 있다. 이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다면적 노사관계라는 현실에 제도를 적응시켜 법규범과 법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
노조법 제2조 제5호(권리분쟁의 추가)는 어느 정도 안정된 노사관계에서는 이미 교섭을 통해서 다루고 있는 의제이기에 그 파급력이 크지 않다. 우리나라는 1953년부터 1990년까지 같은 법규정이 적용되었지만 이로 인해 대혼란이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법화되어 있는 의제를 노사 자율의 장에서 풀어낼 수 있어 낭비를 줄인다.
그런데도 자본이 무슨 거대한 변화가 올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것은, 변화에 대한 공포를 자극해 현재의 상태를 지속시키기 위함이다. 현재의 구조가 재벌대기업의 책임을 면탈하고 노사관계의 리스크를 하청 노사에 떠넘기는 데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죄형법정주의 위반인가
아무런 사실적 근거도 갖지 못하는 악선동 이외에 검토해야 할 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문제는 노조법 개정안 제2조 제2호 ‘실질적 구체적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표현이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한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느냐다. 이에 관한 대법원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하는 명확성 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명확하여야 한다고 하여 모든 구성요건을 단순한 서술적 개념으로 규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다소 광범위하여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는 개념을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하여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당해 처벌법규의 보호법익과 금지된 행위 및 처벌의 종류와 정도를 알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면 처벌법규의 명확성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어떠한 법규범이 명확한지 여부는 그 법규범이 수범자에게 법규의 의미내용을 알 수 있도록 공정한 고지를 하여 예측가능성을 주고 있는지 여부 및 그 법규범이 법을 해석·집행하는 기관에게 충분한 의미내용을 규율하여 자의적인 법해석이나 법집행이 배제되는지 여부, 다시 말하면 예측가능성 및 자의적 법집행 배제가 확보되는지 여부에 따라 이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법규범의 의미내용은 그 문언뿐만 아니라 입법 목적이나 입법 취지, 입법 연혁, 그리고 법규범의 체계적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해석방법에 의하여 구체화하게 되므로, 결국 법규범이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는 위와 같은 해석방법에 의하여 그 의미내용을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해석기준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즉, 첫째, 규범을 지켜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떤 것이 죄가 되고 어떤 것이 죄가 되지 않는지를 미리 예견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 그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노동부나 노동위, 법원의 입장에서 이를 집행하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단체교섭 거부·해태의 부당노동행위는,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고용노동부와 법원이 의제를 매우 세분화하여 단체교섭 응낙의무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있고, 이어질 대법원 판결에 따라 해석방식이 정립될 것이 예정되어 있기에 집행기관이 종합적 해석에 의해 그 의미 내용을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특정한 의제, 예를 들면 작업장 개선에 대해서 누가 독자적으로 또는 병존적으로 결정권을 가지는지를 가리는 것은 그리 복잡하거나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그에 비해서 누가 지배권을 가지는지를 가리는 것은 조금 더 불명확할 수 있지만, 현재의 노동법 체계 안에 존재하는 개념인 ‘사업 또는 사업장 (편입)’ 등을 통해 충분히 의미 내용을 확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청 사용주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과연 원청 사용주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결정하거나 지배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 수 있는가? 그럴 가능성이 크다. 어떤 사업영역까지를 외부로 돌리고 어떤 사업영역을 내부에 보유할 것인지, 외부로 돌린 사업영역에 있는 하청업체에 무엇을 요청할 것인지, 그러한 요청에 기초해 하청업체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하청 노동자와의 관계에서 이러한 요청이 무엇을 결정하게 되는지 등은 기본적으로 원청의 영역이다. 사회통념과 건전한 상식에 따라 제반 상황을 종합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라 누가 노조법상 사용자인지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면 여러 형사판결에서 동일한 법리가 확인되지 못했을 것이다. 대법원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에서 실질적 지배력설에 기초해 원청기업 삼성전자서비스의 모회사인 삼성전자 임원과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전자가 속한 삼성그룹 임원의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긍정한 바 있다.
죄형법정주의와 관련해 명확성 원칙 외에도 확대해석 금지의 원칙이 문제가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역시 타당하지 않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도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에 사용종속관계에 있지 않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시키는 해석은 문언이 가지는 가능한 의미의 범위 안에서 규정의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하여 문언의 논리적 의미를 분명히 밝히는 체계적 해석을 하는 것이므로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금지되는 확장해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다만 법원에 의해 명확한 해석이 나오기 이전에 스스로 단체교섭 응낙의무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사용자를 처벌하는 것이 옳은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단체교섭을 응낙하지 않았다고 모두 처벌되는 것이 아니다. 노조법 제81조 제1항 제3호를 위반한 경우에 성립하는 같은 법 제90조 위반죄(부당노동행위)는 고의범이다. 현실적으로 근로조건의 지배 유무에 관하여 다툼이 있어 교섭을 거부할 합리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고의가 인정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반복해서 관계기관을 통해 교섭응낙의무가 확인되는 데도 교섭에 의하지 않는 경우와 달리 취급한다. 따라서 해석이 안정되는 과도기에 가벌성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된다고 보기 어렵다.
고의 일반이 부정되는 결과가 되지도 않는다.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에 대한 해석이 정립되고 난 이후에는 사용자 스스로 자신의 사업구조가 어떤 형태에 해당하는지 확인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행정기관의 지시나 지도에 불응하는 경우나 이미 법리가 정립되어 상당한 정도로 확실하게 교섭응낙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의적으로 교섭을 해태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처벌이 가능하다.
한편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 국면에서는 단체행동권 행사를 수인하는 부작위의무를 부과받는 데 반해 교섭거부·해태의 부당노동행위 국면에서는 적극적으로 교섭에 응해야 하는 작위의무를 부과받기 때문에, 양자가 구별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 사건의 재판부는 단결권과 관련한 지배·개입 행위와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과 관련한 교섭거부·해태 행위는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노조법이 부당노동행위의 유형별로 사용자의 개념을 달리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동일한 법령에서의 용어는 법령에 다른 규정이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일하게 해석·적용되어야 하는 점 등을 이유로 단체교섭 거부·해태 행위(제3호)와 지배·개입 행위(제4호)를 달리 판단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창구단일화 제도와의 체계부조화
다른 한편 창구단일화 제도나 단체협약 규범적 효력과의 체계부조화를 이유로 노조법 개정을 반대하는 입장도 다수 확인된다. 일단 확인해야 할 것은 헌법상의 구체적 권리인 노동3권을 노조법이 창설한 창구단일화 제도로 제한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주장이라는 점이다. 최근 대법원은 “노동3권은 법률의 제정이라는 국가의 개입을 통하여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법률이 없더라도 헌법의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여 노동3권의 구체적 권리성을 확인한 바 있다. 법률이 없어도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하는 권리라고 본다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포섭될 수 있는지에 따라 노조법상 사용자의 개념과 그에 따른 단체교섭권의 행사범위가 달라진다고 해석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한편, 현행 창구단일화 제도 아래에서도 큰 혼란 없이 개정 노조법을 시행할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과 중노위는 원청의 교섭상대방으로서의 사용자성이 정면으로 문제 된 사안에서 이미 관련 쟁점에 대한 해석을 제시한 바 있다.
우선 확인해야 하는 핵심쟁점은 하청 노동조합과 원청 사용자의 교섭에서 교섭단위를 어떻게 확정하느냐다. 교섭단위란 단체교섭의 단위와 구조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교섭대표 노동조합을 결정하여야 하는 단위를 말한다. 교섭단위를 원청의 사업 전체로 확정하는 경우, 원청 사용자에 대해 하청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했을 때 기존에 존재하는 원청 노동조합과 새롭게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그에 따라 원청 사용자는 다시 교섭요구를 공고해야 하는지 등이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해 중노위는 2022년 말 현대제철 사건, 롯데글로벌로지스 사건에서 교섭단위는 하청의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단체교섭 상대방으로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더라도 단체교섭의 대상이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인 점이 달라지지 않고 따라서 이해관계의 공통성을 기반으로 하는 교섭단위는 그대로 하청의 사업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결론은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이 원청까지 확대된다 하더라도 이는 원청에게 교섭의무가 인정되는 특정한 교섭의제에 한정되는 것이라는 데서 기인한다. 기본적인 단체교섭은 해당 하청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특히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고 있는 노동조건에 대해서만 이뤄진다. 원청 사업주는 하청 사업주와 중첩적으로 부분적인 교섭의무를 부담하는 것이지 하청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하청 노동조합에 대해 교섭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교섭단위를 원청의 사업 전체로 확대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잘못이다.
이런 취지에 따르면 원청의 교섭의무를 간접고용 관계까지 확대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되는 다양한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된다.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더라도 원청 노동조합이 다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칠 필요는 없다. 하청 노동조합의 교섭요구에 대해서 원청 사업주가 별도로 교섭요구 사실 공고를 할 필요도 없게 된다. 노사관계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겠지만 만일에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 사용자에게만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원청 사용자는 하청 단위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라고 요청할 수 있다. 원청에 하청 사업장이 다수 있어 하청 노동조합이 다수 존재할 경우에도 각각의 하청 사업장이 교섭단위가 되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묶을 필요는 없다.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원청과 하청 간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섭단위가 원청이라는 전제에서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 노조도 함께 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하청 사용자는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아도 되는지, 원청 노조의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3개월 이상 남은 경우에도 하청 노조가 교섭 요구를 할 수 있는지, 하청 노조가 원청 노조보다 조합원이 많아 교섭대표노조가 되면 원청 조합원의 근로조건을 하청 노조가 결정하는 것이 정당한지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자본과 이를 대변하는 법조계 일각, 일부 언론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원청 사용자는 여러 개의 교섭을 동시에 하게 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이는 현재와 같이 위계화된 다면적 노사관계에서 기본적으로 불가피하다고 봐야 한다. 하청의 사업을 이용해서 이익의 영역을 확대하고 이윤을 수취하는 원청은 그에 상응해서 책임의 영역도 확대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결정하거나 지배하는 노동조건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교섭 역시 그 책임의 일환이다. 다만 원청의 교섭부담을 덜고 사업 전체의 노동조건을 균일화하기 위해 유사한 고용형태에 처해 있는 여러 하청 노조가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교섭단위를 통합하는 결정을 노동위에 구해 효율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원청과 하청 노동조합 사이의 교섭으로 단협이 체결되면 그 단협을 하청 사용자가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도 있는데 이 역시 기우에 가깝다. 현대 민사 법리에서 양자 간 계약이 아무런 매개 없이 바로 제3자에게 의무를 지우는 경우는 없다. 원청이 처분할 수 없고 그 결정권이 하청 사용자에 전속하는 의제인 경우, 애초에 원청의 교섭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원청이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경우, 하청은 원청의 하청 노동조합에 대한 의무의 이행을 필요한 범위에서 수인하면 된다. 하청 사용자에 이익을 주는 계약이면 민사상 제3자를 위한 계약 등 관련 법리에 따르면 된다. 중첩적으로 사용자성을 갖는 의제인 경우, 노동조합은 가능한 범위에서 원하청 공동의 협약을 맺는 방향으로 3면 관계(원청, 하청, 노동조합이라는 세 주체의 관계) 전체를 규율하는 방식으로 노동계약 체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위장도급 판단기준과의 구별 필요성
단체교섭의 상대방으로서 사용자성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정립함에 있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단체교섭의 상대방으로서 사용자성과 위장도급 또는 불법파견으로 인한 근로자 지위에 대한 판단 기준이 등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해석론을 정립하던 시기 대법원이 제시한 실질적 지배력 기준은 근로계약관계와의 유사성 정도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다시 좁혀질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는 지적이 있다. 판례의 문구 중 ‘고용사업주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라는 표현이 ‘고용 관계’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단체교섭의 사용자를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로 한정해 실질적 지배력 기준을 근로계약의 존부 또는 밀접성 기준과 등치시키는 일부 해석은 다면적 고용관계가 일반화된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더욱 열악한 지위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20세기 전반의 전형적 근로계약관계에서 하나의 사업주에 통합되어 있었던 여러 기능(채용과 해고, 임금 등 부가급여 제공, 업무수행과정의 지휘·감독, 노동력을 자신의 사업에 맞게 기능적으로 조직)이 20세기 후반 이후 위계적으로 연관된 기업 간 네트워크 모델로 변화하면서 여러 사업주로 분산된다. 사업 목적에 따른 노동의 기능적 조직을 원청기업이 보유하면서 나머지 기능은 점차 노동자 공급업체나 하청업체가 분담하거나 아예 노동자와의 개별 계약상 권리·의무관계로 치환하는 것이다.
과거 전형적 근로계약관계에서 사용자가 노동자에 대해 지휘·감독권을 행사하는 것은 지휘·감독이라는 방식으로 노동의 결과물을 얻고자 함이다. 지휘·감독권의 직접적 행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노동의 결과물을 수취할 수 있다면 굳이 노동자를 지휘·감독할 필요가 없다. 노동력의 제공이라는 분할할 수 없는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는 노동자 개인이 개별적 관계에서 묵시적 근로관계에 있거나 불법파견에 있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여전히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것이 반대로 여러 기능을 분담해서 수행하는 일부 사용자가 지휘·감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용자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용자의 여러 표지 중 일부만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더 일반화된 환경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업무수행의 결과에 대한 통제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섭의무를 지는 사용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고용계약의 존부나 밀접성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배·결정’이라고 쓰고 실은 전형적 근로계약관계에서 나타나는 ‘직접적·구체적 지휘·감독’만을 찾으려 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구조적 통제가 드러나는 ‘사업’의 측면에서 지배력을 파악하는 방식이 제안되는 이유다.
노조는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
정리하자면 하청의 사업 또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교섭단위를 확정하게 되면 사실상 노조법 2·3조가 개정된다고 해도 현장에서 대혼란이 발생하는 일은 없다. 교섭의제나 교섭당사자가 무제한적으로 확대되지도 않는다. 다만 노동조합이 미리 대비해야 할 쟁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하나의 원청을 상대로 하는 다수의 교섭이 만들어졌을 때, 여러 교섭이 어떻게 질서를 갖출 것인가를 노동조합 내부에서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하나의 사용자를 상대로 다수의 교섭단위에서 각각 교섭이 제기되는 경우에 이를 활발하게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독립노조가 각각 서로 다른 교섭단위를 구성하는 경우에도 최대한 공동교섭단을 꾸릴 수 있도록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공동교섭단을 꾸릴 수 없다면 특정한 의제에 대한 특정 교섭단위의 패턴교섭을 승인하는 방식을 통해 내부 격차를 통제하고 분할 통제를 무력화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동일한 산별노조(산별연맹) 내부에 여러 조직단위가 동시에 교섭하는 경우, 산별노조는 원하청 노동조합 사이의 조율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원청 정규직과 하청 비정규직이 별도로 교섭단위를 구성하는 경우 공동교섭, 일부 의제에 대한 교섭권 위임, 교섭의제의 사전 조율, 교섭시기 공동대응 등 중앙집중적 조정구조를 내부에서 가동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비정규직 단위들은 위장도급(불법파견) 주장을 통한 직접고용 전술뿐만 아니라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의 적용을 통한 직접교섭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지금까지 사용자로서 원청의 책임을 지우는 방법으로 직접고용전술 중심으로 대응해왔던 단위는 의식적으로 직접교섭의 근거와 의제를 발굴해 나가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구체적 지휘·감독의 존부나 하청사업주의 독립적 조직·설비 등 이외에 하청의 사업이 원청의 사업에 편입되어 있는지, 하청의 사업이 원청 사업 수행에 상시·필수적이고 지속적인지 등에 대한 근거를 충실히 확보할 수 있도록 조직적으로 내외부의 자원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결론을 대신하며: 제도의 본질
관련해 소위 ‘제도’라고 부르는 것의 본질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제도는 사회가 어떤 일을 수행하는 절차, 규칙으로 사회생활의 기본틀로 작동한다. 제도의 목적은 사회의 안정적 지속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갈등을 제도 밖의 폭력이 아니라 제도 내 절차로 해결한다. 구성원의 사고와 행동에 규범력(구속성)을 행사하는 이유다. 제도의 본질은 갈등의 체제 내부화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소위 3제(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시간제)가 노동법 체계로 들어온 이후 자결, 고공, 옥쇄, 점거 등 노동계의 극단적인 투쟁은 대부분 이 3제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특히 격렬했던 비정규직 투쟁의 양상은 대동소이했다. 노동자가 단결하면 하청업체를 폐업한다. 교섭을 요구하면 권한은 있지만 책임은 없는 자와, 책임은 있지만 권한은 없는 자 사이에서 뱅뱅 돌려진다. 노동자가 투쟁하면 대체인력을 투입하거나 잡아간다. 결국 노동자는 제도 내부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없다고 느끼고 제도 바깥으로 튀어나간다.
시대가 변하면 가치와 필요가 변한다. 가치와 필요가 변하면 사회 제도의 형태나 내용도 변할 수 있다. 노동시장이 급격하게 변했다. 비정규직이 폭증했다. 누가 나의 사용자인지 모르는 노동자가 늘어났다. 내 통장에 임금을 입금하는 회사와 나를 지휘·감독하는 회사와 거대한 사업구조를 짜는 회사와 내 노동의 결과물을 수취하는 회사가 다 다르다. 사용자를 찾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투쟁이 벌어진다. 제도는 이러한 변화에 따른 갈등을 전혀 내부화하지 못하고 십수 년 동안 무능력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노조법 개정의 문제가 왜 이렇게 높은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첫 시도는 국회를 통한 해결이었다.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법원과 노동위원회보다는 입법적인 조치가 더 근본적이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는 20년 동안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공회전만 거듭했다.
법원과 노동위원회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된 것은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입법에 대한 기대가 떨어지면서 현행의 법문언과 양립 가능한 해석론으로 긴급한 현실의 불을 끄려는 궁여지책이기 때문이다. 2010년 현대중공업 판결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이었던 이병한 판사는 이 판결에 대한 평석에서 “직접고용시대에 정착된 노조법상의 사용자론을 간접고용화 시대에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보아 새로운 해석론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현재 제출된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법규범과 법현실의 괴리를 메우는 필요최소한의 개정만을 담고 있다. 자본은 변화에 따른 혼란을 침소봉대하며 공포에 소구한다. 그러나 지금 자본이 취해야 하는 입장은 대중의 공포에 소구하면서 노조법 개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물 시장의 양극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장기적으로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하청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해 나가면서 서서히 하청업체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강화하고 하청업체가 스스로 책임 있게 결정할 수 있도록 사업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고 수십 년 동안 이런 구조를 만들지 못한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만, 극심한 이중구조가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문제를 얄팍하게 모면하려고만 해서는 더 큰 위기를 마주하게 된다.
지금 노동운동은 더 전략적이고 더 전술적이어야 한다. 빠른 실패가 목표가 아니라면 말이다. 6월 말에 본회의에 상정해 야권 공조로 법안을 처리하고, 7월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다시 국회로 돌아오고, 또 곧바로 재의결을 시도해서 부결되면 사실상 21대 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은 무산된다. 이번 노조법 개정안은 20년 만에 본회의에 부의되는 것이다.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어떤 투쟁과 선동을 어느 시기에 어떤 순서로 집중할 것인지에 대해서 지금보다 더욱 활발하게 토론해야 한다. 어떤 의의가 있는 것인지, 어떤 위험이 과장된 것인지 더욱 널리 알려야 한다. 어떤 시점에 처리를 해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저지하는 데 가장 유리할지, 어떤 시점에 재의결을 시도해야 여당이 여론에 밀려 눈치를 보게 될지를 더욱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래야 노사관계제도 안으로 사회적 갈등을 끌어들일 수 있다. 그래야 또 다른 배달호를, 또 다른 김득중을, 또 다른 유최안을 만들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