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3 여름. 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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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감소·저성장 시대, 변화를 주도하는 사회운동으로 거듭나자

문설희 | 사무국장, 페미니즘팀

지난 4월 사회진보연대 공공회원모임은 두 번째 <등촌동 워크숍> “인구감소·저성장 시대, 노동운동의 길 찾기”를 개최했다.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통계청의 2022년 인구동향조사 결과발표에 이어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추진방향 및 과제” 발표로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시기에 열린 워크숍이었다. 워크숍에서는 저출산·고령화 현상의 양상과 영향을 짚고, 저출산·고령화 문제 대응과 관련한 대표적인 입장들을 비판적으로 소개한 후, 마르크스의 인구론과 역사적 가족형태 분석을 바탕으로 현 정세에 적합한 사회운동의 길을 모색하자고 주장했다. 인구 위기와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역할에 관한 토론도 이어졌는데, 워크숍 이후 관련 내용을 사회운동포커스 지상중계로 발행한 바 있다. 워크숍에서 다룬 분석과 주장을 아래에서 심층적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세계적인 저출산, 한국의 초저출산

 
오늘날 저출산은 세계적 현상이다. 산업혁명 전후로 세계 인구구조는 고출산·고사망에서 저출산·저사망으로 전환한다. 인구변천을 크게 다섯 단계로 구분한 모형(그림1)에 따르면 지금 인류는 출생률(인구 1000명당 1년 동안의 출생자 수)이 사망률(인구 1000명당 1년 동안의 사망자 수)보다 낮아진 5단계에 진입해 있다. 인구성장률도 상승세에서 하락세로 전환했다. 만약 출산율이 여성 1인당 2명 이상으로 올라간다면 세계 인구는 장기적으로 느리게 성장하겠지만, 출산율이 2명 이하로 유지된다면 인구 규모는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 인구감소는 예정된 현실인 듯하다. 주요 국가들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인구대체수준 출산율 2.1을 뛰어넘는 반등은 쉽지 않아 보인다(그림2). 출산율 감소 경향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은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70년에는 2.7명이었는데, 최근에는 1.7명으로 떨어졌다. 이스라엘, 인도 등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가 2.1 이하의 합계출산율을 보인다. 중국 등 몇몇 나라의 출산율은 극적으로 감소했다. 이처럼 지난 기간에 급감한 출산율이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다.
 

여기서 잠깐 인구변천과 관련한 용어를 정리해보자. ‘인구대체수준’은 자녀 세대의 인구가 부모 세대의 인구와 같은 수준이 되는 출산율을 일컫는다. 2.0이 아니라 2.1인 이유는 태어난 모든 출생아가 생존하여 다시 자녀를 낳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합계출산율이 인구대체수준보다 낮은 현상을 ‘저출산’, 합계출산율이 1.3 이하로 3년 이상 지속되는 현상을 ‘초저출산’이라고 한다. ‘합계출산율’은 가임연령대(15세~49세) 여성 1명이 평생 낳음 직한 평균 출생아 수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개념이 ‘조출생률’인데, 인구 1000명당 새로 태어난 사람의 수를 비율로 구한다. 1년 동안의 출생아 총수를 해당 연도의 총인구로 나눈 값에 1000을 곱하여 구하는 출생률은 인구 규모가 상이한 지역이나 국가 간 출산 수준을 비교하는 데에 용이하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970년 4.53에서 급격하게 감소하여 1983년에는 인구대체수준 아래인 2.06으로 떨어졌다. 이후에도 1991년 1.71, 2000년 1.48, 2010년 1.23으로 낮아지다가 급기야 2022년에는 0.78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했다. 통계청의 인구동향조사가 발표되자 “0.78명 쇼크”, “한국이 사라져간다”라고 언론사마다 초저출산 현상의 심각성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한국의 출생아 수가 1970년대까지 100만 명 수준을 유지하다가 1982년생 85만 명, 1991년생 71만 명, 2000년생 64만 명으로 계속 줄어, 2022년생 24만 명으로 급감하였으니 놀라운 일인 것은 사실이다. 한 세대 전과 비교하여 출산율은 절반 수준으로 하락하고, 출생아 수는 1/3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저출산이 세계적 현상이라지만, 한국은 이처럼 초저출산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하고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03년 이래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인구감소의 속도가 매우 빨라서 더욱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인구감소·저성장으로 심화하는 사회모순

 
급속한 초저출산 현상이 지속함에 따라 한국 사회의 인구구조 역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유소년인구(0~14세)와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줄고, 반대로 고령인구(65세 이상)는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유소년인구 구성의 경우 1970년 42.5%에서 2022년 11.5%로 급감했고, 향후에도 꾸준히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생산연령인구 역시 2022년 71%에서 2070년 46.1%로 줄어들 전망이다. 한편 고령인구 비중은 2022년 17.5%로 1970년(3.1%)대비 6배 가까이 증가했고, 2070년에는 46.4%로 생산연령인구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50년 후에는 대한민국 국민 둘 중 한 명이 65세 이상 노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의 기대수명은 타 국가들에 비해 높은 편이라, 인구고령화는 더욱 심화할 것이다.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나라의 인구구조 변화와 비교했을 때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그림3). 세계에서 젊은 나라에 속했던 한국은 이제 가장 늙은 나라가 되어가는 중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자본생산성 하락과 자본축적 둔화라는 저성장 문제에 직면해있다. 외국 기술을 도입하고 농촌 인구를 도시에 유입하면서 생산성을 촉진해왔던 이전의 산업 발전 방식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 즉 인구감소 문제가 더해져 경제위기가 심화한다. 경제성장은 노동력과 자본 투입 그리고 총요소생산성(제도와 생산기술 등)에 의존하는데, 생산인구감소는 노동력 투입 감소로 직결된다. 더불어 조세나 사회보험료, 가족 지출을 통해 생산가능인구가 부담하는 총부양비도 증가하는데, 이는 가계 저축과 자본 투자를 감소시킨다. 고령화에 따른 노동생산성 저하도 우려된다. 어린이집·유치원 폐원, 학령인구 감소, 소아 의료체계 붕괴, 지방대학 정원미달, 지방소멸 등 인구감소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와 더불어 저성장 심화라는 경제위기는 세대 갈등과 성별 갈등이 심각해지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얼마 전부터 화두가 된 ‘공정성’ 논란은 희소한 사회적 자원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합리적인가를 둘러싼 문제이다. 특히 청년들이 대학입시, 스펙, 취업을 둘러싼 경쟁에서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은 높은 체감 실업률과 기성세대와의 격차 때문이다. 안정된 일자리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청년 세대는 가족 형성(결혼 또는 출산)을 유보하거나 포기한다. 게다가 부족한 양질의 일자리를 둘러싼 진입 경쟁에는 성역할 갈등이 중첩된다. 한국 사회는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여성의 권리 수준과 실제 여성들이 겪는 현실의 괴리가 크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매우 높고, 상징적·제도적 수준에서 성평등이 달성된 듯 보이지만,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분리와 여성 노동의 저임금 부문 집중, 가족 내 돌봄 노동의 여성 책임은 뿌리 깊게 남아있다. 특히 한국은 여성의 장기간 경력 단절과 낮은 고용률로 인해 성별 임금격차도 크다. 한편 청년 남성들은 재생산의 위기를 ‘남성성의 위기’로 체감한다. 남성의 전통적 성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자조적 태도를 보이거나, 여성의 이중부담이라는 현실은 눈감은 채 재생산 위기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기도 한다. 이처럼 저성장·인구감소라는 구조적 위기가 매우 급격하게 나타나면서 또 다른 사회모순이 깊어지고 있다.
 
 

여성의 성·재생산 권리에 대한 통합적 인식이 중요한 이유

 
그렇다면 인구감소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전통적인 해법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저출산 종합대책으로 낙태 단속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인구감소 현상을 여성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인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분석이 아닐뿐더러,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해법이 아니다. 사회진보연대는 학생운동단체, 여성단체, 진보정당, 민주노총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낙태 단속 시도에 맞서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저출산 대책이 성·재생산권리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오다 보니, ‘저출산’이라는 말 자체가 성차별적이며,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성차별적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출산파업’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등장한다. 이러한 관점을 수용한 문재인 정부는 “진짜 문제는 저출산이 아닌 개인의 삶의 질에 관한 문제”라면서 저출산 대책과 성평등 정책을 혼합한다.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중요한 지향이다. 그러나 성평등 실현이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인구감소의 원인이 성차별에서 기인한다면, 여성들이 가임기 내내 출산했던 이전 사회가 지금의 저출산 시대보다 성적으로 평등했다는 논리적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결론이 과연 타당한가? 인구감소의 원인은 성차별보다는 자본주의 발달에 따라 아동노동의 중요성이 변화하고 가족제도 역시 생산관계에 적합하게 변모해온 과정에서 찾는 것이 적합하다. 물론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임신·출산·양육을 지원하는 정책은 인구감소 속도 완화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성평등 정책을 강화한다고 해서 인구감소 자체를 역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저출산’을 ‘저출생’이라는 용어로 바꾸는 것이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학문적으로 엄연히 다른 개념을 의도적으로 혼용하여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앞서 인구변천 관련한 용어 정리를 통해 확인했듯이, 출산율과 출생률은 그 의미와 쓰임이 다른 말이다. 또한 ‘출생’(birth)은 성평등이고 ‘출산’(fertility)은 성차별이라는 대립적 인식은 오히려 인구감소·저성장 시대 여성이 처한 복합적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저출산 현상을 ‘출산 파업’으로 분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고령(35세 이상) 산모 비중 증가, 난임 환자 비율 급증과 같은 최근의 현실은 여성의 성·재생산 권리에 대한 통합적 인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낙태죄 폐지와 성·재생산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 과정에서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라는 구호를 외쳤듯이, 인구감소 문제에 대응하는 사회운동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출산강요’(임신중지 권리에 대한 제약)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임신·출산의 시민적 권리’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영국 옥스퍼드 인구문제연구소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2006년 세계인구포럼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국가로 한국을 지목하면서 2750년에 대한민국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세계 3대 난임센터 중 하나인 대한민국의 난임병원 아기천사병원은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아기를 갖고자 하는 부부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 <헬로 베이비>(김의경, 2023) 중에서
 
 

‘적응과 공존’을 넘어: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두 개의 나침반

 
윤석열 정부는 지난 3월 28일 대통령 주재로 ‘2023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개최하고 정책 추진 방향과 과제를 발표했다. 새 정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이전 정부가 수립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1-2025)의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목표보다는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 조성”이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겠다며, ▲ 촘촘하고 질 높은 돌봄과 교육(아이돌보미서비스 확대, 유보통합 시행, 늘봄학교 전국확대, 아동기본법 제정 추진 등) ▲ 일하는 부모에게 아이와의 시간을(일·육아 병행 지원 제도 실질적 사용여건 조성, 육아기 단축근로 및 재택·유연근무 활성화, 남성 육아휴직 참여 확대 등) ▲ 가족친화적 주거 서비스(신혼부부 주택공금 및 자금지원 확대 등) ▲ 양육비용 부담 증가(부모급여 지급 등) ▲ 건강한 아이, 행복한 부모(난임지원 확대,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확충 등)와 같은 주요 과제를 제시했다. 돌봄서비스 확충 등을 통한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제고에 주목한다는 점이 특징이긴 하지만, 나머지는 이전 정부 정책에서 집중할 부분만 골라낸 수준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현 정부 인수위 ‘인구와 미래전략 TF’ 자문위원장을 역임한 조영태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 인구정책연구센터)의 입장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인구감소 대응과 관련한 대안적 방향을 모색해보기로 한다.

조영태 교수는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의 주요 원인을 ‘서울수도권으로의 집중’으로 분석하면서, 특히 서비스 부문의 청년·여성 일자리가 대도시에 편중된 현실을 지적한다. 실제로 2022년 합계출산율은 세종(1.12명), 전남(0.97명), 강원(0.97명) 순으로 높고 서울(0.59명), 부산(0.72명) 순으로 낮다. 조영태 교수는 이제까지의 저출산 해결 프레임에서 탈피하여 종합적인 인구 정책, 지역균형발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고령사회에 대응하는 정책으로 정년연장, 이민정책을 제시하며 적응과 공존의 전략을 강조한다. 지난 2022년 9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구전략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주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실. 후원: 한국경제신문사, 보건복지부)에서 조영태 교수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한국이 인구감소로 복합위기를 맞고 있다며, “인구 대책은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을 내놓는 데 그쳐선 안 되며 각종 사회문제, 질병 문제, 교육,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대안을 내놓은 방식이 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적응과 공존’이라는 관점으로 인구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단순히 출산율 높이기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변화를 꾀하며 생산인구 급감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할 필요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출산 정책의 대상이 의료·교육·국방·도시정책으로 확대될 경우, 무엇부터 추진해야 할 것인가? 정책 우선순위 결정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향후 윤석열 정부의 인구정책이 전문가 조언의 방향에 맞게 펼쳐질지는 미지수다. 또한 인구밀도가 높고 편중된 사회에서 청년들이 극도의 압박감을 느껴 출산을 꺼리게 된다는 생태학적 접근은 한국의 초저출산 현실에는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 세계적인 저출산 경향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인간 본성에서 찾는 관점은 수도권의 합계출산율이 낮은 현실을 설명하는 데는 일견 타당한 듯 보이지만, 인구밀도가 대단히 높았음에도 노동자 가족의 출산율이 상당히 높았던 산업혁명 시기 영국이나 도시화가 진전되기 이전에 다른 서유럽 지역보다 최소 한 세기 이르게 출산율이 감소하기 시작한 프랑스의 경우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부정합은 신멜서스주의, 거슬러 올라가 멜서스주의 이론의 한계에서 비롯한다.

『인구론』을 집필한 맬서스(Thomas R. Malthus 1766~1834)는 ‘인구과잉’을 빈곤과 비참, 곤궁, 비도덕성의 원인으로 설명했다. 그는 지나친 인구 증가가 식량 가격 상승을 일으켰다면서, 산업혁명 시기 영국 도시의 끔찍한 삶을 해결하기 위해 중산층의 금욕적 삶을 하층민들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맬서스주의에 따르면, 경제 능력도 없이 일찍 결혼하여 다산하는 노동자들은 빈곤 문제를 초래하는 사회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인구 증가가 식량 가격 상승을 유발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증거는 부족하다. 영국의 경우 19세기 전후로 국민총생산이 상당히 증가하였는데, 인구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이 인구증가율을 앞지른 것은 맬서스 인구론과 거리가 먼 현상이었다. 무엇보다 맬서스 인구론의 대상은 고출산·고사망이므로 저출산·저사망으로의 전환을 설명하지 못했다. 개인의 욕구를 제한하는 발상은 실효성 있는 사회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피임’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전 세계적인 가족계획 사업의 근간이 된 신(新)맬서스주의도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의 인구변천 문제를 적합하게 분석하지 못한다.

맬서스주의의 한계는 빈곤의 원인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분석을 통해 더욱 명징해진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고용조건과 실업에서 인류가 직면한 사회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맬서스의 과잉인구 개념을 비판했다. 즉 인구가 절대적으로 넘쳐나서 식량부족을 야기하고 빈곤과 죄악의 증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업예비군을 형성하는 자본축적과 기술진보의 편향성에서 ‘궁핍과 비참함’(misery), 즉 자본주의에 대한 종속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출산율·인구성장률과 무관하게 상대적 과잉인구는 항상 존재하며, 인구 일부분은 언제나 빈곤 상태에 놓인다. 이윤율 하락으로 산업예비군이 증가할수록 노동자의 고통과 결핍은 증대하고, 각자도생의 상태는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진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에서 산업혁명기 출산율과 인구성장률이 상승하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부르주아는 기계가 개량될 때마다 사람이 실제로 노동하고 기력을 소모하는 작업이 점점 더 기계의 몫으로 넘어가고, 그 결과 남자들의 노동이 그저 기계를 감독하는 일, 즉 여성이나 어린이도 성인 남성 임금의 절반이나 3분의 2만 받고도 잘할 수 있는 일로 바뀐다는 사실, 그런 까닭에 성인 남성들이 갈수록 다른 이들로 대체되고 제조업이 확대되더라도 재고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침묵을 지킨다”, “부르주아는 다른 때에는 멜서스를 깊이 신뢰하면서도 노동자들 앞에서만큼은 불안해하며 이렇게 소리친다. ‘기계류가 개량되지 않는다면 잉글랜드의 늘어난 인구 수백만 명이 어디서 일자리를 찾겠는가?’ 부르주아는 기계류가 도입되어 산업이 팽창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 ‘수백만 명’이 태어나고 자라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마치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를 뗀다!” 임금률이 가장 낮았던 임시노동자나 가내노동자의 경우 출산율과 인구성장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처지의 노동자 가족에게 아동노동의 인센티브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값싼 임금을 받고도 유연한 손놀림으로 실을 잇고 기계들 사이를 민첩하게 돌아다니고 공장 관리자나 어머니의 통제에 순응하며 성인 못지 않게 오래 일할 수 있었던 아이들은 남성의 일자리를 대체했다.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구론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적 설명을 보충했다. 이 중 생산양식 개념과 노동력 재생산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결합하는 관점에서 마르크스의 주장을 역사적으로 실증한 시쿰의 분석을 간단히 소개해본다(Seccombe, Wally(1983), “Marxism and Demography”, New Left Review, Jan, 1983). 캐나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시쿰은 인구 문제를 계급관계라는 변수에 일차적으로 종속하는 방식을 비판하며, 생산양식과 가족형태 두 가지 변수를 통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을 분석한다. 시쿰은 특정한 생산양식에서 노동계급의 인구 동역학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상호보완적 또는 모순적 조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다. 출산할 수 있는 커플이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조건을 획득하였는가, 출산·양육의 장단기 비용과 잠재적 이익 사이에 균형이 성립하는가, 성관계와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공동체의 종교·문화적 제도와 규범, 출산 통제 수단 및 관련 지식의 특수한 조합에 따라 출산 방정식의 값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18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서유럽의 인구론적 전이, 특히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전복되고 대체되는 이 시기에 생산관계에 적합한 제도로서 ‘가족’이 역사적으로 변화한 과정을 살핀다(그림5). 
 

통상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다산의 풍습도 변화한 것으로 여겨지나, 중세 서유럽에서 결혼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았고 출산율도 낮았다. 경작지의 가용성에 따라 농노 가족의 결혼이 지연되거나 억제된 것이다. 그러나 가내수공업이 성장하면서 토지의 긴요성이 줄어들고, 가구의 수입에 아동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출산이 선호된다. 특히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한 지역은 가내수공업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새로운 공장 및 탄광촌이 생겨난 도시였다. 초혼 연령과 초산 연령이 낮아지고, 출산율이 증가했다. 서유럽 인구성장률은 1750년경 증가하기 시작하여 1800년에 두 배가 되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가구의 영아사망률도 매우 높았다. 새로운 산업도시의 오염된 환경이나 전염병 그리고 불충분한 영양섭취는 영아에게 치명적이었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 여성의 출산 간격은 더욱 짧아졌다. 평균 수유기간을 줄이고 유모에게 양육을 맡기거나, 혹은 자녀가 방치되더라도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 계속하여 아이를 낳았다. 시쿰은 “자본주의 발달의 영광스런 순간의 어두운 면”이 여기에서도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프롤레타리아 출산 패턴은 19세기 말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다. 아동노동의 금지, 보통 교육 출현으로 ‘출산·양육의 장단기 비용과 잠재적 이익’ 방정식의 값이 달라진 것이다. 시쿰은 노동자 가족의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노동계급의 미래세대에 대한 관심이 양에서 질로 변화한 것과 자본주의가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에서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으로 발달한 과정의 상호연관성을 짚는다. 자본축적과 노동력 재생산 양상이 모두 외연적 방식에서 내포적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인구감소 문제는 자본주의의 외연적 성장의 한계를 의미한다. 물론 이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들도 경험한 한계다. 인구구조 변화에 적합하게 사회를 재조직하면서 동시에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한 길을 찾는 과정은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적 구조, 즉 대안적 생산양식과 가족제도의 변혁을 상상하는 힘을 여전히 요구한다. 시쿰의 마르크스 인구론 분석은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이라는 두 개의 나침반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인구 위기와 공공부문 노동운동

 
인구감소와 함께 재정위기와 경제성장률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사회안전망이 붕괴하면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과 국민경제가 파탄 나고 인구문제가 더욱 악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하는 조건에서 공공서비스, 사회복지를 어떻게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가를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선도적으로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모색은 해당 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이나 고용과도 직결된 문제다.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문제의 경우, 지난 <등촌동 워크숍>에서는 인구고령화에 따라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하고 무임승차에 대한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교육국장은 어느 한쪽이 다 책임지라는 식의 극단적 결론은 가능하지도 않고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킨다며 ‘세대 간 정의, 세대 간 연대’ 전략을 제시했다. 인구감소로 인한 조세 문제가 쟁점이 되고, 건강보험 재정위기와 국민연금 기금고갈 등 사회보험과 관련한 문제도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에서 다음 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넘기지 않으면서도 현재 시점에서 공동의 투쟁으로 계급적 정의를 실현해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준형 교육국장은 지속가능한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라는 대안을 모색하는 공공부문 노동자운동의 역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노인 돌봄 등 공공서비스 영역의 확대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서비스 확대는 물론 지역공동체 기반의 돌봄서비스 확대가 병행되어야 한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주로 가족 내 여성에게 전가되는 노인 돌봄 부담을 경감하고,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효율적인 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성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 아동·청소년 돌봄과 관련해서는 고용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공공서비스와 노동조건을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가족과 여성의 부담을 줄이고 출산 및 양육이 더 용이한 사회로 나아가는 운동을 전개해보자. 각 영역의 사회적 지출이 서로 경쟁하거나 상충하지 않으면서 최적의 대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를 노동조합이 주도해야 한다.

셋째, 인구문제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지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 필수 공공서비스 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고, ▲ 공공서비스 약화와 노동자 피해를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공공 지출이 지속 가능하도록 효율화하는 방법을 찾고, ▲ 재원 마련에 있어서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면서도 현실성을 고려하는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운동이 객관적 변화에 대비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에 투입할 인적·재정적 자원의 부족을 맞닥뜨릴 경우, 더 강력한 긴축의 백래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워진다. 인구감소 문제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진지한 대응이 더없이 요구되는 때다.

여기에서는 인구감소 문제와 노동자운동의 관계에 대해 시사점을 주는 해외 사례를 짧게 소개해본다. 스웨덴은 안정적인 출산율을 보이는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로 손꼽히지만, 과거 19세기 말 무렵에는 유럽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에 봉착했다. 심각한 저출산 현상은 ‘종족의 자살’이라고 이야기될 정도로 커다란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는데, 당시 스웨덴에서는 임신 중지를 중범죄로 간주하여 1864년까지 사형, 1921년까지는 징역형과 강제노역에 처하기도 했다. 1930년대에 이르러 인구문제와 관련한 논쟁 지형을 크게 바꾸어놓았던 뮈르달 부부(Alva & Gunnar Myrdal)는 보수(우익당) 대 진보(사민당)로 양립했던 입장을 모두 비판하며 생산과 분배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재조직하여 생산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회개조 방안을 제시한다. 전문가가 주도하는 국가정책으로 사회를 전면 개조한다는 노선은 마르크스주의나 스웨덴 노동운동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사민당의 국가정책으로 수용되면서 스웨덴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후 스웨덴에서는 기혼 여성 취업률이 높아졌고, 출산과 양육 문제를 사회가 책임져야 할 영역으로 보는 관점이 견고한 규범으로 확립되었다. 그 결과 출산율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고, 공공부문과 사회서비스 분야의 고용률이 높아졌다. 또한 연대임금 정책이 실현되면서 성별 임금격차가 점차 축소되었다. 연대임금(solidary wage)이란 부문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주도적으로 제안한 정책으로, 1958년 사민당이 수용하여 1972년까지 정부정책으로 채택된 바 있다. 이처럼 인구감소 문제에 진지하게 대응했던 노동조합의 태도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가정책을 펼쳤던 스웨덴 정부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하겠다.
 
 

변화를 주도하는 사회운동으로 거듭나자

 
공공부문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은 인구감소·저성장으로 심화하는 사회모순에 대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다. 더는 유지 불가능한 현재 자본주의 사회경제구조를 변혁해가는 대안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월 10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층이 출산을 더 꺼린다는 자못 놀라운 결과가 발표되었다. 한국경제신문이 25~45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결혼·출산 인식’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8.8%가 ‘자녀 출산 계획이 없다’고 답했는데, 월 소득 200만원 미만에서 59.0%, 1000만 원 이상에서는 61.0%가 이 응답을 고른 것이다. 자녀 계획이 없는 이유로 저소득층은 ‘육아에 구속되기 싫어서’가 44.7%,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가 75%인 반면, 고소득층은 각각 60%와 36%의 응답을 보였다. 대신 고소득층은 ‘자녀가 힘든 삶을 살 것 같아서’라는 응답이 56%에 달하는 특징을 보였다. 한국의 초저출산 문제가 단순히 양육비 지원과 같은 현금성 지원 정책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라는 점과 현대 사회의 경쟁 속에서 출산과 양육이 일자리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시쿰의 분석에 빗대자면, ‘출산방정식’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울만큼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가족제도가 한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여성들은 갈수록 더욱 복합적인 처지에 놓인다. 출산 의향이 없는 청년 비중이 커지는 동시에 고령(35세 이상) 산모 비중과 난임 비율도 꾸준히 늘고 있는 상반된 현실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제도적 성평등이 형식적이나마 갖추어진 것에 반해, 노동시장의 성별 분리와 성별 임금격차는 여전하다. 게다가 재생산 위기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성별 갈등 심화도 곤란함을 더한다. 

이에 사회운동이 청년·여성과 미래세대를 대변해 사회적 노동 참여의 권리(노동권)와 성·재생산 권리(여성권)를 함께 요구하는 실천에 나서야 한다. 일례로 ‘아이돌봄서비스’를 2027년까지 현행 수준의 3배로 확대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 대해, 사회운동은 시간제 불안정노동이라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비판을 제기해야 한다. 단순히 아이돌봄서비스 수당을 높이고 인센티브를 얹어주는 식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에게 월급제를 도입하는 것과 같은 근본적인 제도개선 방안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정책적 개입이 시의적절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아이돌봄서비스·시간제보육(가정 내 돌봄서비스) 확대와 유보통합 시행·늘봄학교(보육·교육기관 돌봄서비스) 확대와 같은 정책 변화에 각각의 유관 노동조합이 분절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연계성을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유사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보편적 요구를 개발함으로써 노동운동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할 필요도 있다. 이 과정에서 돌봄부문 여성노동자가 당사자이자 현장 전문가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최근 거론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월 100만원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 도입”은 인구감소·경제위기 문제해결에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여성 노동의 가치절하, 여성노동자 내부 격차 심화라는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사회운동이 비판할 필요가 있다. 정주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저임금·3D 직종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한다는 발상이 아니라 숙련 일자리와 민간은 물론 공공부문의 좋은 일자리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장기적으로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는 인구감소·저성장이라는 분석 틀로 볼 때 그 문제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인구감소 문제는 자본주의의 외연적 성장의 한계를 의미하며, 경제위기 심화와 새로운 사회적 모순을 초래한다. 인구감소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하는 것으로부터 대안적인 생산양식과 가족제도의 변혁에 대한 상상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사회운동과 공공부문 노동운동은 지속가능한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를 모색하는 운동, 청년·여성들과 미래세대가 처한 현실에 적합한 요구를 제시하는 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 변화를 주도하는 사회운동의 실천으로 달라질 미래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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