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씨가 길가다가 갑작스럽게 단속반의 위협에 처하게 되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출입국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는커녕 사건의 진실을 감추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주운동진영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요청했을 때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라고 말하면서 내용을 공개할 것을 거부했다. 한국에서 체류하는 H씨의 부인의 연락처를 요청했을 때는 경기도 광주시의 안모 목사가 사건을 맡고 있다면서 부인 연락처 대신 안목의 연락처를 주었다. 출입국과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안목사는 역시 연락처를 내놓지 않았으며 사건을 최대한 빨리, 조용히 해결하고자 하는 듯하다. 도의적 책임을 표명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는 항의에 대해 출입국은 ‘경찰이 범죄자 잡다가 범죄자가 도망가다 사망하면 경찰이 사과하냐’며 그럴 수 없다고 거부했다.
우리는 작년 이맘때 갑작스럽게 공장에 무단 진입한 단속반을 피하다 2층에서 추락해 사망한 베트남 노동자를 추모했다. 불과 한 달 전에도 광주광역시에서도 베트남 노동자 2명이 비슷한 상황에서 죽었다. 이주노동자가 죽을 때마다 출입국의 반응은 같다. ‘불법체류자‘ 단속은 자신들의 관할권이며 사회 질서에 필요한 조치이라서 단속과정에서 사람이 우연히 죽게 되면 자신들이 사과하거나 재발방지 조치를 취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단속으로 인한 사망은 출입국의 무책임하고 편견으로 가득 찬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를 한국인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 단순히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태도다. 그러나 이 태도의 원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출입국관리법, 고용허가제 등 한국의 전체 출입국․외국인력 제도는 근본적으로 차별적이고 인종주의적이다. 다른 나라에서 온 노동자를 단기순환 외국인력, 즉 권리의 주체 아니라 고용주의 편의에 맞게 제공할 노동력으로 규정한다. 이주노동자를 고용주에 종속시키고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전에 내보내는 법제도다. 이 제도 하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 관리되지 않는 이주노동자는 범죄자, 단속으로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한다. 이러한 법제도의 수행을 담당하는 출입국이 반인권적이고 인종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주센터와 관련 단체들은 H씨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요구를 강조하고자 한다. 출입국이 단속과정에서 일어난 폭력, H씨에 대한 미흡한 응급조치의 이유 등을 포함해서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즉시 자세히 밝혀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한국의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차별적이고 인종주의적 본질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단속으로 인한 또 다른 비극적인 죽음을 방지하려면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를 단순히 쉽게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이나 범죄자로 취급하는 제도 대신에 충분하고 합법적인 이주의 통로와 영주권을 포함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도입이 되어야 한다. 제도적인 변화를 쟁취하기 위해서 힘을 모아야 한다.
2011년 11월 15일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