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평화연대(준) 공동성명]
한반도의 전쟁 위협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다. 지금 한반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전쟁의 암운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전쟁 불사, 강력 응징. 남북 모두 전쟁만을 부르짖고 있는 형국이다. 강대강의 맞대응 속에 한반도의 평화와 상생이라는 민중들의 열망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화와 협력의 실종 속에 상호 적대정책 강화, 한반도 긴장 고조라는 악순환은 민중들의 평화적 생존을 위협한다. 이제 우리는 이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첫째, 대북 제재는 결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8일 새벽,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2094호를 채택해 추가적인 대북 제재에 나섰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제재 강화는 지금의 한반도 위기 상황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사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북한의 폭력적인 대응을 유발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다. 이는 기존의 대북 제재가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었는지, 아니면 상황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는지를 질문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실제 이번 핵실험 이후 북한은 ‘합법적인 평화적 위성발사 권리를 침해한 미국의 적대행위에 대처한 대응조치의 일환’이라고 밝혀,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안보리 제재를 핵실험의 명분으로 삼았다.
‘제재’에 대한 일반적인 환상은 비군사적 처벌을 가함으로써 전쟁에 따른 대중의 고통과 희생 없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호전 세력이 ‘스마트 제재’라고 떠드는 것도 이러한 환상을 부추긴다. 군부나 고위층을 타깃으로 하는 제재가 민중들의 희생 없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며, 제재는 민중에 대한 무차별 폭력을 낳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실례로 1차 이라크전쟁(걸프전쟁)에서 전투 중 사망한 이라크 군인은 2만여 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UNICEF의 조사에 따르면 유엔 제재의 영향으로 사망한 이라크 5세 이하 영유아는 50만 명에 달한다. 이라크까지 갈 것 없이 수십 년간 지속된 대북 제재로 인해 북한 민중들이 겪는 고통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걸핏하면 기아 문제를 들어 북한인권 운운하는 세력들이 ‘스마트한 제재’를 주장하는 것은 기만이며 위선이다.
제재는 제재 대상의 입장을 변화시키기보다는 보다 강력한 억지력, 군사력을 확보해야한다는 논리를 강화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국가의 동원에 무감각해지도록 하며, 모든 문제를 외부의 제재와 압박의 결과로 환원하도록 한다. 이러한 원리로 제재 대상의 입장 변화, 즉 정치적·정책적 선회라는 제재의 원래 목표는 달성되기 어려우며, 민중의 고통과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서 보다 폭력적인 대응만을 낳는다.
지금까지 지속된 대북제재가 북한의 태도 변화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보수언론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평가다. 그렇다면 사태를 해결하지도, 별 효과를 거두지도 못하면서 민중들의 고통과 폭력적 대응만을 낳는 대북 제재를 우리가 선택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제재 강화-반발-도발 심화-긴장 고조라는 악순환을 지금 당장 끊어야 한다.
둘째,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는 군사훈련을 즉각 중단하라!
3월 11일부터 21일까지 한미 양국은 연합 군사훈련인 ‘키리졸브 연습’을 진행한다. 북한은 훈련이 시작되는 11일을 시점으로 정전협정이 백지화되고 불가침 합의가 무효화될 것이라며 극렬 반발하고 있다.
한미 양국의 연합 군사훈련은 역사적으로 한반도 긴장 조성의 커다란 요인이 되어 왔다. 키리졸브 연습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을 신속히 한반도에 배치해 최전방으로 이동시키는 연례훈련으로 1976년 시작한 팀스피리트 훈련, 이를 대체해 1994년부터 시작된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RSOI)의 후신이다. 한미 양국은 키리졸브 연습이 ‘연례적인 방어 훈련’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목적과 양상을 볼 때 이 훈련은 북침 전쟁연습이다.
키리졸브 연습은 북한 내 700여개에 달하는 표적을 공격해 파괴한다는 작전계획 5026, 한반도 전면전 시나리오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전략을 도입한 작전계획 5027, 북한의 내부 소요나 천재지변과 같은 사태에도 군사적으로 개입한다는 작전계획 5029에 의해 규정된다. 키리졸브 연습에는 미국과 한국의 대규모 병력이 투입되고, 핵 항공모함과 이지스 구축함이 동원되며, 스텔스 폭격기가 전진 배치되어 북한을 압박해 왔다. 훈련내용도 특수작전 요원 침투, 군수지원, 북한과 유사한 지형에서의 상륙훈련, 대북 시가전 등 대북 공격과 점령을 상정한 것들이었다.
더구나 한미연합사가 다양한 상황을 가정한 연습을 실시해오면서 훈련의 침략적 성격은 더욱 강화되어 왔다. 특히 북한 내 소요사태 등의 체제 불안정을 가정한 상륙, 점령, 핵과 미사일 제거 훈련 등을 실시하는 것은 북한에는 직접적이고 심대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북한은 키리졸브 훈련에 맞서 무력시위 차원에서 3월 중순 잠수함 기동훈련과 육해공 통합 화력훈련을 실시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반도의 전쟁 수행 가능성을 높이는 한미 양국의 군사훈련, 그리고 이에 맞대응해 벌이는 북한의 무력시위는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크게 고조시키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훈련은 지금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셋째, 한반도의 긴장을 단 1%라도 고조시키는 어떠한 행위도 단호하게 반대한다!
무릇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정전협정 백지화, 불가침 합의 무효화, 핵 선제공격,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 도발원점 타격, 북한의 핵개발에 대응한 핵무장론 등 남북 양측은 전쟁 불사를 부르짖으며 한반도 민중들의 생명을 볼모로 힘겨루기에 몰두하고 있다.
남북 양측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바라는 민중들의 염원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보장·남북 불가침·평화통일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 위험 제거·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유리한 환경 조성을 위해 채택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바라는 민중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그러나 불가침 합의가 무효화되었다거나 핵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현재 북한의 강경한 주장이나,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공공연하게 언급하면서 미국의 핵우산을 통해 핵전쟁의 위험을 고조시키고 공격적인 전쟁연습을 통해 상호불가침 합의를 무력화시켜왔던 한국의 태도는 이러한 민중들의 염원을 짓밟는 행위며, 한반도 평화 정착을 요원하게 만드는 행위다. 남북 양측은 이러한 일체의 도발적 언사와 행동을 지금 즉시 중단하고, 현재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에 즉각 나서야 한다.
현재의 한반도 위기 상황은 ‘악의 축’ 운운했던 미국 부시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소위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대화를 외면한 채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한 오바마 정부의 접근법, 그리고 이에 동조해온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시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시한 바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과 북이 서로를 힘으로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신뢰를 형성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민중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그 어떤 세력도 결국엔 평화를 바라는 민중들의 거대한 투쟁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의 위기를 조금이라도 고조시키는 어떠한 행위에도 반대하며, 한반도 민중들의 평화적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설 것이다.<끝>
2013년 3월 10일
반전평화연대(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