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노동자가 이긴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 씨앤앰지부/케이블비정규직지부와 (주)씨앤앰 노사 잠정합의를 환영하며
우리는 세월 가는 것을 잊었습니다.
1년 중 낮이 제일 긴 하지가 되기 전 시작된 씨앤앰 단체협약 투쟁이 아득한 날들을 지나 매서운 겨울 동지를 넘어서고야 끝나게 되었습니다. 2014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씨앤앰지부/케이블비정규직지부 공동투쟁 205일, 케이블비정규직지부 노숙농성 177일, 강성덕/임정균 고공농성 50일, 씨앤앰지부 총파업 44일차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날짜를 제대로 세지 못했습니다. 109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되어, 해고자와 비해고자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거리에서 싸우는 동안 우리 시계는 야만의 시대에 그대로 멈춰 있었습니다.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맥쿼리코리아, 씨앤앰 원청, 각 지역 하청업체 사장단들과 교섭을 진행하며, 우리는 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케이블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무수히 낙담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케이블방송을 운영하는 데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업무인 설치/수리 기사들을 직접 고용하라, 그리고 지난해 단체협약에 의거해 하청업체가 교체되더라도 노동조합원들의 고용을 승계하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요구가 거절될 때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의 권리와 경제 주체들이 책임져야 할 사회적 합의가 노동자들과 함께 길바닥에 내쳐지는 모습 또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수난이었습니다.
노사합의와 노동자들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지낸 지 170일이 되어서야, 두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내놓고 25미터 전광판에 오르고 나서야 회사 측 제안으로 열린 3자 협의체는 한 달이 넘는 진통 끝에 잠정 합의안을 내놓았습니다. 비록 해고자들의 원직 복직은 아니지만 신규 법인을 통해 전원이 기존 근무 지역에서 업무 복귀를 하게 된 것을 우리는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또한 향후 매각과정에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매각 시까지 협력업체와의 업무위탁계약을 종료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환영합니다.
우리가 오늘 받아 든 합의의 배경에는 해고자와 비해고자가 손잡고 고공에 오르고, 해고자의 농성을 비해고자가 순환 파업으로 엄호하고 , 비정규직의 농성을 정규직 노동자가 총파업으로 지지한 205일의 여정이 깔려 있음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심신의 고단함과 생계의 곤란함에도 노동조합이라는 보루를 포기하지 않은 109명 해고자의 질긴 싸움을 노동운동의 역사에 또렷이 기록할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적인 동시에 성스럽기도 했던 기나긴 투쟁의 끝에서 노동자들이 어렵게 내린 결정을 우리는 무겁게 받아들겠습니다. 강성덕, 임정균, 109인의 해고자, 케이블비정규직지부와 씨앤앰지부의 조합원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간접 고용의 굴레, 하나하나 깨어나가겠습니다.
오늘 한량없는 기쁨을 표현하기에 앞서 되묻고 싶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의 간접 고용 문제가 205일이라는 시간과 800여 명의 노동자를 갈아 넣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인지 함께 돌아봐야 한다고 강하게 되묻고 싶습니다. 올해 씨앤앰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해고자, 비해고자, 정규직, 비정규직, 다시 말해 노동자와 나아가 케이블방송 가입자 그 누구도, 우리 가운데 단 한 명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대주주가 기침을 하면, 원청은 감기에 걸리고, 하청은 몸살을 앓는 하청, 재하청, 도급, 특수고용의 뒤엉킨 거미줄에 노동자들이 자본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노동자 죽이기를 통한 경제 살리기는 가능하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을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거리에 집을 짓고 있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떠올립니다. 온몸을 얼음바닥 위에 내던진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마음에 새깁니다. 굴뚝에 둥지를 튼 쌍용자동차와 스타케미칼의 고공농성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씨앤앰 노사에 대한 애정과 감시의 눈길도 아직 늦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날짜를 세려 합니다. 씨앤앰지부/케이블비정규직지부의 잠정합의안을 환영하며 간접고용 철폐 투쟁과 연대, 다시 1일차임을 선언합니다.
2014년 12월 31일 수요일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