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월 28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식적으로 지난 3년간 추진되었던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안’(이하 개선안)을 백지화한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가 ‘백지화된 것이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 추진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였으나, 사실상 한동안 개선안 결정을 유보한 것이 맞다.
국민들은 현행 부과체계의 수많은 문제점을 해결할 개혁적인 개선안을 복지부가 발표하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복지부가 마지막까지 검토한 개선안은 사실 개혁안과는 거리가 멀었다. 복지부가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언론에 공개한 개선안을 보면 사실상 누더기 개악안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첫째, 정부가 ‘송파 세 모녀’를 거론하며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내린다는 주장은 과장이 크다. 개선안에는 지역가입자의 경우 기본보험료로 1만6천 원 가량을 내도록 하고 있다. 현재 지역가입자 중 1만5천 원 이하를 내는 세대는 12.1%에 달한다. 기본보험료는 기존의 제도보다도 역진적인 서민 증세안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저소득 지역가입자 중 재산점수로 인한 과도한 보험료를 내는 문제는 재산점수의 하한선을 올리면 되는 부분이다. 또한 재산부과를 배제함으로써 고액자산가들에 대한 부과를 면제할 게 아니라 30억 자산까지만 점수를 부과하는 상한선을 폐지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특히, 재산점수 부과를 면제하면서도 양도, 상속, 증여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하지 않도록 한 것은 명확한 자산가들에 대한 특혜로, 건강보험 부과체계 형평성과 근본부터 관련이 없다.
둘째, 종합소득에 대한 부과 개선안도 사실상 기만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현행 금융, 임대, 연금 소득 중 4천만 원 이상 대상자를 2천만 원으로 낮추는 것으로 종합소득 대상자의 부양가족 편입을 막겠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저금리로 부동산이 아니면 기업에 투자하는 상황에서 금융소득을 낮춘 효과는 매우 적다. 임대소득의 경우도 고작 4% 정도만 파악되고 있고, 건보료를 부과할 시 세입자에게 비용이 전가될 공산이 크다. 결국 연금소득의 기준을 현행 4천만 원에서 2천만 원으로 축소하는 것만 실효성이 있는데, 이는 월 167만 원 이상을 수령하는 대부분의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대상자가 부양가족에서 제외되는 효과가 생긴다.
이는 공적연금 수령자와 여타 노동자 사이를 갈라치기 하려는 시도의 다름 아니며, 부과체계 형평성 개선을 빌미로 연금을 개악하려는 시도이다. 피부양자 제도 개선은 연금소득 등의 부과가 아니라, 고액 재산가들을 피부양자에서 제외시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셋째, 정부의 부과체계 개편안에는 계속 축소된 정부의 건강보험료 부담과 기업의 건강보험 부담 형평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건강보험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73.6퍼센트에서 2005년 이후 80퍼센트를 넘어섰고, 2012년에는 85.7퍼센트로 증가했다. 국고 지원 비율은 계속 줄어들었고, 노동자, 서민의 부담으로 보험 재정을 메웠다. 거기에 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얻고 비정규직이 양산되지만, 노동자, 기업 분담 비율은 여전히 1:1인 상황이다.
무엇보다 공적부조에 해당되는 의료급여 환자를 전국민의 2%대까지 축소함으로써, 건강보험재정 악화와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를 150만 명 가량 만드는 문제는 언급조차 없다. 사실상 제대로 된 부과체계 개편안이라면, 정부지원금 확대, 기업분담비율 상향조정, 공적부조의 확대를 전제로 해야 한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개혁안을 추진하려 했으나, 고소득자의 저항으로 이를 실현하지 못한 것처럼 백지화를 포장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기만이다.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은 사실 재산, 소득 모두 기준 하한선을 올리는 반면 상한선은 없애고, 국고지원을 늘리고, 기업분담을 늘리면 되는 간단한 문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간단한 방향을 택하지 않았다. 이는 고액소득자와 자산가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정부와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꼼수에서 비롯한다.
이를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형평성 문제로 뒤틀어, 그나마 양도, 상속, 증여 등의 부과는 폐기하고, 연금가입자의 부담은 늘리면서, 기본보험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은 개악안일 뿐이다. 지난 3년간의 개편 논의는 누더기가 되어 이제 재활용도 안되는 수준이다. 정부는 백지화나 개편안 유보가 아니라, 전면적인 부과체계 개편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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