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민중들이 부채협상안 국민투표에 ‘반대’를 선택했다. 찬성보다 훨씬 높은 61%의 반대로 박빙을 예상한 평론가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적 유럽’을 지키려는 자본의 융단 공세에도 불구하고, 경제 폭력에 맞서 싸우기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리스 민중들의 슬기와 용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리스는 지난 5년 동안 혹독한 긴축 정책을 겪었다. 2010년 이후 정부 지출이 30%가량 줄었고 덩달아 민중들의 생활도 어려워졌다. 2010년부터 4년간 그리스인들의 가계소득 30%, 최저임금 26%, 평균임금 38%, 평균 연금수급액 45%가 감소했다. 이렇게 5년 동안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 유럽연합집행위원회, 국제통화기금)가 강요한 긴축정책을 따랐지만, 경제위기를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유로라는 통합 화폐를 사용하는 그리스는,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확장적 재정정책이나 환율변동에 의한 조정 메커니즘을 사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빚을 갚을 돈은 순수하게 그리스 민중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 과정에서 부채는 오히려 늘어났다. 트로이카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려면, 앞으로도 그리스의 노동비용을 30~40%나 줄여야 한다.
보수 언론과 자본이 떠드는 것과는 달리, 그리스 경제의 파탄은 민중들이 흥청망청 소비해서가 아니다. 위기는 금융세계화에 들떠 부동산과 금융 투자에 홀렸던 그리스 자본, 그리고 이를 부추기며 그리스에 투자해 한몫씩 잡았던 유럽 자본들이 만든 일이다. 그런데도 긴축을 대가로 지불된 구제금융의 대부분은 이들에게 돌아갔다. 지난 5년간 구제금융 300조원의 90%가 그리스인의 주머니는 거치지도 않고 채권단 은행 금고로 곧바로 흘러간 것이다.
시리자 정부가 부채 조정을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부채를 삭감하지 않고서는 악순환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자본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리스 민중의 손실을 최대화하는 방법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리자 정부와 그리스 민중들은 큰 한 걸음을 뗐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 시작이 어떤 길로 이어질지는 전적으로 앞으로의 투쟁과 민주주의에 달려있을 것이다. 지금 그리스는 금융세계화의 폭력에 맞서 싸우는 최전선이다. 유로존이라는 기울어진 링 위에서 금융자본의 대리인들과 싸우는 게 쉽지 않을 것이고, 유로존을 나가 새 화폐체계를 구축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민중들은 도전을 선택했다. 18년 전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결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불평등을 얻은 한국 노동자들에게 이 도전은 다른 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그리스 민중과 연대하자. 그리고 우리의 자리에서 다른 가능성을 만들자!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