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경찰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마라!
공장 안팎의 폭력을 중단하라!
“미안하다. 사랑한다.”
한광호 열사가 동료 조합원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고인은 현대자동차에 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유성기업에 다니는 노동자였다. 유성기업에서는 심야노동으로 돌연사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겼다. 금속노조 유성지회는 2009년 회사와 단체협약으로 심야노동 철폐를 체결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자동차의 주요 부품을 생산하는 유성기업에서 주야2교대를 주간2교대로 바꾸게 되면 생산과 이윤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 여겼다. 현대차는 2011년 창조컨설팅과 함께 노조 파괴를 기획한다. 2011년 5월 18일 회사는 공격적 직장폐쇄를 했고 용역깡패를 동원해 조합원들을 폭행하고 내쫓았다. 노동부의 중재로 조합원들은 다시 현장에 복귀했지만 사측이 복수노조법을 활용해 세운 어용노조에 가입하고 민주노조인 금속노조를 탈퇴하라는 직간접적인 강요를 받았다. 감시, 징계, 고소고발, 임금 삭감 등의 방법으로 탈퇴하지 않은 조합원들을 괴롭혔다. 노동자들은 공장문은 지옥문에 들어서는 것 같다고 했다.
고인은 대의원을 하는 등 민주노조 간부를 했기에 사측의 주요 괴롭힘 대상이 되었다. 2011년 공장에 복귀한 이후 징계를 2번이나 당하고 고소고발을 11번이나 당했다. 사측 관리자에게 집단 폭력을 당했지만 그들은 무혐의 처리됐고 그는 경찰과 법원을 드나들어야 했다. 도무지 회사에 갈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동료들 때문에 출근했다. 그가 죽기 며칠 전 3번째 징계위원회 출석요구를 받았다. 3번째 징계위 출석요구서는 해고나 다름없는 일, 그는 출근하지 않았다. 더 이상 회사의 괴롭힘을 견디기 어려웠던 그는 2016년 3월 17일 자결했다. 괴롭힘을 견디며 함께 싸우지 못하고 먼저 간 것이 미안했던 한광호 열사. 미안하다는 고인의 마지막 말에서 그의 숨구멍을 막았던 행위들과 가해자들을 떠올린다.
지독한 노조파괴 전략과 가학적 노무관리에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다. 2011년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발견됐지만 직접 개입한 증거가 아니라며 검찰은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6년 1월 현대차 최재현 이사가 직접 유성기업과 창조컨설팅을 불러 민주노조 탈퇴와 어용노조 가입을 지시한 이메일 자료가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래도 검찰은 수사하지 않다가 시민들의 집단고발로 최근 수사가 개시됐다.
“미안하다. 형은 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몰랐다.”
고인의 형 국석호 씨는 가슴을 친다. 자기가 해고자 처지라 동생이 징계와 괴롭힘으로 고통 받는 줄 몰랐다며 자책한다. 형은 동생의 한을 풀어야 편히 쉬리란 생각만으로 서울로 왔다. 노조파괴와 노동자 괴롭힘을 사주한 몸통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에게 이 죽음을 돌아보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용역과 경찰이 합세한 폭력이었다. “채증하게 용역들 뒤로 가”, “검거하게 용역들 뒤로 빠져” 경찰은 무전기로 이런 말을 서슴없이 주고받았다. 닷새 동안 세 번에 걸쳐 연인원 48명이나 연행됐다. 경찰은 유족조차 가리지 않고 잡아갔다. 또한 현대차 본사 앞 집회신고도 경찰은 용역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우선권을 주었다. 2016년 개정된 집시법에 따라 1순위로 집회신고를 하지 않은 단체나 사람들도 집회시위를 할 수 있도록 경찰은 중재해야 하지만 중재하지 않고 무조건 현대차의 편에 섰다. 경찰의 지원에 힘입은 경비용역들은 경찰이 있어도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노동자들의 집회 대오에 끼어들어 알박기를 하곤 했다. 그러더니 5월 21일에는 심지어 분향소를 철거하고 유족과 조합원을 끌어냈다. 그 자리엔 현대차 직원들과 경비용역들이 있다.
어떻게 유족을 연행하느냐고 조사가 끝났으면 유족이라도 풀어달라는 동료들과 시민사회의 요청마저 경찰은 묵살했다. 노동자의 죽음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는 유성기업의 태도와 다르지 않았다. 유성기업은 한광호 열사의 죽음을 회사와는 상관없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했고 고인의 형을 아버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유족으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국석호와 한광호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고 같은 공장을 다닐 정도로 우애가 깊었다. 파킨슨병을 앓는 고인의 어머니는 유족으로서의 일을 국석호 씨와 노동조합에 일임했다. 회사는 그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죽음에 아랑곳 않는 기업과 경찰의 눈에는 유족조차 투명인간일 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폭력은 차별의 논리를 들이밀었다.
유족과 동료 조합원들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할 권리가 있다. 이들은 슬픔 속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지난 5년간 갖은 괴롭힘과 가학적 노무관리에 시달려왔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시시콜콜 징계 대상이 되는 공장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관리자나 어용노조 간부가 욕지거리나 폭력으로 모욕할 때마다 ‘인간으로서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자문했고 ‘민주노조가 뭐 대수라고 이렇게까지 지켜야 하나’ 회의했다. 버티고 견딘 것은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지키고 싶었고 조합에 남는 것이 자신의 존엄을 증명하는 길이라고 여겨서다. 그렇게 서로를 붙들고 여기까지 왔다.
그가 죽은 후에도 공장에서는 자살시도가 있었다. 어용노조는 노조가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고용노동부는 어용노조 위원장이 만든 3노조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징계와 해고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동료들과 시민사회는 현대차의 책임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자 5월 21일 겨우 입을 연 현대차. 그들의 답은 2011년과 다르지 않았다. 현대차는 유성기업에 보고만 받았지만 지시하지 않았다고. 그러나 2011년과 달리 현대차의 직접 개입증거가 있지 않은가. 현대차가 거짓 답변을 하고 분향소를 없앤다고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몬 그들의 책임을 은폐할 수는 없다. 시민들이 거짓에 넘어가 현대차에게 책임을 묻는 일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존엄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노동자도 존엄한 인간이다. 노동현장에서 인격을 제거하려는 괴롭힘과 노동자의 목소리를 틀어막으려는 노조탄압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가학적 노무관리가 경영전략으로서 인정돼서는 안 된다. 또한 모든 사람은 살아있을 때나 죽어서나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우리 인권단체들은 요구한다.
현대차와 유성기업, 경찰은 노동자의 죽음을 방조하고 그 죽음에 대한 추모조차 모욕하는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 앞서 저지른 죄를 거짓말과 폭력으로 덮으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그만둬야 한다. 현대자동차와 유성기업은 노동자 괴롭힘과 고인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경찰은 기업의 범죄와 폭력을 지원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금속노조 유성지회 노동자들에게 추모와 집회시위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하라.
탄압으로 사그라질 시민들의 분노와 애도가 아니다, 밟으면 밟을수록 우리는 더 많이 모이고 더 굳게 연대할 것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당하는 괴롭힘을 끊어내는 싸움은 더 확대될 것이다. 이 싸움은 우리의 존엄성이 달린 일이기에 우리는 유성기업 노동자들과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2016년 5월 25일
국제민주연대, 다산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천주교인권위원회, 삼성노동인권지킴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인권운동공간 ‘활’, 광주인권지기 ‘활짝’, 서울인권영화제,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제주평화인권센터, 이윤보다 인간을, 인권연구소 창, 울산인권운동연대, 사회진보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노동건강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원불교인권위, 불교인권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무순, 총 23개 인권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