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죽음으로 내모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은 즉각 폐지되어야 합니다!
- 현장실습생 故 이○○ 씨의 명복을 빕니다
제주 용암수를 만드는 제이크리에이션 음료 회사에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나갔던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고3 이○○ 씨가 지난 11월 9일 오후 제품 적재기 벨트에 목이 끼어 중태에 빠졌다가 열흘 만인 19일 새벽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씨는 지난 7월 현장실습을 나갔고, 매일 12시간 넘게 일했습니다. 심지어 추석 무렵에는 일하다 사고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산재를 당했습니다. 병가 후 다시 출근한 이 씨에게 회사는 또 12시간 근무를 지시했습니다.
최근 개정된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에 따르면 현장실습시간은 1일 7시간, 주 35시간을 넘을 수 없고, 당사자와 합의하더라도 주 40시간을 넘길 수 없습니다. 당연히 건강에 좋지 않은 휴일/야간 노동 또한 엄격히 제한됩니다. 이를 위반할 시 징역 2년 이하 또는 벌금 2천만 원 이하를 부과하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법이 현장실습이 이루어지는 산업체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났습니다.
더 마음이 아프고, 분통한 이유는 산업체로 파견 현장실습을 나갔던 학생의 죽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난 1월 LG유플러스 콜센터에서 일하던 고3 학생이 해지 방어부서에 배치되어 실적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목숨을 던졌습니다. 직업계고에서 매년 시행되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때문에 매년 1~2명씩 학생이 죽거나 다쳤지만, 정부는 ‘취업률’ 경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 제주 현장실습생의 죽음 역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실습생을 착취하려는 자본의 탐욕과 정부의 방치 아래 벌어진 사고입니다.
고인의 죽음에 회사뿐만 아니라 교육부와 제주도교육청, 학교 역시 책임이 큽니다. 실습 이전 산업 안전교육을 비롯한 각종 교육의 시행, 현장실습 기간 중 교육기관의 상시적 현장방문 점검 및 실습 후 복교 조치 등이 이뤄져야 하지만 교육부와 제주도교육청, 학교 당국 그리고 회사는 그에 따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현장실습대책회의는 올해 3월부터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폐지하라고 요구해 왔고, 11월 한 달 동안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와 현장실습의 교육적 가치를 살릴 수 있도록 관련 있는 법령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입법청원 운동을 진행 중입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과 교사,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를 외면했습니다. 결국 문재인 정부에서도 참극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교육부는 최근 ‘근로 중심에서 학습 중심’으로 현장실습체제를 개편해 현장실습생의 학생으로서 지위를 명확히 하겠다는 취지의 개선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나마도 8월 사회관계 장관회의에서 발표한 안에서 더 후퇴하여, 산업체 파견 운영 기간을 최대 3월까지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스위스·독일 등 다른 나라의 현장 기반 도제식 교육훈련을 도입한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와 다른 나라들의 노동 현실이 다르고, 정부-산업계의 지원 및 참여 의지도 다른 상황에서 남의 제도를 고스란히 베껴 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결국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과 마찬가지로 학습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을 열악한 노동시장에 값싼 인력으로 조기 취업시키기 위한 대체재가 될 것이 뻔합니다. 최근 도제학교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강원도 태백기계공고 교사가 업무 과중으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 역시 피해와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학생과 교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은 적폐 중의 적폐입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은 즉각 폐지되어야 하고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 사업도 멈추어야 합니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현장실습생을 죽음으로 내모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폐지하는 데 함께 힘 모아주십시오.
2017년 11월 23일
산업체파견현장실습중단과청소년노동인권실현을위한대책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