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5일 새벽, 부산 사상구에 위치한 공장 컨테이너에서 잠자던 한 베트남 노동자가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숙소로 사용하던 컨테이너는 공장 옆 야외 화장실 건물 2층에 놓여 있었다. 컨테이너의 얇은 외벽으로는 최근 지속된 강추위를 막을 수 없어 전기장판 등 전열기를 과도하게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부터 반복되어 온,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참사

이주노동자가 컨테이너나 가건물, 비닐하우스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지내다가 참사를 당한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해 2월 7일에는 인천의 공장 컨테이너 외국인 근로자 대기실에서 화재가 발생하였고, 1월 17일에는 경기 광주시 가구공장 외국인숙소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은 소방시설은커녕 소화기조차 마련되지 않은 불법 무허가 건축물에서 화재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어 이에 대한 우려와 대책마련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음에도, 이주노동자들의 주거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열악한 거주시설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올해 2월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에 “임시 주거시설”에 기거하는 경우에도 숙소비를 선공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불법 무허가 건축물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도록 고용노동부가 사실상 용인하는 지침을 마련한 셈이다. 이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환경 개선에 오히려 역행하는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수용 입장을 밝힌 고용노동부는 “숙식비 지침”을 즉각 폐지하라

위 지침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도 2017년 7월 21일 자 결정을 통해 ‘열악한 환경의 임시 주거시설을 숙소의 한 형태로 정당화’하고 있는 점 등을 지적하며, 지침을 정비하고 이주노동자 주거시설의 안전·위생·사생활 보장에 대한 주거환경 기준 마련 및 관리·감독 강화를 권고하였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12월 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보낸 답변서에서 “지침 정비를 검토하겠다”고 수용 입장을 보였으나, 12월 13일 이용득, 김현권 의원과 이주민 주거권 개선 네트워크에서 주최한 국회토론회에서 즉각적으로 지침을 폐기 또는 변경할 의사는 없다는 모호한 의견을 보여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숙사에 대한 기준 및 소방·안전시설 설치 조항 없는 현행법령

지침뿐만 아니라 현행법은 이주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주거권 보장에는 매우 미흡하다. 『근로기준법』상 기숙사 규정은 1953년 제정된 이래 개정되지 않은 채 당시 기준 수준에 머물러 있고, 제100조에서 근로자의 건강, 풍기와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고 추상적으로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즉 기숙사의 구조나 설비, 보안, 안전, 위생 시설 등 삶에 필수적인 설비에 대해서는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법 건축물, 안전시설 미비에 대해서도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역시 고용허가의 요건에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숙사 기준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농업 이주노동자들은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비닐하우스로 만든 패널 칸막이 공간에서 비가 세고, 통풍이 안되며, 냉난방시설이 없어도 참고 지낼 수밖에 없다.숙소의 열악한 상태 또는 그에 대한 과도한 비용 공제에 노동자가 문제를 제기하여도 조사나 감독, 시정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구조이다.

 

국회의 근로기준법 및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다

우리는 그동안 현행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법개정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에 이용득 의원은 2017년 9월 27일 근로자 기숙사 설치 기준을 구체화하고, 이에 대한 감독 및 지원 방안을 담은 근로기준법과 외국인고용법의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용자는 적절한 구조와 설비, 환경을 갖춘 기숙사를 제공하여 노동자의 건강, 안전, 사생활을 보호하여야 하며, 고용노동부장관은 운영실태를 점검하고 지도하여야 한다. 이주노동자와 근로계약 체결 전에 기숙사에 대한 정보를 사전 제공하여야 하며, 계약과 다르거나 기준에 미달하는 기숙사를 제공하는 경우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또한 필요한 경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숙사의 설치·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참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 고된 노동을 마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사람의 집’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 온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가 일터 옆에 제공하는 숙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들의 건강, 생명과 직결된 주거권 보장이 절박한 이유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안전이 보장된 곳에서 지내도록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이주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도록 국회의 조속한 관련 법제 개정을 촉구한다.

 

 

2017년 12월 18일

 

이주노동자 주거권 개선 네트워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사단법인 두루,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이주와인권연구소,

재단법인 동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이주인권센터,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