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계급에 대한 역사적 죄악으로 남을
경사노위 합의를 규탄한다
 
 
 
 
 
지난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및 도입요건 완화에 합의했다. 탄력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고,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제의 경우 일 노동시간이 아닌 주 노동시간을 정하도록 했다. 여기에 더해 “업무량 급증”와 같은 사정이 발생할 경우 노동시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임금보전 방안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하는 보완방안을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 회피할 수 있도록 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뿐만 아니라 탄력근로제와 관련해서 자본이 요구해왔던 각종 규제완화 방안을 모두 담고 있는, 그야말로 최악의 합의다.
자본은 주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우회하는 방안으로 탄력근로제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특히 3개월을 초과하는 단위기간에 걸쳐 활용하는 데 걸림돌이 사라졌다. 게다가 휴식시간, 임금보전 등에 대한 보완방안 역시 우회할 수 있게 됨으로써 자본은 잃는 것은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을 얻게 되었다. 부정적 효과는 조직된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사이에 차별적으로 발생할 것인데,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협의를 통해 보완방안에 대한 우회가 가능하도록 합의했기 때문이다. 자주적인 노동조합이 없는 대부분 사업장에서는 탄력근로제를 매개로 장시간 노동과 임금 감소가 초래될 것이다. 주52시간 상한제가 무력화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합의는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경사노위의 본질과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자 국정과제에 제시된 대표 노동정책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시켰고, 2019년부터는 공약을 사실상 포기하겠다고 밝혔으며,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악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번 합의로 노동시간 단축까지 무력화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진중한 분석에 근거해서 제시된 것이 아니라 대통령 당선과 지지율 확보를 위한 장식품이었음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취임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경사노위는 협의와 신뢰 구축을 위한 포용적 대화기구라는 수사와 달리 자본의 요구를 바탕으로 답을 정해놓고 이를 합의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기구임이 드러났다. 경사노위에서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올해 초부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고 기업의 활용성을 제고하는 것을 방향으로 확정했으며 2월내에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일정까지 공언했다. 사회적 대화기구라기보다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협박 수단이라는 경사노위의 본질은 이번 합의로 명명백백히 확인되었다.
 
 
이번 합의의 노동자측 당사자인 한국노총은 다시 한 번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경사노위가 정부의 노동정책 전환의 도구로 활용될 것이 확인되는 상황에서도 맹목적으로 참여해왔고, 결국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합의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합의는 조직된 노동자보다는 미조직 노동자에게 파괴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노총은 전체 노동자의 이해관계보다는 조직된 조합원의 이해관계에 편향된 조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합의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경사노위 참여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던 민주노총 집행부 역시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운동 방향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경사노위에 참여해서 문재인 정부를 견인하고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인식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경사노위 운영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될 것이며, 정부의 강한 의지가 있고 보수야당 역시 찬성하는 입장이므로 강한 저항과 사회적 여론이 없다면 국회 입법은 일사천리로 추진될 수 있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참여에 대한 미망을 버리고 투쟁을 통해 탄력근로제 국회 입법을 막는 한편,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단결 확대를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주체적 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2019년 2월 20일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