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제언 | 2016.11.26

우리의 건설적 저항은 동료 시민에 대한 존중과 연대로 발전합니다.

- 11.26 촛불에서 여성 혐오 표현을 자제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박근혜 시대를 압축해서 표현하는 한 단어는 “굴종”이다. 고위 관료는 민중을 “개, 돼지”라고 부르고, 권력자의 자식은 부정경쟁 뒤 동료에게 “니 부모 탓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오히려 핀잔을 준다. 정권의 비리를 폭로한 사람을 “국기문란”으로 처벌하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은 “종북좌파”로 몰아 사회적으로 고립시킨다. 권력에 굴종하지 않으면 짓밟힌다는 것이 박근혜 시대의 메시지였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를 압축해서 표현하는 한 단어는 “나라”다.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라고 들고 일어나 “내 나라다!”라고 선언했다. 권력자가 통치하는 방식을 바꾸자는 게 아니다. 주권자의 나라, 모든 개인이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자했다. 굴종을 거부하고 “주권자의 명령”을 외쳤고, 박근혜를 만든 “체제”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흥분되는 광장에서 우리가 되돌아 봐야할 것이 있다. 촛불 집회 곳곳에서 외쳐지는 “근혜 쌍년”, “외로우면 시집이나 가세요” 같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담은 구호와 주장이 그것이다. 여성 박근혜에 대한 혐오는 대통령 박근혜의 퇴진으로 가는 비판과 거리가 멀다. 촛불 집회에 참여한 여성 동료 시민을 배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박근혜가 강요한 굴종을 동료 시민 사이의 굴종으로 바꿔놓는다. 박근혜 퇴진의 길목에서 우리 스스로가 박근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을 여성리더십의 실패라 말한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은 남성리더십의 실패로 평가하지 않는다. 여성정치인은 남성과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 유독 여성정치인에게 성별에 따른 평가가 따라붙는 이유는 여성이 공적인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이 전제되어서다. 정치인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고, 집에서 밥이나 하라는 여성에 대한 멸시는 공공연하다. 직장에서나 심지어 운전하다가도 감히 여자가 밖에서 설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비난을 듣기 일쑤다.

여성에 대한 혐오 발언은 사실 굴종과 모욕을 참고 견뎌온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를 자신이 밟기 쉬운 주변의 약자에게 돌리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 자기를 무릎 꿇리고 굴종시킨 자들에 대한 동경의 시선은 거두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부족한 내가 떳떳한 주권자가 되려면 부족한 다른 사람들도 떳떳한 주권자의 권리가 있음을 지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다시 되돌아보면, 우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진자들이 우리 스스로 부족해 보이도록 굴종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여성임이 자랑스럽고, 이주자는 이주자임이 자랑스럽고, 노동자는 노동자임이 자랑스럽고, 학생은 학생임이 자랑스럽다. 우리가 광장에 나와서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박근혜 체제를 넘어서는 주권자가 되겠다고 함께 선언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촛불을 든 이유는 박근혜를 퇴진시키기 위해서, 굴종의 체제를 해체하고 모든 시민이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다. 여성과 소수자를 혐오하는 말들로 박근혜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표현하지 말자. 오늘 우리의 역사적 촛불은 박근혜의 굴종체제를 해체하는 위대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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